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215)


호국사에서 가을을 읊다(護國寺秋吟) 여덟째


[宋] 백옥섬(白玉蟾) / 김영문 選譯評 



안성 석남사. 2011. 11. 12



별빛이 천 점

반딧불 같고


구름은 한 쌍

두루미 같네 


외로이 시 읊으며

추위에 잠 못드는데


떨어지는 나뭇잎

휑한 창을 때리네 


星似螢千點, 雲如鶴一雙. 孤吟寒不寐, 落葉打空窗. 


절집은 청정하고 고적하다. 스님들은 티끌 세상과 인연을 끊고 불도에 매진한다. 가족, 연인, 친구를 떠나 진리를 탐구한다. 멀고도 깊다. 진실로 텅 비어 있지만 오묘하게 존재한다. 가을 밤 절집 지붕 위로 별이 쏟아진다. 늦여름 풀숲에는 반딧불이 찬란했다. 반딧불이 가득 덮힌 하늘에 하얀 두루미 한 쌍이 날아간다. 아니 흰 구름이다. 분별할 것도 없다. 청정함에는 추위가 묻어있고, 고적함에는 외로움이 배어 있다. 그 추위와 외로움의 어깨 위로 마치 무극(無極)의 죽비처럼 붉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내린다. 휑한 마음의 창을 스산하게 두드린다.

우연히 느낌이 있어서[感遇]  


[조선] 허봉(許篈·1551~1588)


전남 장성 고경명 묘소에서



낭군은 둑가 버들 좋아하셨고

소첩은 고개 위 솔 좋았어요

바람 따라 홀연히 흩날리며

이리저리 쓸려가는 저 버들개지

겨울엔 그 자태 변하지 않는

늘 푸른 솔과 같지 않지요 

좋아함과 싫어함 늘 변하기에

걱정스런 마음만 가득하답니다


君好堤邊柳, 妾好嶺頭松. 柳絮忽飄蕩, 隨風無定蹤. 不如歲寒姿, 靑靑傲窮冬. 好惡苦不定, 憂心徒忡忡. 


전남 장성 고경면 묘소에서



조선후기 문사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열조시집(列朝詩集)》에서 채록했다면서, 그의 《해동역사(海東繹史)》 권제49 예문지(藝文志) 8 본국시(本國詩) 3 본조(本朝) 하(下)에 위 시를 수록하면서, 《열조시집》을 인용해 이르기를 “허봉(許篈)의 여동생이 김성립(金成立)한테 시집갔는데, 착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허봉은 허균(許筠·1569~1618)의 형이요, 난설헌(1563~1589)의 오빠다. 따라서 김성립한테 시집간 여동생이란 곧 허난설헌을 말한다.  


한시 제목에 흔히 등장하고, 이 시에서도 제목으로 삼은 감우(感遇)란 우연히 생각난 바를 읊었을 때 쓰는 말로써, 이것도 저것도 붙이기 싫을 때는 무제(無題)라 하기도 한다. 시를 보면, 허봉은 여자에 가탁해 바람기 다분한 한 남자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자 바라기의 심정을 나무에 견주어 그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니, 남자는 봄날만 되면, 이리저리 그 꽃방울 날리는 버들개지맹키로,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에 견주어, 화자인 여자는 같은 자리 높은 산 꼭대기를 홀로 지키는 소나무에 비긴다. 이를 무슨 전통시대 유교 윤리를 끌어다가 설명하기도 하는 모양이나, 글쎄, 그것이 꼭 전통시대 유교윤리만이리오? 



한시, 계절의 노래(200)


가을 저녁 퇴락한 산사에 묵다(秋晚宿破山寺)


[唐] 교연(皎然) / 김영문 選譯評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靈山殿



가을바람에 잎 떨어져

빈산에 가득


석벽 사이 옛 절엔

잔약한 등불


지난 날 들렀던 이

모두 떠나고


찬 구름만 밤마다

날아 드누나


秋風落葉滿空山, 古寺殘燈石壁間. 昔日經行人去盡, 寒雲夜夜自飛還.


가을을 고독과 비애의 계절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추워지는 날씨가 그 원천이 아닐까 한다. 옛날에는 더 그랬지만 지금도 날씨가 추워지면 인간의 활동 반경은 좁아져 집안에 웅크리는 날이 많다. 자연히 찾아오는 손님도 줄어들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추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따뜻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오소소 돋는 소름은 추위에 대한 절실한 느낌을 넘어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감지하게 한다. 이런 시절에는 추수한 곡식을 아껴 먹으며 찬 서리와 눈보라를 견뎌야 한다. 겨울은 가깝고 봄은 멀다. 어쩌면 빙하기를 겪으며 살아남은 인류의 유전자 속에 추위와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가 스며든 듯하다. 하나뿐인 인간의 목숨 앞에 추위, 빙설, 고립은 얼마나 두려운 상황이었으랴? 어떻게 생각해보면 화석 같은 느낌인데 그것이 뼈가 시릴 정도로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그건 화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임도 확실하다. 가을의 고독과 비애를 읊은 시 중에서 가장 절창을 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정완영의 「애모」를 꼽는다. 전체 3련이나 첫 련만 든다. “서리 까마귀 울고 간 북천은 아득하고/ 수척한 산과 들은 네 생각에 잠겼는데/ 내 마음 나뭇가지에 깃 사린 새 한 마리” 형식이 시조이므로 다소 영탄조의 운율과 고답적인 시어가 신선감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가을에 관한 시로서 매우 탄탄한 풍격을 갖추고 있다. 이 시조에 버금가는 한시를 들라면 나는 위 교연의 칠언절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절벽 사이에 자리잡은 퇴락한 절집, 온 천지 가득 낙엽이 휘날리고, 잔약한 등불은 꺼질 듯 말 듯 흔들리는데, 캄캄한 어둠을 휘감으며 찬 구름만 처연히 날아들고 있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영탄조의 시어를 한 글자도 쓰지 않고, 가을의 고독과 비애를 묘사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 자리에까지 밀고나간 점이다. 인간은 끝내 혼자 죽는 존재다. 이 스산한 가을이 그것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산속에서 은자와 술을 마시다(山中與幽人對酌) 


  당(唐) 이백(李白) / 김영문 고르고 옮김


두 사람 마주 앉아 술을 마신다

산꽃이 핀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나는 취해 자고 싶어

너도 이제 그만 가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다시와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卿且去 

明朝有意抱琴來







봄날 즉흥시(春日即事) 5수 중 첫째 


  송(宋) 서방좌(舒邦佐)


한낮 동풍에 사립문 절로 열리고 

제비 쌍쌍이 둥지찾아 날아드네

버드나무 솜털꽃 본래 정처 없어

남쪽으로 날더니 돌아오지 않네


正晝東風自展扉 

雙雙燕子望巢飛 

楊花卻是元無定 

吹落南鄰不肯歸



중문학도 김영문 박사 페이스북 포스팅을 약간 손질해서 가져온다. 



아래 소개하는 시는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랑 같이 감상하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6roNkyGBM

중국 고대 연애시 앤쏠로지인 《옥대신영玉臺新詠》 권1에 後漢시대 진가(秦嘉)라는 사람이 병들어 친정으로 요양간 아내 서숙(徐淑)에게 보낸 연작시 3편이 증부시(贈婦詩)라는 제목으로 연달아 수록되었으니, 그 서문에는 작자 진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秦嘉는 字를 사회(士會)라 하며, 농서(隴西) 사람이다. 군상연(郡上掾)이 되어 그의 처 서숙(徐淑)이 병이 들어 본가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직접 얼굴을 볼 수 없어 시를 주었으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秦嘉. 字士會. 隴西人也. 為郡上掾. 其妻徐淑寢疾. 還家. 不獲靣別. 贈詩云爾)


첫 번째(其一)

人生譬朝露 인생은 아침이슬 같고 

居世多屯蹇 세상살이 고난 많다오

憂艱常早至 근심과 간난 늘 빨리 오고

歡會常苦晚 기쁨과 만남 늘 늦어 괴롭소 

念當奉時役 시절 임무 받들어 떠나려니 

去爾日遙遠 떨어질 지낼 날 멀기만 하오 

遣車迎子還 수레 보내 당신 맞으려 했지만

空往復空返 공수레로 갔다 공수레로 오구려 

省書情悽愴 편지 살피니 마음 서글퍼져 

臨食不能飯 밥을 보고도 차마 먹을 수 없소

獨坐空房中 홀로 앉아 빈방 지키니 

誰與相勸勉 누구와 다독거리겠소 

長夜不能眠 긴 밤에 잠 못 이루고 

伏枕獨展轉 베개 깔고 홀로 뒤척이니 

憂來如尋環 걱정 일어나 뱅뱅 도는 듯하지만 

匪席不可卷 내 마음 돗자리 아니라 말지 못하는구려


이에서 보듯이 첫 번째 시는 신병 치료차 친정으로 돌아간 직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 시는 아내의 친정 복귀 직후 집안의 휑뎅그레한 풍광과 그에서 격발하는 작자의 허전함과 애절함을 표현했다.


어느 독거중년


두 번째(其二)

皇靈無私親 신령은 사사롭게 편애 않으니

為善荷天祿 착한 일엔 하늘이 복을 주신댔소

傷我與爾身 가슴 아프오 당신과 나 

少小罹煢獨 젊을 적 기댈 곳 없이 홀로되어 

既得結大義 결혼이란 큰 뜻 이뤄지만 

歡樂若不足 함께하는 즐거움 아직 모자란듯 

念當遠離別 멀리 이별할 일 생각하며 

思念敘欵曲 그대 향한 맘 곡진히 펼쳐봅니다 

河廣無舟梁 황하는 넓어 건널 배조차 없고 

道近隔邱陸 길은 가까우나 구릉언덕에 막혔다오

臨路懷惆悵 떠나려니 가슴 속 먹먹해져 

中駕正躑躅 가다가 머뭇머뭇한다오 

浮雲起高山 뜬 구름 높은 산에서 일고 

悲風激深谷 서글픈 바람 깊은 계곡 치는구려

良馬不回鞍 좋은 말이라 안장 돌리는 일 없고 

輕車不轉轂 가벼운 수레바퀴 돌리지 않는다오

針藥可屢進 침과 약은 자주 댄다 하나 

愁思難為數 시름은 헤아리기 어렵다오 

貞士篤終始 정절 있는 남자 맘 변함없지만 

思義不可屬 그대 향한 생각 다 적을 수 없소


두 번째 시는 친정으로 떠나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역시 주조를 이루나 배경은 작자의 心相이다.


세 번째(其三)

肅肅僕夫征 어서어서 종들이 갈길 서두르고

鏘鏘揚和鈴 쨍그러렁 수레방울 소리내네 

清晨當引邁 이른 아침 먼 길 떠나려 

束帶待雞鳴 혁대 메고 닭울음 기다리며 

顧看空室中 텅 빈 방 돌아보니 

髣髴想姿形 당신 모습 있는 듯 

一別懷萬恨 한번 이별에 만 가지 회한 인다오

起坐為不甯 일어나 앉아도 편치 않으니 

何用敘我心 무엇으로 내 마음 펼치리오 

遺思致欵誠 그리움 전하며 정성깃든 선물 보낸다오 

寶釵可耀首 보석 비녀론 머릴 빛나게 하고 

明鏡可鑒形 밝은 거울론 얼굴 비출 수 있소 

芳香去垢穢 꽃다운 향기는 묵은 때 없애고 

素琴有清聲 소금에선 맑은 소리 난다오

詩人感木瓜 시인은 모과 선물에 감동하여 

乃欲答瑤瓊 아름다운 옥으로 보답하려 했다지요

媿彼贈我厚 부끄럽소 당신이 보내준 선물에 비하면

慙此往物輕 할말없소 내가 보내는 선물에 비하면 

雖知未足報 보답이 모자람을 내 알지만 

貴用敘我情 내 마음 알림이 소중하오


이 세 번째 시는 친정에서 요양하는 아내를 두고 서울로 떠나야 하는 작자를 노래했다. 종들이 서두르는 수레는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다. 작자는 隴西 사람이다. 한데 그는 이곳의 아전 혹은 서리로서 회계와 호구 조사 등의 예산 전반을 담당하는 군상연(郡上掾)으로 해마다 때가 되면 서울로 상경해 중앙조정에다가 郡의 재정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서울로 가는 발걸음은 바로 이런 공무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편지에 병든 아내 서숙은 어떤 답장을 보냈는가?

같은 옥대신영에는 그에 대한 아내의 답가가 ‘秦嘉 妻 徐淑 答詩 一首’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著錄되었다.


妾身兮不令 첩은 몸이 편치 못하여 

嬰疾兮來歸 병 걸려 친정에 왔습니다

沉滯兮家門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지만

歷時兮不差 날이 가도 차도가 없네요 

曠廢兮侍覲 당신 모시는 일 팽개치니 

情敬兮有違 정성스런 공경 어겼답니다 

君今兮奉命 당신은 지금 나랏일 받들어

遠適兮京師 멀리 서울로 떠나시지요 

悠悠兮離別 아득아득 이별은 멀고요 

無因兮敘懷 가슴에 품은 맘 말할 수 없네요

瞻望兮踴躍 하늘 쳐다보며 동동 구르다가 

佇立兮徘徊 우두커니 선 채 서성일 뿐 

思君兮感結 당신 생각에 감정 북받치는데

夢想兮容輝 꿈속에서 멋진 당신 모습 그려요

君發兮引邁 당신 먼 길 떠나시면 

去我兮日乖 저와 떨어질 날 갈수록 많겠지요 

恨無兮羽翼 한스럽습니다 날개 없으니 

高飛兮相追 높이 날아 당신 따를 수 없음이 

長吟兮永歎 길게 신음하며 오래 탄식하니 

淚下兮霑兮 눈물 흘러 옷깃을 적신답니다


둘은 어떻게 되었는가? 남편 진가는 서울로 갔다가 그곳에서 눌러앉아 黃門郞이라는 중앙관직에 임명되었다가 이내 죽으니, 친정에 남은 아내 또한 이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중국사에서 서진西晉시대 정계와 문학의 거물 장화(張華)에게 ‘정시’(情詩)라는 제목이 붙은 五言 연작시가 있으니,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다섯 편 중에서도 세 번째 작품이다. 원앙금침 둘렀으나, 적막할 뿐이다. 독수공방을 이처럼 절절하게 표현한 작품 드물다. 아래 텍스트는 《문선文選》을 따른다. 《옥대신영玉臺新詠》 本은 조금 다르다.




清風動帷簾  맑은 바람 휘장발 흔들고 

晨月照幽房  새벽달은 깊은 방 비추네 

佳人處遐遠  고운님 멀고먼곳 계시는데 

蘭室無容光  난초방엔 멋진 자태 없네

襟懷擁虛景  품속에선 헛된 그림자 안고

輕衾覆空床  얇은 이불 휑한 침대 덮었네

居歡惜夜促  즐거울 땐 짧은 밤 아쉽더니

在戚怨宵長  시름일 땐 긴 밤 원망스럽네 

拊枕獨嘯歎  베개 안고 혼자서 한탄하니 

感慨心內傷  슬픔 겨워 가슴속 아려오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