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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왕 태자 김의영이 죽어서 받은 시호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10년(794) 봄 2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태자 의영(義英)이 죽어 시호를 헌평(憲平)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에게는 손자가 다섯 있었으니, 혜충태자(惠忠太子)ㆍ헌평태자(憲平太子)ㆍ례영잡간(禮英잡干)ㆍ대룡부인(大龍夫人)ㆍ소룡부인(小龍夫人) 등이다. 대왕(大王)은 실로 인생의 곤궁하고 영화로운 이치를 알았으므로 신공사뇌가(身空詞腦歌. 노래는 없어져 자세치 못하다)를 지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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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785) 3월에 전왕의 왕비 구족왕후(具足王后)를 바깥 궁으로 내보내고 조(租) 3만 4천 섬을 주었다. 


☞구족부인(具足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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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원성왕 김경신의 아들로 아버지가 즉위하자 곧바로 왕태자로 책봉되었지만, 아버지보다 일찍 죽은 듯하다. 원성왕을 뒤이은 소성왕은 인겸의 아들이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어머니 박씨를 소문태후(昭文太后)로 삼고 아들 인겸(仁謙)을 왕태자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소성왕 : 소성왕(昭聖王)<소성(昭成)이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준옹(俊邕)이며 원성왕(元聖王)의 태자 인겸(仁謙)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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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덕왕 11년(712) 3월, 이찬으로 중시가 되었다가 이듬해 10월,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물러났다. 그의 손자 김경신이 즉위해 원성왕이 됨으로써 흥평대왕(興平大王)에 추봉됐다. 


삼국사기 권 제8(신라본기 8) 성덕왕 : 11년(712)…3월에 이찬 위문(魏文)을 중시로 삼았다. 12년(713)…겨울 10월에 중시 위문(魏文)이 나이가 많아서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므로 허락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흥평대왕(興平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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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원성왕 김경신의 5대조로서 생전 최고 관위가 잡간임을 확인할 뿐, 그 외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의 능(陵)은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곡사(洞鵠寺; 지금의 崇德寺)에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비문이 있다. 왕은 또 보은사(報恩寺)와 망덕루(望德樓)를 세웠고, 조부(祖父) 훈입(訓入) 잡간(匝干)을 추봉(追封)하여 흥평대왕(興平大王)이라 하고, 증조(曾祖) 의관(議官) 잡간을 신영대왕(神英大王)이라 하고, 고조(高祖) 법선(法宣) 대아간(大阿干)을 현성대왕(玄聖大王)이라 했다.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摩叱次) 잡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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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39대 원성왕 아버지로, 아들이 즉위하자 명덕대왕(明德大王)에 추붕됐다. 생전 최고 관위는 일길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39대 원성왕(元聖王)은 김씨다. 이름은 경신(敬愼)인데 경신(敬信)이라고도 한다. 당서(唐書)에는 경즉(敬則)이라 했다. 아버지는 효양(孝讓) 대아간(大阿干)이며 명덕대왕(明德大王)에 추봉됐다. 어머니는 인=(仁□)인데 지오부인(知烏夫人)이라고도 하는데 시호는 소문왕후(昭文王后)이니, 창근(昌近) 이간의 딸이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의 아버지 대각간(大角干) 효양(孝讓)이 조종(祖宗)의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왕에게 전했다.  왕은 이것을 얻게 되었으므로 하늘의 은혜를 두텁게 입고 그 덕이 멀리까지 빛났던 것이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무장사(무藏寺) 미타전(彌陀殿) : 서울 동북쪽 20리 쯤 되는 암곡촌(暗谷村) 북쪽에 무장사(무藏寺)가 있으니, 이것은 신라 제38대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아버지 대아간(大阿干) 효양(孝讓), 즉 추봉(追封)된 명덕대왕(明德大王)의 숙부 파진찬(波珍飡)을 추모(追慕)해서 세운 것이다. 그윽한 골짜기가 몹시 험준해서 마치 깎아 세운 듯하다.  그곳은 깊고 어두워 저절로 허백(虛白)이 생길 것이니, 이야말로 마음을 쉬고 도(道)를 즐길 만한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명덕대왕(明德大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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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원성왕 김경신의 조부 김위문(金魏文)을 말한다. 김경신이 즉위하면서 추봉된 존호다. 생전 최고 관위는 이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의 능(陵)은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곡사(洞鵠寺; 지금의 崇德寺)에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비문이 있다. 왕은 또 보은사(報恩寺)와 망덕루(望德樓)를 세웠고, 조부(祖父) 훈입(訓入) 잡간(匝干)을 추봉(追封)하여 흥평대왕(興平大王)이라 하고, 증조(曾祖) 의관(議官) 잡간을 신영대왕(神英大王)이라 하고, 고조(高祖) 법선(法宣) 대아간(大阿干)을 현성대왕(玄聖大王)이라 했다.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摩叱次) 잡간이다.


☞김훈입(金訓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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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원성왕의 증조로, 원성왕 즉위와 더불어 추봉된 존호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의 능(陵)은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곡사(洞鵠寺; 지금의 崇德寺)에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비문이 있다. 왕은 또 보은사(報恩寺)와 망덕루(望德樓)를 세웠고, 조부(祖父) 훈입(訓入) 잡간(匝干)을 추봉(追封)하여 흥평대왕(興平大王)이라 하고, 증조(曾祖) 의관(議官) 잡간을 신영대왕(神英大王)이라 하고, 고조(高祖) 법선(法宣) 대아간(大阿干)을 현성대왕(玄聖大王)이라 했다.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摩叱次) 잡간이다.


☞김의관(金議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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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원성왕의 고조로, 본명 김법선이며, 원성왕이 즉위하면서 추봉된 존호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 2월에 왕의 고조부 대아찬 법선(法宣)을 현성대왕(玄聖大王)으로, 증조부 이찬 의관(義寬)을 신영대왕(神英大王)으로, 할아버지 이찬 위문(魏文)을 흥평대왕(興平大王)으로, 죽은 아버지 일길찬 효양(孝讓)을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왕의 능(陵)은 토함산(吐含山) 서쪽 동곡사(洞鵠寺; 지금의 崇德寺)에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비문이 있다. 왕은 또 보은사(報恩寺)와 망덕루(望德樓)를 세웠고, 조부(祖父) 훈입(訓入) 잡간(匝干)을 추봉(追封)하여 흥평대왕(興平大王)이라 하고, 증조(曾祖) 의관(議官) 잡간을 신영대왕(神英大王)이라 하고, 고조(高祖) 법선(法宣) 대아간(大阿干)을 현성대왕(玄聖大王)이라 했다. 현성대왕의 아버지는 곧 마질차(摩叱次) 잡간이다.


☞김법선(金法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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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성왕(元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경신(敬信)이고 나물왕(奈勿王) 12세손이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이고, 왕비 김씨는 각간 신술(神述)의 딸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39대 원성왕(元聖王)은 김씨다. 이름은 경신(敬愼)인데 경신(敬信)이라고도 한다. 당서(唐書)에는 경즉(敬則)이라 했다. 아버지는 효양(孝讓) 대아간(大阿干)이며 명덕대왕(明德大王)에 추봉됐다. 어머니는 인=(仁□)인데 지오부인(知烏夫人)이라고도 하는데 시호는 소문왕후(昭文王后)이니, 창근(昌近) 이간의 딸이다. 비는 숙정부인(淑貞夫人)이니 신술(神述) 각간 딸이다. 을축년에 즉위해 14년을 다스렸다. 능은 곡사(鵠寺)에 있는데 지금의 숭복사(崇福寺)이니, 치원(致遠)이 지은 비가 있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애장왕 : 9년(808) 봄 2월에 일본국 사신이 왔는데, 왕이 두터운 예로 그들을 접대하였다. 김력기(金力奇)를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력기가 아뢰어 말하였다. “정원(貞元) 16년(800)에 조칙으로 저희 나라의 죽은 임금 김준옹을 신라 왕으로 책봉하고, 어머니 신(申)씨를 대비(大妃)로 책봉하였으며, 아내 숙(叔)씨를 왕비로 책봉하였는데, 책봉 사신 위단(韋丹)이 도중에 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습니다. 그 책봉문서가 중서성(中書省)에 있다 하오니, 지금 제가 귀국하는 길에 저에게 주셔서 가지고 돌아가도록 하여 주십시오.” 황제가 명을 내려 말하였다. “김준옹(金俊邕) 등의 책봉문서를 홍려시에 명하여 중서성에서 받아오게 하고, [그것이] 홍려시에 이르면 김력기에게 주어서 가지고 돌아가도록 하라!” 이어 왕의 숙부 언승(彦昇)과 그 아우 중공(仲恭) 등에게 문극(門戟)을 주되 본국의 예에 따라 주도록 하였다.<신(申)씨는 김신술(金神述)의 딸인데, 신(神)자와 음운이 같다 하여 신(申)을 성씨로 삼았으니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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