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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니, 20세기에 활발히 출간되고 있는 우리나라 각 교사校史라든가 지방지를 보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항목이 '우리 학교(혹은 고장)를 빛낸 인물들'이라는 곳인데, 이것만 보면 우리는 마치 그 학교, 그 고장 출신자 전체가 모두 독립투사이며 의병장이며 뛰어난 학자인 줄 착각하게 되는 착시현상에 견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집단 전체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 학교, 그 고장을 빛냋 인물이 될 수는 결코 없다. 개중에는 일제에 빌붙어 나라와 동포를 팔아먹은 놈이 있는가 하면 협잡꾼도 있을 것이고 천하의 난봉꾼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혹 김대문(金大問)이 현좌충신(賢佐忠臣) 양장용졸(良將勇卒)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화랑세기》가 그런 인물들로만 득실댈 것이며 나아가 화랑도 전체가 이런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어떤 집단이나 어떤 인물이 어떤 기준으로 부각되려면 그렇지 않은 인물들이 그 반대편에 항상 존재해야만 한다. 이완용이 없으면 신채호도 없다. 화랑도 모두가 정말로 현좌충신이고 양장용졸이었다면 김대문은 그런 인물들로만 채운 《화랑세기》라는 열전을 쓸 까닭이 없다. 모두가 현좌이고 충신이고 양장이며 용졸인데 뭣하러 현좌충신 양장용졸로 득실대는 《화랑세기》를 쓴단 말인가?"


김태식,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1) 중 프롤로그 '순국무사 화랑을 해체하며' 중 한 대목이다. 



이에서 보이는 "화랑도 모두가 정말로 현좌충신이고 양장용졸이었다면 김대문은 그런 인물들로만 채운 《화랑세기》라는 열전을 쓸 까닭이 없다"는 구절이 애초엔 "화랑도 모두가 정말로 현좌충신이고 양장용졸이었다면 김대문은 그런 인물들로만 채운 《화랑세기》라는 열전을 미쳤다고 쓴단 말인가"였다.  


내가 이 얘기를 왜 굳이 하는가?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를 살다간 김대문이라는 사람이 그의 단행본 중 하나인 《화랑세기》에서 했다는 말 중에서도 굳이 "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賢佐忠臣]가 이(화랑)에서 우뚝 빼어났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良將勇卒]이 이(화랑)에서 생겨났다"는 말을 인용했다고 했거니와, 《화랑세기》가 이미 일실(逸失)한 마당에, 이 구절을 접한 근현대 역사학도들이 너도나도 가릴 것 없이, 이런 말을 남긴 《화랑세기》는 화랑 출신 중에서도 그러한 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 그리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졸만을 골라 열전으로 세운 충신 전기일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라진 《화랑세기》가 홀연히 출현한 지금에도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이영표의 그것을 능가하는 완연한 헛다리 짚기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저런 말을 김대문이 남겼다는 《화랑세기》는 '花郞世記'라,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화랑을 역임한 사람들의 순차적인 전기'라는 뜻이거니와, 그 제목만으로도 벌써 신라본기 고구려본기 백제본기처럼 초대 이래 마지막까지 특정한 직위, 예컨대 왕 혹은 제후들의 순차적인 전기라는 의미이니, 아무렇게나 화랑 출신자들이라 해서 나열한 전기가 아닌 것이다. 세기(世記)라는 말은 본기(本記) 혹은 세가(世家)라는 말과 같다. 이 평범한 용어조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연 눈치채지 못한 것이니, 이것이 《화랑세기》를 곡해한 제1의 원흉이다. 


둘째, 세기는 본기 혹은 세가인 까닭에 그러한 직책을 차례로 역임한 사람들은 여러 군상이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다. 신라본기를 보면 초대 혁거세 이래 마지막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56명에 달하는 왕이 있었으니, 개중에는 성군聖君도 있고 현군賢君도 있지만, 패악무도한 임금도 있고, 어려서 즉위해 아무 것도 못하고는 죽어간 애송이 왕도 있는 것이다.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에 순차로 등장하는 왕들 역시 그러했다. 


자연 화랑들의 본기이자 세가인 '화랑세기' 역시 초대 화랑 이래 마지막 화랑에 이르기까지 이런 다양한 군상의 화랑들 열전이어야 한다. 이건 지금 홀연히 다시 출현한 《화랑세기》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 지극히 상식 수준의 추단만으로도 《화랑세기》에 등장할 화랑들은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함에도 삼척동자도 간취하는 이런 특성을 정작 역사로 업을 삼는다는 자들(우리는 그들은 역사학자라 한다)만이 유독 그것을 몰라, 현좌충신 양장용졸 운운하는 구절이 《화랑세기》를 인용한  《삼국사기》에 보인다 해서, 이 말을 확대 왜곡하고는 《화랑세기》에는 현좌이면서 충신이고, 양장이면서 용졸인 신라 화랑이 그득할 것이라는 믿음은 단 한 순간도, 지금 이 순간에도 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화랑세기》를 망친 두 번째 원흉이다. 


셋째 원흉은 《화랑세기》와 《삼국사기》를 구별하지 못한 죄다. 기전체인 《삼국사기》를 구성하는 여러 편 중에서도 인물 전기인 열전이 정리한 인물 중에는 신라 화랑 출신이거나, 그렇게 추정되는 인물이 제법 있으니, 그런 사람들은 하나 같이 현좌이며 충신이고, 양장이고 용졸이니, 김유신이 그러하고, 그의 조카 김반굴과 반굴의 아들 김령윤이 그러하며, 사다함이 그러하다. 실제 이들을 보면 용맹한 전사戰士들이다. 하지만 《삼국사기》가 정리한 신라 화랑들이 이런 인물 일색이라 해서, 《화랑세기》가 정리했을 신라 화랑들 역시 이런 인물들로 점철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한데 그 위험천만한 생각들이 근현대 역사학 지난 100년을 정답처럼 군림하고 말았다. 


'현좌충신 양장용졸'은 김대문이 생각한 바람직한 화랑상(像)일 뿐이며, 실제 모든 신라 화랑이 저러했던 것은 단연코 아니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김대문 자신이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저 말이 김부식으로 넘어오면서는 일대 변신을 꾀해, 김부식이 《삼국사기》 열전에 수록할 사람들을 추리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같은 현좌충신 양장용졸이라 해서, 그 맥락은 전연 달랐던 것이다. 


말한다. 


김대문이 말한 현좌충신 양장용졸과 김부식이 그것을 굳이 끄집어 낸 맥락은 전연 다르다. 이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 데서 신라 화랑을 둘러싼 거대한 곡해가 빚어졌던 것이다. 김대문의 이데올로기와 김부식의 이데올로기, 이걸 구별할 줄 모르는 것은 똥과 된장을 구분치 못하는 일과 같다. 


<삼국사기>


進三國史記表金富軾

臣某言古之列國亦各置史官以記事故孟子曰晉之乘楚之擣扤魯之春秋一也惟此海東三國歷年長久宜其事實著在方策乃命老臣俾之編集自顧缺爾不知所爲中謝伏惟聖上陛下性唐堯之文思體夏禹之勤儉宵旰餘閒博覽前古以謂今之學士大夫其於五經諸子之書秦漢歷代之史或有淹通而詳說之者至於吾邦之事却茫然不知其始末甚可歎也况惟新羅氏高句麗氏百濟氏開基鼎峙能以禮通於中國故范曄漢書宋祁唐書皆有列傳而詳內略外不以具載又其古記文字蕪拙事迹闕亡是以君后之善惡臣子之忠邪邦業之安危人民之理亂皆不得發露以垂勸戒宜得三長之才克成一家之史貽之萬世炳若日星如臣者本匪長才又無奧識洎至遟暮日益昏蒙讀書雖勤掩卷卽忘操筆無力臨紙難下臣之學術蹇淺如此而前言往事幽昧如彼是故疲精竭力僅得成編訖無可觀祗自媿耳伏望聖上陛下諒狂簡之裁赦妄作之罪雖不足藏之名山庶無使墁之醬瓿區區妄意天日照臨(出自東文選卷第四十四表箋)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본기>


삼국사기를 올리는 글 

김부식 

신 부식이 아룁니다. 옛적 여러 나라에서도 각기 사관(史官)을 두어 일을 기록했으니, 그런 까닭에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의 승()과 초()의 도올(檮杌)과 노()의 춘추(春秋)는 한가지다라 했습니다. 바다 동쪽 세 나라가 지난 세월이 장구하니 마땅히 그 일들을 사책에 실어야 한다며, 늙은 신하에게 명하시어 그것을 엮게 하셨지만 스스로 돌아보건대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당요(唐堯)의 문사(文思)를 타고나시고, 하우(夏禹)의 근검을 체득하시어, 밤낮 여가에 앞선 옛날을 널리 보시고는 이르시기를 오늘날 학사 대부가 오경(五經)과 제자(諸子) 같은 책과 진()()이 지난 내력에는 더러 두루 통하고 자세히 설명하는 이가 있으나 우리나라 일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아득하여 그 시종을 알지 못하니 매우 통탄할 만하다. 하물며 신라고구려백제는 나라를 세워 솥발처럼 맞서며 능히 예로써 중국과 통하니, 범엽(范曄)한서(漢書)나 송기(宋祁)당서(唐書)에 모두 그들의 열전이 있기는 하나, 국내 일은 자상하게 다루고 국외의 일은 허술하게 만들었으므로 갖추어 싣지 아니한데다, 더구나 고기(古記)는 문자가 너무도 졸렬하고 사적도 빠진 것이 많은 까닭에 군왕(君王)의 옳고그름과 신하들의 충성됨과 삿됨과 국가의 편안함과 위기에 처함과 인민의 다스림과 혼란스러움을 모두 들추어내어 교훈으로 삼을 수 없으니, 마땅히 세 가지 능력을 갖춘 인재를 구하여 일가(一家)의 역사를 이루어 만세에 물려주어, 해와 별 같이 빛나게 해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신 같은 자는 본디 삼장의 재주가 아니옵고 또 깊은 학식도 없으며,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날로 더욱 몽매하여 글 읽기는 비록 부지런히 하나 책을 덮으면 바로 잊어버리고, 붓대를 잡으면 힘이 없어 종이에 대고 써내려가기가 힘듭니다. 신은 학술이 천박하기가 이와 같고, 예전 말과 지난 일은 깜깜함이 저와 같으니, 이런 까닭에 정력을 소모하고 힘을 다하여 겨우 엮기는 했지만, 별로 보잘것없어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이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폐하께서 뜻만 원대한 재주를 살피시고 함부로 만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면, 비록 이름난 산에 간직할 만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장독대 덮개가 되는 일을 없을 듯하니, 신의 이런 뜻을 하늘도 훤히 보고 있습니다


方策 : 即方冊簡冊典籍後亦指史冊。《禮記·中庸》:哀公 問政子曰文 武 之政布在方策其人存則其政舉其人亡則其政息’” 鄭玄注版也簡也孔穎達 疏言 文王 武王 爲政之道皆布列在於方牘簡策陸德明 釋文作南朝 宋 顏延之 三月三日曲水詩序》:夫方策既載皇王之跡已殊鍾石畢陳舞詠之情不一宋書·後廢帝傳》:方筴所不書振古所未聞明 宋濂恭題禦制文集後》:仁民愛物之心隨感而見布於方策章炳麟 文學總略》:是故繩線聯貫謂之經簿書記事謂之專比竹成冊謂之侖各從其質以爲之名亦猶古言方策漢 言尺牘今言劄記參閱 清 李惇 群經識小·方策》。


中謝 : 古代臣子上謝表例有誠惶誠恐頓首死罪一類的套語表示謙恭後人編印文集往往從略而旁注中謝二字。《文選·羊祜》:夙夜戰栗以榮受憂中謝李善 注中謝言臣誠惶誠恐頓首死罪宋 周密 齊東野語·中謝中賀》:今臣僚上表所稱誠惶誠恐及誠歡誠喜頓首稽首者謂之中謝中賀自 唐 以來其體如此蓋臣某以下略敍數語便入此句然後敷陳其詳


狂簡志向高遠而處事疏闊。《論語·公冶長》:吾黨之小子狂簡斐然成章不知所以裁之朱熹 集注狂簡志大而略於事也晉 葛洪 抱樸子·吳失》:筆不狂簡而受駁議之榮低眉垂翼而充奏劾之選宋 司馬光 又和並寄楊樂道》:狂簡昧大體所依官長賢清 孔尚任 桃花扇·偵戲》:小子翩翩皆狂簡結黨欺名宦風波動幾番

 

區區職微小自稱的謙詞憨愚死心眼等左傳·襄公十七年》:宋國區區而有詛有祝禍之本也


妄意


天日 : 讀音tiān rì漢語詞語指天空和太陽喻指光明。《三國志·吳志·胡綜傳》:款心赤實天日是鑒唐杜牧 阿房宮賦》:覆壓三百餘裏隔離天日清 陳夢雷 丁巳秋道山募建普度疏》:雲霓在望海澨歡騰天日重光神人喜溢杜鵬程 保衛延安第三章部隊從遮蓋天日的森林中日夜行進喻天理或光明。《老殘遊記續集遺稿第二回怎麼外官這們利害咱們在京裏看禦史們的摺子總覺言過其實若像這樣還有天日嗎巴金 雪峰》:他們妄想用這個決定讓我一輩子見不了天日喻帝王。《宋書·武帝紀中》:鎮北將軍臣 宗之 青州 刺史臣 敬宣 並是 裕 所深忌憚欲以次除蕩然後傾移天日於事可易

(주석은 정리해 가는 중이다. 번역 역시 하나씩 바로잡고, 고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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