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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21대 문자명왕(재위 492∼519) 이름이다. 고구려 왕실은 고(高)씨를 표방하고, 이름은 외자로 쓴 일이 많아 고운은 성과 이름을 합친 듯하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1대 문자명왕(文咨明王)은 이름이 명리호(明理好)이니 개운(个雲)이라고도 하며 고운(高雲)이라고도 한다. 임신년에 즉위해 27년을 다스렸다.

☞문자명왕(文咨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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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21대 문자명왕(재위 492∼519) 이름이다. 장수왕 손자로, 아버지 조다가 죽자 대손(大孫)으로 조부 사망과 더불어 즉위했다.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 즉위년 : 문자명왕(文咨明王)<명치호왕(明治好王)이라고도 한다>은 이름이 라운(羅運)이고 장수왕 손자다. 아버지는 왕자이며 고추대가인 조다(助多)인데, 조다가 일찍 죽자 장수왕이 궁중에서 기르면서 대손(大孫)으로 삼았다. 장수왕이 재위 79년만에 죽자 이어 즉위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1대 문자명왕(文咨明王)은 이름이 명리호(明理好)이니 개운(个雲)이라고도 하며 고운(高雲)이라고도 한다. 임신년에 즉위해 27년을 다스렸다.

☞문자명왕(文咨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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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본기 : 16년(507) 겨울 10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했다. 왕이 장수 고노(高老)를 보내 말갈과 함께 백제의 한성(漢城)을 치고자 해서, 횡악(橫岳) 밑으로 나아가 주둔했는데 백제가 군사를 내어 맞아 싸우므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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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본기 : 13년(504) 여름 4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북위) 세종(世宗)이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동당(東堂)으로 불러들여 만났다. [예]실불이 나아가 말했다. “저희 나라는 정성을 대국에 잇대고, 여러 대에 걸쳐 정성을 다하여 토산물을 바치는 데 어김이 없었습니다. 다만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흰 마노[珂]는 섭라(涉羅)에서 나는 것인데, 부여는 물길(勿吉)에게 쫓기는 바 되고, 섭라는 백제에 병합되었습니다. 두 물건이 왕의 창고에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실로 두 도적 때문입니다.” 세종이 말했다. “고구려는 세세토록 상국(上國)의 도움을 입어, 해외에서 제멋대로 다스려 구이(九夷)의 교활한 오랑캐들을 모두 정벌하였는데, 작은 술그릇이 비는 것은 큰 술병의 수치이니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이전에 조공이 어그러진 것은 책임이 고구려 왕에게 있는 것이다. 경은 짐의 뜻을 경의 임금에게 전하여, 위엄과 회유의 책략을 힘써 다해서 해로운 무리들을 없애 동방의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두 읍[부여·섭라]으로 하여금 옛 터를 되찾아서 토산물을 빠짐없이 일정히 조공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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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22대 안장왕 이름이다.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본기 : 7년(498) 봄 정월에 왕자 흥안(興安)을 태자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안장왕본기 :  안장왕(安臧王)은 이름이 흥안(興安)이고 문자의 맏아들이다. 문자명왕이 재위 7년에 태자로 삼았으며 28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2대 안장왕(安藏王)은 이름이 흥안(興安)이다. 기해년에 즉위해 12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성왕본기 : 7년(529) 겨울 10월에 고구려왕 흥안(興安)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 와서 북쪽 변경의 혈성(穴城)을 함락하였다. 좌평 연모(燕謨)에게 명해 보병과 기병[步騎] 3만 명을 거느리고 오곡(五谷)의 벌판에서 막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는데, 죽은 자가 2천여 명이었다.

☞안장왕(安藏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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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9(고구려본기 제7) 문자명왕본기 : 원년(492) 봄 3월에 위(魏) 효문제(孝文帝)가 사신을 보내, 왕을 사지절(使持節) 도독요해제군사(都督遼海諸軍事) 정동장군(征東將軍) 영호동이중랑장(領護東夷中郞將)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으로 임명하고, 의관·복물(服物)·거기(車旗) 장식을 주었다. 또 왕에게 “세자를 보내 입조케 하라”고 명했지만, 왕은 병을 이유로 거절하고, 종숙(從叔)인 승천(升千)을 보내 사신을 따라 입궐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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