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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5)

○밤 눈(夜雪)○

[唐]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이상하게 이부자리
싸늘도 하여

다시 보니 창문이
환하게 밝다
 
밤 깊어 내린 눈
무겁게 쌓여

대나무 꺾이는 소리
때때로 들린다

已訝衾枕冷, 復見窗戶明. 夜深知雪重, 時聞折竹聲.

겨울에도 푸른 색깔을 변치 않고 추위를 견디는 대표적인 나무가 대나무와 소나무다. 대나무는 사군자의 하나로, 소나무는 세한삼우(歲寒三友)의 하나로 그 절개를 칭송받아 왔다. 이 중 대나무는 사군자와 세한삼우에 모두 들어간다. 이미 『시경(詩經)』 「기욱(淇澳)」 편에 “푸른 대나무 무성하네(菉竹猗猗)”라는 표현으로 대나무를 군자의 의젓한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게다가 위진(魏晉)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대숲에 모여 청담(淸談)을 주고받으며 지조를 드높였고,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차군(此君)’이라 부름으로써 그 고결하고 꿋꿋한 이미지가 훨씬 강화되었다. 중국 송나라 때부터 사군자가 수묵화의 주요 제재로 쓰이면서 부터는 절개의 상징으로서 대나무의 위상이 더욱 튼튼하게 굳어졌다. 그런 대나무도 폭설이 줄기와 잎에 얼어붙으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대궁이 뚝뚝 꺾인다. 장엄하면서도 처연하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는 노래가 떠오른다. 오대십국 시대 남당(南唐) 서희(徐熙)는 설죽화권(雪竹畵卷)에서 눈 속에 꿋꿋하게 선 대나무를 쌍구법으로 사실감 있게 그렸다. 원(元)나라 곽비(郭畀)는 설죽도(雪竹圖)를 통해 천지가 새하얀 눈 세상에서 줄기와 잎에 백설을 덮어쓰고 휘어진 대나무를 엄숙하게 그려냈다. 꺾일 듯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견강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얼어붙은 겨울 밤 어디선가 막중한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처연하게 꺾이는 대나무 소리가 들려올 듯하다.

문화사 관점에서 동아시아 세계 최초의 월드스타는 단연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 772~846)였으며, 그 뒤를 이은 이가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1101)이라는 말을 나는 여러 번 했다. 백낙천이 등장하고, 그가 장한가(長恨歌)를 발표하자, 동아시아 세계는 열광했다. 그는 당대의 기린아였다. 장한가와 비파행(琵琶行)를 비롯한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면, 그 소식은 삽시간에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의 시집은 금새 바다를 건너 신라로, 그리고 일본 열도로 퍼졌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보면, 좀 산다는 왜놈들은 병풍마다 장한가 그림으로 떡칠했음을 엿본다. 



삿갓 쓰고 나막신 신은 소동파



그의 인기가 시들해질 즈음, 소동파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의 적벽부(赤壁賦)는 동파를 각인한 최고의 히트 송이었다. 그의 인기는 마이클 잭슨보다, 조용필보다 오래갔다. 동파 이래, 동파를 능가한 월드스타는 없었다. 한때 원굉도(袁宏道)가 나타나 알짱댔지만, 이내 사라졌다. 그에 비견하는 새로운 월드스타는 20세기 벽두에 와서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양계초(梁啓超, 1873~1929)였다. 



사천성 아미산 동파루東坡樓



이규보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몽고 침략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에도 아랑곳없이 고려에서 《동파집》을 간행한 사실을 증언하는 글이 있어 아래 전문을 소개한다. 더러 손을 대야 할 대목이 있는 듯하나, 대의에는 지장이 없으므로 한국고전번역원 옮김을 그대로 옮겨온다. 


동국이상국전집 제21권 발(跋) 


전주목(全州牧)에서 새로 중각한 동파문집(東坡文集) 끝에 발함


대저 문집이 세상에 유포되는 것도 역시 각각 한때의 숭상하는 바에 따를 뿐이다. 그러나 자고로 《동파집》처럼 성행하며 더욱 사람들의 즐기는 바가 된 것은 없었으니, 그것은 아마 문장력이 풍부하고 사실을 다룸이 방대하여 그 자액(滋液)이 사람에게 미침이 무궁하기 때문인가? 사대부(士大夫)로부터 신진후학(新進後學)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그 《동파집》을 손에서 놓지 않고, 그 남긴 향기를 저작(咀嚼)하는 자는 모두 그러하다.

그 모본(摹本)이 전에 상주(尙州)에 있었는데, 불행히 노병(虜兵·몽고병)에게 소실되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완산 태수(完山太守) 예부 낭중(禮部郎中) 최군 지(崔君址)는 학문을 좋아하여 착한 일을 즐기는 군자이다. 그는 이 사실을 듣고 개탄한 나머지 중각(重刻)할 뜻을 두었던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호기(胡騎)가 불의에 왕래하여 사세가 위급하므로 주군(州郡)이 소요하여 조금도 편안한 해가 없는지라, 문사(文事)에 마음을 둘 겨를이 없을 것 같았는데, 태수는 생각하기를,

“옛사람도 전쟁에 임하여 노래를 부르고, 창을 던지고 문학을 강론한 일이 있었으니, 문(文)을 폐할 수는 없는 것이 이와 같다. 이 고을처럼 큰 지방으로서는 이와 같은 사소한 일쯤이야 창졸간에 이룩할 수 있는데, 만일 저 시시한 오랑캐의 일로 해서 우선 미루고 태평한 시기를 기다린다면, 이후 사람도 또 그대로 미루어서 끝내는 나의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 아닌가?”

하고, 드디어 단안을 내려 상께 아뢰자, 상도 역시 문학을 좋아하는지라 흔연히 윤허하였다. 그래서 오랑캐가 오지 않는 틈을 타고, 농사 때가 아닌 틈을 이용하여 중각하게 하여 불일 내에 끝내니, 경비가 적게 나고 힘도 여유가 있었다. 대저 일을 견고히 함에 있어 여유작작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이러한 시기에 이런 큰 일을 이처럼 신속하게 이룰 수 있었겠는가? 그의 정치하는 대체도 또한 짐작할 수가 있겠다.

최군이 나에게는 문인이 된다. 그래서 그는 발문을 부탁해 왔고, 나도 역시 최군이 다른 고을의 서적이 유실되는 것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아, 그 고을을 옮기어 배우는 사람들을 돕는 데 급급한 것을 가상히 여기어, 이처럼 대략 전말을 적어서 그 말미에 쓰는 바이다.

병신년(1236, 고종 23) 11월 일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참지정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호부사 태자태보(參知政事修文殿大學士監修國史判戶部事太子太保) 신(臣) 이규보는 서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주 (역) | 1978


全州牧新雕東坡文集跋尾

夫文集之行乎世。亦各一時所尙而已。然今古已來。未若東坡之盛行。尤爲人所嗜者也。豈以屬辭富贍。用事恢博。滋液之及人也。周而不匱故歟。自士大夫至于新進後學。未嘗斯須離其手。咀嚼餘芳者皆是。其摹本舊在尙州。不幸爲虜兵所焚滅。了無孑遺矣。完山守禮部郞中崔君址。好學樂善君子人也。聞之慨然。方有重刻之志。時胡騎倏來忽往。間不容毫。州郡騷然。略無寧歲。則似若未遑於文事。而太守以爲古之a001_515b人。尙有臨戎雅歌。投戈講藝者。文之不可廢如此。以是邑之大也。此一段幺麽事。咄嗟可辦。而若以彼區區戎醜之故。將姑息以俟太平。庸詎知後之來者又因循姑息。便不成吾志耶。遂直斷聞于 上。上亦好文。欣然允可。於是當虜之未來。間農之未作。使之雕鏤。不日迺畢。費不煩而力有餘矣。非夫幹事貞固。綽有餘裕者。孰於此時成大事如此其敏耶。其爲政之大體。亦可知已。君於予爲門人。故託以標識。予亦嘉君之以他邑之亡書。以爲私憂。移之其邑。汲汲於補a001_515c益學子。是以粗書本末。以跋其尾云。時龍集柔兆㴫灘辜月日。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修文殿大學士監修國史判戶部事大子大保臣李奎報序。


*** 내 페이스북 페이지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에 December 25, 2017 포스팅을 전재한다. 몇 군데 오류를 바로잡고 문맥을 다듬었으며 한자 표기를 보강했다.   

경복궁 아미산



買花

값비싼 꽃


 백거이白居易 / 서성 譯評  


帝城春欲暮, 봄이 저무는 장안에

喧喧車馬度. 말과 수레 오가는 소리 소란스러워

共道牡丹時, 모두들 모란이 한창 때라 말하며

相隨買花去. 어울려 꽃을 사러 가는구나

貴賤無常價, 희귀한 것은 일정한 가격이 없고

酬直看花數. 값을 지불하며 꽃이 몇 송이인지 살펴본다

灼灼百朶紅, 타오르는 듯한 붉은 꽃 백 송이면

戔戔五束素. 다섯 필 흰 비단도 사소하다네

上張帳幄庇, 위에는 휘장을 펼쳐 덮고

傍織笆籬護. 주위로는 울타리를 쳐 보호한다

水灑復泥封, 물을 뿌리고 또 뿌리에는 흙을 덮어

遷來色如故. 옮겨 심어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네

家家習爲俗, 집집마다 기르다 보니 습속이 되어

人人迷不悟. 사람마다 미혹된 채 깨어날 줄 몰라라

有一田舍翁, 어느 나이든 농부가 있어

偶來買花處. 우연히 꽃 사는 곳에 와선

低頭獨長歎, 고개를 숙이고 홀로 장탄식을 하니

此歎無人諭: 그 탄식을 알아듣는 이 없어라

一叢深色花, 진한 색 꽃 한 묶음 값이

十戶中人賦! 중류층 10가호의 세금에 해당한다!


* 백거이의 <진중음> 10수 가운데 하나다. 


〔해설〕 모란을 완상하기 위해 거액을 물 쓰듯 하는 귀족과 고관의 호사스런 생활을 통해 빈부 차이의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었다. 모란은 원래 산서(山西) 지방에서 자랐으나 당대 초기에 장안에 들여와 진귀하게 여겨졌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785-804) 이후에는 장안에서 완상하는 풍기가 극성하였다. 이런 사실은 이조(李肇)의 《당국사보(唐國史補)》에 잘 기록되었다. “도성의 사람들은 놀이를 중시하는데 모란을 숭상한지 30여 년이 되었다. 매년 늦봄이 되면 마차들이 미친 듯이 다니며, 실컷 즐기지 않으면 부끄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집금오(궁성 경비대)가 관청 밖 절과 도관에도 이를 심어 이익을 챙겼으니, 한 뿌리에 수만전이 되는 것도 있었다.”(京城貴遊, 尙牡丹三十餘年矣. 每春暮車馬若狂, 以不躭玩爲恥. 執金吾鋪官圍外寺觀種以求利, 一本有直數萬者.) 위곡의 《재조집》에서는 제목을 「모란」(牡丹)이라 하였다.

김천 대덕산 설경


한시, 계절의 노래(168)


노자를 읽다(讀老子)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침묵하는 지자보다

말하는 자가 못하단 말


이 말을 나는야

노자에게 들었네


만약에 노자를

지자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자신은

오천 자를 지었을까?


言者不如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형용모순 또는 모순어법이라는 말이 있다. 한 문장 안에 모순된 상황을 나열하여 전달하려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수사법이다. 가령 “소리 없는 아우성”, “반드시 죽어야 산다(必死卽生)”, “눈을 감아야 보인다” “색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등등, 곰곰이 따져보면 말이 안 되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면서 말하려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우리 주위의 고전 중에서 형용모순으로 가득 찬 책은 바로 『노자(老子)』다. 개권벽두에서 벌써 이렇게 선언했다. “도(道)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도(道)’는 진리를 의미하지만 그 자체로 ‘말하다’는 뜻도 가진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말이 아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노자』 첫머리에 벌써 ‘침묵은 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셈이다. 하지만 그는 5천 자 수다를 계속 이어나갔다. 5천 자는 유가의 경전에 비해 매우 과묵한 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노자는 가장 먼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란 간판을 달았으므로 바로 뒷구절부터는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 되는 셈이다. 노자의 형용모순 어법은 무엇을 겨누고 있을까? 바로 형용모순으로 범벅이 된 현실이다. 인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높은 관직에 앉아 불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효도와 화목을 내세우는 왕실이 궁정암투와 집안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신의를 표방하면서 친구를 배신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자는 형용모순이면서도 형용모순임을 모르는 현실을 풍자하며 형용모순 어법으로 도(道)에 다가가려 했다. 중당의 대문호 백거이가 『노자』의 그런 특징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노자』를 읽고 왜 5천자의 저작을 남겼냐고 힐난하는 것은 또 하나의 형용모순에 다름 아니다. “문인이 서로 경시함은 옛날부터 그러했다(文人相輕, 自古而然)”란 조비(曹丕)의 말이 떠오른다. 



한시, 계절의 노래(161)***


「유란」 곡을 듣다(聽幽蘭)


 唐 백거이 / 김영문 船譯評 


금곡(琴曲) 중 옛 곡조가

「유란」 곡인데


나를 위해 은근하게

또 연주하네


심신 모두 고요함에

젖어들려고


나 자신 솜씨 모자라

남 연주 듣네


琴中古曲是幽蘭, 爲我慇勤更弄看. 欲得身心俱靜好, 自彈不及聽人彈.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그대로 직역하면 “그윽한 난초를 듣다(聽幽蘭)”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향기 맡는 걸 “문향(聞香: 향기를 듣다)”이라 하기에 이 시 제목도 언뜻 “그윽한 난초 향기를 맡다”로 이해된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면 「유란(幽蘭)」이 금(琴) 연주곡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란」은 일명 「의란(猗蘭)」으로도 불리는 아주 오래된 ‘금곡(琴曲)’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다가 깊은 계곡에 핀 난초꽃을 보고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빗대 「유란」을 작곡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각종 『금보(琴譜)』에 「유란」이란 곡명이 실려 있고, 청말(淸末) 학자 양수경(楊守敬)도 일본 교토 서쪽 카모현(賀茂縣) 진코인(神光院)에서 당나라 사람이 필사했다는 「갈석조(碣石調)---유란(幽蘭)」이란 문자 악보를 발견했다. 이것이 공자가 작곡한 금곡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시의 작자 백거이가 활동한 당나라 때 「유란」이란 금곡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자는 인간 교화를 위한 음악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금(琴)을 즐겨 연주한 금(琴) 마니아였다. 유학자로서 공자의 전통을 계승한 백거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백거이는 바람이 금(琴)을 스치는 소리(風弦)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자신보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의 금(琴) 연주에 심취하기도 했다. 백거이는 자기 금(琴) 연주 수준의 한계를 알았고 그보다 높은 경지는 뛰어난 전문가의 연주를 감상했다. 연주자와 감상자의 영역이 다름을 인정한 셈이다. 뛰어난 감상자 백거이는 어쩌면 금(琴) 연주를 들으며 그윽한 난초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난초꽃 향기를 맡으며 금(琴)이나 거문고 소리를 듣는 경지 말이다. 이 시의 제목이 그런 경지를 암시한다.(사진출처: 宋聘号 홈페이지)

사천성 성도 무후사



한시, 계절의 노래(157)


낙천이 강주사마로 폄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聞樂天授江州司馬)


 당 원진(元稹) / 김영문 選譯評 


잔약한 등불 불꽃도 없이

그림자만 너울너울


이 밤에 듣는 그대 소문

강주로 폄적됐다네


죽도록 아픈 중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어둔 바람에 날리는 비

추운 창으로 들이치네


殘燈無焰影幢幢, 此夕聞君謫九江. 垂死病中驚坐起, 暗風吹雨入寒窗. 


중당(中唐) 시기 원·백(元·白)으로 병칭된 두 시인이 있었다. 바로 원진(元稹)과 백거이(白居易)다. 두 사람은 안사의 난[安史之亂] 이후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감을 일깨우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보듬기 위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전개했다. ‘악부’란 ‘악부시(樂府詩)’의 준말로 한나라 민요를 가리킨다. 이는 백성의 온갖 애환을 반영한 악부시의 전통을 계승하여 현실 속 탐관오리의 부패와 탐욕을 폭로하고 고통 받는 백성의 삶을 시작(詩作)에 담아내자는 운동이었다. 백거이는 원진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장은 응당 시대를 위해 지어야 하고, 시가는 응당 현실의 일을 위해 써야 한다(文章合爲時而著,詩歌合爲事而作)”(「與元九書」)라고 천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기발랄한 노력은 기득권 세력의 강고한 반발에 부딪쳤다. 부패, 탐욕, 편법, 불법으로 살아온 중앙 권력자들과 지방 유지들은 원·백의 직간과 비판에 앙심을 품고 결국 이들을 지방관으로 내쫓았다. 백거이가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진은 비오는 밤 꺼져 가는 등불 아래에서 이 시를 썼다. 캄캄한 밤에 차가운 창으로 들이치는 비바람이 이들의 좌절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대림사 복사꽃(大林寺桃花)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譯 


인간 세상 4월이라 온갖 꽃 다 졌는데

산사 복사꽃은 비로소 흐드러지네

떠난 봄날 찾지 못해 길게 탄식했더니

이곳으로 돌아든 줄 내 일찍 몰랐다네 


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1. 연건동거사 2018.09.01 10:23 신고

    절창입니다.

분황사에서 바라본 황룡사지와 남산



한시, 계절의 노래(156)


궂은비(陰雨)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잎과 가지 젖어들어

사방에 물기 스미는데


짙은 구름 오고가며

그 기세 얼마나 긴가


드넓은 천지 간에

맑은 바람 가득하여


가뭄 구한 공로 높고

더위도 시원해지네


潤葉濡枝浹四方, 濃雲來去勢何長. 曠然寰宇淸風滿, 救旱功高暑氣凉. 


가을장마가 시작되는 시절이다. 뜨거운 여름에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입추와 처서가 지나면서 힘이 줄어 다시 한반도 상공에서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나 오츠크해 고기압과 장마전선을 형성한다. 6월 여름장마처럼 길지는 않지만 비오는 날이 잦아진다. 하지만 근래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가을장마도 여름장마 못지않게 장기간 폭우를 쏟아붓기도 한다. 게다가 이 환절기에는 기압 배치가 매우 불안하여 곳곳에 국지성 호우가 내리기도 한다. 짧은 가을장마가 지나면 가을은 우리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이 때 쯤이면 릴케의 「가을날」이 저절로 떠오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도 귓전에 맴돈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가을을 맞으며 나태주는 더욱 직설적으로 당부한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멀리서 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기원한다. “가을이라는 말만 듣고도 가슴 휑한 벗들이여/ 가을에는 부디 절절히 아프시라” 그리하여 깊고 깊은 아픔 끝에 마침내 고운 진주를 잉태하시기를...

경주 월암재


한시, 계절의 노래(148)


밤비(夜雨)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때 이른 귀뚜라미

울다 또 쉬고


가물가물 등불은

꺼질 듯 탄다


창밖엔 밤비가

내리는구나


파초 잎에서 먼저 들리는

후두둑 소리


早蛩啼復歇, 殘燈滅又明. 隔窓知夜雨, 芭蕉先有聲.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거의 10도 가량 떨어졌다. 입추 말복 지났다고 가을이 이처럼 성급하게 달려와도 되는 것인가? 한밤중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보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천지를 가득 채운다. 아파트 8층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벽 속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시골집에서 살 때는 입추를 전후한 시절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멀리서 들리다가 점차 가까이로 다가와 벽 속 혹은 책상 밑에서도 들리곤 했다.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조금은 투박하면서도 맑은 음색이 가을날 스산한 가슴 속에 깊이 스미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 근대 여성해방 선구자 추진(秋瑾)은 가을날의 그런 심정을 “가을바람에 가을비 내릴 때 애수가 사람을 죽이네(秋風秋雨愁煞人)"라고 읊었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서는 "봄엔 여자가 그리움에 젖고, 가을엔 남자가 슬픔에 젖는다(春女思, 秋士悲)”라고 했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는 말의 가장 오랜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추진 같은 가을 여인(秋女)도 매우 흔했으므로 고전에 나오는 구절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적막한 풀벌레소리가 스산한 가을바람에 실려올 때 문득 후두득 가을비까지 떨어지면 구양수(歐陽修)가 「추성부(秋聲賦)」에서 읊은 것처럼 “이것이 가을소리다(此秋聲也)”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진실로 “그 기운은 서늘하여 사람의 피부와 뼛속까지 스미고, 그 뜻은 쓸쓸하여 산천까지 적막하다(其氣慄冽, 砭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寥)” 긴 여름이 가고 마침내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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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27)


원 상공 만사 세 수(元相公挽歌詞三首) 중 셋째


 당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수많은 장송객 모두

참담한 심정인데


반혼 수레 끄는 말도

슬픔으로 울고 있네


평소의 금(琴)·서(書)·검(劍)·패(佩)

그 누가 수습하나


남겨진 세 살 아들

갓 걸음마 배우는데


送葬萬人皆慘澹, 反虞駟馬亦悲鳴. 琴書劍佩誰收拾, 三歲遺孤新學行. 


옛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지가 세상을 떠나면 만사(輓詞 혹은 挽詞)를 지어 애도했다. 5언시, 7언시, 4언시, 사부(辭賦) 등 다양한 형식으로 추모시를 지었다. 현재 남은 문인들 문집에는 만사 항목이 따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만사는 다른 사람의 장례에 애도를 표하는 보편적인 양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묘소 전면에 깔아놓은 추모 글귀 각석도 현대적 의미의 만사라 할 만하다. 이 시는 중당 시대 대문호 백거이가 절친 원진(元稹)의 장례 때 헌정한 만사다. 장례를 치르고 혼백을 빈소로 모시는 반우(返虞 혹은 返魂) 절차를 슬프게 읊었다. 금(琴)·서(書)·검(劍)·패(佩)는 원진이 평소에 가까이하던 칠현금, 서책, 칼, 패물(佩物)이다. 원진은 적자(嫡子)가 요절했고, 서자만 몇 명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원진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유품조차 수습할 자식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 삶과 죽음의 이별에는 늘 애통함과 안타까움이 동반되게 마련이다. 어제(2018.07.23.)는 우리 현대 문학사 큰별 최인훈 선생과 정치사 큰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두 분 모두 해당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충격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이 백거이 만사로나마 삼가 조의를 표하고 명복을 빈다.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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