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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우로 해가 뜨려한다. 서리 찾으러 나간다.
때는 같은데 서울선 이런 서리 만나기 좀체 어려우니 이때 물리도록 봐준다.

간밤엔 별이 빛났더랬다. 차가울수록 겨울 하늘은 별이 쏟아지는 법. 나보다 늦게 내려온 조카가 이르기를..별이 비처럼 쏟아졌단다 김천 하늘도 그렇더란다.

오리온자리 허리띠 완연하나 폰카로 담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인가? 아침 이슬이 곱다.
철고리가 쩍쩍 달라붙을 농촌 겨울이나 이젠 그런 철고리 사라진지 오래다.

폐타이어 우로 서리가 꽃을 피웠다. 추상이다. 칸딘스키 피카소 제아무리 재주 부린대도 서리를 따를 수 없다. 번데기 앞 주름에 지나지 않는다.

살피니 뭐 굼벵이 같기도 하고, 슈퍼맨 흐물맨으로 만든다는 크립톤인지 암튼 그런 결정 같다.

겨울은 결정인가?

메주가 마르는지 비틀어지는지 김밥부인은 터질 옆구라도 있지 메주부인은 뭘 어찌 하려나?

내가 저 메주로 야동 한 편 맹근다면 그 제목 메주부인 푹 담갔네 하리라.

언제부턴가 까치는 겨울이 언제나 풍년이라, 높아진 저 하늘 감은 딸 사람도 없거니와 내가 줄었거나 감나무가 늘었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로대 까치야 내 따지 못한 감은 널 위한 환갑잔치라 해두리니 물리도록 쪼아먹고선 어디가 배때지 내어놓곤 양지마을 김씨네 감쳐먹곤 고지혈증 당뇨 걸렸노라 선전해주기 바라노라.

오늘 경복궁을 횡단해 건추문 쪽으로 나가다 보니, 저 은행나무 이파리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음을 봤다. 이 은행나무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번 가을은 다른 데 은행나무에 정신이 팔려 전연 이곳 단풍은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서울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 이미 은행은 단풍이 되어 지상으로 꼬꾸라졌다. 상엽霜葉, 즉, 서리맞은 단풍이라는 말은 무색하니, 여태까지 죽 그랬다. 



그 인근 주택가를 지나다 보니 단풍나무 단풍이 한창이다. 조만간 지리라. 서리가 오기 전에 지리라. 이때까지 죽 그랬다. 서리 맞아 생긴 단풍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모든 단풍은 서리가 오기 한창 전에 이미 단풍 되어 낙엽落葉로 사라져 갔으니깐 말이다. 



그러고 보니 화려한 단풍을 묘사하는 절창 중의 절창, 다시 말해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맞은 단풍 2월 봄꽃보다 붉다는 말은 도대체가 어불성설임을 안다. 물론 채 떨어지지 않은 단풍이 가끔 서리를 맞기도 하나, 그렇게 서리맞은 단풍이 서리 때문에 단풍이 든 것도 아니요, 이미 단풍인 상태에서 서리를 맞은 것이니, 분명 저 표현은 문제가 있다. 

저 말을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내뱉은 당말 시인 두목(杜牧)은 이걸 몰랐을까?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았을 것이요, 막상 저 말이 일대 유행했을 적에는 두목을 가리켜 서리 맞은 단풍이 말이 되느냐 하는 핀잔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뭐, 문학 혹은 문학적 감수성이 과학 혹은 엄격한 절기와는 다르다면 할 말이 없다만, 그럼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제로인 서리맞은 단풍이라는 상상의 산물이 가을 단풍의 실제를 더욱 화려찬란하게 포장했으니, 참말로 기구한 운명일 수밖에 없다.  

단풍이야 서리를 맞아 들건, 그 전에 들어 떨어지건 무슨 상관이랴? 

붉기만 하다면, 그리하여 그 붉음이 내 단심丹心과 합심한다면야 그 비롯함이 서리건 아니건 무에 중요하겠는가? 피장파장 똥끼나밑끼나일 뿐....

서리맞은 단풍이야 그렇고, 서리맞은 배추이파리는 내가 무지막지하게 봤다. 



한시, 계절의 노래(198)


산행(山行)


[唐] 두목 / 김영문 選譯評 


돌 비탈 길 따라서

멀리 추운 산 올라가니


흰 구름 피는 곳에

인가가 자리했네


수레 멈추고 앉아서

저녁 단풍 숲 사랑함에


서리 맞은 나뭇잎들

봄꽃보다 더 붉구나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晚, 霜葉紅於二月花. 


한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 치고 이 시를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또한 이 시는 가을 단풍을 노래한 절창으로 각종 한문 교과서에까지 실리곤 했다. 이 시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시를 꼼꼼히 읽어보자. 우선 작자 혹은 작중 인물은 거처에서 멀리(遠) 떨어진 추운(寒) 산 돌 비탈(斜) 길을 오르고 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선 눈 앞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몇 집 자리 잡고 있다. 때는 석양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가을 저녁이다. 시속 주인공은 한기가 스미는 석양 속 단풍 숲 앞에서 수레를 멈췄다. 이쯤 되면 보통 한시 작자들은 “아 슬픈 가을(悲秋)이여!”라는 탄식을 내뱉는다. 가을을 읊은 시들이 대개 그렇다. 아니 한시의 상당수가 애상, 비탄, 수심 등의 정서와 관련되어 있다. 1917년 중국 신문학운동의 선구자 후스(胡適)는 전통문학의 병폐를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그것을 타파하자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자(不做無病呻吟的文字)”였다. 중국 시 전통의 한 갈래가 “인간의 감정에 따르는(詩緣情)” 데서 시작되었고, 또 감정 가운데서도 “울분이나 비애를 토로하는 것(發憤著書)”이 문학창작의 주요 동기였음을 상기해보면 그런 ‘비애’의 전반적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습화·유형화의 함정에 빠짐으로써 감정의 과잉이나 표현의 진부함에 갇히게 되었다. 모든 한시가 그게 그거 같아서 독창성이나 신선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추남추녀(秋男秋女)의 휑한 가슴을 읊은 가을 시의 거의 90%는 ‘슬픔의 가을(悲秋)’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두목의 이 시는 그런 슬픔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석양빛에 반짝이는 단풍잎을 아끼고 즐기는 마음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매우 절제되어 있지만 이는 틀림없이 기쁨의 감정이다. 그 기쁨은 석양, 가을, 낙엽이라는 자연의 마지막 교향곡 위에 실려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의 노년도 이처럼 절제되어 있지만 당당하고 찬란한 빛이었으면 좋겠다. 문학의 독창성은 무슨 경천동지할 발상이나 표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비틀기다. 이 시가 바로 그런 비틀기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충주호


한시, 계절의 노래(195)


동정호에서 놀다 다섯 수(遊洞庭湖五首) 중 넷째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동정호 서쪽엔

가을 달 빛나고


소상강 북쪽엔

이른 기러기 날아가네


배에 가득한 취객

백저가 부르는데


서리 이슬 가을 옷에

스미는 줄 모르네


洞庭湖西秋月輝, 瀟湘江北早鴻飛. 醉客滿船歌白苧, 不知霜露入秋衣.


중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새롭게 확인한 충격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태백이 자신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의 집에서 병사한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노래를 부르며 이태백의 죽음에 관한 전설을 들었다. 이태백은 휘영청 달이 뜬 밤,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달을 건지러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태백이 자기 집도 아닌 친척 집에서 병에 걸려 골골 않다가 죽다니... 그 이후로는 깨어진 낭만과 환상 위에서 새로운 이태백 찾기가 계속됐다. 그런데 이태백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동정호에 달을 건지러 들어갔다는 전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이 시도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다. 동정호 서쪽에 달이 빛나고 있으므로 때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초승달이 서쪽에 떴을 때나 둥근 달이 서쪽으로 기운 때다. 그러나 초승달은 초저녁에 잠깐 서쪽 하늘에 떴다가 금방 사라지므로 배를 띄우고 만취하도록 술을 마실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동정호의 야유(夜遊, 野遊)는 둥근 달이 떠오른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달이 이슥하게 기운 새벽까지 계속되었다고 봐야 한다. 뒷구절에도 이른 새벽에 기러기(早鴻)가 날아간다고 했다. 뱃놀이를 즐긴 신선들은 이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백저가(白苧歌)」는 당시 유행한 인기곡이다. 내용과 가락은 알 수 없다. 다만 올나이트를 했으므로 정황상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이거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정신없이 취한 주정뱅이들이 출렁이는 배 위에서 비틀 거리는 상황이니 어찌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취한 와중에 객기 부리는 놈이 꼭 하나는 있지 않던가? 이태백이 바로 그러했다. “얘들아, 내가 저 달을 건져서 돌아오마... 풍덩~”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까? 우리의 환상과 낭만이 다시 살아나는 때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다시 이 시를 음미해보시라. 

  1. 아파트담보 2018.10.11 20:42 신고

    한시 300수 돌파를 축하합니다. 짝짝짝!

  2. 한량 taeshik.kim 2018.10.14 16:55 신고

    부지런히 나가서 천수 만수 채워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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