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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희가 절대의 이데올로기로 등극한 조선시대 지식인 사회는 시종 근엄했다고 생각한다. 그 전당인 성균관은 공자 사당인 대성전까지 있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공자? 웃기는 소리다. 

물론 시대별 넘나듦이 있겠지만, 조선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1516~1599)이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남긴 성균관 관련 다음 한 토막을 보면 공자는 먼나라 딴나라 얘기임을 안다. 성균관은 단순한 입시학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업 일수 채우기 위한 식당 출석체크가 전부였다.  

문과 식년 초시(文科式年初試)는 생원(生員)과 진사(進士)가 성균관에서 생활한 지 3백 일이 넘는 자를 50명 뽑으니, 이는 생원과 진사가 성균관에서 지내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양현고(養賢庫)를 성균관 옆에 설치하고 따로 미두(米豆)를 저장하여 매일 2백 명 분의 식량을 공급하였다. 그러나 생원과 진사들은 성균관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또 원점 부시법(圓點赴試法 지낸 일수에 따라 시험에 응시하게 하는 법)을 세워 성균관에서 있은 지 3백 일이 넘는 자는 관시(館試 성균관에서 행하는 시험)에 응시하게 하고, 1백 50일이 되는 자는 한성시(漢城試 서울에서 행하는 시험)나 향시(鄕試 지방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응시하게 하니, 생원ㆍ진사를 배양하고 권면하는 뜻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이른바 성균관에서 지낸다는 것은 주야로 있으면서 공자(孔子)를 모시고 독서를 부지런히 하는 것이 원칙인데, 지금 성균관에서 지내는 것은 유명무실하고, 다만 과거에만 응시하기 위해서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조석으로 식당에 가서 식사가 끝나면 책에 서명하고 그 서명한 것을 계산해서 장부에 올리는 것을 원점(圓點)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하루도 성균관에서 기숙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조석으로 와서 식사만 하고 책에 서명한 후 곧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3백 일을 채우니, 이것을 성균관에서 지냈다고 하겠는가. 임진난 후에는 식년시도 거행하지 않고 원점마저 폐지되었으니, 더욱 개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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