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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83) 


양주사(凉州詞) 


[唐] 왕지환(王之涣) / 김영문 選譯評 


황하는 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오르고


한 조각 외로운 성

만 길 산에 우뚝 섰네


오랑캐 피리 하필이면

「버들 노래」로 슬퍼하나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도 못하는데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何須怨楊柳, 春風不度玉門關.


당시(唐詩) 중에서 변방의 애환, 고통, 고독, 용기, 기상 등을 읊은 시를 변새시(邊塞詩)라고 한다. 왕지환(王之渙), 왕창령(王昌齡), 고적(高適), 잠참(岑參) 등이 이 시파에 속한다. 이 시를 읽으면 우선 첫 구절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황하가 저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간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백의 「장진주(將進酒)」 첫 구절과 방향이 정 반대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 위에서 쏟아져내려오는 것을(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왕지환은 방향을 바꿔 “황하가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간다”고 표현함으로써 구름과 땅이 맞닿은 변방 광야의 까마득한 공간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곳에 외로운 성이 작은 조각처럼 만 길 산 위에 우뚝 서 있다. 문득 저 멀리 오랑캐 땅에서는 이별을 슬퍼하는 악곡 「절양류가(折楊柳歌)」가 피리 소리에 실려 끊어질 듯 말 듯 귓전에 스쳐온다. 「절량류가」는 버드나무를 꺾어 이별한다는 내용의 민요다. 류(柳: 버드나무)의 발음이 류(留: 머물게 하다)와 통하므로 떠나는 사람을 잡고 싶다는 비유로 쓰인다. 특히 봄철에 버드나무를 꺾어 변방으로 떠나는 사람을 안타깝게 배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시각적 황량함에 청각적 애절함이 보태짐으로써 변새의 고독과 향수는 뼛속까지 스며든다. 이 때 견딜 수 없는 병졸 하나가 투덜거린다. “절마들은 버들도 안자라는 곳에서, 와 시도 때도 없이 「버들 노래(折楊柳歌)」만 불어대노?” 오랑캐 땅에는 왜 버드나무가 자라지 않을까? 그곳은 멀고, 높고, 험하고, 황막하여 봄바람조차 옥문관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버들 노래」를 들은 병졸들은 틀림없이 고향 우물가의 초록빛 수양버들과 그리운 가족 그리고 고운 임을 떠올릴 터이다.

  1. 연건동거사 2018.06.20 22:45 신고

    중국은 변새시를 쓰면서도 결국 서역을 유지했지요. 그 흐름이 지금 중국사람들의 정신세계에도 면면히 흐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변새시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변경을 지키는 긴장감을 사실적인 기풍으로 노래한 시도 제법 있더군요.
    먼 변경에서 수자리를 살다가 죽어간 민중의 고통만이 변새시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2. 연건동거사 2018.06.20 23:01 신고

    결국 변새를 누군가 지키면서 고생해야 할 때라면 누군가 고생을 해야 하는거에요. 그래야 후손이 살길이 열리는것이고..

    그곳에서 고생한 사람들을 노래하는 변새시라는것도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만, 이를 단순히 민중에 대한 학대로만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3. 연건동거사 2018.06.20 23:09 신고

    君不見, 走馬川行雪海邊,平沙莽莽黃入天。
    輪台九月風夜吼,一川碎石大如斗,隨風滿地石亂走。
    匈奴草黃馬正肥,金山西見煙塵飛,漢家大將西出師。
    將軍金甲夜不脫,半夜軍行戈相撥,風頭如刀面如割。
    馬毛帶雪汗氣蒸,五花連錢旋作冰,幕中草檄硯水凝。
    虜騎聞之應膽懾,料知短兵不敢接,軍師西門佇獻捷。

    제가 최고로치는 변새시입니다..
    긴장감에 터질듯 하죠..

    走馬川行奉送封大夫出師西征》 作者:岑參


한시, 계절의 노래(44)


 관작루에 올라(登鸛雀樓) / 당(唐) 왕지환(王之渙) / 김영문 選譯 


태양은 산에 기대

모습 감추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누나


가뭇한 천리 끝

다 살펴보려


또 다시 한 층

더 올라가네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넓고 큰 안목으로 미래를 바라봐야 하지만, 인간의 안목은 얼마나 짧은가?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했다. 나는 우리 집 뒷산에만 올라도 천하가 드넓음을 느낀다. 옛 선비들은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을 학문에 비유했다. 한 발 한 발 더 높은 경지로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이 수양하고 공부하는 과정과 같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 눈앞의 평화 논의도 더 높고 넓은 안목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관작루(鸛鵲樓)에 올라[登鸛鵲樓·등관작루] 


[唐] 왕지환(王之渙·688~742)

 

白日依山盡 밝은 해 산에 기대어 저물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네

欲窮千里目  천리 끝 다 보고파

更上一層樓  다시금 누대 한층 더 오르네


오언절구(五言絶句)다.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필두로 하는 각종 당시선집唐詩選集에 빠지지 않는 절창이다. 


관작루(鸛鵲樓)는 '鸛雀樓'라고도 쓴다. ‘鸛雀’ 혹은 ‘鸛鵲’이란 황새를 말한다. 긴 목과 붉은 부리, 흰 몸과 검은 꼬리 깃이 있다. 일명 부부(負釜), 혹은 흑고(黑尻), 혹은 배조(背竈), 혹은 조군(皁君)이라고도 한다. 관작루란 누각 이름으로, 산서山西의 포주부(浦州府. 지금의 영제현永濟縣) 서남쪽에 있었으니 그 위에 관작이 서식했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황하가 범람함에 따라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이 관작루에 대해서는 北宋 시대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 卷25 예문藝文2에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남아있다. 

 

하중부(河中府)의 관작루(鸛雀樓)는 3층이다. 앞에는 중조산(中條山)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대하(大河·황하를 말함)를 굽어본다. 唐나라 사람들이 남겨 놓은 시가 많으나 다만 이익(李益)과 왕지환(王之渙)과 창당(暢當) 세 편이 그 정경을 형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李益은 어찌 읊었는가? 


관작루 서쪽에 백척 돗대 섰고 

모래톱과 구름 걸친 나무 아득하네

한나라 피리소리 물결따라 흘러가고 

위나라 산하는 석양이 중턱에 걸렸네

천년 지나 여전히 빠른 세월 한스럽고 

서글픔 밀려오니 하루는 길기만 하네

바람과 연기 같이 돌아갈 곳 생각하는데 

멀리보니 봄이 아닌데도 절로 맘 아프네 

 

鸛雀樓西百尺牆

汀洲雲共樹茫茫

漢家簫鼓隨流水

魏國山河半夕陽

事去千年猶恨速

悉來一日卽知長

風煙並在思歸處

遠目非春亦自傷


이라 했으며, 창당暢諸은 이르기를 


멀리 나는 새 높이 올라 

저 높이 티끌 세상을 벗어났네 

하늘은 기세가 넗은 들 에두르고 

강물 흘러 끊어진 산으로 들어가네

 

迥臨飛鳥上

高出世塵間

天勢圍平野

河流入斷山

 

이라 했다.

 

왕지환(王之渙·688~742)이란 시인을 소개하면, 山西 太原人이며 일찍이 기주冀州 형수주부衡水主簿에 임명되었으나 훼방毀謗을 받아 사관辭官하고 鄉里로 퇴거했다. 在家하며 閑居하기를 15年, 後에 문안현위文安縣尉가 되었다. 강개慷慨하며 대략大略이 있었으며 倜儻에 異才가 있고 詩에 뛰어나 文名 역시 일세를 풍미했다. 천보天寶 연간에 고적高適·왕창령王昌齡·최국보崔國輔 등과 더불어 唱和하니 靳能撰(墓誌銘)이 그를 稱하기를 “嘗或歌從軍, 吟出塞, 噭兮極關山明月之思, 蕭兮得易水寒風之聲”이라 했다. 그 作品은 악공들이 특히 반겨서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즉각 聲律에 올려져 사람들이 다투어 전하며 노래로 불렀다. 애석하게도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산일散佚하여 부전不傳하며 겨우 《전당시全唐詩》에 절구絕句 6首를 저록했을 뿐이요 五絕〈登鸛雀樓〉·七絕〈涼州詞〉는 모두 盛唐詩中 代表作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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