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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다루왕본기 : 다루왕(多婁王)은 온조왕의 맏아들이다. 도량이 넓고 위엄과 덕망이 있었다. 온조왕이 재위 28년에 태자로 삼았고, 46년에 이르러 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2년(서기 29) 봄 정월에 시조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였다. 2월에 남쪽 제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다. 년(서기 30) 겨울 10월에 동부의 흘우(屹于)가 말갈과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싸워 이겼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왕이 기뻐하여 흘우에게 말 10필과 조(租) 500섬을 상으로 주었다. 4년(서기 31) 가을 8월에 고목성(高木城)의 곤우(昆優)가 말갈과 싸워 크게 이기고 200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9월에 왕이 횡악(橫岳) 아래에서 사냥하였는데 한 쌍의 사슴을 연달아 맞히니 여러 사람들이 탄복하고 칭찬하였다. 6년(서기 33) 봄 정월에 맏아들 기루(己婁)를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2월에 나라 남쪽의 주·군(州郡)에 영을 내려 처음으로 논[稻田]을 만들게 하였다. 7년(서기 34) 봄 2월에 우보 해루(解婁)가 죽으니[卒] 나이가 90세였다. 동부의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여름 4월에 동방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 가을 9월에 말갈이 마수성(馬首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불을 놓아 백성들의 집을 태웠다. 겨울 10월에 또 병산책(甁山柵)을 습격하였다. 10년(서기 37) 겨울 10월에 우보 흘우를 좌보(左輔)로 삼고, 북부의 진회(眞會)를 우보로 삼았다. 11월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 11년(서기 38) 가을에 곡식이 잘 익지 않았으므로 백성이 사사로이 술빚는 것을 금하였다. 겨울 10월에 동부(東部)·서부(西部)의 두 부(部)를 순행하며 위무하고, 가난해서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에게 곡식을 한 사람당 두 섬을 주었다. 21년(서기 48) 봄 2월에 궁중의 큰 홰나무[槐樹]가 저절로 말랐다. 3월에 좌보 흘우(屹于)가 죽으니[卒] 왕이 슬피 곡하였다. 28년(서기 55)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죄수를 살펴 사형할 죄[死罪]도 사면하였다. 가을 8월에 말갈이 북쪽 변경에 쳐들어 왔다.29년(서기 56) 봄 2월에 왕이 동부에 명하여 우곡성(牛谷城)을 쌓아 말갈을 방비하게 하였다. 36년(서기 63) 겨울 10월에 왕이 영토를 개척하여 낭자곡성(娘子谷城)에 이르렀다. 곧 사신을 신라에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으나 [신라가] 듣지 않았다. 37년(서기 64)에 왕은 군사를 보내 신라의 와산성(蛙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를 옮겨 구양성(狗壤城)을 공격하였다. 신라가 기병 2천 명을 일으켜 맞아 쳐서 패주시켰다. 39년(서기 66)에 와산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군사] 200명을 남겨 두어 지키게 하였는데, 얼마 안 있어 신라에게 패하였다. 43년(서기 70)에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쳤다.46년(서기 73) 여름 5월 그믐 무오에 일식이 있었다. 47년(서기 74) 가을 8월에 장수를 보내 신라를 쳤다.48년(서기 75) 겨울 10월에 또 와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49년(서기 76) 가을 9월에 와산성이 신라에게 회복되었다.50년(서기 77) 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기루왕본기 즉위년 : 기루왕(己婁王)은 다루왕의 맏아들이다. 뜻과 식견이 넓고 원대하여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다루왕이 재위 제6년에 태자로 삼았고, 50년에 이르러 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대 다루왕(多婁王)은 온조왕 둘째 아들이다. 무자년(28)에 즉위해 49년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3대 기루왕(己婁王)은 다루(多婁)의 아들이다. 정축년(77)에 즉위해 55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 시조(始祖) 온조왕은 동명왕(東明王)의 셋째아들로서 몸이 장대하고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고,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했다.  또 다루왕(多婁王)은 너그럽고 관후했으며 위엄과 인망이 있었다.  또 사비왕(沙沸王; 혹은 사이왕沙伊王)은 구수왕(仇首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했으나 나이가 어려서 정사를 보살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이를 폐하고 고이왕(古爾王)을 세웠다.  혹은 말하기를, 낙초(樂初) 2년 기미(己未)에 사비왕(沙沸王)이 죽고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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