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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 왕유(王維·699~759) / 서성 譯評 


送秘書晁監還日本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서감 조형을 보내며 


積水不可極  바다는 끝이 없으니

安知滄海東  어찌 창해의 동쪽에 나라가 있음을 알랴! 

九州何處遠  구주는 얼마나 아득한가?

萬里若乘空  만리 멀리 어떻게 날아서 가리오

向國唯看日  나라로 향할 때는 해만 보고 가고

歸帆但信風  배로 돌아가니 바람만 의지해 가리

鰲身映天黑  거대한 자라의 몸은 하늘을 검게 비추고

魚眼射波紅  물고기의 눈은 물결을 붉게 쏘아보리라

鄕樹扶桑外  고향의 나무는 부상(扶桑) 밖에 있고

主人孤島中  그대는 외로운 섬 가운데서 살아가리

別離方異域  헤어지면 장차 서로 다른 곳에 있으니

音信若爲通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이 시는 왕유가 753년에 지었는데, 2년 후 해골이 된 몰골로 장안으로 돌아오니 왕유가 깜놀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안사의 난. 왕유는 761년에 죽었으니 아베노는 왕조의 쇠락을 보고 죽는군요. 이 시에 등장하는 조형은 아베노 마카마로(阿倍仲麻呂·698~770)이니, 중국 이름이 조형(晁衡)이다. 일본 견당 유학생으로 717년(20세) 입당한 후 과거에 급제해 교서랑, 좌보궐, 위위소경(衛尉少卿), 비서감, 좌산기상시 겸 안남도호 등을 역임했다. 753년(56세)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고 떠났으나 풍랑을 만나 월남으로 표류했다가 온갖 고초를 겪고 755년(58세) 다시 장안에 도착했다. 곧이어 안사의 난이 일어나 756년 현종이 성도로 피난갈 때 따라 갔다가 757년 현종을 따라 다시 장안으로 돌아왔고 770년(73세)까지 살았다. 일본에는 양귀비가 안사의 난 때 죽지 않고 살았다가 일본에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아베노가 현종을 따라갔다는 역사적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한시, 계절의 노래(95)


임호정(臨湖亭)


 당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가벼운 배로

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

호수 위로 나왔네


정자 마루에서

술동이 마주하니


사방 호수에

연꽃이 피네


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 當軒對尊酒, 四面芙蓉開.


왕유는 성당(盛唐) 산수전원파의 대표 시인이다. 그는 개원(開元) 말년 망천(輞川)에 은거하여 그곳 산수와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았다. 그곳의 삶을 읊은 시가 그의 대표작 『망천집(輞川集)』 20수다. 앞에서 읽어본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채(鹿柴)」도 『망천집』 20수에 들어 있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하여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라고 했는데, 이 평가에 가장 걸맞은 시집이 바로 『망천집』이다. 이 시를 포함하여 그의 『망천집』을 읽어보면 산수화 같은 풍경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융화된 아주 작은 인물이 등장한다. 산수화 용어로 이런 인물을 ‘점경인물(點景人物)’이라고 한다. 산수를 즐기는 주인이면서 산수의 일부로 녹아든 손님이다. 산수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는 주체이지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또 그는 광활한 우주의 일부로 고독한 존재이나 우주의 모든 생명과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사유의 각자(覺者)이기도 하다. 그가 좋은 벗을 맞아 술잔을 기울이므로 사방 연못 위에 연꽃이 피는 게 당연하다. 굴원이 벌써 노래했듯 연꽃은 군자의 꽃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정경교융(情景交融),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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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86)


녹채(鹿柴) 


   당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텅 빈 산에

사람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목소리만 들려오네


반사된 햇볕

깊은 숲에 들어


푸른 이끼 위를

다시 비추네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후세 사람들은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일컫는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어머니 영향을 깊이 받았다. 게다가 그의 이름 유(維)와 자(字) 마힐(摩詰)을 합하면 ‘유마힐(維摩詰)’이 된다. 유마힐은 석가모니와 같은 시대 재가불자(在家佛者)로 학덕이 높았다. 왕유는 이처럼 그의 삶과 연관된 불교 인연으로 시불이라 불릴까? 물론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시불이라는 그의 별칭은 불교의 이치를 생활화하고 그것을 시로 형상화하는데 뛰어났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봐야 한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공(空)은 불교 색채가 짙지만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같은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생활 속에 녹아든 구체적 형상이다. 공(空)이 구체적 형상이라니 무슨 말인가? 말하자면 “진정으로 텅 비었지만 오묘하게 존재하는 것(眞空妙有)”이다. 이 시에 묘사된 ‘사람 보이지 않는 텅 빈 산’, ‘두런두런 들려오는 목소리’, ‘깊은 숲으로 반사되어 푸른 이끼 위에 비치는 햇볕’ 등은 모두 진공묘유(眞空妙有)의 형상이지만 왕유의 허정(虛靜: 텅 비고 고요한)한 삶을 강화해주는 요소들이다. 이보다 더 높은 경지의 불자나 이보다 더 지극한 경지의 공(空)이 있을까? 왕유가 명실상부한 시불로 불리는 까닭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


한시, 계절의 노래(75)


안서로 가는 원이를 배웅하다(送元二使安西)


 당 왕유 / 김영문 選譯評 


위성 아침 비에

티끌이 젖어


객사 버들 빛

새로 푸르네


다시 한 잔 남김 없이

다 마시게


서쪽 양관에 가면

벗도 없으니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아침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객사를 둘러싼 버드나무는 비를 맞고 더욱 애잔한 초록빛을 드러낸다. 빗속에 변방으로 벗을 보내야 하는 아침이다. 두 벗은 단촐하게 이별주를 마시며 아득한 보슬비를 바라본다.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른바 절제의 미가 높은 수준에 도달한다. 아침 비는 통곡하듯 퍼붓지 않고 가벼운 먼지를 적실 정도로 보슬보슬 내린다. 벗을 잡고 싶지만 버들 류(柳) 자 하나로 에둘러 마음을 표현했다. 버들 류(柳)는 머물 '류(留)'와 발음이 통하므로 뜻도 빌려 쓸 수 있다. “술 한 잔 만 더 마시라”는 표현에도 끝없이 술잔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이별주를 권하는 이유도 벗을 간절하게 잡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변방으로 나가면 술 권할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노래의 중국 버전일까? 지금 같은 감정 과잉의 시대에는 얼마나 낯선 풍경인가? “슬프나 슬프지 않다(哀而不悲)”는 풍격이 이런 경지일 터이다.(김영문) 


위성(渭城)이란 지명이다.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서북쪽에 위치한다. 이 일대를 관통하는 황하 지류를 위수(渭水)라 하는데, 그 북쪽 연안에 접한 곳이라 해서 위성이라 일컫는다. 조우(朝雨)란 글자 그대로 아침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浥이란 적신다는 뜻이다. 객사(客舍)란 관청에서 운영하는 숙박 시절이다. 류색(柳色)이란 글자 그대로는 버드나무가 내는 색깔이나, 김영문 선생이 앞서 말했듯이 이는 이별의 상징이다. 양관(陽關)이란 지금의 감숙성(甘肃省) 돈황(敦煌) 서북쪽 지명으로, 당시에는 서역(西域)으로 통하는 관문이 있던 곳이다. 關이란 말이 원래는 빗장이니, 흔히 관문을 의미할 적에 이 말을 쓴다. 이를 통해 왕유의 벗이 돈황으로 가는 길에 이별연을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하긴 제목에 벌써 배웅하는 벗이 가는 곳이 안서(安西)라 했으니, 서역에 안서도호부가 있었다. 안서도호부 치소(治所)는 당시 구자성(龜兹城)이라 했으니, 지금의 신장위구르 고차(庫車)를 말한다. 첨부 사진은 서역 일대 중심 중 한 곳인 고창고성이다. (김태식) 


  1. 연건동거사 2018.06.13 19:56 신고

    浥 = dampen



한시, 계절의 노래(56)


죽리관(竹裏館)


  당(唐)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그윽한 대숲에

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가

또 긴 휘파람


숲 깊어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밝은 달 다가와

비춰주누나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근대는 빛과 함께 왔다. 모든 빛(文明)은 어둠과 야만을 적대시한다. 우리는 밤을 몰아낸 찬란한 빛 속에서 산다. 그윽하고[幽] 깊은[深] 대숲[竹林]은 사라진지 오래다. 죽림에 숨어 살던 현인들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으며 하나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현대인은 자신의 고독을 보듬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가지만 이제 우리 산천 어디에도 고독을 음미할 장소는 없다. 산도 강도 욕망에 굶주린 암수 군상들의 시끄러운 캬바레에 불과할 뿐. 혼자서 휘파람 불다가 귀신과 만나는 곳을 아시는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은 숲, 밝은 달만 다가와 내 고독을 비춰주는 계곡을 아시는가?



<형님, 술 한잔 하시지요?> 


친구 배적(裴迪)과 주거니받거니 하면서[酌酒與裴迪]


 왕유(王維) 


여보게 술 한 잔 받고 그대 마음 푸시게나

인정이란 물결처럼 자주 뒤집히기 마련이네

백발까지 사귄 친구라도 칼 쥐고 경계하며 

먼저 출세길 달리면 거들먹이며 깔본다네

풀이야 가랑비만 맞아도 젖기 마련이고 

가지 위 꽃피려 하면 봄바람도 차가워진다네.

세상사야 뜬구름이니 물어 무슨 소용있겠나?

차라리 느긋이 은거하여 새참이나 더 드시게 


酌酒與君君自寬, 人情飜覆似波瀾.

白首相知猶按劍, 朱門先達笑彈冠.

草色全經細雨濕, 花枝欲動春風寒.

世事浮雲何足問, 不如高臥且加餐.


중문학도 홍상훈 인제대 교수 페이스북 포스팅을 옮겨오되 약간 손질했다. 


<친구 없음 독작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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