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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3년(501) 겨울 10월에 왕이 사비(泗)의 동쪽 벌판에서 사냥했다. 11월에 웅천(熊川)의 북쪽 벌판에서 사냥했고, 또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馬浦村)에서 묵었다. 이보다 앞서 왕이 백가(苩加)에게 가림성을 지키게 했으나 백가(苩加)는 가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 삼아 사양하고자 했으나 왕이 허락치 않으니 이 때문에 왕을 원망하다가 이 때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훙하니 시호(諡號)를 동성왕(東城王)이라 했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제(南齊) 건원(建元) 2년(480)에 백제 왕 모도(牟都)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니 조서(詔書)를 내려 말했다. 「보배로운 명령이 새로와 은택이 먼 지역에까지 미쳤다. 모도는 대대로 동쪽 변경의 번국(蕃國)이 되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직분을 지켰으니 곧 사지절(使持節)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을 수여하노라.」 또 영명(永明) 8년(490)에 백제왕 모대(牟大)가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렸다. [남제는] 알자복야(謁者僕射) 손부(孫副)를 보내 모대를 책명(冊命)하여 돌아가신 조부 모도의 작호를 잇도록 하고 백제왕으로 삼아 말하였다. 「아아 그대는 대대로 충성과 근면을 이어받아 정성(精誠)이 먼 지역에서도 드러났고, 바다 길이 조용하게 되어 조공을 바침에 변함이 없었다. 떳떳한 법전[彛典]에 따라 천명을 이어가도록 하니 경계하고 조심할지어다[往敬]. 아름다운 위업을 받는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않으랴. 행도독백제제군사(行都督百濟諸軍事)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 백제왕(百濟王)을 삼는다.」』그러나 삼한고기(三韓古記)에는 모도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없었다. 또 살펴보니 모대는 개로왕(蓋鹵王) 손자요, 개로왕 둘째 아들인 곤지(昆支)의 아들로서 그 할아버지를 모도라고 하지 않았으니 제서(齊書)에 실린 것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성왕(東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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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2년(500) 봄에 임류각(臨流閣)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장(丈)이었으며, 또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간언하는 신하[諫官]들이 반대하며 상소(上訴)하였으나 응답을 하지 않았고[不報], 또 간언하는 자가 있을까 하여 궁궐 문을 닫아버렸다. 논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로우며,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나 품행에는 이롭다. 이로 말미암아 옛날의 현명한 임금은 자기를 겸허하게 하여 정사를 물었고,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간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감히 간쟁할 수 있는 북[敢諫之鼓]을 달고, 비방하는 나무[誹謗之木]를 세우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모대왕(牟大王)은 간하는 글이 올라와도 살펴보지 않았고, 또 궁궐 문을 닫고서 이를 막았다. 장자(莊子)에 『허물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간언을 듣고도 더욱 심해지는 것을 사납다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모대왕이 바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본기 : 무령왕(武寧王)은 이름이 사마(斯摩)<융(隆)이라고도 한다>이고 모대왕(牟大王) 둘째 아들이다.


☞동성왕(東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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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동성왕의 본명에 대한 표기 중 하나이다. 모대(牟大)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동성왕(東城王)은 이름은 모대(牟大)<마모(摩牟)라고도 한다>이며 문주왕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담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 삼근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동성왕(東城王) ☞모대(牟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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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동성왕 이름이다. 마모(摩牟)라고도 했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동성왕(東城王)은 이름은 모대(牟大)<마모(摩牟)라고도 한다>이며 문주왕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담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 삼근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4대 동성왕(東城王)은 이름이 모대(牟大)인데 마제(麻帝)라도고 하며 여대(餘大)라고도 한다. 삼근왕(三斤王)의 당제(堂弟)이다. 기미년에 즉위해 22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2년(500) 봄에 임류각(臨流閣)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장(丈)이었으며, 또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간언하는 신하[諫官]들이 반대하며 상소(上訴)하였으나 응답을 하지 않았고[不報], 또 간언하는 자가 있을까 하여 궁궐 문을 닫아버렸다. 논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로우며,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나 품행에는 이롭다. 이로 말미암아 옛날의 현명한 임금은 자기를 겸허하게 하여 정사를 물었고,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간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감히 간쟁할 수 있는 북[敢諫之鼓]을 달고, 비방하는 나무[誹謗之木]를 세우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모대왕(牟大王)은 간하는 글이 올라와도 살펴보지 않았고, 또 궁궐 문을 닫고서 이를 막았다. 장자(莊子)에 『허물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간언을 듣고도 더욱 심해지는 것을 사납다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모대왕이 바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삼국사기 권 제3(신라본기 제3) 소지마립간 : 15년(493) 봄 3월에 백제 왕 모대(牟大)[동성왕]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왕이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을 그에게 보냈다. 16년(494) 여름 4월에 홍수가 났다. 가을 7월에 장군 실죽 등이 고구려와 살수(薩水)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犬牙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고구려 군사가 그곳을 에워쌌다. 백제 왕 모대(牟大)[동성왕]가 군사 3천 명을 보내 구원하니 포위를 풀었다.  


☞동성왕(東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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