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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虞美人)


  북송(北宋) 소식(蘇軾) / 홍상훈 옮기고 김태식 약간 손봄  


술잔 들고 멀리 하늘 가 달에게 권하노니

부디 가득 차서 이지러지지 말기를 

술잔 들고 다시 꽃가지에 권하노니 

또한 부디 오래도록 피어 어지러이 떨어지는 일 없기를


술잔 들고 달빛 아래 꽃 앞에서 취하노니  

세상사 영고성쇠 묻지 마오

이 즐거움 아는 이 몇이나 될까?

술잔 마주하곤 꽃을 만났는데 들이키지 않는다면 어느 때를 기다릴까


持盃遙勸天邊月, 願月圓無缺.

持盃更復勸花枝, 且願花枝長在, 莫離披.

持盃月下花前醉, 休問榮枯事.

此歡能有幾人知, 對酒逢花不飲, 待何時.





적벽부(赤壁賦) - 소식(蘇軾)


임술년 칠월 보름 하루 뒤, 내가 손님과 함께 적벽(赤壁) 아래 배 띄우고 노니는데 맑은 바람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 하나 없이 잔잔했다. 술잔 들어 손님한테 권하면서 [명월(明月)]이란 시도 읊고, [요조(窈窕)]란 시도 읊어본다. 이윽고 동쪽 봉우리 위로 달이 떠올라 북두성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는데, 백로는 물결 가로지르고, 물빛은 저 멀리 하늘과 닿았네. 일엽편주 가는대로 놓아두니 끝없는 만경창파 넘어가고, 휘휘 허공으로 날아올라 바람 부리면서 멈출 곳 모르고 가는 듯, 훨훨 이 세상 벗어나 홀로 서서 날개 돋아 신선이 되는양 했네. 그리하여 술 한 잔 마시니 매우 기분이 좋아져 뱃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네.


계수나무 노를 젓세, 상앗대는 목란이라.

허공 치고 오르는 듯, 달빛 뒤로 흘러가네.

아득해라 그리운 맘, 하늘 저쪽 그리운 님.


퉁소 잘 부는 객이 있어 노래 맞춰 연주로 화답하니, 그 소리 삘릴리 삘릴리,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듯, 여운은 실처럼 끊임없이 맴돌아,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교룡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 한 척 띄워 고기잡는 과부 흐느끼게 하네.


나는 숙연해져 옷깃 여미고 바르게 앉아서 객한테 물었다. “퉁소 가락이 어찌 그리 구슬프오?”


객이 대답했다. “‘밝은 저 달 숨은 별들, 남쪽으로 날아가는 까치와 까마귀...’ 이는 바로 조조가 읊은 시 아니오! 서쪽 저 곳이 하구(夏口)요, 동쪽 저 곳이 무창(武昌)이러니, 산과 강이 푸릇푸릇 파릇파릇 뒤얽힌 곳, 여긴 바로 조조가 주유에게 대패해 곤경에 빠진 그 곳 아이오! 그때 조조가 형주(荆州)를 격파하고 강릉(江陵)을 무너뜨려, 물결 따라 동쪽으로 내려올 때, 선단은 앞뒤가 천 리요, 깃발이 하늘을 덮었다지요. 술 걸러 강을 바라보며, 상앗대 걸쳐놓고 시 읊을 땐 참으로 일세의 영웅이라! 하지만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하물며 나와 소 선생은 강가에서 고기잡고 나무하고, 고기나 새우와 짝하고 노루나 사슴과 벗하며 지낼 뿐이오. 일엽편주 띄워놓고, 표주박과 잔 들어 서로 술만 권할 뿐이오. 천지에 이 하루살이같은 인생 잠시 맡겨 살아가니, 마치 끝없는 바다에 좁쌀 한 톨 같소. 내 인생 잠깐인 것이 슬프고, 저 장강이 끝없이 흐르는 것이 부럽소. 신선 옆에 끼고 우주를 노닐고 밝은 달 품고 영생 누리는 일은 느닷없이 얻지 못함을 알기에, 슬픈 바람에 퉁소 여운을 실어보냈을 따름이오.” 


내가 말했다. “손께서도 저 물과 달을 아시잖소! 물은 이렇게 흘러가건만, 지금까지 다 흘러간 적이 없소. 달은 저렇게 차고 기울건만, 더 커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천지 어느 것도 일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과 나는 끝없이 영원하니 무엇이 부럽겠소! 천지 사이 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 주인 있어, 내 것이 아니면 털 한 오라기라도 가질 수 없소. 오직 강가에 불어오는 맑은 바람, 산 사이에 떠오른 밝은 달만이 내 귀에 들어와 좋은 소리 되고 내 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 되어, 아무리 가져도 막지 않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야말로 아무리 써도 끝이 없다는 조물주의 창고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기는 것이오.”


손님이 기뻐 웃으며 잔 씻어 다시 술을 채우니 안주는 이미 다 떨어지고, 술잔과 접시가 여기저기 널렸네. 배 위에서 서로 베고 누워 동쪽 하늘이 이미 밝아오고 있는 줄도 몰랐다.


【원문】

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泛舟游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横江, 水光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馮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予懷, 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簫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 如泣如訴, 餘音嫋嫋, 不絶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 蘇子 愀然, 正襟危坐, 而問客曰:“何爲其然也?” 客曰:“‘月明星稀, 乌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繆, 鬱乎蒼蒼. 此非孟德之困於周郎者乎? 方其破荆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艫千裏,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固一世之雄也, 而今安在哉? 況吾與子漁樵於江渚之上, 侶魚鰕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舉匏樽以相屬. 寄蜉蝣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長終. 知不可乎驟得, 托遺響於悲風.” 


苏子曰:“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 而又何羨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虽一毫而莫取. 惟江上之清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客喜而笑, 洗盞更酌. 肴核既盡, 杯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既白. 


홍승직 교수 옮김을 토대로 해서, 내가 약간 손질한 버전이다. 



  1. 연건동거사 2018.04.16 16:20 신고

    좋은 번역입니다!!! 그런데 역시 한문으로 읽을때의 운율이 한글 번역에서는 느낄수가 없어 아쉽군요.

    하지만 번역 실력 탓은 아닙니다. 한문 적벽부를 한글로 옮길떄 어쩔수 없는 부분인듯요.

  2. 연건동거사 2018.04.16 16:21 신고

    적벽부는 제가 좋아 하는 글입니다.

  3. 보미 2018.04.17 23:09 신고

    GOOD 좋은글 감사!

전통시대에도 그 비스무리한 외교관 면책 특권이 있었다. 고려시대 의천을 보면 이 특권이 조금은 드러난다. 의천은 원래 밀입국자였다가 宋으로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고려와 송 두 나라 조정에 의해 외교사절단으로 급조되었다. 그의 宋 체재기간은 많아봐야 14개월, 대략 만 1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동시대 다른 고려 외교사절단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우리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는 증빙은 어떻게 하는가? 

당시에 아그레망이 있을리는 없다. 귀국 이후 의천은 송 체재 기간 스승으로 섬긴 정원법사라는 승려가 입적했다는 말을 듣고는 제자들을 조문단으로 파견한다. 한데 하필 재수없게도 입항하는 쪽 지방장관이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라면 못 잡아먹어 환장한 그 동파 소식이었다. 고려 조문단은 가는 곳마다 려 예빈성에 발행한 외교관 신분증을 제시했다. 이 신분증으로 좀 도가 지나치게 들쑤시고 다닌 모양이다. 이 꼴을 보다 못한 소식이 열이 엄청 받는다. 

저것들을 잡아다가 족을 치고 싶은데 외교관이라 그러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러기는커녕 외교관이라 그들을 접대하는 일이 여간 곤혹이 아니었다. 전통시대 외교관 특권 문제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요근래 슬슬 피어나서 생각난 김에 한마디 적는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다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줄에 막하고 말지만 꽤한 분량을 자랑하는 그걸 읽고, 원전으로 외고 해서 몇번이고 소피 마르쏘 책받침에 옮겨적은 일이 있다.


중 3때다. 교실 뒤 칠판에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며, 양약고구이병良藥苦口利於病이라 써놓은 적이 있는데(이는 아마 명심보감에 나온 구절일 터이다) 마침 한문교사를 겸한 교감선생님이 놀라고는 이걸 누가 썼냐 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무렵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남학생 사이에선 야구 바람이 불었고 가요계에선 조용필이라는 아성에 이용이 도전장을 내민 시대라 지집애들 사이에선 용필이가 좋네 이용이 좋네, 개중엔 전영록이 좋네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대에 나는 동파를 만났고 태백을 혹닉했다.
이런 흐름은 고교시절에도 그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력고사에 짓눌려 그런 욕망은 짓누를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다가 마음은 늘 그쪽에 있으면서도 몸은 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 한열이가 죽어가는 장면을 뒤로하고 군대에 들어갔다. 미군부대 생활이라 책은 많이 읽었으나 한번 떠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긴 힘들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복학하고 졸업하고 기자질로 이어지면서 어영부영 한문과 더욱 멀어졌다. 한문은 십대 이래 이십대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죽어라 외워야 한다. 하지만 난 그 시절을 허송했다.


서른이 넘어 다시 한적을 대하니 서울땅 처음 밟은 촌놈과 같았다. 이제는 오언고시五言古詩 하나 외지 못한다. 내가 한문을 얘기했지만 그것이 어느것이라도 좋으니 내 다음 세대는 하고싶은 일, 공부 맘대로 했으면 한다.


이건 내 아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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