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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기이2 원성대왕(元聖大王)조에 등장하는 의관(議官)과 동일인물이라 생각된다.

 

삼국사기 권제6(신라본기 제6) 문무왕 상 : 10년(670)…가을 7월에 왕은 백제의 남은 무리들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유돈을 웅진도독부에 보내 화친을 청하였으나 [도독부는] 따르지 않고, 사마(司馬) 예군(=軍)을 보내 우리를 엿보게 하였다. 왕은 [그들이] 우리를 도모하려는 것을 알고 예군을 붙잡아 두어 돌려 보내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쳤다. 품일, 문충, 중신, 의관(義官), 천관(天官) 등이 성 63곳을 쳐서 빼앗고 그 사람들을 내지(內地)로 옮겼다. 천존과 죽지 등은 일곱 성을 빼앗고 2천 명을 목베었으며, 군관과 문영 등은 12성을 빼앗고 오랑캐 군사를 쳐서 7천 명을 목베었으며 빼앗은 말과 병기들이 매우 많았다. 왕이 돌아와서 중신, 의관, 달관, 흥원 등은 △△△사(寺) 군영에서 퇴각하였으므로 그 죄가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용서하여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20년(680)…3월에 금은으로 만든 그릇과 여러가지 채색 비단 100단을 보덕왕 안승에게 내려주고 왕의 여동생<또는 잡찬 김의관(金義官)의 딸이라고도 하였다.>으로 아내를 삼게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의 능(陵)은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곡사(洞鵠寺; 지금의 崇德寺)에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비문이 있다.  왕은 또 보은사(報恩寺)와 망덕루(望德樓)를 세웠고, 조부(祖父) 훈입잡간(訓入잡干)을 추봉(追封)하여 흥평대왕(興平大王)이라 하고, 증조(曾祖) 의관잡간(議官잡干)을 신영대왕(神英大王)이라 하고, 고조(高祖) 법선대아간(法宣大阿干)을 현성대왕(玄聖大王)이라 했다.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잡간(摩叱次匝干)이다.


신영대왕(神英大王) ☞김의관(金議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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