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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 등장한 달마대사(연합DB)



한시, 계절의 노래(193)


장난삼아 짓다(戲作)


[宋] 소식(蘇軾) / 김영문 選譯評 


뜰 앞으로 네댓 걸음

나가기도 전에


화려한 마루 맡에

이마 먼저 부딪치네


몇 번 눈물 닦아도

깊은 눈에 닿기 어려워


두 샘물 그렁그렁

그대로 남아 있네


未出庭前三五步, 額頭先到畫堂前. 幾回拭淚深難到, 留得汪汪兩道泉.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형제, 자매, 남매들은 늘 소소하게 다투며 자라기 마련이다. 티격태격, 옥신각신하는 삶 속에서 끈끈한 가족애를 형성한다. 한 살 차이인 소식과 소소매 남매도 그러했던 듯하다. 하지만 다툼의 방법이 달랐다. 보통 남매였다면 소소매가 아마 “야! 이 털북숭아! 수염 좀 깎아!”라고 했으리라. 하지만 문향(文香)이 가득한 집안답게 소소매는 시로 동생을 놀렸다. “갑자기 털 속에서 소리가 전해오네.(忽聞毛裏有聲傳.)” 이런 품격 높은 놀림을 받고 막말을 할 수는 없다. 소식도 칠언절구를 들고 나왔다. 누나가 자신의 외모를 문제 삼았으므로 자신도 누나의 외모로 복수를 해야 격에 맞다. 하지만 누나는 여성이므로 외모를 조심스럽게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결과가 위의 시다. 우리는 소식의 복수를 통해 소소매의 외모를 금방 연상할 수 있다. 방안에서 마당으로 나가다가 이마가 먼저 마루 맡에 부딪친다고 했으므로 앞머리가 튀어나온 짱구형임을 알 수 있다. 또 그렇게 머리가 먼저 부딪친 후 너무 아파서 눈물이 흐르자 소소매가 눈물을 닦는데, 눈이 너무 깊어서 눈물이 닦이지 않고 샘물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결국 소소매의 외모는 눈이 오목하고 앞머리가 튀어나온 스타일, 즉 미인형은 아니지만 재치 있고 똑똑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소소매는 이후 대문호가 된 남동생 소식과 알콩달콩 문학적 재능을 겨루며 자랐으나 결혼 후 불우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울분 끝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천재단명이 아니라 전통사회가 여성에게 가한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탓이리라. 

2015.10.3(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수염 선수권대회' 참가자 중 한 명(연합DB/원출처EPA)



한시, 계절의 노래(192)


장난으로 짓다(戲作)


[宋] 소소매(蘇小妹) / 김영문 選譯評 


한 무더기 시든 풀이

입술 사이로 뻗어 있고


수염이 귀밑머리 이어져

귀조차 종적 없네


입꼬리 몇번 돌고도

입 찾을 수 없었는데


갑자기 털 속에서

소리가 전해오네


一叢衰草出唇間, 鬚髮連鬢耳杳然. 口角幾回無覓處, 忽聞毛裏有聲傳. 


북송의 소동파(蘇東坡: 蘇軾)는 중국 전체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대문호다. 앞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그의 부친 소순(蘇洵)과 그의 아우 소철(蘇轍)도 소동파와 함께 당송팔대가에 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중국 민간 전설에는 소식의 누이가 등장한다.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소식은 3남3녀 중 둘째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의 형, 큰 누나, 둘째 누나는 모두 요절했고, 소식은 그보다 한 살 많은 셋째 누나, 그리고 아우 소철과 함께 성장했다. 이름이 소팔낭(蘇八娘)으로 알려진 소식의 셋째 누나는 딸 중에서 막내였기 때문에 소소매(蘇小妹)로 불렸고, 이로 인해 중국 민간에서는 소소매가 소식의 누이동생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소소매는 부친 소순, 아우 소식,소철과 마찬가지로 문학적 소양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원대 오창령(吳昌齡)의 잡극 『동파몽(東坡夢)』, 명대 풍몽룡(馮夢龍)의 소설 『성세항언(醒世恒言)』, 청대 이옥(李玉)의 전기(傳奇) 『미산수(眉山秀)』에 모두 상큼하고 재기발랄한 캐릭터로 소소매가 등장한다. 그 소소매가 수염과 구레나룻이 귀까지 덮인 남동생(민간에서는 오빠)을 놀리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위의 시가 바로 그것인데 역시 누나보다는 깜찍한 여동생이 지었다고 해야 시적 효과가 극대화 되는 듯하다. 잡초 같은 털 속에서 갑자기 소리가 터져 나온다니 은근히 재미있다. 가히 우열을 매길 수 없는 오누이라 할 만하다.


2018 추석밤 보름달. 김천에서 포착.



한시, 계절의 노래(181)


중추절 달(中秋月)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저녁 구름 모두 걷혀

맑은 한기 가득하고


은하수 고요한 곳

옥쟁반이 굴러간다


이 생애 이 좋은 밤

오래 가지 않으리니


명월을 명년에는

어디에서 바라볼까


暮雲收盡溢淸寒, 銀漢無聲轉玉盤. 此生此夜不長好, 明月明年何處看. 


우리가 사는 지구에 해만 있고 달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인류의 사고가 극단으로 치달려서 인류가 오래 전에 멸종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낮에 해만 뜨고 밤에 달이 없다면 밝음에만 치우친 일방적인 사고로 어둠 속에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모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는 늘 밝고 충만한데 비해 달은 한 달을 주기로 비움과 채움을 반복한다. 비움과 채움에 대한 철학을 철저하게 이해해도 이 세상을 사는 이치의 거의 대부분은 깨달은 거나 마찬가지다. 삶이란 무엇인가? 넘치는 부분을 덜어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일년에 가장 둥근 달이 뜨는 날 그 동안 결여되었던 가족의 자리를 둥글게 채우기 위해 모두들 귀성길에 나선다. 하지만 이런 날도 자신이 채워야 할 자리에 가지 못하고 고생하는 이들이 있다. 올 추석은 이런 모든 이들의 삶에 작은 위안이라도 보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고향을 찾고 가족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아름답고 충만한 명절이 되길 기원한다. 




한시, 계절의 노래(172)


동파 선생 시를 차운하다(次東坡先生韻)


 송 장효상(張孝祥) / 김영문 選譯評 


아득하게 강남 땅

바라다보니


자욱한 안개 속에

태양이 뜨네


백발성성 양친께선

대문에 기대


자식 돌아 오기를

손꼽는다네


悠然望江南, 日出煙靄微. 倚門雙白發, 屈指待兒歸. 


백발이 성성한 부모가 대문에 기대 기다리는 자식은 어디로 갔을까?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중국 강남은 대지도 넓은 데다 강, 호수, 운하가 많아 안개가 끼면 정말 망망한 느낌이 든다. 태양이 떠도 달처럼 보이며 사방을 분간할 수 없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다. 태양은 떴으나 망망한 대지를 바라보며 백발 부모는 자식을 기다린다. 군대에 갔을까? 공부하러 갔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젊음의 방황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자식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은 어떨까? 세상 일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모든 자식들은 떳떳하게 당당하게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고픈 욕망이 있다. 오늘도 우리 부모님은 망망한 안개 속을 헤매는 자식을 기다린다. 오늘도 우리 자식들은 떳떳한 자식으로 돌아가기 위해 심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다.

  1. yisabu 2018.09.13 21:34 신고

    옛날에도 이렇게 차운했다고 밝혔다는 점을 요즘 사람이 참고해야겠습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141)


6월 27일 망호루에서 술 취해 쓰다. 다섯 절구(六月二十七日望湖樓醉書五絶) 중 첫째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먹장구름 뒤집히나

산도 아직 못 가린 때


희뿌연 비 구슬처럼

나룻배로 튀어드네


땅 휩쓸며 바람 불어

갑자기 비 흩으니


망호루 아래 저 호수는

하늘인양 펼쳐졌네.


黑雲飜墨未遮山, 白雨跳珠亂入船. 卷地風來忽吹散, 望湖樓下水如天.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떠오른다. 아무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다. 소동파가 여름날 서호(西湖) 가 망호루에서 술을 마시다 갑자기 몰려온 먹장구름과 소나기를 보고 흥에 겨워 일필휘지로 이 시를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묘사 대상을 구름, 비, 바람, 하늘로 금방금방 옮기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특징을 너무나 생생하게 잡아냈다. 기구(起句)에서는 먹빛이 퍼져나가는 듯한 소나기 구름의 특징을 ‘번(飜)’으로 표현했다. 구름이 갑자기 뒤집히듯 치솟아 오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먹장구름은 아직 산도 다 가리지 못했다. 승구(承句)에서는 소나기의 굵은 빗방울을 튀는 구슬(跳珠)이라고 했고 그것이 어지럽게(亂) 나룻배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을 줌인 컷처럼 포착했다. 전구(轉句)에서는 땅을 휩쓸며 불어와 비와 구름을 사방으로 휘몰아가는 바람을 질풍 같은 속도로 묘사했다. 결구(結句)는 망호루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며 호수와 하늘이 하나의 색깔로 희뿌옇게 물드는 모습을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려냈다. 소동파는 이 시 뒤에 연작시 네 수를 더 썼지만 기실 그건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이 한 수만으로 더 손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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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33)


술 취해 잠자는 이(醉睡者)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도(道) 있어도 행하기 어려우니

취하는 게 더 낫고


입 있어도 말하기 어려우니

잠 자는 게 더 낫네


선생은 이 돌 사이에

술 취해 누웠으나


만고에 그 뜻을

아는 이 아무도 없네


有道難行不如醉, 有口難言不如睡. 先生醉臥此石間, 萬古無人知此意.


공자는 천하를 구제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그를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천하를 방랑했다. 굴원은 직간으로 초 회왕(懷王)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결국 추방되어 멱라수에 투신·자결했다. 사마천은 이릉(李陵)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다가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죽음보다 못한 궁형을 당했다. 도척은 천하를 횡행한 도적으로 백주에도 강도, 살인, 강간, 약탈을 일삼았지만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위(魏) 혜공(惠公)은 세자였던 이복 형 급자(急子)와 동복 형 수(壽)를 죽이고 보위에 올랐으나 온갖 호사를 누리며 제 명대로 살다가 죽었다. 진회(秦檜)는 악비(岳飛) 등 충신을 죽이고 씨를 말렸지만 진국공(秦國公)과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져 권세를 휘둘렀으며 사후에는 충헌(忠獻)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세상 일은 왜 이리 불공평한가? 하기야 사마천도 일찍이 이렇게 탄식했다. “천도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邪非邪?)” 우리 주위에는 돈과 권력과 불법과 편법과 요행으로 출세한 자들이 오히려 “인생은 노력의 대가”라고 사기를 친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천도(天道)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막가파식 만행과 타락으로 한평생을 허비해야 할까? 그러기에는 한 번뿐인 내 삶이 너무나 고귀하고 소중하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천도는 뒷전으로 밀쳐두자. 차라리 오늘만이라도 내 영혼을 위로할 소주나 막걸리 한 잔을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그동안 천하대사는 너무 많이 울궈먹었다.



한시, 계절의 노래(93)


아이를 씻기고 끄적이다(洗兒戱作)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모두들 아이 기르며

똑똑하기 바라지만


똑똑하게 살다 나는

일생을 그르쳤네


내 아이는 어리석고

둔하기만 바라노니


재앙도 난관도 없이

공경대부에 이르리라


人皆養子望聰明, 我被聰明誤一生. 惟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


벌써 24년 전 일이다. 아내가 큰 아이 출산을 앞두고 애기 옷을 사왔다. 그 손바닥 만한 옷을 빨아서 빨랫줄에 널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배냇저고리를 보고 태산처럼 밀려드는 책임감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그 무엇이 치밀고 올라왔다.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움직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아 우리 작은 셋방에 데려와서 아내는 울었다. 그 가녀린 생명을 모두 서툰 엄마에게 의지하는 아이를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렇게 초보 엄마 아빠는 아이 키우기를 시작했다. 아이 목욕을 시킬 때면 한 없이 부드러운 아이 살결을 만지며 생명의 신비함에 감격했다. ‘망자성룡(望子成龍)’이란 말이 있다. 자식이 자라 용과 같이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말이다. 어느 부모 할 것 없이 자식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정직한 사람은 고통 받고 간사한 자는 출세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사마천(司馬遷)이 “천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邪非邪?)”라고 탄식했을까? 이 시 작자 소식도 여러 차례 폄적되어 평탄하지 않은 관직생활을 했다. 그가 아이를 씻기며 소원을 빌고 있다. “이 아비처럼 잘난 체 하지 말고 어리석고 둔하게 살면 아무 고난 없이 공경대부에 이르리라”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께서 정한수를 떠놓고 조상신과 삼신께 올리던 비나리가 생각난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게 해주시옵기를...”


한시, 계절의 노래(77)


서림의 벽에 쓰다[題西林壁] 


 송(宋) 소식(蘇軾) / 김영문 選譯評 


가로 보면 고개 되나

옆으로 보면 봉우리


원근 고저가

각각 다른 모습이네


여산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이 몸이 이 산에

머물기 때문이네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앞에서 읽은 이백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와 곧잘 비교되는 시다. 소식은 시(詩)·사(詞)·서(書)·화(畵)·악(樂)에 모두 뛰어났으며, 유(儒)·불(佛)·도(道)에 능통했다. 도달한 경지가 하도 광대하고 호방하여 이백도 소식을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이 시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산의 아름다움을 꾸밈없이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리 꽂힌다”는 이백의 시와 막상막하의 경지다. 하지만 궁극적 지향은 완전히 다르다. 당시는 운치와 기상을 중시하므로 이백은 눈에 보이는 여산의 아름다움을 천의무봉의 필치로 묘사했다. 그 뿐이다. 반면 송시는 이치와 함의를 추구하므로 우리는 이 시 형상 뒤에 숨은 의미를 음미해봐야 한다. 각도나 원근 고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는 사상체계는 무엇인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도가(道家)의 상대주의다. “현실 속 진리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지연신재차산중(只緣身在此山中)”은 매우 낯 익은 구절이다. 당나라 가도(賈島)의 시에 “이 산 속에 계실 터이나(只在此山中)”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것을 비틀었다. 가도의 시에서는 구름 깊은 곳에 있는 은자의 거처를 알 수 없다고 하여 속세 너머의 어떤 경지를 암시했다. 그러나 소식은 자신이 산속에 있기 때문에 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구름 속에 있는 은자도 그 어떤 경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도사나 선사도 청맹과니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해답은 「적벽부(赤壁賦)」에 있다. 소식은 '저절로 그러한 세계(自然)'에 녹아들어 그 가없는 흐름에 몸을 내맡곁다.



우미인(虞美人)


  북송(北宋) 소식(蘇軾) / 홍상훈 옮기고 김태식 약간 손봄  


술잔 들고 멀리 하늘 가 달에게 권하노니

부디 가득 차서 이지러지지 말기를 

술잔 들고 다시 꽃가지에 권하노니 

또한 부디 오래도록 피어 어지러이 떨어지는 일 없기를


술잔 들고 달빛 아래 꽃 앞에서 취하노니  

세상사 영고성쇠 묻지 마오

이 즐거움 아는 이 몇이나 될까?

술잔 마주하곤 꽃을 만났는데 들이키지 않는다면 어느 때를 기다릴까


持盃遙勸天邊月, 願月圓無缺.

持盃更復勸花枝, 且願花枝長在, 莫離披.

持盃月下花前醉, 休問榮枯事.

此歡能有幾人知, 對酒逢花不飲, 待何時.





적벽부(赤壁賦) - 소식(蘇軾)


임술년 칠월 보름 하루 뒤, 내가 손님과 함께 적벽(赤壁) 아래 배 띄우고 노니는데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 하나 없이 잔잔했다. 술잔 들어 손님한테 권하면서 [명월(明月)]이란 시도 읊고, [요조(窈窕)]란 시도 읊어본다. 이윽고 동쪽 봉우리 위로 달이 떠올라 북두성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는데, 백로는 물결 가로지르고, 물빛은 저 멀리 하늘과 닿았네. 일엽편주 가는대로 놓아두니 끝없는 만경창파 넘어가고, 휘휘 허공으로 날아올라 바람 부리면서 멈출 곳 모르고 가는 듯, 훨훨 이 세상 벗어나 홀로 서서 날개 돋아 신선이 되는양 했네. 그리하여 술 한 잔 마시니 매우 기분이 좋아져 뱃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네.


계수나무 노를 젓세, 상앗대는 목란이라.

허공 치고 오르는 듯, 달빛 뒤로 흘러가네.

아득해라 그리운 맘, 하늘 저쪽 그리운 님.


퉁소 잘 부는 객이 있어 노래 맞춰 연주로 화답하니, 그 소리 삘릴리 삘릴리,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듯, 여운은 실처럼 끊임없이 맴돌아,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교룡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 한 척 띄워 고기잡는 과부 흐느끼게 하네.


나는 숙연해져 옷깃 여미고 바르게 앉아서 객한테 물었다. “퉁소 가락이 어찌 그리 구슬프오?”


객이 대답했다. “‘밝은 저 달 숨은 별들, 남쪽으로 날아가는 까치와 까마귀...’ 이는 바로 조조가 읊은 시 아니오! 서쪽 저 곳이 하구(夏口)요, 동쪽 저 곳이 무창(武昌)이러니, 산과 강이 푸릇푸릇 파릇파릇 뒤얽힌 곳, 여긴 바로 조조가 주유에게 대패해 곤경에 빠진 그 곳 아이오! 그때 조조가 형주(荆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을 무너뜨려, 물결 따라 동쪽으로 내려올 때, 선단은 앞뒤가 천 리요, 깃발이 하늘을 덮었다지요. 술 걸러 강을 바라보며, 상앗대 걸쳐놓고 시 읊을 땐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라! 하지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하물며 나와 소 선생은 강가에서 고기잡고 나무하고, 고기나 새우와 짝하고 노루나 사슴과 벗하며 지낼 뿐이오. 일엽편주 띄워놓고, 표주박과 잔 들어 서로 술만 권할 뿐이오. 천지에 이 하루살이같은 인생 잠시 맡겨 살아가니, 마치 끝없는 바다에 좁쌀 한 톨 같소. 내 인생 잠깐인 것이 슬프고, 저 장강이 끝없이 흐르는 것이 부럽소. 신선 옆에 끼고 우주를 노닐고 밝은 달 품고 영생 누리는 일은 느닷없이 얻지 못함을 알기에, 슬픈 바람에 퉁소 여운을 실어보냈을 따름이오.” 


내가 말했다. “손께서도 저 물과 달을 아시잖소! 물은 이렇게 흘러가건만, 지금까지 다 흘러간 적이 없소. 달은 저렇게 차고 기울건만, 더 커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천지 어느 것도 일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과 나는 끝없이 영원하니 무엇이 부럽겠소! 천지 사이 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 주인 있어, 내 것이 아니면 털 한 오라기라도 가질 수 없소. 오직 강가에 불어오는 맑은 바람, 산 사이에 떠오른 밝은 달만이 내 귀에 들어와 좋은 소리 되고 내 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 되어, 아무리 가져도 막지 않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야말로 아무리 써도 끝이 없다는 조물주의 창고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오.”


손님이 기뻐 웃으며 잔 씻어 다시 술을 채우니 안주는 이미 다 떨어지고, 술잔과 접시가 여기저기 널렸네. 배 위에서 서로 베고 누워 동쪽 하늘이 이미 밝아오고 있는 줄도 몰랐다.


【원문】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游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横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馮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蘇子 愀然, 正襟危坐, 而問客曰:“何爲其然也?” 客曰:“‘月明星稀, 乌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郎者乎? 方其破荆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艫千裏,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舉匏樽以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托遺響於悲風.” 


苏子曰:“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虽一毫而莫取. 惟江上之清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既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既白. 


홍승직 교수 옮김을 토대로 해서, 내가 약간 손질한 버전이다. 



  1. 연건동거사 2018.04.16 16:20 신고

    좋은 번역입니다!!! 그런데 역시 한문으로 읽을때의 운율이 한글 번역에서는 느낄수가 없어 아쉽군요.

    하지만 번역 실력 탓은 아닙니다. 한문 적벽부를 한글로 옮길떄 어쩔수 없는 부분인듯요.

  2. 연건동거사 2018.04.16 16:21 신고

    적벽부는 제가 좋아 하는 글입니다.

  3. 보미 2018.04.17 23:09 신고

    GOOD 좋은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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