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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UTLER YEATS가 1916년에 낸 시집 Responsibilities and Other Poems에 수록된 아래 시. 한데 이 시가 사람을 환장케 하는 까닭은, 딱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대체 이를 통해 전하려는 그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감조차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이츠는 명구 제조기다. 각종 명언이라는 명언은 다 쏟아내고 죽는 바람에 후세 시인들이 더 새로운 구절을 찾아 헤매게 했으니, 그의 이런 공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래 유례가 없던 일이다. 그는 세치 혀로 살다간 사람이다. 


술은 입술로, 사랑은 눈으로....

이것이 죽기 전에 우리가 깨닫게 되는 진리라고 설파하는 그가 느닷없이 

술잔 들어 입술에 갖다 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 보면서 왜 푹 한숨을 지어야 했을까? 

그의 말대로라면, 술도 입으로 들어오고, 그 술잔 너머 저쪽에 앉은 내 사랑도 내 눈으로 들어오는데, 왜 한숨이란 말인가? 

 

이런 깨달음을 예이츠는 늙어 죽기 전에야 안다고 했다. 

너무 늙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을까? 

너무 늦게 알았다는 뒤늦은 후회일까 한탄일까?   

의뭉함이 꼬리를 문다. 


원주 거돈사지 금당터 본존불 대좌에서



A Drinking Song


BY WILLIAM BUTLER YEAT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술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나중에 그래 정말 그래 하며 깨닫는 건 이뿐 

그러고선 우린 늙어 죽고 말지.   

나는 술잔 들어 내 입술에 대며 

당신 바라보고선 한숨만 짓네. 


 


  1. 연건동거사 2018.12.05 14:00 신고

    당시 분위기군염

  2. 연건동거사 2018.12.05 14:00 신고

    전당시에 실릴만한 시입니다.

어떤 여자를 아느냐가 남자의 일생을 좌우하는 일이 많거니와,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시를 개척했다고 하는 William Butler Yeats(1865 - 1939)는 특히 더 그러해 여자 잘못 만나는 바람에 인생 조지게 된다. 21살 때인 1886년,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해 이곳 생활을 시작하면서 극작 활동에 몰입한 예이츠는 런던 정착 얼마 뒤 그의 일생에 명운을 좌우하게 되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거니와, 모드 곤(Maud Gonne)이라는 키가 크고 아주 미인이며,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곤한테 홀딱 빠진 예이츠는 이후 근 30년간 그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날을 보낸다. 





곤에게는 다른 남자한테서 낳은 자식 둘이 있음을 나중에는 알았지만, 그럼에도 곤을 향한 사랑은 미친 열병 앓듯이 했으니, 하지만 곤한테 예이츠는 동지였지, 남자는 아니었다. 예이츠의 청혼까지 뿌리친 곤은 추방 생활을 하는 아일랜드 혁명가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와 결혼하고 만다. 예이츠한테 더욱 비극은 이젠 유부녀가 되었다 해서 곤을 향한 사랑이 결코 식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으니, 이제나저제나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오는 듯 했으니, 1916년 아일랜드 독립을 외치며 아일랜드 공화파들이 더블린에서 일으킨 부활절 봉기(the Easter Rising)가 엿새만에 실패하고 그에 참여한 곤의 남편 맥브라이드가 영국군에 체포되어 처형된 것이다. 


이는 곤 부부한테는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예이츠에게는 천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매몰찬 여자는 끝끝내 예이츠를 외면하고 말거니와, 그리하여 나중엔 할 수 없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오매불망 독신으로 지낸 예이츠는 부활절 봉기 이듬해인 1917년 딴 여자 품에 안겨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니, 그의 나이 이미 52살이었다. 


다음 시는 집착이라 해야 할 이 기구한 이 남자가 스스로 털어놓는 심중 이야기다. 이미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고 노년에 이른 1926년 런던 Macmillan and Co에서 발행된 그의 《Later Poems》(86쪽)에는 이 시가 1904년 초판이 발행된 예이츠의 이전 시집 《In the Seven Woods》에 수록된 것이라 했지만, 어찌된 셈인지 이 1904년판 시집에는 아래 시가 보이지 않는다. 혹, 그 뒤 개정판에 추기된 것이 아닌가도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다. 



1926년 예이츠 선집에 수록된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라'



이 시는 작자인 예이츠 자신이 SWEETHEART한테 주는 교훈 혹은 훈시 형식이라, 언뜻 보면 고답적일 듯하나, 앞서 말한 저런 예이츠 인생 곡절을 조금이나마 알고 나면 심금을 때린다. 이 스위트하트가 그의 딸 Anne이라는 해설을 어딘가서 본 듯한데, 만약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시점은 그가 결혼한 1917년 이후가 될 것이지만, 이리 보면, 앞서 말한 출판 서지사항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번역에서는 딸로 보기로 한다. 객설이 길었다. 



O Do Not Love Too Long 


by William Butler Yeats (1865 - 1939) 


SWEETHEART, do not love too long:

I loved long and long,

And grew to be out of fashion

Like an old song. 


All through the years of our youth

Neither could have known

Their own thought from the other's,

We were so much at one.


But O, in a minute she changed --

O do not love too long,

Or you will grow out of fashion

Like an old song. 



아,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라 


아가야.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지어다. 

나는 오래오래 사랑했단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유행에 뒤쳐지고 말았단다.  

마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말이다. 


우리가 젊은 날엔 줄곧 말이다 

그녀도 나도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랬다. 

우리는 그처럼 하나였단다.  

 

하지만, 아, 순식간에 그녀가 변하고 말았으니, 

아, 너무 오래 사랑하지는 말지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유행에 처지고 말 것이니 

마치 철 지난 유행가처럼 말이다. 


나는 예이츠가 여자 잘못 만나 인생 조졌다고 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 고통이 예이츠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저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찌했을 것인가? 돌이켜 보니 나 역시 저만치는 아니었다손 쳐도, 그에 못지는 않았다고 자백해 둔다. 


대신 예이츠는 무모했으되, 나는 울렁증이 있었다고 해 둔다. 예이츠는 용감했으되, 나는 소심했다고 해 둔다. 


그럼에도 그와 내가 관통하는 한 가지는 불꽃처럼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49재를 맞아 쓴다. 



 


우연히 느낌이 있어서[感遇]  


[조선] 허봉(許篈·1551~1588)


전남 장성 고경명 묘소에서



낭군은 둑가 버들 좋아하셨고

소첩은 고개 위 솔 좋았어요

바람 따라 홀연히 흩날리며

이리저리 쓸려가는 저 버들개지

겨울엔 그 자태 변하지 않는

늘 푸른 솔과 같지 않지요 

좋아함과 싫어함 늘 변하기에

걱정스런 마음만 가득하답니다


君好堤邊柳, 妾好嶺頭松. 柳絮忽飄蕩, 隨風無定蹤. 不如歲寒姿, 靑靑傲窮冬. 好惡苦不定, 憂心徒忡忡. 


전남 장성 고경면 묘소에서



조선후기 문사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열조시집(列朝詩集)》에서 채록했다면서, 그의 《해동역사(海東繹史)》 권제49 예문지(藝文志) 8 본국시(本國詩) 3 본조(本朝) 하(下)에 위 시를 수록하면서, 《열조시집》을 인용해 이르기를 “허봉(許篈)의 여동생이 김성립(金成立)한테 시집갔는데, 착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허봉은 허균(許筠·1569~1618)의 형이요, 난설헌(1563~1589)의 오빠다. 따라서 김성립한테 시집간 여동생이란 곧 허난설헌을 말한다.  


한시 제목에 흔히 등장하고, 이 시에서도 제목으로 삼은 감우(感遇)란 우연히 생각난 바를 읊었을 때 쓰는 말로써, 이것도 저것도 붙이기 싫을 때는 무제(無題)라 하기도 한다. 시를 보면, 허봉은 여자에 가탁해 바람기 다분한 한 남자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자 바라기의 심정을 나무에 견주어 그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니, 남자는 봄날만 되면, 이리저리 그 꽃방울 날리는 버들개지맹키로,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에 견주어, 화자인 여자는 같은 자리 높은 산 꼭대기를 홀로 지키는 소나무에 비긴다. 이를 무슨 전통시대 유교 윤리를 끌어다가 설명하기도 하는 모양이나, 글쎄, 그것이 꼭 전통시대 유교윤리만이리오? 



빠다 기름 바른 유창 미국영어로 여친인듯한 동행한테 미국인 듯한 양코배기 젊은 친구가 남산을 장악한 열쇠 더미를 보고는 "love locks"라 설명하는 말을 우연히 엿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접때 어떤 아줌마는 남산이 처음인듯, 대뜸 하는 말이 "이게 대체 돈이 얼마야" 하는 게 아닌가?

열쇠로써 변치않는 사랑 상징한답시며 자물쇠 채우곤 그에다가 "변치 않는 우리 사랑"이니, "죽을 때까지 한가지로" 하는 오글거리는 몇 마디 적고는 그 아래다가 그를 맹서한 커플 이름과 날짜를 적어 걸어주는 저 전통이 중국에선 아주 흔한데 혹 그에서 흘러왔는지는 모르겠다.

볼 때마다 글쎄, 저리 요란스레 맹서한 사랑이 지금도 영속하는 커플 몇이나 될까 못내 의뭉한 까닭은 내가 냉소적이기 때문일까? 아님 그러지 못한 내 과거가 투영된 때문일까?

사랑이 변치않을 수도 없을 뿐더러, 저리 꼭 끌어매야 어느 정도 안심하는 사랑은 글쎄다, 미저리misery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이런저런 잡상을 푸념하는 나 역시 꼰대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함에도 저 열쇠와 자물쇠는 돌이켜 보면 참말로 끔찍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저야 연결 혹은 접속 혹은 어트랙션이란 상징이겠지만 구속과 억압과 폭력 같기만 하다.

흘러가는 대로 놔둘 뿐이다.
고통스럽지 않은 별리別離 있던가?
내가 살아보니 제아무리 연습해도 아픔을 감減할 수 없는 일이 별리와 상실과 단념이더라.


  1. 아파트담보 2018.10.09 21:02 신고

    남산 위에 저 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하다는 게 이건 가요?



한시, 계절의 노래(103)


자야가(子夜歌)  


  남조 민요 / 김영문 選譯評 


나는 늘

북극성 되어


천 년토록

마음 옮기지 않을 텐데


내 님은

태양 같은 마음으로


아침엔 동쪽

저녁엔 서쪽으로 가네 


儂作北辰星, 千年無轉移. 歡行白日心, 朝東暮還西. 


2014년 6월 8일 프랑스 파리 세느강에 있는 퐁 데자르(Le Pont des Arts) 교량 난간이 무너져 내렸다. 난간에 매달아 놓은 ‘사랑의 맹세’ 자물쇠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연인들은 서로 사랑의 맹세를 하고 그 상징으로 자물쇠를 다리 난간에 채운 후 열쇠를 세느강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렇게 채워놓은 자물쇠가 얼마나 많았는지 결국 퐁 데자르는 전 세계 연인들이 맹세한 사랑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도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해 유명 관광지 곳곳에서 수많은 사랑의 자물쇠를 목격한다. 옛날에는 바위, 산, 바다, 태양 등을 걸고 사랑을 맹세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자물쇠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격세지감이다. 이 시에서는 흥미롭게도 태양에 거는 맹세는 믿을 수 없다고 묘사한다. 아침에는 동쪽, 저녁에는 서쪽으로 옮겨 다니는 태양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믿어야 하나? 저 하늘에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뭇별의 중심 북극성이다. 북극성만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하긴 중국 소설가 아청(阿城)은 동아시아 중심 신앙은 태양이 아니라 북극성 숭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 도시에서는 밝은 불빛 때문에 북극성을 볼 수 없다. 퐁 데자르에 매달아 놓은 수많은 자물쇠 중에서 변치 않은 사랑은 과연 몇 쌍이나 될까? 북극성을 볼 수 없는 탓에 연인들의 마음이 쉽게 변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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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若生春陽 난초두약 봄볕에 피어
涉冬猶盛滋 겨울나고 더 무성하네
願言追昔愛 옛사랑 따르고자 하니 
情欵感四時 진실한 맘 ??
美人在雲端 님 계신곳 저 구름 끝
天路隔無期 하늘길 막혀 기약없네
夜光照玄陰 달빛은 어둠 비추는데
長歎戀所思 긴 탄식에 님 그리네
誰謂我無憂 뉘 말했나 난 근심없다고
積念發狂癡 쌓이는 그리움 미쳐버릴듯


한대 잡시의 하나인 바 매승 작이라 하나 가탁이다. 한군데가 영 옮기기 머같아 그냥 놔둔다. 


庭中有奇樹 뜰앞에 기이한 나무
綠葉發華滋 푸른잎에 무성한 꽃잎
攀條折其榮 가시 당겨 꽃 꺾어
將以遺所思 그리운이께 보내고파
馨香盈懷袖 그 향기 소매에 가득
路遠莫致之 길 멀어 보낼 수 없네
此物何足貴 이 꽃이야 귀하랴만
但感別經時 떨어져 지낸 시절 아플뿐

字異方面:「庭中有奇樹」有作「庭前有奇樹」者。按:「中」五臣及《玉臺新詠》均作「前」。「何物何足貴」有作「此物何足貢」者。按:「貢」五臣作「貴」,《玉臺新詠》同。賈逵《國語注》曰:「貢、獻也。」一作「貴」,當「珍貴」講;一作「貢」,當「貢獻」講。詩旨方面:


해제는 나중에 


아래 시는 《옥대신영玉臺新詠》 권1에 작자를 반첩여班婕妤라 해서 수록한 작품이거니와 이 시가 논란을 거듭한다. 시 형태로 보건대 운율을 갖춘 오언시가 되거니와, 반첩여가 활동한 전한 말기에 이런 형태가 나오기란 마른 하늘 날벼락과 같다 해서 작자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옥대신영》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붙었거니와, 


옛적에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반첩여(班婕妤)가 총애를 잃어 장신궁(長信宮)에서 태후를 공양하게 되니, 이때 부(賦)를 지어 스스로 상처받은 마음을 풀어내고 아울러 원시(怨詩) 1首를 지었다. (昔漢成帝班婕妤失寵,供養於長信宮,乃作賦自傷,並為怨詩一首)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新裂齊紈素  제 땅에서 난 비단 새로 자르니

鮮潔如霜雪  곱고 깨끗함 눈서리 같네 

裁為合歡扇  마름해 합환 부채 만드니 

團團似明月  둥글기는 보름달만 같네 

出入君懷袖  그대 품과 소매 드나드며 

動搖微風發  움직이니 작은 바람 이네 

常恐秋節至  매양 두렵다네 가을 되어 

涼風奪炎熱  서늘한 바람 무더위 앗아

棄捐篋笥中  상자에다 패대기쳐 버리곤  

恩情中道絕  사랑하는 맘 그새 끊어질까 


지금의 산동 일대를 지칭하는 제(齊)는 예로부터 비단 산지로 이름이 높았거니와, 작자는 그에서 난 비단을 마름해 합환 부채를 만든다. 합환선(合歡扇)이 곧 합환 부채거니와, 이는 기쁨을 함께 하는 부채라는 뜻이거니와, 그 모양은 둥글거나 그에 가깝고, 그에다가 대칭하는 꽃 그림을 도안해서 부부 금슬을 상징했다. 아마 궁궐에서 많이 만들었기 때문인지 궁선(宮扇)이라고도 하고, 그 재료는 흰색 비단이 많다 해서 환선(紈扇)이라고도 했으며, 그 모양에 착목해 둥글다 해서 단선(團扇)이라고 했다. 이런 부채를 만드는 심정이야, 남편과 생평을 함께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자 하는 뜻이었겠지만, 남자 마음이야 그런가? 남자는 언제나 동물의 왕국 숫사자와 같아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기 마련이거니와, 새로운 사람 나타나면 언제나 버려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만든 합환선, 굄하는 남자한테 주니, 처음엔 의도대로 사랑을 받아 필수품이 된다. 하지만, 쓰임은 여름철 뿐이라, 가을이 오니 더는 찾지도 않고, 찾기는커녕 이제는 패대기쳐서 상자에 쳐박아 둔다. 하기야 아주 버리는 것보다야 낫다 하겠지만, 한 번 상자에 들어간 부채를 누가 찾겠는가? 용도폐기다. 그걸 만들어 남자한테 준 여자는 그 신세를 보며, 말한다. 나를 향한 님 마음도 함께 시들고 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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