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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0)






찬 비[寒雨] 


[宋] 범성대(范成大) / 김영문 選譯評 


무슨 일로 겨울날

비가 창을 때리는가


밤에는 두둑두둑

새벽에는 주룩주룩


만약에 하늘 가득

흰 눈으로 변한다면


외로운 뜸배 타고

저녁 강에 낚시 하리


何事冬來雨打窗, 夜聲滴滴曉聲淙. 若爲化作漫天雪, 徑上孤篷釣晚江.


이 시가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을 모티브로 삼고 있음은 마지막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유종원의 「강설」 마지막 구절이 바로 “혼자서 추운 강의 눈을 낚는다(獨釣寒江雪)”이다. 대자연과 마주한 인간의 절대 고독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추운 강의 낚시질은 조옹(釣翁)의 선택에 의한 의도적 행위이므로 주체적으로 고독과 마주선 인간의 경건함과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이후 이 시의 ‘독조한강(獨釣寒江)’ 또는 ‘한강독조(寒江獨釣)’라는 이미지는 수묵화의 독립된 화제(畫題)로 정형화되어 수많은 명품으로 예술화되었다.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송대 마원(馬遠)의 『한강독조도』와 명대 주단(朱端)의 『한강독조도』도 동일한 주제를 그린 명품이다. 마원의 그림에는 아예 도롱이와 삿갓도 갖추지 않은 늙은이가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낚시에 집중하고 있다. 늙은이를 실은 낚싯배 외에는 모두 망망한 허공이다. 주단의 그림은 마원의 그림보다 사실적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흰 눈이 가득 덮인 소나무가 늘어져 있고, 그 소나무 끝에는 고드름이 강을 향해 매달려 있다. 그리고 고드름 아래에는 도롱이를 입고 삿갓 쓴 늙은이가 뜸배 끝에 앉아 추운 강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일반인은 보통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낚시를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필 눈 오는 날 차가운 강으로 나가 고독 속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낚을까? 강태공처럼 천하를 낚을까? 아니면 엄자릉(嚴子陵)처럼 고절(高節)을 낚을까? 원말(元末) 명초(明初) 당숙(唐肅)은 “고기를 실은 게 아니라 시만 싣고 돌아온다(不載魚歸只載詩)”라 했다. 모두 나름대로 세속을 벗어난 정답을 제시했지만, 내가 보기엔 이들의 정답도 모두 세속 티끌에 얽매인 듯하다. 눈을 낚는 늙은이 앞에 천하니 고절이니 시 따위가 대관절 무슨 대수일까?



한시, 계절의 노래(188)


가을날 감흥(秋日遣興) 둘째


[宋] 손응시(孫應時) / 김영문 選譯評 


올해 더위 지독함은

다른 해와 달랐음에


이제 추풍 불어오니

마음이 상쾌하네


평생 아직 추위 더위

여러 번 겪어야 할 터


내 삶은 무슨 일로

계기를 못 따르나


今年炎毒異他年, 及此秋風意灑然. 身世還須几寒暑, 吾生何事不隨緣. 



가고 옮, 맞고 보냄, 추위와 더위, 비움과 채움, 초하루와 보름, 보름과 그믐 등등...... 『주역(周易)』이 말하는 원리가 오묘하다 해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자연스럽고 쉬운 이치조차 체득하기 어렵다. 사람의 생각은 늘 편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예순 가까운 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인연과 계기가 있었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 속에서 고통을 겪기도 했고, 봄바람과 가을바람 속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얻기도 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한서(寒暑)를 겪었으면 강력한 항체가 생길 법도 하건만 매번 혹서와 혹한이 닥칠 때마다 내 몸의 모든 면역력은 제로나 마이너스로 변한다. 고통은 아무리 여러 번 겪고 세게 겪어도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 작은 고통은 작게 큰 고통은 크게 심신을 아프게 한다. 다양한 계기와 인연이 있었지만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버렸다. 지금은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 발가벗은 내 실존의 몸뚱아리만 말갛게 말라가고 있다. 가을 물 위를 스쳐나는 저 잠자리처럼... 가을 바람에 잎 떨군 저 자작나무처럼...


*** 

2015년 가을이었다고 기억한다. 가을 단풍 흐드러졌으니, 덕수궁 중명전 은행나무는 네 쌍둥이 뱃속에 든 만삭 같아, 조금만 흔들어도 그 황금 이파리가 금박지처럼 날릴 듯했다. 그 아래 붉은빛 유난한 입사귀 몇 개 단 단풍 뒤로 차량 한 대가 섰고, 그 차량 앞유리로 그 은행나무가 비쳤다. 아, 이렇게 또 하나 가을이 간다 했더랬다. 그렇게 나는 가을 하나를 체지방에 또 한 칸 축적했다.(김태식)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프람바난



한시, 계절의 노래(152)


태풍(大風)


 송 범성대 / 김영문 選譯評 


태풍 앞서 이는 구름

해신 집에서 불어와


하늘과 대지에도

갑자기 모래 날리네


수고롭게 남은 더위

깡그리 쓸어가도


미친 듯 불어대며

벼꽃은 해치지 말길


颶母從來海若家, 靑天白地忽飛沙. 煩將殘暑驅除盡, 只莫顚狂損稻花.


올해 일본과 중국으로만 향하던 태풍이 드디어 한반도를 향해 질주해오고 있다. 100여 년 만의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린 사람들은 올해는 왜 태풍조차 우리나라를 외면하느냐고 원망을 품기도 했다. 재난의 상징인 태풍을 기다리다니…….그만큼 올 여름 더위가 극심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더러는 더위를 식혀주고 가뭄을 해소해주면서 바람은 약한 태풍, 즉 착한 태풍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태풍은 강풍과 폭우를 몰고 와서 인간에게 엄청난 재난을 야기한다. 이 시에서도 더위는 쓸어가고 벼꽃은 해치지 말라면서 착한 태풍을 소망하고 있다. 한창 벼가 팰 때 그 위로 강력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벼가 눕거나 물에 잠기게 되어 농사에 아주 큰 피해가 발생한다. 물론 중요한 점은 다가오는 태풍에 무슨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미리미리 대비하여 가능한 한 재난을 줄이는 일이다. 하지만 지진과 마찬가지로 태풍도 인간이 막을 방법은 없다. 그저 겸허한 마음과 신중한 자세로 최선의 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인간의 힘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그럼에도 인간들은 더 무더운 여름과 더 강력한 태풍을 초래하는 지구 온난화 요인을 계속 제공하고 있다. 아무 대책도 없이 뜨거운 바다를 바라보며 착한 태풍만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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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49)***


고향 생각(鄕思)


 송 이구(李覯) / 김영문 選譯評 


사람들은 해지는 곳이

하늘 끝이라 하지만


하늘 끝까지 다 바라봐도

고향 집 안 보이네


푸른 산에 가로 막혀

한스럽기 그지없는데


푸른 산은 또 다시 

저녁 구름에 가려졌네


人言落日是天涯, 望極天涯不見家. 已恨碧山相阻隔, 碧山還被暮雲遮.


고향은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곳이다.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온갖 미움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백 년 이어내린 선조들의 분묘가 있는 곳이며 지금도 일가붙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한편으로 살갑고 정다운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겹고 숨막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명절이면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고향의 골목, 산자락, 물가에 서면 잊고 있던 추억들이 푸릇푸릇 되살아난다. 온갖 명당 전설이 깃든 산등성이의 선조님들 덕분에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살아가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인습의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이제 낫질하고 예초기 돌리는 자손은 우리 대에서 끝날 성 싶다. 어릴 적 낫질과 지게질에 익숙한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 세대는 낫질과 지게질 대신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상이다. 또 겨우 한 두 명의 아이들이 수많은 선조의 분묘를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 각 집안마다 온갖 납골묘에다 공동 분묘를 설치하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가겠는가? 조선 500년의 풍습이 이처럼 끝나고 있다. 언제나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또 그렇게 흘러온다. 안타까워하지 말자. 고향은 늘 구름에 가려진 푸른 산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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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43)


늦여름 즉흥시(季夏卽事)


 송 조보지(晁補之) / 김영문 選譯評 


붉은 접시꽃 비를 맞아

꽃대 길게 자라고


푸른 대추 바람 없어도

가지 무겁게 누르네


주춧돌 축축하니

사람도 땀에 젖고


찌는 숲 속 매미들

뜨겁게 울어대네


紅葵有雨長穗, 靑棗無風壓枝. 濕礎人沾汗際, 蒸林蟬烈號時.


늦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읊은 6언절구다. 이 시만 읽고 있어도 온몸에 곧바로 땀이 솟아오를 듯하다. 무덥고 습기 찬 늦더위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대학에서 중국문학사를 강의할 때 이 시의 작자가 활약하는 북송 시기에 이르면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작자의 우리말 발음 때문이다. ‘조보지(晁補之)’는 황정견(黃庭堅), 장뢰(張耒), 진관(秦觀)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에 속하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소문사학사란 북송의 대문호 소식 문하의 유명한 네 문인이다. 가능한 한 무미건조하게 이름을 언급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이것뿐이 아니다. 조금 뒤 남송 시기에 이르면 ‘주자지(周紫芝)’가 등장한다. 이 또한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자지는 남송 초기 시(詩)와 사(詞)에 모두 뛰어난 문학가였으나 당시의 간신 진회(秦檜)에게 아첨하며 영화를 누렸다. 중국 발음으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지만 우리 발음으로 읽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모두가 흘러가버린 지난날의 기억 속 작은 편린이다. 지금 중국문학사를 강의하는 분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하긴 뭐 중국문학사란 강좌조차 사라진 대학이 있다고 하니 나의 궁금증은 정말 구석기시대의 화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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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36)


저녁에 시내에서 목욕하다(晚浴溪上)


 송 왕염(王炎) / 김영문 選譯評


산발치엔 풀 우거져

나무꾼 길 덮였고


시내엔 물이 줄어

돌다리 높아졌네


강 위의 바람 이슬

독점하는 사람 없고


버들 고목 검은 매미

곳곳에서 울어대네


山脚草深樵徑沒, 溪頭水落石梁高. 一川風露無人占, 古柳玄蟬處處號.


시인은 산발치 맑은 시내에 몸을 담그고 있다. 무더운 여름 저녁 시원한 시냇물에 몸을 담그면 온몸으로 스며드는 청량감에 내 몸에 쌓인 열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더운 여름에 차가운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과 같을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대개 샤워로 몸의 열기를 식히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등목으로 여름을 견뎠다. 뜨거운 땡볕에서 밭일을 하다 돌아와 방금 길어낸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여름 방학에 아이들은 대개 낮부터 저녁까지 앞거랑(개울) 뒷거랑 물 속에 살다시피 했다. 물장구를 치고, 고기를 잡고, 담방구질(잠수)을 하고, 헤미(수영)를 쳐 멀리가기 내기를 하는 등 눈알이 빨갛게 될 때까지 놀았다. 남자 어른들은 사람들의 이목이 미치지 않는 물굽이나 쏘(沼)에서 목욕을 했다. 우리 동네 탑밭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그 아래로 깊은 쏘가 감돌아 어른들의 단골 목욕터였다. 심지어 물밑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샘물이 솟아서 여름에도 오래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여자 어른이나 처녀들은 여름 밤에 작은 초롱을 들고 모두 앞거랑으로 모여들었다. 캄캄한 앞거랑에서 모두 벌거벗고 목욕을 했다. 훔쳐 보는 남자들이 없었을까? 거의 없었다. 여자들의 남편, 아버지, 오빠, 삼촌들이 남모르게 동네 어귀를 지켰다. 만약 훔쳐보다 들키면 완전히 짐승 취급 받아서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이젠 시골에도 집집마다 샤워기가 설치되어 이런 풍습이 모두 사라졌다.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고향 마을 탑밭의 얼음 같은 찬물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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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14)


남계에서 저녁 무렵 강물을 구경하다(南溪薄晚觀水)


 송 양만리(楊萬里) / 김영문 選譯評


그 누가 모래 자갈로

비스듬히 제방 쌓았나


세찬 물결 제방 부딪쳐

절로 모래둑 터졌네


작은 물고기 무수히

어지럽게 뛰어 오르고


유리판 아래에서

은빛 꽃처럼 까부네


誰將沙礫壅堤斜, 水怒衝堤自決沙. 無數小魚齊亂跳, 琉璃盤底簸銀花.


장마철에 큰물이 지면 강물 흐름에 따라 저절로 모래와 자갈이 모여 둑이나 작은 제방이 생긴다. 깊은 곳은 깊어지고 얕은 곳은 얕아지며 자연의 질서가 이루어진다. 물살이 부딪쳐 둑이 터진 곳에는 작은 여울이 생기고 그곳으로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특히 여름 저녁이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피라미들이 비늘을 반짝이며 여울물을 거슬러 뛰어오른다. 여울물 아래 깊은 소(沼)에도 온갖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헤엄치며 자연의 생기를 드러낸다. 이 시에서 양만리는 맑은 물을 유리판, 그 속에서 활발하게 유영하는 물고기를 은빛 꽃으로 묘사했다. 그야말로 반짝이는 비유다. 이 시를 지은 양만리는 육유(陸游), 우무(尤袤), 범성대(范成大)와 함께 남송사대가에 속한다. 모두 남송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자연을 묘사하는 양만리의 맑고 감각적인 시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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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11)


통주의 여름비(通州夏雨)


 송 진연(陳淵) / 김영문 選譯評 


세찬 바람 땅 휩쓸며

불볕더위 몰아내고


소나기 하늘 뒤집어

저녁 시원함 보내주네


이 때문에 모기 파리

모두 자취 감췄음에


저 멀리 가을 서리

기다릴 필요 없겠네


長風卷地驅炎暑, 暴雨翻空送晚凉. 只此蚊蠅俱掃跡, 不須迢遞待秋霜.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정태춘의 노래 「한 여름 밤」을 떠올린다. “한 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2016년 스웨덴 학술원에서는 그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을 지목하면서 그가 “귀를 위한 시를 쓴다”고 인정했다. 이는 싱어송라이터에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최초의 사례일 뿐 아니라 시와 음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의미 깊은 평가였다. 미국에 밥 딜런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정태춘이 있다. 두 가수가 창작한 서정적이고 의미 깊은 가사는 그들의 개성적인 곡에 실려 시적 울림 이상의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 사회가 이제 제도적·정치적·거시적 영역의 민주화에서 일상적·개인적·미시적 영역의 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다면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의미화하여 소중하게 보듬는 작업은 우리 사회의 바탕을 새로 다지는 매우 중요한 일일 터이다. 밥 딜런과 정태춘의 음악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이 부문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이 시를 포함하여 송시를 읽을 때마다 자잘한 일상에 대한 의미화 작업이 매우 탁월함을 느낀다. 이 때문에 나는 송시를 읽으면서 정태춘의 음악을 떠올리는 일이 전혀 허황한 연상이 아니라고 여긴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한 여름 밤」과 함께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귓전에 맴돈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훠어이 훠이 훠이/ 훠어이 훠이 훠이/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한시, 계절의 노래(88)


주씨 전원(周氏园居)


  송 미불(米芾) / 김영문 選譯評


높이 핀 꽃 치렁치렁

마루 밝게 비추고


연못 물 찰랑찰랑

섬돌 둘러 소리 내네


정적 속 향기 들으며

권태에서 깨어나고


빗속에 일 없으니

한가한 마음 보이네


高花落落照軒明, 沼水涓涓繞砌聲. 靜裏聞香醒倦思, 雨中無事見閒情.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고등학교 때 이 구절을 두고 이미지즘의 공감각적 표현이라고 배웠다. “푸른”은 시각이고 “종소리”는 청각인데 그것이 엇섞여 인식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 해설을 통해 이미지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문학 용어를 들으며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공감각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매우 오래된 감각이다. “달콤한 목소리”, “쓴 소리”, “시린 하늘”을 상기해보라. 중국에서도 ‘聞香(향기를 듣다)’이나 ‘觀樂(음악을 보다)’, '看話(말.화두를 보다)'란 표현이 흔히 쓰였다. 이 시에도 시각, 청각, 후각이 교묘하게 엇섞여 있다. 꽃가지가 치렁치렁 늘어져 마루를 환하게 비추는 시각적 이미지는 섬돌 가까이서 찰랑대는 청각적 이미지와 융화되고, 그것에 다시 꽃향기가 어우러진 후각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찰랑대는 연못 물소리가 은은한 꽃향기를 전달하므로 물소리를 듣는 건 꽃향기를 듣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 모든 감각은 나의 한가한 마음과 분간할 수 없다. 이에 한가한 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향기 속에서 보는 것이다. 한시에서 무병신음(無病呻吟)하는 ‘축축한(damp)’ 경향만 떼낸다면 그것이 이미지즘 시와 떨어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송시는 더욱 그렇다. 이미지즘 시는 ‘명료하고 견고한(dry and hard)’ 한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시, 계절의 노래(84)


무제(無題)


 송(宋) 방저(方翥) / 김영문 選譯評


어둑한 비

자욱이 내려


산속 오월

날씨 차갑네


큰 강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곡물만 불어

여울 세차네


暗雨落漫漫, 山中五月寒. 大江渾不覺, 溪壑有驚湍. 


비 오는 날에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기압의 작용으로 마음도 저기압이 되는 걸까? 최백호의 노래가 제격이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렴” 둘다섯의 노래는 더욱 애잔하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머리 소녀야” 설익은 꿈과 사랑은 세월의 물결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박인환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라고 읊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의 삶은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저 깊고 넓은 강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흐르지만 산 계곡 작은 냇물은 잠깐 내린 초여름 비에도 물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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