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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진지왕 재위 무렵에 활약한 거칠부(居柒夫)의 다른 표기. 거칠부(居柒夫)가 순수 신라식 이름인데 반해 황종(荒宗)은 이를 새김에 따라 표기한 표기로 생각된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거칠부(居柒夫)<황종(荒宗)이라고도 한다>는 성이 김씨(金氏)이며 나물왕 5대손이다.


거칠부(居柒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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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신라인. 진흥왕 때 활약한 신라 장군이자 정치가인 거칠부에게 조부가 되며, 이찬을 역임하는 물력의 아버지가 된다. 내물왕 손자로서, 관위는 각간까지 올랐다. 따라서 아버지는 사서에서 확인되는 내물왕 세 아들, 즉, 눌지왕 복호 미사흔 중 한 명일 가능성이 있다. 그 손자 거칠부가 지증왕 재위 초반 무렵에 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그의 활동연대는 지증왕 이전, 그러니까 자비왕이나 비처왕 혹은 그 이전 실성왕 및 눌지왕 시대일 것이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거칠부(居柒夫)<황종(荒宗)이라고도 한다>는 성이 김씨(金氏)이며 나물왕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각간(角干) 잉숙(仍宿)이고 아버지는 이찬 물력(勿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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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신라인. 진흥왕 때 장군이자 정치가로 활약한 거칠부 아버지. 내물왕 손자인 잉숙이 아버지다. 관위는 이찬까지 올랐다. 영일 냉수리비에 물력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주된 활동 연대는 지증왕 재위 무렵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거칠부(居柒夫)<황종(荒宗)이라고도 한다>는 성이 김씨(金氏)이며 나물왕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각간(角干) 잉숙(仍宿)이고 아버지는 이찬 물력(勿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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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고구려 출신으로 혼란한 국내 정세를 피해 신라로 가서 거칠부의 주선으로 진흥왕을 배알했으며, 이내 최고 승직인 승통(僧統)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거칠부는 젊었을 때 사소한 일에 거리끼지 않았으며 원대한 뜻을 품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문득 고구려를 정찰하려 그 땅에 들어갔다가, (마침) 법사(法師) 혜량(惠亮)이 절을 열어 불경을 설법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그 곳에 가서 강경(講經)을 들었다. 어느 날 혜량이 묻기를 “사미(沙彌)는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니  “저는 신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날 저녁 법사가 그를 불러 만나니 손을 잡으며 몰래 말했다. “내가 많은 사람을 보았으나 자네 용모를 보니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네. 아마 다른 마음이 있겠지”. 이에 대답하기를 “저는 변방에서 태어나 아직껏 불도의 원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법사님 덕망과 명성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자 왔으니, 법사님께서는 거절하지 마시고 끝까지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라고 말했다. 법사가 말했다. “노승은 불민하지만 능히 그대를 알아볼 수 있는데, 이 나라는 비록 작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자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대가 잡힐까 은밀히 충고해 주는 것이니 빨리 돌아감이 좋을 듯하네”. 거칠부가 돌아가려 하자 법사가 또 말하기를 “그대 상을 보니 제비 턱에 매눈이라, 장래 반드시 장수가 될 것이네. 만일 군사를 거느리고 오거든 나를 해치지 말라”고 했다. 거칠부가 말하기를 “만일 법사님 말씀과 같이 법사님과 즐거움을 같이하지 않는다면 저 밝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환국해 관직에 나아가 관위가 대아찬에 이르렀다. 진흥대왕 6년 을축(545)에는 왕명을 받아 여러 문사(文士)들을 모아 국사(國史)를 편찬하고는 파진찬으로 승진했다. 12년 신미(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 구진(仇珍), 각찬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 서력부(西力夫), 대아찬 비차부(比次夫), 아찬 미진부(未珍夫) 등 8장군에게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침공케 했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 10군을 취했다. 이때 혜량법사가 자기 무리를 이끌고 길거리로 나오니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 군례로 인사를 올리고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전일 유학할 때 법사님 은혜를 입어 생명을 보전했는데 지금 뜻밖에 서로 만나니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법사가 대답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정치가 어지러워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바라건대 나를 그대 나라로 데려가 주게”. 이에 거칠부가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와서 왕을 뵙게 하니, 왕이 법사를 승통(僧統)으로 삼았다. 이때 비로소 백좌강회(百座講會)와 팔관(八關)의 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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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사다함공 전 : 5세 사다함(斯多含)은 구리지(仇利知)의 아들이다. 처음 비량공(比梁公)이 벽화후(碧花后)를 그리워하여, 늘 후(后)의 뒷간에 갔다. 법흥대왕이 비량공을 사랑하여 금하지 않았다. 후(后)와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구리지라 하였다. 아름답기는 벽화후와 같고, 담력은 비량공과 같았다. 자라서 낭도의 무사(武事)를 좋아하였다. 금진낭주(金珍娘主)와 통하여 토함(兎含) 새달(塞達) 사다함(斯多含)을 낳았다. 새달은 이화공의 첩이다. 처음에 우리…법흥대제…. 위화랑…옥진궁주…. 제(帝)가 …이에…구진(仇珍)을…(하고) 이윽고 다시 위화랑과 더불어 좋아하여 … 금진의 아름다움은 비록 옥진보다 못했으나… 옥진은 법흥을 섬겨 아들을 낳았다.

 

화랑세기 양도공 전 : 아버지인 모종의 아버지는 하종(夏宗)이고 (어머니는 미모(美毛)이고) 양부(養父) 보종(寶宗)의 아버지는 설원이다. 어머니인 양명(良明)의 어머니는 보명(寶明)인데, 지소태후와 침신(枕臣)인 구진(仇珍)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화랑세기 군관공 전 : 아버지는 동란(冬蘭)이고 할아버지는 동종(冬宗)이다 증조는 오종(五宗)이다. 오종공은 사실공주(梭失公主)의 아들이다. 보현공주가 어렸을 때 법흥대제와 사랑(和好)하여 사실공주를 낳았다. 법흥대제가 사실을 입종공(立宗公)에게 시집보내어 오종공을 낳았다. 오종공은 곧 진흥대제의 이모형(異母兄)이다. 오종이 비차부(比次夫)의 딸 비란(比蘭)을 아내로 맞아 딸 오란(五蘭)을 낳고 황종공(荒宗公)의 아들 동종(冬宗)을 데려다 아들로 삼아 오란을 배필로 삼게 하여 동란을 낳았으니 공은 실로 보현과 사실의 적사(嫡嗣)이다. 석명공주가 처음에 진평제를 섬겨 두 딸을 낳고 출궁하였다. 동란공은 그 때 음성서(音聲署)의 장(長)으로 향가(鄕歌)를 잘하였다. 석명이 동란공에게 가무를 배웠다. 마침내 서로 사랑하여 딸 석란을 낳았다. 제(帝)가 허락하여 혼인을 하였으나 동란공은 감히 처로 삼지 대하지 못하고 군(君)으로 섬겨 자녀를 계속 낳았다. 공은 그 네 번째이다. 석명의 어머니는 보명인데 금륜제(金輪帝)를 섬겨 현조(玄鳥)의 꿈을 꾸고 석명을 낳았다. 그러므로 공은 실로 황종공의 증손이고 구진(仇珍)의 외예(外裔)가 된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진흥대왕)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 구진(仇珍), 각찬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 서력부(西力夫), 대아찬 비차부(比次夫), 아찬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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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12년(551), 신라가 백제와 합세해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서 점령할 때 신라군 수뇌진 8장군 중 한 명이다. 당시 관위는 2등 각찬이었다. 나아가 화랑세기 미진부공 전에는 보이는 비대(比臺)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臺는 약자로 흔히 台를 쓰는 데다 발음 역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진흥대왕)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 구진(仇珍), 각찬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 서력부(西力夫), 대아찬 비차부(比次夫), 아찬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비대(比臺) 

화랑세기 미진부공 전 : 미진부공(未珍夫公)은 아시공(阿時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삼엽궁주(三葉宮主)이니 법흥대왕 딸이다. 꿈에 백학을 보고 낳았다. 공은 모습이 아름답고 재주가 많아, 법흥대왕이 총애했다. 비대공(比臺公) 등과 함께 궁중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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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12년(551), 신라가 백제와 합세해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서 점령할 때 신라군 수뇌진 8장군 중 한 명이다. 당시 관위는 3등 잡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흥왕 : 15년(553) 가을 7월에 명활성(明活城)을 수리하여 쌓았다. 백제 왕 명농[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해 왔다. 군주 각간 우덕(于德)과 이찬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新州)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裨將)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6백 명을 목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진흥대왕)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 구진(仇珍), 각찬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 서력부(西力夫), 대아찬 비차부(比次夫), 아찬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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