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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 선생 글이다. 


은인(殷寅)은 자가 직청(直淸)이며 진군(陳郡) 장평(長平, 하남성 西華) 사람이다. 은천유(殷踐猷)의 아들. 745년 진사과에 급제하고 이후 박학굉사과에도 급제하였다. 태자교서(太子校書)를 지낸 후 영녕위(永寧尉)로 나갔으나, 아전의 위세와 모욕이 심한데 대해 채찍으로 죽였기에 징성승(澄城丞)으로 폄적되었다. 은인은 당시 시문에 이름이 있었으며 안진경(顔眞卿), 소영사(蕭穎士), 이화(李華), 조화(趙驊), 유방(柳芳) 등과 친하였다. 이화는 「삼현론」(三賢論)에서 여러 차례 은인을 언급하였다. 현재 시 2수가 남아있다. 『신당서』 은천유 본전에 간략한 전기가 붙어있다.


玄元皇帝應見, 賀聖祚無疆

현원황제가 응현하였기에 성조의 영원함을 축하함


應歷生周日, 시운을 타고 주나라에 태어나시어

修祠表漢年. 한나라 때 사당을 지어 추앙받았어라

復茲秦嶺上, 다시 여기 진령(秦嶺) 위에 사당을 세우니 

更似霍山前. 다시금 곽산(霍山) 앞의 일과 비슷하구나

昔贊神功啓, 예전에는 신통한 공을 도와서 길을 열었고

今符聖祚延. 지금은 성조에 부합되게 이끌었구나

已題金簡字, 벌써 황금 간책(簡冊)에 글자를 써서

仍訪玉堂仙. 이미 신선세계의 노자를 방문했어라

睿祖光元始, 신성한 조상의 영광된 시조

曾孫體又玄. 증손이 체득한 현묘의 도

言因六夢接, 말은 여섯 가지 길몽과 부합되고

慶叶九齡傳. 경사는 장수와 부합하여 길이 이어지네

北闕心超矣, 나의 마음은 북궐을 향해 달려가

南山壽固然. 남산처럼 굳세게 장수하리라 기원하네

無由同拜慶, 함께 배알하고 경하할 길이 없지만

竊忭賀陶甄. 스스로 기뻐하며 임금을 축하하네


〔심덕잠 평석〕 『구당서』에 기록했다. “개원 20년(732년) 4월 현종이 성 남산의 유적지에 천존의 상을 꿈에서 보고는 이를 찾으니 주질 누관의 옆에서 얻었다. 천보 원년(742년) 정월 전동수가 장안 영창가 공중에서 현원황제를 보았는데 ‘천하태평 성수무강’ 여덟 글자를 지금의 황제께 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기록했다. “도림현의 옛 관령 윤희의 고택 옆에 영보부가 있었는데 환관을 보내 구해와 함원전에 바쳤다.”(舊唐書: “開元二十年四月, 帝夢城南山趾有天尊之象, 求得之於盩厔樓觀之側. 天寶元年正月, 田同秀稱於京師永昌街空中見玄元皇帝, 以‘天下太平, 聖壽無疆’八言傳於今上.” 又云: “桃林縣故關令尹喜宅傍有靈寶符, 發使求而得之, 獻於含元殿.”) ◯ 고조 무덕 3년(620년) 길선이 양각산을 걷다가 흰 옷 입은 노인을 만났다. 말하기를 “내가 당 천자에게 말하니 나는 노자로 즉 너의 선조이니라”라고 했다. 고조가 곧장 사신을 보내 제사를 지내고, 그 자리에 사당을 세웠다.(高祖武德三年, 吉善行於羊角山, 見白衣老父, 曰: “為我語唐天子, 吾是老君, 即汝祖也.” 高祖卽遣使致祭, 立廟於其地.)


〔해설〕 노자의 현령(顯靈)을 경하하였다. 고대에는 위에서 심적잠이 인용한 사건들처럼 상서로운 일들이 많이 기록되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왕조를 지속하고 대중의 마음을 통합하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이 시는 745년 성시(省試)에 제출한 답으로, 노자와 관련된 부서(符瑞)를 가지고 왕조의 번영과 군주의 장수를 경하하였다.

김천 대덕산 설경


한시, 계절의 노래(168)


노자를 읽다(讀老子)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침묵하는 지자보다

말하는 자가 못하단 말


이 말을 나는야

노자에게 들었네


만약에 노자를

지자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자신은

오천 자를 지었을까?


言者不如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형용모순 또는 모순어법이라는 말이 있다. 한 문장 안에 모순된 상황을 나열하여 전달하려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수사법이다. 가령 “소리 없는 아우성”, “반드시 죽어야 산다(必死卽生)”, “눈을 감아야 보인다” “색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등등, 곰곰이 따져보면 말이 안 되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면서 말하려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우리 주위의 고전 중에서 형용모순으로 가득 찬 책은 바로 『노자(老子)』다. 개권벽두에서 벌써 이렇게 선언했다. “도(道)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도(道)’는 진리를 의미하지만 그 자체로 ‘말하다’는 뜻도 가진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말이 아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노자』 첫머리에 벌써 ‘침묵은 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셈이다. 하지만 그는 5천 자 수다를 계속 이어나갔다. 5천 자는 유가의 경전에 비해 매우 과묵한 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노자는 가장 먼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란 간판을 달았으므로 바로 뒷구절부터는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 되는 셈이다. 노자의 형용모순 어법은 무엇을 겨누고 있을까? 바로 형용모순으로 범벅이 된 현실이다. 인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높은 관직에 앉아 불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효도와 화목을 내세우는 왕실이 궁정암투와 집안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신의를 표방하면서 친구를 배신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자는 형용모순이면서도 형용모순임을 모르는 현실을 풍자하며 형용모순 어법으로 도(道)에 다가가려 했다. 중당의 대문호 백거이가 『노자』의 그런 특징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노자』를 읽고 왜 5천자의 저작을 남겼냐고 힐난하는 것은 또 하나의 형용모순에 다름 아니다. “문인이 서로 경시함은 옛날부터 그러했다(文人相輕, 自古而然)”란 조비(曹丕)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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