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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1)


유십구에게 묻다(問劉十九) 


[唐]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새로 빚은 술거품은

초록빛 개미


조그만 화로는

붉은빛 진흙


저녁 되어 흰 눈이

내리려는데


더불어 술 한 잔

마실 수 있소


綠蟻新醅酒, 紅泥小火爐. 晚來天欲雪, 能飮一杯無. 


나는 술을 귀로 가장 먼저 느꼈다. 어릴 때 시골집에선 농주(農酒)나 제주(祭酒)로 쓰기 위해 흔히 술을 담갔다. 안방 아랫목 따뜻한 곳에 술 단지를 묻어두면 며칠 후 뽀글뽀글 술 괴는 소리가 들렸다. 귀로 술을 느낀 후에는 코로 술 향기가 전해져 왔다. 막걸리 특유의 은은한 냄새가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아부지께서는 술을 거를 때까지 며칠을 참지 못하시고 작은 바가지로 자주 단지 속 술을 떠서 드시곤 했다. 술이 괼 때 술 단지 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거품이 뽀글거리는 가운데 술찌끼가 떠다니는 것이 흡사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오늘같이 하늘이 낮게 가라앉은 날 붉은 숯 화로를 둘러싸고 아랫목 술 단지에서 금방 걸러낸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 길고 긴 겨울도 훈훈한 온기 속에서 보낼 수 있을 터이다. 거기에 오랜 벗과 마주 앉아 두런두런 정담을 나눌 수 있으면 이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지금 나의 서재는 사각형 아파트에 있다. 숯 화로는 고사하고 전기장판이 바닥에 깔려 있다. 술 단지 꿈을 꾸는 내 서재 창밖 겨울 하늘에선 한 바탕 눈발이라도 휘날릴 태세다.

  1. NeoTrois 2018.12.07 21:10 신고

    한파가 오니 술이 더 땡기는 것같군요. ㅎㅎ
    술 괴는 소리도 있었군요~~

  2. 먹탱이 2018.12.08 18:57 신고

    술맛과 인생맛을 몰라서 마시진 않지만 귀로 술을 첨 접했단 말씀이 참 낭만적이네요. 티비에서 전통주를 빚을 때 뽁뽁~ 뽀보복~하며 내는 소리를 들어 봤거든요. 비록 아파트 서재이나 사진 속 풍경에 님을 넣어두고 늘 여유있길요~~~^^

  3. 연건동거사 2018.12.12 09:56 신고

    헐 샘이나 제가 어렸을때는 집에서 술 담그는거 금지였는데!!! 아마도 밀주였던듯 ㅋㅋ

경복궁 아미산



買花

값비싼 꽃


 백거이白居易 / 서성 譯評  


帝城春欲暮, 봄이 저무는 장안에

喧喧車馬度. 말과 수레 오가는 소리 소란스러워

共道牡丹時, 모두들 모란이 한창 때라 말하며

相隨買花去. 어울려 꽃을 사러 가는구나

貴賤無常價, 희귀한 것은 일정한 가격이 없고

酬直看花數. 값을 지불하며 꽃이 몇 송이인지 살펴본다

灼灼百朶紅, 타오르는 듯한 붉은 꽃 백 송이면

戔戔五束素. 다섯 필 흰 비단도 사소하다네

上張帳幄庇, 위에는 휘장을 펼쳐 덮고

傍織笆籬護. 주위로는 울타리를 쳐 보호한다

水灑復泥封, 물을 뿌리고 또 뿌리에는 흙을 덮어

遷來色如故. 옮겨 심어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네

家家習爲俗, 집집마다 기르다 보니 습속이 되어

人人迷不悟. 사람마다 미혹된 채 깨어날 줄 몰라라

有一田舍翁, 어느 나이든 농부가 있어

偶來買花處. 우연히 꽃 사는 곳에 와선

低頭獨長歎, 고개를 숙이고 홀로 장탄식을 하니

此歎無人諭: 그 탄식을 알아듣는 이 없어라

一叢深色花, 진한 색 꽃 한 묶음 값이

十戶中人賦! 중류층 10가호의 세금에 해당한다!


* 백거이의 <진중음> 10수 가운데 하나다. 


〔해설〕 모란을 완상하기 위해 거액을 물 쓰듯 하는 귀족과 고관의 호사스런 생활을 통해 빈부 차이의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었다. 모란은 원래 산서(山西) 지방에서 자랐으나 당대 초기에 장안에 들여와 진귀하게 여겨졌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785-804) 이후에는 장안에서 완상하는 풍기가 극성하였다. 이런 사실은 이조(李肇)의 《당국사보(唐國史補)》에 잘 기록되었다. “도성의 사람들은 놀이를 중시하는데 모란을 숭상한지 30여 년이 되었다. 매년 늦봄이 되면 마차들이 미친 듯이 다니며, 실컷 즐기지 않으면 부끄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집금오(궁성 경비대)가 관청 밖 절과 도관에도 이를 심어 이익을 챙겼으니, 한 뿌리에 수만전이 되는 것도 있었다.”(京城貴遊, 尙牡丹三十餘年矣. 每春暮車馬若狂, 以不躭玩爲恥. 執金吾鋪官圍外寺觀種以求利, 一本有直數萬者.) 위곡의 《재조집》에서는 제목을 「모란」(牡丹)이라 하였다.

김천 대덕산 설경


한시, 계절의 노래(168)


노자를 읽다(讀老子)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침묵하는 지자보다

말하는 자가 못하단 말


이 말을 나는야

노자에게 들었네


만약에 노자를

지자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자신은

오천 자를 지었을까?


言者不如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형용모순 또는 모순어법이라는 말이 있다. 한 문장 안에 모순된 상황을 나열하여 전달하려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수사법이다. 가령 “소리 없는 아우성”, “반드시 죽어야 산다(必死卽生)”, “눈을 감아야 보인다” “색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등등, 곰곰이 따져보면 말이 안 되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면서 말하려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우리 주위의 고전 중에서 형용모순으로 가득 찬 책은 바로 『노자(老子)』다. 개권벽두에서 벌써 이렇게 선언했다. “도(道)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도(道)’는 진리를 의미하지만 그 자체로 ‘말하다’는 뜻도 가진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말이 아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노자』 첫머리에 벌써 ‘침묵은 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셈이다. 하지만 그는 5천 자 수다를 계속 이어나갔다. 5천 자는 유가의 경전에 비해 매우 과묵한 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노자는 가장 먼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란 간판을 달았으므로 바로 뒷구절부터는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 되는 셈이다. 노자의 형용모순 어법은 무엇을 겨누고 있을까? 바로 형용모순으로 범벅이 된 현실이다. 인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높은 관직에 앉아 불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효도와 화목을 내세우는 왕실이 궁정암투와 집안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신의를 표방하면서 친구를 배신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자는 형용모순이면서도 형용모순임을 모르는 현실을 풍자하며 형용모순 어법으로 도(道)에 다가가려 했다. 중당의 대문호 백거이가 『노자』의 그런 특징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노자』를 읽고 왜 5천자의 저작을 남겼냐고 힐난하는 것은 또 하나의 형용모순에 다름 아니다. “문인이 서로 경시함은 옛날부터 그러했다(文人相輕, 自古而然)”란 조비(曹丕)의 말이 떠오른다. 



한시, 계절의 노래(161)***


「유란」 곡을 듣다(聽幽蘭)


 唐 백거이 / 김영문 船譯評 


금곡(琴曲) 중 옛 곡조가

「유란」 곡인데


나를 위해 은근하게

또 연주하네


심신 모두 고요함에

젖어들려고


나 자신 솜씨 모자라

남 연주 듣네


琴中古曲是幽蘭, 爲我慇勤更弄看. 欲得身心俱靜好, 自彈不及聽人彈.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대로 직역하면 “그윽한 난초를 듣다(聽幽蘭)”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향기 맡는 걸 “문향(聞香: 향기를 듣다)”이라 하기에 이 시 제목도 언뜻 “그윽한 난초 향기를 맡다”로 이해된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면 「유란(幽蘭)」이 금(琴) 연주곡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란」은 일명 「의란(猗蘭)」으로도 불리는 아주 오래된 ‘금곡(琴曲)’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다가 깊은 계곡에 핀 난초꽃을 보고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빗대 「유란」을 작곡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각종 『금보(琴譜)』에 「유란」이란 곡명이 실려 있고, 청말(淸末) 학자 양수경(楊守敬)도 일본 교토 서쪽 카모현(賀茂縣) 진코인(神光院)에서 당나라 사람이 필사했다는 「갈석조(碣石調)---유란(幽蘭)」이란 문자 악보를 발견했다. 이것이 공자가 작곡한 금곡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시의 작자 백거이가 활동한 당나라 때 「유란」이란 금곡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자는 인간 교화를 위한 음악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금(琴)을 즐겨 연주한 금(琴) 마니아였다. 유학자로서 공자의 전통을 계승한 백거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거이는 바람이 금(琴)을 스치는 소리(風弦)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자신보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의 금(琴) 연주에 심취하기도 했다. 백거이는 자기 금(琴) 연주 수준의 한계를 알았고 그보다 높은 경지는 뛰어난 전문가의 연주를 감상했다. 연주자와 감상자의 영역이 다름을 인정한 셈이다. 뛰어난 감상자 백거이는 어쩌면 금(琴) 연주를 들으며 그윽한 난초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난초꽃 향기를 맡으며 금(琴)이나 거문고 소리를 듣는 경지 말이다. 이 시의 제목이 그런 경지를 암시한다.(사진출처: 宋聘号 홈페이지)

주열렴묘 출토 명대 초기 도용. 明代朱悦燫墓出土陶俑. 사천박물원 소장. Early Ming Tomb of Zhu Yuelian. Sichuan Provincial Museum, Chengdu, Porcelain Gallery


한시, 계절의 노래(158)


금(琴)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구부정한 탁상 위에

금(琴)을 얹고서


게으르게 앉았지만

유정한 마음


무엇하러 번거롭게

손으로 타나


바람이 현에 스쳐

소리 나는데


置琴曲几上, 慵坐但含情. 何煩故揮弄, 風弦自有聲.


금(琴)은 흔히 거문고로 번역하지만 전혀 다른 악기다. 금(琴)은 중국 악기로 줄이 일곱이고, 거문고는 고구려 왕산악이 만든 우리 악기로 줄이 여섯이다. 금(琴)은 손으로 줄을 퉁겨서 소리를 내고, 거문고는 술대로 켜서 소리를 낸다. 하지만 자연의 소리를 좋아하는 선비들은 풍현(風弦)이나 소금(素琴)으로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풍현은 바람 부는 곳에 금(琴)을 놓아두고 바람이 현(弦)을 스치며 내는 소리를 감상하는 것이다. 소금(素琴)은 무현금(無絃琴)이다. 줄이 없이 소리통만 있는 금(琴)이다. 동진(東晉)의 선비 도연명은 평소 음률을 잘 몰랐지만 집안에 현이 없는 금(琴)을 하나 장만해두고 주흥이 도도해지면 그 무현금을 어루만지고 노래 부르며 폼을 잡았다고 한다. 줄 없는 기타를 들고 노래 부르는 시인을 상상해보시라. 백거이는 도연명의 무현금 연주를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던지 줄 있는 금(琴)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게으름이 심해서 자신은 손을 놀리지 않고 바람에다 연주를 맡겼다. 음외지음(音外之音)의 경지인가 아니면 음치의 제스처인가? 백거이는 백성의 고통과 현실의 모순을 신랄하게 폭로한 신악부운동의 주도자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한적한 풍격의 시를 지었을까? 그는 전혀 모순으로 느끼지 않고, 자신의 지음(知音) 원진(元稹)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곤궁하면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수양하고, 현달하면 천하를 두루 구제한다’라고 했소. 내 비록 불초하나 늘 이 말을 스승으로 삼고 있소(古人云, ‘窮則獨善其身, 達則兼濟天下.’ 僕雖不肖, 常師此語.)”(「與元九書」) 뜻을 얻지 못하고 곤궁하게 살 때는 이런 한적한 기풍의 시를 지으며 자신의 심신을 수양하고, 뜻을 얻어 출세했을 때는 가시 돋친 현실 비판시를 지으며 천하를 구제하겠다는 말이다. 요즘은 아마 반대의 경우가 다수인 듯하다. 곤궁하게 살 때는 가시 돋친 현실 비판을 쏟아내다가도, 어쩌다 작은 관직이라도 차고 앉으면 온순한 양이 되어 보신의 길을 걷기에 급급하니 말이다.(그림출처: 百度百科)

사천성 성도 무후사



한시, 계절의 노래(157)


낙천이 강주사마로 폄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聞樂天授江州司馬)


 당 원진(元稹) / 김영문 選譯評 


잔약한 등불 불꽃도 없이

그림자만 너울너울


이 밤에 듣는 그대 소문

강주로 폄적됐다네


죽도록 아픈 중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어둔 바람에 날리는 비

추운 창으로 들이치네


殘燈無焰影幢幢, 此夕聞君謫九江. 垂死病中驚坐起, 暗風吹雨入寒窗. 


중당(中唐) 시기 원·백(元·白)으로 병칭된 두 시인이 있었다. 바로 원진(元稹)과 백거이(白居易)다. 두 사람은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후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감을 일깨우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보듬기 위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전개했다. ‘악부’란 ‘악부시(樂府詩)’의 준말로 한나라 민요를 가리킨다. 이는 백성의 온갖 애환을 반영한 악부시의 전통을 계승하여 현실 속 탐관오리의 부패와 탐욕을 폭로하고 고통 받는 백성의 삶을 시작(詩作)에 담아내자는 운동이었다. 백거이는 원진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장은 응당 시대를 위해 지어야 하고, 시가는 응당 현실의 일을 위해 써야 한다(文章合爲時而著,詩歌合爲事而作)”(「與元九書」)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기발랄한 노력은 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반발에 부딪쳤다. 부패, 탐욕, 편법, 불법으로 살아온 중앙 권력자들과 지방 유지들은 원·백의 직간과 비판에 앙심을 품고 결국 이들을 지방관으로 내쫓았다. 백거이가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진은 비오는 밤 꺼져 가는 등불 아래에서 이 시를 썼다. 캄캄한 밤에 차가운 창으로 들이치는 비바람이 이들의 좌절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대림사 복사꽃(大林寺桃花)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譯 


인간 세상 4월이라 온갖 꽃 다 졌는데

산사 복사꽃은 비로소 흐드러지네

떠난 봄날 찾지 못해 길게 탄식했더니

이곳으로 돌아든 줄 내 일찍 몰랐다네 


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1. 연건동거사 2018.09.01 10:23 신고

    절창입니다.

분황사에서 바라본 황룡사지와 남산



한시, 계절의 노래(156)


궂은비(陰雨)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잎과 가지 젖어들어

사방에 물기 스미는데


짙은 구름 오고가며

그 기세 얼마나 긴가


드넓은 천지 간에

맑은 바람 가득하여


가뭄 구한 공로 높고

더위도 시원해지네


潤葉濡枝浹四方, 濃雲來去勢何長. 曠然寰宇淸風滿, 救旱功高暑氣凉. 


가을장마가 시작되는 시절이다. 뜨거운 여름에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입추와 처서가 지나면서 힘이 줄어 다시 한반도 상공에서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나 오츠크해 고기압과 장마전선을 형성한다. 6월 여름장마처럼 길지는 않지만 비오는 날이 잦아진다. 하지만 근래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가을장마도 여름장마 못지않게 장기간 폭우를 쏟아붓기도 한다. 게다가 이 환절기에는 기압 배치가 매우 불안하여 곳곳에 국지성 호우가 내리기도 한다. 짧은 가을장마가 지나면 가을은 우리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이 때 쯤이면 릴케의 「가을날」이 저절로 떠오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도 귓전에 맴돈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가을을 맞으며 나태주는 더욱 직설적으로 당부한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멀리서 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기원한다. “가을이라는 말만 듣고도 가슴 휑한 벗들이여/ 가을에는 부디 절절히 아프시라” 그리하여 깊고 깊은 아픔 끝에 마침내 고운 진주를 잉태하시기를...

경주 월암재


한시, 계절의 노래(148)


밤비(夜雨)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때 이른 귀뚜라미

울다 또 쉬고


가물가물 등불은

꺼질 듯 탄다


창밖엔 밤비가

내리는구나


파초 잎에서 먼저 들리는

후두둑 소리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거의 10도 가량 떨어졌다. 입추 말복 지났다고 가을이 이처럼 성급하게 달려와도 되는 것인가? 한밤중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보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천지를 가득 채운다. 아파트 8층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벽 속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시골집에서 살 때는 입추를 전후한 시절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멀리서 들리다가 점차 가까이로 다가와 벽 속 혹은 책상 밑에서도 들리곤 했다.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조금은 투박하면서도 맑은 음색이 가을날 스산한 가슴 속에 깊이 스미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 근대 여성해방 선구자 추진(秋瑾)은 가을날의 그런 심정을 “가을바람에 가을비 내릴 때 애수가 사람을 죽이네(秋風秋雨愁煞人)"라고 읊었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서는 "봄엔 여자가 그리움에 젖고, 가을엔 남자가 슬픔에 젖는다(春女思, 秋士悲)”라고 했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는 말의 가장 오랜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추진 같은 가을 여인(秋女)도 매우 흔했으므로 고전에 나오는 구절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적막한 풀벌레소리가 스산한 가을바람에 실려올 때 문득 후두득 가을비까지 떨어지면 구양수(歐陽修)가 「추성부(秋聲賦)」에서 읊은 것처럼 “이것이 가을소리다(此秋聲也)”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진실로 “그 기운은 서늘하여 사람의 피부와 뼛속까지 스미고, 그 뜻은 쓸쓸하여 산천까지 적막하다(其氣慄冽, 砭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寥)” 긴 여름이 가고 마침내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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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27)


원 상공 만사 세 수(元相公挽歌詞三首) 중 셋째


 당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수많은 장송객 모두

참담한 심정인데


반혼 수레 끄는 말도

슬픔으로 울고 있네


평소의 금(琴)·서(書)·검(劍)·패(佩)

그 누가 수습하나


남겨진 세 살 아들

갓 걸음마 배우는데


送葬萬人皆慘澹, 反虞駟馬亦悲鳴. 琴書劍佩誰收拾, 三歲遺孤新學行. 


옛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지가 세상을 떠나면 만사(輓詞 혹은 挽詞)를 지어 애도했다. 5언시, 7언시, 4언시, 사부(辭賦) 등 다양한 형식으로 추모시를 지었다. 현재 남은 문인들 문집에는 만사 항목이 따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만사는 다른 사람의 장례에 애도를 표하는 보편적인 양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묘소 전면에 깔아놓은 추모 글귀 각석도 현대적 의미의 만사라 할 만하다. 이 시는 중당 시대 대문호 백거이가 절친 원진(元稹)의 장례 때 헌정한 만사다. 장례를 치르고 혼백을 빈소로 모시는 반우(返虞 혹은 返魂) 절차를 슬프게 읊었다. 금(琴)·서(書)·검(劍)·패(佩)는 원진이 평소에 가까이하던 칠현금, 서책, 칼, 패물(佩物)이다. 원진은 적자(嫡子)가 요절했고, 서자만 몇 명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원진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유품조차 수습할 자식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 삶과 죽음의 이별에는 늘 애통함과 안타까움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어제(2018.07.23.)는 우리 현대 문학사 큰별 최인훈 선생과 정치사 큰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두 분 모두 해당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충격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이 백거이 만사로나마 삼가 조의를 표하고 명복을 빈다.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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