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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하기 직전이었으니 87년 9월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부천시청 인근 다세대 주택 막내 누나 집에 빌붙어 살았다. 조카딸이 이 무렵 이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이곳에서 전철이나 588 버스로 신촌을 통학했다. 번호도 요상한 588번 버스노선은 이 무렵에 생겼다. 이 버스가 부천을 관통해 강서구를 지나 신촌 Y대 앞을 오갔으니, 이 버스는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 생겨난 듯하다.  


지금의 부천시청이 이때 자리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87년 무렵 소재지는 원미동 쪽이었다. 원미 3동이 아니었나 싶은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당시는 중동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이고 이 일대는 온통 복숭아밭이었다. 부천을 복사골이라 하지 않는가?  


그 9월 어느 날 나는 신촌이 아니라 부천에 있는데 김천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다급한 목소리. 무슨 일 생긴 거라 직감했더니 역시나 초대박이었다. 兄이 죽었단다. 이와 관련한 사연은 나중에 혹시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와는 배가 다른 형은 내 기억에는 아버지 도와 농사일하다가 17살인가에 집을 나갔다. 이른바 야반도주를 한 셈인데, 이 무렵에 젊은이들의 이농(離農)이 빈발했거니와, 그 대부분은 부모의 동의가 아니라, 야반도주가 보통이었다. 야음을 틈타 집을 나서 산길을 헤치고 도시로 도망가는 패턴이었다.  


그 패턴을 보면 대체로 먼저 야반도주해 구미나 대구, 혹은 울산 같은 데서 정착한 다음에 불러내는 것이었다. 통신은 주로 편지였다. 한데 이 편지가 대체로 부모한테 걸리기 마련이지만, 우리 동네 부모는 99%가 까막눈이라 아들딸이 읽어주기 전에는 그 내용을 알 리 만무하다.  


아마도 형도 그런 방식으로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런 형이 언제인지, 내 생각으로는 내가 초등학교 아니면, 늦어도 중학교 재학 시절 이전에 고향에 나타난 적이 있다. 배다른 형제로는 이 형과 그 위의 누나가 있지만,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고향을 떠난 지라, 나는 아주 어릴 적 형과 잠깐 보낸 일을 제외하고는 아버지 어머니와 누나 둘, 그리고 남동생 한 명과 초가집에 살았다.  


이 형이 이 무렵에 고향에 나타나 큰누나한테 던져준 것이 바로 사진(생략)에서 보는 이 책이다. 이 사진은 인터넷 검색에서 걸린 것이며, 저 시리즈 전질이 형이 갖고 온 것이 저것은 아니다. 이 전집이 온 동네를 통틀어 교과서와 참고서 말곤 책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우리 집에 있었던 것이다. 


그 잦은 이사에서도 나는 이 전집만큼은 정리하지 않고 반드시 싸서 들고 다녔다. 그만큼 이 책에는 내 어린 시절 손 떼가 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어이 이 전집이 90년대 중반 내가 은평구 신사동 반지하에 살 적에 대부분 분실되고 말았으니, 고물장수가 무단으로 반출해 나가고 그나마 연표를 포함한 12권 전질 중에 겨우 연표 하나만 달랑 남은 것이다.  


이 연표도 보면 이제는 곳곳에 쥐가 파먹은 흔적이 농후하거니와, 군데군데 쥐똥과 쥐오줌의 흔적이 배어있다. 이 전집을 형이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모른다. 그 자신 학력이라고는 중학교 중퇴가 전부인 그가 멀 알아서 사와겠는가? 그의 형편을 고려할 때 구입이라기보다는 어디에서 얻어다가 던져준 것이리라.  


이 《대한국사》 서지사항을 보면 1976년 신태양사라는 출판사 간이다. 선사시대 이래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한 한국역사를 총괄했다. 저자는 이선근(李瑄根.1905~1983). 그 스스로는 ‘리선근’이라 썼으며, 해방 이래 죽을 때까지 전형적인 제도권 역사학자요 사회학자로서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를 하다가 나중에는 동국대 총장을 역임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출범과 동시에 그 초대 원장으로 재임했다. 정신교육, 국사교육의 원조이자 핵심으로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친일행각에 대한 논란이 많고, 실제로 친일인사로 분류되어 그 사전에도 오른 것으로 안다.  


《대한국사》라는 이 방대한 원고를 나는 이선근이 모두 썼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의 이름을 내걸었을 뿐, 아마도 그의 제자들이 초고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으니 이선근은 당대를 대표하는 多作家였다.  


읽을 게 없던 그 시절, 언제쯤인지 방구석 한쪽에 쳐박힌 이 전집이 들어왔다. 시커먼 커브에 박스를 씌웠으며, 그 내부를 펼쳐보면 세로쓰기다. 초등학교, 혹은 중학생 시절에 교과서와 참고서 말고 내가 몇 번이고 탐독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읽을 게 없었으니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저 두터운 전집을 나는 몇 번이고 통독했다. 내가 이른바 점제현 신사비며, 관구검을 안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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