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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공장 한반도부에서 정빛나 기자가 작성한 '北, 씨름 무형유산 등재 뒤늦게 보도…'남북 공동' 언급 안해' 기사가 나갔다. 제목 그대로다.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북한에서는 뒤늦게서야 오늘에야 북한 대내용 라디오 매체인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공개했다는 것이다. 


우리 공장에서는 해당 부서에서 관련 부서 '공동작성'을 찍어주지 않으면, 다른 부서에서는 작성기사 단계에서 열람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기사는 문화재를 커버하는 문화부도 참고하라 해서, 작성 단계에서 문화부도 열람토록 그쪽 부서에서 조치했으니, 무심히 관련 기사를 훑다가 카톡으로 한마디만 보태어 정 기자한테 보냈다. 우리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 번역해 사용하는 말을 북한에서는 '세계비물질문화유산'이라 하며, 그것을 대표 목록에 올리는 일을 우리는 '등재'라고 표현하나, 북한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등록'이라 한다는 점을 밝혀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으니, 이 대목은 송고기사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북한에서 발생과 공식 보도 사이에 이와 같은 적지 않은 간극이 있음은 사회주의에서는 흔한 일이거니와, 그런 점에서 이 뒤늦은 보도가 하등 이상할 점은 없다. 다만, 이 씨름은 남북한이 각각 별도로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신청했다가 유네스코 본부에서 그 둘을 합쳐서 '공동등재'로 갔다는 점에서, 이 점이 실은 대서특필할 사건임에도, 그 씨름이 남한과 공동등재되었다는 사실을 쏙 뺀 점은 아무래도 무슨 저의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기사가 워낙 짧아, 그 원문을 정빛나 기자한테 부탁했더니,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날리면서 이것이 전부라 했다. 북한 이 친구들 좀 자상하게나 전할 일이지....


씨름, 세계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 


우리민족의 자랑인 씨름이 세계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됐습니다. 


지난 11.26일 모리셔스에서 개막된 유네스코비물질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는 씨름을 인류의 대표적인 비물질유산목록에 등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건장한 체격과 투지 슬기와 지혜를 키워주며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우리인민의 근면한 노동생활과정에 창조되고 발전돼 온 씨름이 세계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소식은 온 겨레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끝)





모리셔스. 어디 있는 나란지는 고사하고 그것이 국명이란 사실도 며칠 전에야 알았다. 이름 자체도 '모르시게' 생겨먹었다.그리하여 구글로 두들기고는 지도를 봤다. 지구본으로 한국을 넣어 살피니 겨우 들어오는데 점 네 개다. 아프리카인가 인도양인가? 요상타. 미러에 덕지덕지 내려앉은 카메라 똥같다. 하늘이 흩뿌렸는가? 





마다가스카르 동쪽 상당한 거리에 위치하는 군도群島인듯한데 그네끼리 거리 역시 그리 만만치는 않은 듯 하다. 저곳에 섬들이 있었던가?



한국을 넣어봤다. 직항은 없을 테고 설혹 있다 해도 만땅 기름 채운대도 죽 갈까 심히 의심이 드는 거리다. 어디서 갈아탈까? 뭄바이? 뉴델리? 두바이? 모르겠다.

얼마전 문화재청장이 모리셔스 간다기에 옆집 똥개 이름으로 알고는 퉁명스레 "잘 댕겨오슈, 청장은 비즈니스요, 좋겠소.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시오" 하곤 말았는데, 괜실히 측은해진다. 




위성으로 좀 가차이 쳐다봤다. 눈깔씨가리 만하다. 저기도 사람이 산다니 신통방통이다. 그 서쪽 제법 구치 큰 섬 마다가스카르 보아 하니 언제인지 다시 그 서쪽 아프리카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모양인데, 그 마다가스카르가 부여잡다 이기지 못하고 선심 쓰듯 떼 준 것이 모리셔서 아닌가 하는데 주변 바다 색깔 보니 깊이가 상당한 듯, 제  빠지면 뼈도 못추릴 듯 하다.




다시 위성으로 확대한다. 현미경으로 들여자본 말미잘 두 마리 같다. 그 수도 찍으니 상단으로 약간 치고 올라간 오른편 섬이 주도主島란다. 다시 그 주도로 시점을 고정하곤 공중에서 꼬나다 본다. 




봐도 모르겠다. 뭐 가 봤어야 어떻다 우기기라도 할 터인데, 이리저리 각종 검색기 돌리니 어떻다 저떻다 하는데 내가 직접 보고 겪기 전까진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저 광활한 인도양 절해고도로 한국의 씨름과 북한의 씨름이 각기 다른 배편으로 기나긴 항해를 거듭하여 마침내 상륙하고는 반갑다 악수하고는 우리는 하나임을 외치고는 하나의 깃발 아래 손을 잡고는 공중으로 부양하여 인공위성 타고는 같이 날아 지구촌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개막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위원회 국가간 협의체 제13차 회의가 남북한이 각기 등재신청한 씨름을 겉저리 김치 버무리듯 한데 버무리더니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란 이름으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했다.

아마도 이 일로 모리셔스는 한동안 한국인 혹은 이쪽 업계 사람들한테 인구에 회자하지 않을까 하며, 나 역시 혹 그를 다시 마주 한다면, 아, 씨름 하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남북한 씨름이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Mauritius) 수도 포트 루이스(Port Louis)에서 개막한 제13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the Intergovernmental Committee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에서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the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inscription)됐다. 등재 목록 이름은 조금은 요상해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거니와, 굳이 이를 옮기면 '전통의 한국 레슬링, 씨름'이 된다. 





씨름이면 씨름이지, Ssirum은 뭐고 또 Ssireum은 무슨 뼉다귀인가? 이는 어쩔 수 없는 타협의 소산이거니와, 앞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 traditional wrestling in the Republic of Korea)이라는 타이틀로, 반면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Ssirum<Korean wrestli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영문 명칭으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이것이 둘다 등재 권고 판정을 받은 데서 비롯한다. 


유네스코로서는 같은 성격의 같은 민속놀이를 두 국가체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등재신청서를 보내왔으니, 이래서는 좀 곤란하겠다 싶어, 아니면, 이 참에 국가간 화해라는 유네스코 정신도 마음껏 선전도 해 볼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내세워 그래 그렇다면 너네 각기 하지 말고 둘이 합쳐서 한꺼번에 한 건으로 만들어서 인류무형유산 하자 해서, 저리된 어정쩡한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씨름을 정의하는 수식어로는 'Traditional Korean Wrestling'이라는 데는 남북한이 쉽게 합의했다. 하지만, 그 요체인 씨름에 대해서는 두 정치체가 합의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난관에 봉착한 유엔 산하 유네스코는 그럼 가운데 슬러시를 치고 두 가지 표기를 병기하자 해서 저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한편으로는 절묘한 듯하지만, 저 표기를 대하는 제3 국가들은 틀림없이 의아해 할 터이니, Ssirum과 Ssireum이 별개 스포츠인양 인식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왜 저리 다른 표기가 등장했는가? 


이는 씨름에 대한 로마자표기법 혹은 영어표기법에 따른 차이에서 말미암음이니, 로마자로는 '름'의 'ㅡ'에 대응할 마뜩한 표기 수단이 없어, 이를 북한에서는 'u'라 하는데 견주어, 남한은 'eu'라고 하는 데서 비롯한다. 


이런 표기 차이에서 주목할 점은 북한의 표기 'Ssirum'은 로마자표기법이 아니라 실은 영어 표기법이거나 그에 대단히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저것을 영어 표기법으로 간주해 발음한다면 "씨뤔" "씨뢈" 정도가 된다. 그에 견주어 남한 표기 ssireum은 영어 표기가 아니라 실은 로마자표기법이다. 이를 영어 표기로 본다면 저 표기는 내가 100% 자신은 없으나 "씨리엄" 정도로 발음할 것이다. 



이 양반 갈수록 개콘이 되어가네



사람들이 곧장 로마자표기법과 영어 표기법을 혼동하거니와, 이런 차이를 모르는 사람 중에, 다시 말해 그것이 무슨 영문 표기인 줄 알고는 각종 잘난 척 하는 얄팍한 지식은 다 동원해 그 불합리성을 공격해 대기 여념이 없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니, 그 용맹무쌍함에 혀를 두르고 만다. 다만,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고는 조금은 머쓱해진 이런 사람 중에는 그럼에도 그 오류를 인정할 생각은커녕 여전히 핏대를 높이면서 이르기를 "세상 어떤 놈이 저걸 영어 표기로 받아들이지 로마자표기법으로 아냐"고 삿대질하기도 하거니와, 실제 내가 이런 대책 없는 자를 꽤 많이 봤다. 이는 주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으로 먹고 사는 자들한테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는 지들이 배운 바, 혹은 지들이 아는 바가 오직 진리로 여기는 독선과 아집의 소산이다. 지들이 먹고 배운 것이 영어밖에 없으니 이 따위 망발을 일삼거니와, 한국 드라마 중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대장금'이 있거니와, 그 이름 '장금(이)'가 해외에 알려지기로는 'janggomi' 정도로 표기되었거니와, 그것이 한창 해외에서도 히트할 무렵 내가 이란을 가 보니, 이 페르시아 친구들이 한국 여자들만 보면 '양고미' '양고미'라 불러대서, 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장금이'였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페르시아인들에게 모음 앞에 오는 j는 'ㅈ'이 아니라 '반모음'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는 '장'이 아니라 '양'이었던 것이다. 


미국 가서 미국놈 물만 먹는 사람들한테는 미국이 최고요, 그네들 표기가 곧 세계 표기인 줄 착각하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다. 이 지구상에는 영어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마표기법은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장금이라는 양고미라 발음한다 해서 그들이 무식한 것은 아니다. 그네들 전통에 따라 그리 발음할 뿐이며, 그것이 하등 그들의 무식을 증명하는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표기법과 관련해 하나 더 지적할 점은 쌍시옷 'ㅆ'이거니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넘들은 'ㅅ'과 'ㅆ'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s'만 있을 뿐이니, 하지만 그것을 구별해야 하는 우리는 편의상 'ㅆ'에 대해서는 굳이 'ss'라고 할 뿐이거니와, 's' 하나만 써도 충분할 것을 이리 한 이유는 그것을 아는 외국인은 그리 구별하라는 의사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저 두 표기 중에서도 항용 어떤 것을 먼저 앞세우느냐는 자존심 문제와 관련하거니와, 이번 건은 남한이 양보한 느낌이 짙으니, 북한 표기를 앞세운 까닭이다. 이 점이 외신에는 미묘하게 보였는지, 예컨대 영국 일간 The Guardian은 이 소식을 Unesco accepts historic joint Korean bid to recognise traditional wrestling라는 제하 소식으로 전하면서 이르기를 


The official name was listed as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 with the North Korean transcription appearing first.


라고 한 대목을 들 수 있다. 


또 하나 덧붙이건대, 이 사건을 유네스코가 대서특필함을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공동등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네스코에 요청하고, 그것을 유네스코가 호응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빚은 결과다. 그러니 유네스코로서도 결코 손해 볼 게임이 아니거니와, 그러기는커녕 그들 자신이 이 사건을 어찌 자리매김하는지는 그들이 전하는 다음 뉴스를 보라.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listed 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following unprecedented merged application from both Koreas


유네스코가 이 일을 얼마나 자기네 존재감을 각인하는 데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이 공동등재에 그 사무총장Director-General 오드리 아줄레Audrey Azoulay가 중재한 모습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다시금 확인한다. 미국의 탈퇴로 코너에 몰린 유네스코로서는 이런 일을 반전을 기회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공동등재에 대한 보답으로써, 혹 한국정부는 그 분담금을 더 부담할지도 모르겠다.  

  1. 아파트담보 2018.11.27 08:53 신고

    ssireum = 씨어리엄
    ssirum = 씨럼
    - 파파고 번역기

  2. 한량 taeshik.kim 2018.11.27 11:28 신고

    ㅋㅋ

  3. 고로 2018.11.28 11:19 신고

    그래서 이명박대통령때 어륀쥐 교육 제대로 시키자고 한건데 ♪♫♬욕먹고 끝났죠 ㅋㅋ

  4. 충청도 2018.12.11 20:42 신고

    어륀쥐-어른쥐-늘근뒤-뒤박이는 이명박의 지금을 예견한 예언이었습니다. 쥐가 좀더 총명했으면...그때 경고를 알아챘어야 하는데...



작년 7월 4일인가 5일, 독일 본 세계유산위서 일본의 메이지시대 소위 산업혁명 유산군이 질긴 줄다리기 끝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자마자 중국대표단이 회의장 각국 대표단에 뿌린 유인물이다. 서명도 없고 대표자 명단도 없으며 날짜도 없으니 공문서로서의 그 어떤 효력도 지니지 못한다. 본국 외교부에서 훈령도 받지 못했으므로 이런 식으로 분풀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막강한 중국도 세계유산위 21개 위원국이 아닌 까닭에 그 어떤 발언권도 없어 분통만 터뜨리고 일부 대표단원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유인물은 당시 내가 폰카로 촬영한 자료만 남고 실물은 멸실했겠거니 했는데 어제 서재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작년 세계유산위 찌라시 뭉치에서 찾아냈다. 고화질 스캔을 하러 가는 길에 일감一感을 초草하노라.


전문을 번역한다. 거친 번역임을 감안해줬으면 한다.


제39차 세계유산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에 대한 중국 대표단 성명


중국은 세계유산위 위원국들에게 강제노역과 관련되지만 그런 사실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면서 저들 유산을 등재하고자 하는 일본을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저들 유산에는) 도합 2천316명에 이르는 중국인이 수년간 모진 환경에서 강제로 노역해야 했으며 그들 중 323명이 일본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제노역은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이자 인권 위반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나는 일본 대표단이 그들의 성명에서 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1940년대에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저들 유산 중 몇 곳으로 강제동원되어 모진 조건에서 강제 노역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런 사실이 일본의 등재신청서에서는 무시된 사실을 주시했다. 하지만 강제노역을 둘러싼 총체적 사실에 대한 일본 측의 충분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일본에 대해 역사를 직면하고, 나아가 이코모스와 세계유산위가 요구한 것처럼 각각의 유산에 대한 전체 역사를 이해하게끔 하는 구체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또한 모든 개별 강제노역 피해자의 고통이 기억되고, 더불어 그들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확실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


** 이는 꼭 2년 전인 2016년 9월 6일 내 페이스에 게재한 글이다. 

  1. yisabu 2018.09.09 12:43 신고

    사진속 글을 쓴 이는 Zhang Xiuqin라고 합니다.

<라인강의 노을>


아래는 <독일 본 라인강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July 6, 2015 at 5:37 AM에 내 페이스북 계정에 게재한 글이다. 2년 전 오늘에 있었던 일이기는 하나, 그런대로 음미할 대목은 없는 않은 듯해서 관련 사진을 첨부하며 재게재한다. 


독일 본 라인강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의 혼란으로 이곳 독일 본 기준으로 오늘이라 하겠다. 이곳 제39차 세계유산위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 산업유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가 무엇을 인증하고 증명하는 국제기구는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에서는 세계유산이 되고, 그것을 뒷받침한 여러 조건이 유네스코라는 이름에 맞물려 그리 통용되는 것 또한 엄혹한 사실이다. 세계유산...나도 아직 그 정체를 모르나, 이 현실세계의 통념이 세계유산의 이념 혹은 이상과 갖은 충돌을 빚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요 괴리이기 때문이리다.


이곳에서 잠깐잠깐 이번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한국과 일본간 합의를 두고 그것을 전하는 각종 뉴스에 오뉴월 소불알처럼 열린 댓글이라는 것들을 보니, 

첫째, 우리가 그 등재를 저지했어야 하고

둘째, 적어도 그것이 아니라 해도 등재 대상 23건 중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7개 현장은 등재 목록에서 삭제했어야 하며

셋째, 그렇기에 이번 협상은 굴욕이라 하며 

넷째, 이를 종합하여 한국 외교력의 실패를 운운하는 압도적인 논조를 본다.


<독일 본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하지만 이번 협상단 한국 어떤 외교관이 쓴 말을 동원하건대 세계유산은 레고 블럭 쌓기가 아니다. 블럭 몇 개를 넣고 빼고 하는 게임이 아니다. 내가 섣부르게 알지만 세계유산이 빵조각 뜯어먹기는 아니다. 그리고 등재 저지는 생각보다도 더 큰 문제를 유발한다.


나는 기자로서 이번 사안에 생각보다는 조금 더 관여했다. 지금 고백하거니와 외교부에 불려간 일도 있고, 그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 세 가지를 제시하기도 했으며, 입에 발린 소리인 줄 모르나 이번 협상단 주축 중 한 명은 오늘 회의장을 나오면서 내 제안이 사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이번 대회에 한국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나 혼자 현장을 지켰고 혼자서 왔다. 혹자는 어떻게 해서 나 혼자만 여기 오게 되었는가 의아함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나, 우리 언론의 엄혹한 현실이 속된 말로 대통령 해외순방 말고는 회사 자비로 출장을 보내는 곳은 없다.


내가 분에 넘치게 현장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기자로서, 혹은 그것을 벗어난 일종의 세계유산 자문관으로 이번 사태 귀퉁이 0.1%에 발을 걸쳤기 때문이다. 그에서 비롯되어 지금은 밝히기 힘든 어떤 기관의 힘을 빌려 독일까지 날아오게 되었다. 


애초 이번 사태가 커지면서 내가 외교부에 불려갔을 적에도 그렇고 그 초반기 한동안 나는 이번 사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피상으로 알던 이른바 한국 외교부의 불난집 호떡구워먹기식 기관이라는 이미지 혹은 선입관이 있기도 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우리는 저 댓글 퍼레이드가 피상으로 말하는 그것보다 훨씬 위대한 성과를 냈다. 


forced to work in harsh conditions 


이 말을 읽는 이는 다름 아닌 일본 정부를 대표한 일본 대표단이었다.


<강제동원 사실을 독일 제안으로 등재 결정문에 반영하는 장면> 


나는 23년전 기자 업계에 투신하고서 이내 이른바 대일전후청산 운동으로 내 전공을 삼은 전력이 있다. 원폭피해자니 위안부니 혹은 관동군포로니 하는 문제에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미친 정도로 기자 생활 초창기를 불살랐다. 그런 나를 늘 환장하게끔 만든 일이 각종 논리로 이를 거부하는 일본 정부의 궤변의 논리였다. 나는 일본정부가 저런 식으로 과거사를 인정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내가 한동안 과거사청산 운동을 쳐다보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주는 좌절감 때문이었다.


혹자는 천황 이름으로 과거 어느 시점에 말한 통석의 념을 들 수 있겠지만, 일본 헌법을 봐라. 천황은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상징일 뿐이요, 모든 책임은 일본 국회에 귀속한다. 일본은 내각책임제다. 국회가 절대 권능을 갖는 내각책임제 국가다. 그런 일본에서, 내 기억으로 사상 처음으로 태평양전쟁기에 조선인을 비롯한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장면을 목도하리라고는 불알이 떨어지기 전에는 없을 줄 알았으니, 

오호라, 

그래서 오늘 본은 나에겐 awakenig city노라. 


<등재 순간 일본대표단과 그 주변>


이로부터 꼭 1년 뒤 같은 날, 나는 같은 페이스북 내 계정에 다음 글을 포스팅 했다. 


일본 산업유산 등재 1주년에 즈음한 소회


아래 공유한 작년 오늘 포스팅에 잠깐 적었지만, 이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질 무렵, 우리 외교부에서 나를 불렀다. 가서 그 한-일 협상단 한국 대표를 면담했다. 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이 대표가 대학교 선배더라.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사태 해결 방안을 A4 용지 두 장 정도 분량으로 정리해 들어갔다. 이 문건이 어디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소중한 문건인데 말이다. 그러니 기억에 의존해 당시를 증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때 세 가지 해결 방안을 제안했다.


1. 등재 자체 저지...이건 불가능하다. 

2. 제목 교체...등재 시설물 기간을 아주 제목에다가 1910년 이전까지로 박아서 교체하자. 

3. 등재 결정문statement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문구를 집어넣자.


이 중에서도 나는 세 번째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제안했다. 내 제안이 무슨 여파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산업유산 등재가 확정되고, 그 협상단 우리측 대표가 입에 발린 소리인지 모르나 "김기자 제안이 결정적이었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위안한다.


<유일한 한국기자>



hahaha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되어 봤다. 

podium에 서 봤다. 

2015년 6~7월 독일 본 World Congress Center에서 열린 39th session of the World Heritage Committee에 나는 한국 취재단 일원으로 참관했다. 일원이라 하지만 유일한 한국기자였다. 

당시 이 회의에서 우리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했고, 일본은 진통 끝에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을 등재했다. 

두 건이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회의장도 그날 일정을 마치고 참관자들이 떠날 무렵, 이쪽에 서 봤다. 

대회기간 내내 저 자리는 내가 알기로 딱 두 번인가 사용했을 것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Irina Bokova가 개회를 선언하고, 폐회를 선언했을 것이다. 두 장면 모두 보지 못했지만, 아마 그리했을 것이다. 

   


뭐, 어느날 저 자리에 내가 서지 못하란 법 없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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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세계유산으로 흔히 다음 세 가지를 혼용해서 마구잡이로 씁니다.


1. 세계유산 world heritage 

2. 인류무형문화유산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3. 세계기록유산 memory of the world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엄연히 다릅니다.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 두 가지는 각기 그들의 존재를 가능케 한 국제협약에 근거를 둡니다. 쉽게 말해 각국이 이런이런 협약을 만들고 그것을 준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그에 일정 국가 이상이 비준함으로써 발효하는 협약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 것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독일 본.



이를 다시 상론하자면, 먼저 세계유산(World Heritage)은 유엔의 전문기구 중 하나인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UNESCO)가 1972년 11월 16일 채택한 세계문화자연유산보호에관한협약(the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the World Heritage Convention)에 기초를 두고 벌이는 사업입니다. 


이 협약은 1975년 12월 17일에 비준국이 20개국에 도달함으로써 마침내 실제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협약에 '뛰어난 보편적 가치(the 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지닌 것들을 선정해 세계유산 리스트(world heritage list)에 등재(inscription)토록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기존에 등재된 것 중에서도 보존관리가 심대한 위험에 처한 곳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the 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 세계유산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협약 정식 명칭을 보시면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라고 한 대목이 그것입니다. 유산을 두 가지 범주(categories)로 나누었는데, 그 기준은 글자 그대로입니다. 인간이 남긴 흔적이냐, 아니면 인간의 간섭없는 자연의 흔적이냐에 따른 것인데, 이 둘은 실은 족보가 다릅니다. 다른 족보를 하나로 엎어쳐서, 하나의 협약으로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둘은 큰 틀에서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은 비슷하나 그 세부로 들어가면 프로세스를 달리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사전 등재를 심사하는 기구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유네스코는 한국 정부 조직으로 빗대면 행정조직입니다. 각국 혹은 여러 개 국가가 한데 힘을 모아 이런이런 것을 세계유산 목록에 올려주십시오라는 요청을 하면, 유네스코 자체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거나, 하기 힘든 구좁니다. 왜냐? 행정조직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해야 합니다. 우리 행정부는 보통 이럴 때 외부 전문가 집단에게 맡기게 되는데, 문화재 행정에서는 문화재위원회라는 것을 두게 됩니다. 전자를 보통은 연구용역 혹은 평가용역이라 하고, 후자를 보통 심의를 부친다고 하는데, 특별한 돌발변수가 없는 한, 정부기관에서는 이들 전문가 집단 평가 결과나 문화재위원회 심의 결과를 따릅니다. 왜? 그래사 뒷말이 덜 나고, 일이 터지면 우린 그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지요. 


세계유산도 이와 근간이 똑같습니다. 문화재위원회는 그것이 다루는 안건에 따라 여러 개 분과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유산은 애초 이질적인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두 범주가 있기에 이에 따라 그것을 사전에 심사 평가하는 기관이 다릅니다. 이 일을 담당하는 기관을 자문기구(Advisory Bodies)라 하는데, 세계유산과 관련한 자문기구로는 크게 세 곳이 있으니, 이코모스(ICOMOS·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와 세계자연보호연맹(IUCN·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 그리고 이크롬(ICCROM·ㅅhe International Center for the Study of the Preservationand Restoration of Cultural Property)가 그것입니다. 


문화유산은 이코모스 몫이고, 자연유산은 IUCN 몫이며, 이크롬은 뭐랄까 그 정책 방향에 관한 철학 혹은 논리 개발 담당이랄까, 혹은 교육 담당이랄까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들 세 자문기구 중 이코모스와 IUCN은 그에 대한 영어 약자인데 이크롬만은 뉠리리 짬뽕이라, 무엇의 약자인지 저는 아지 못합니다. 암튼 족보 수상한 국제기구입니다. 


2018년 12월 현재 세계유산은 1천92건인데 여러 국가에 걸친 소위 초국경(Transboundary)유산이 37건이고, 위험에 처한 유산은 54곳입니다. 요즘은 초국경 유산이 점점 많아지는 추셉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가 삭제된 곳이 두 곳 있습니다.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Dresden Elbe Valley)이 2009년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삭제되었는데, 이 당시 제가 현장에 있었습니다. 나아가 아라비아 반도 오만(Oman)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Arabian Oryx Sanctuary)도 그보다 2년 전인 2007년 세계유산과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오릭스란 영양 일종입니다. 


세계유산 1천92건 중 문화유산이 845건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자연유산은 고작 209건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167건은 뭐냐? 이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해서 이른바 복합유산(Mixed Heritage)이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복합유산이 따로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암 것도 아니라, 복합유산은 자연유산이기도 하면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복합유산에 대해서는 사전 등재 심사를 앞서 말씀드린 이코모스와 IUCN 두 곳에서 각기 합니다. 왜? 나와바리가 달라서지요. 


그렇다면 복합유산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는데, 그 결과가 다를 때는 어찌할까요? 살아남은 쪽만 살아남습니다. 예컨대 설악산만 해도 우리는 흔히 자연유산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거기에 백담사가 있고 신흥사가 있고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합쳐서 복합유산 신청을 했다 칩시다. 한데 유네스코(혹은 자문기구)에서 볼 적에 자연유산은 훌륭해서 세계유산이 될 만한데 백담사니 신흥사니 하는 문화유산은 영 아니다고 해서 그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유산만 덜커덩 등재됩니다.  


세계유산을 한 곳 이상 보유한 국가는 167개국입니다. 요새 등재 추세를 보면, 세계유산을 한 곳도 보유하지 않은 국가를 우선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계유산도 사업입니다. 더구나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유네스코로서는 가장 성공한 사업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이 더욱 번창하려면 나와바리를 늘려야겠지요? 좀 더 많은 나라에 팔아먹어야 할 거 아닙니까? 


인류무형문화유산 사업 역시 국제협약를 존재 기반으로 삼습니다. 유네스코는 2003년 10월 17일, 제32차 총회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를위한협약(the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는 2006년 4월 20일 마침내 비준국 30개국에 도달하자 마침내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세계유산협약 효력 비준국가가 20개국인 데 비해 무형유산협약은 30개국 점이 다른 듯합니다.) 협약 명칭 그대로 멸실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채택한 제도입니다. 이 사업은 뒤에서 곧바로 얘기할 세계기록유산어 현재 그런 것처럼, 애초에는 유네스코가 벌이는 자체 프로그램이었다가 나중에 덩치를 키워 국제협약을 기반으로 삼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반면 세계기록유산은 이런 국제협약이 아니라 유네스코 자체로 벌이는 사업입니다. 유네스코 사무국이 우리도 이런 거 하나 해 보자 해서 만들어낸 사업입니다. 그러니 위상을 비교하면 전자 두 가지가 올림픽인데 견주어 기록유산사업은 전국체전입니다. 엄연히 권위와 권능은 다르지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에 해당하는 영어 표기 'Memory of the World'를 우리는 '세계기록유산'이라 옮기지만, 실은 정확한 번역은 '세계의 기억'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세계기억공정(世界记忆工程)'이라 옮기고, 일본은 '유네스코기억유산(ユネスコ記憶遺産)'이라 번역합니다. 이는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벌이는 프로그램이지요. 등재 대상은 ▲ 한 국가를 초월해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자료 ▲ 역사적 중요시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 ▲ 세계사 또는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한 지역, 인물, 주제에 대한 정보를 지닌 자료 ▲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되면서 뛰어난 미적 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 등입니다. 이밖에도 완성도 또는 완전성에 있어 탁월한 자료, 독특하거나 희귀한 자료에 해당하면 등재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기록유산 등재 유산 유형은 광범위합니다. 필사본, 도서 등 글자 형태의 기록이 담긴 자료와 그림, 프린트, 지도, 음악악보 등 비문자 기록 자료는 물론 전통적인 움직임과 현재의 영상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가 해당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사업 중에서 가장 성공작이라는 세계유산 사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유네스코 사업은 벌이는 주체에 따라 기구 자체가 벌이는 사업과 회원국들이 약속한 협약에 따라 벌이는 사업이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협약사업인 반면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자체 사업입니다. 이런 자체 사업에 유네스코는 ○○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을 붙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유산에 비해서는 그 명성이나 지위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유산 사업은 1992년에 시작됐습니다. 실무는 유네스코 일반정보사업국 산하에 이 사업 수행을 위해 설치된 국제자문위원회(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IAC)에서 맡게 됩니다. 이 자문위에는 사서, 법률전문가, 교육학자, 저술가, 문서관리 전문가 등 30여 명이 활동 중입니다. 이에서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임명하는 위원 14명이서 쏙딱쏙닥하며 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게 됩니다. 회의는 통상 2년마다 각국을 돌아가며 개최합니다.  


그렇다면 유네스코는 왜 이런 사업을 벌이게 되었을까요?


세계유산은 동산문화재와 부동산문화재 중에서도 부동산만을 대상으로 하고, 그것을 자연유산(natural heritage)과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두 가지로 나눕니다. 이것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동산 문화재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어찌해야 하느냐?  



인류무형문화유산 한산모시짜기



그렇게 해서 바로 별도 국제협약을 만들어낸 것이 무형유산입니다. 무형유산은 잘 아시겠지만 서구 유럽에서는 없던 개념입니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태동한 개념이지요. 실제 이를 성사케 한 원동력이 된 국가가 바로 한국과 일본입니다.


자, 부동산도 됐고 무형도 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문화재라고 하면 이 두 가지로 커버가 될까요? 안 됩니다. 덩치가 큰 다른 하나가 빠졌으니 부동산에 대비되는 동산 문화재를 유네스코가 방치하는 결과를 빚은 겁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동산문화재도 우리 유네스코가 어떻게든 먹어보자 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세계기록유산입니다. 


하지만 세계기록유산을 국제협약으로 만들려고 하니, 시일이 걸리고 여러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국제협약으로 나중에 가건 말건, 이건 일단 급한대로 유네스코 자체 사업으로 해보자 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기록유산사업입니다.


이 세 가지를 보면 유네스코가 접근하는 문화재 확장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세계유산을 통해 종래의 유산이라고 하는 가장 구찌가 큰 것을 선점했고, 그러다 보니 무형이 빠져서 이것도 먹자 해서 인류무형유산을 만들어내고,  또 그러다 보니 언제건 옮겨다닐 수 있는 문화재가 빠지니 그 그물망을 치자 해서 세계기록유산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형태가 더 나올 지 모릅니다.


우선 세계기록유산을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문화유산처럼 별도 국제협약을 만들어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한때 논의되기도 했다고 들은 듯도 없으니,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금의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동산문화재 중 document라는 특성이 농후해 문자 자료 혹은 영상이나 동영상 같은 기록성이 짙은 문화유산에 집중되는 바람에 그에서 벗어난 동산문화재들은 어찌해야 하는지 하는 고민도 유발하게 됩니다. 예컨대 우리네 같은 경우 '신라인의 미소'로 알려진 신라와당 같은 것은 어찌해야 하는가? 이에 주목한 새로운 사업이 펼쳐지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상은 과거 내 정리자료를 기반으로 삼되, 그 정확성과 상세함을 보강하는데는 문화재청 세계유산팀 김지홍 사무관과 이곳 출신 임경희 현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도움이 많았음을 밝힌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오류 등은 전적으로 내 책임에 귀속한다. 향후 계속 보완을 약속한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곳은 몇 되지 않은 줄로 알며, 개중 하나가 유네스코다. 팔레스타인이라면 내 세대에는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1929~2004)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로 상징한다. 또 에드워드 사이드가 열렬한 팔레스타인 내셔널리스트라는 사실도 팔레스타인을 친숙하게 만들지 않나 한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아라파트와 사이드를 양날개로 장착한 팔레스타인이 거의 유일하게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국제무대가 유네스코인 까닭에 이들은 외교 총력을 유네스코로 쏟을 수밖에 없다. 그런 팔레스타인이 이번에 그들로서는 세 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한 곳이 헤브론 유적(Hebron/Al-Khalil Old Town)이다. 


팔레스타인은 유네스코 가입 이듬해인 2012년 예수 탄생지 베틀레헴(Birthplace of Jesus: Church of the Nativity and the Pilgrimage Route, Bethlehem)을 사상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한 데 이어 2014년에는 베들레헴 근교 남예루살렘 올리브와 포도 산지 바티르(Battir) 문화경관(Palestine: Land of Olives and Vines – Cultural Landscape of Southern Jerusalem, Battir)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지구



팔레스타인은 앞서 2011년 10월 31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이 국제기구 총회에서 회원국 자격을 얻었다.  총회에 상정한 팔레스타인 정회원 가입안은 193개 회원국 중 173개국이 참여한 결과 찬성 107표를 얻어 가결됐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브라질과 인도, 남아공 등은 찬성표를 던졌으며 영국은 기권했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미국을 필두로 팔레스타인과 시종 적대적인 이스라엘, 그리고 독일, 호주, 캐나다를 포함한 14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인정한 유엔 산하기구로는 유네스코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유네스코 전체 분담금 중 약 22%를 지원하던 미국이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들어 분담금 지불 정지를 결정했다. 이 일로 유네스코는 극심한 재원 위기에 몰렸으며 이런 사정이 현재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외부 세계가 간절히 자신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네스코는 그 희망의 빛일 수밖에 없다. 유네스코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팔레스틴은 이에 유네스코를 발판으로 삼아 그들이 독립국가임을 더욱 확고히고 하고자 하는 대외적 상징조치를 잇달아 시도하게 되니, 세계유산 등재도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 



팔레스타인, 유네스코 회원국 가입



이런 움직임에서 주목할 것은 팔레스타인이 등재한 3건 모두가 그 등재 절차가 비록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지침이 규정하는 절차를 모두가 비상절차에 가까운 방식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세계유산 등재는 시일도 많이 걸리고 심사도 까다롭기 짝이 없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처지, 다시 말해 언제나 이스라엘에 당한다는 약자 논리에다가 그들의 위협에 유산들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점을 내세워 fast-track 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언제나 비정상에 가까운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했다.  


이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패스트 트랙, 우선 이름부터 급박한 느낌을 주니, 세계의 시선을 끌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등재방식을 찾기는 힘들다. 그들의 전략은 내가 보기엔 크게 성공작이다. 이 제도를 통해 팔레스틴은 이스라엘의 부당성을 널리 홍보했다. 이스라엘 대표단 단장은 이번 세계유산위 의장 단상으로 다가가 의장을 협박하는 장면을 연출했으니, 이보다 더한 이스라엘 부당성을 선전하는 효과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어쩌면 더 불쌍한 곳이 이스라엘이라 할 수도 있다.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도, 그들로서는 저리 저항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대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세번째 등재에도 역시나 이스라엘은 온몸으로 저항했다. 저 등재가 있기 이틀 전, 세계유산 보존문제를 다룬 세계유산위에서 기등재한 유산 중 예루살렘 문제를 이미 다루었다. 이 역시 위험에 처한 유산이기도 하다. 


위험에 처한 유산....

그걸로 계속 예루살렘을 묶어둔다는 것은 이스라엘로는 치욕일 수밖에 없다. 내가 현장을 지켜보지 않아, 또 생중계까지 지켜보지 않아 자신은 없으나, 이를 전하는 유대계 언론과 친아랍계 언론, 그리고 중도적인 외신들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분야는 헤브론 유산 등재 자체 보다. 그것의 위험유산 등재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헤브론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와 더불어 곧바로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도 동시 등재됐다. 2관왕 타이틀을 쓴 것이다. 실상 위험에 처한 유산이 패스트트랙이라는 등재 편법을 쓰는 일이 많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지만,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도 이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위험에 처한 유산에 더욱 민감한가? 논리는 실로 간단하다. 내가 점령 혹은 관리하는 유산인데, 그것이 위험에 처했다? 누구의 탓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 나라 책임으로 귀결한다. 이스라엘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 문제 없는데 왜 위험하다 하는가? 바로 이 심리다.


사이드 열풍이 이는 바람에, 그리고 이스라엘은 언제나 침략자, 팔레스타인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등식이 우리에게 자리잡았기에(이것도 물론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면 다르지만) 우리 사회 일반은 막연히 팔레스타인=좋은놈, 이스라엘=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다. 이는 사이드 시각이다. 물론 국내 기독교인들에게 이는 정반대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봐야 한다. 팔레스틴에, 혹은 그 이전 이스라엘에 우리를 투영해 우리가 그리는 팔레스틴, 우리가 그리는 이스라엘에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하필 유네스코일까? 국제관계가 철저한 힘의 논리로 지배된다는 거 반복이 필요없다.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가 깽판치는 유엔이 증명하지 않는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산하 기구 유네스코는 좀 묘해서 그런 힘의 지배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팔레스타인이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가장 큰 힘은 쪽수가 많은 아랍권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들 힘이다. 

폴츠카 관광도시 크라코프(Krakow)에서는 현지시간 2일 개막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제41차 회의(session)가 진행 중이다.

오는 12일까지 계속할 이번 회의에 한국에서는 전연 관심이 없다. 

야심찬 계획에 의하면, 이 회의에서 우리는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문기구인 이코모스에서 누더기 걸레에 가까운 평가에 최하등급인 '등재불가(not inscribe)' 판정을 받으면서 등재 신청 자체를 자진 철회하고 말았다.

왜 한양도성이 저와 같이 처참한 결과를 빚고 말았는지, 저간의 자세한 사정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내가 이곳저곳 수소문해 알아낸 분명한 사실은 거의 다 F 학점을 맞았고, 개중에 유일하게 진정성(authenticity)에서만 그런대로 좋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 평가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까닭에 작금 갖은 억측이 사실처럼 난무한다. 

혹자는 성벽을 다 뜯어고쳤기에 그것이 치명타였다 하기도 하지만, 개소리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자세히 공개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 자세한 실상은 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낱낱이 보고되어야 한다.

박 시장은 알아야 한다.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각각 1건씩 제출해 두 건 모두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으며, 일본은 오키노시마 한 곳을 제출해 역시 등재권고를 받았다.

이 등재 시스템도 내년까지만 1국 최대 2건 등재 신청이 가능하며, 그 이후에는 자연 문화유산을 막론하고 1국 1건만 등재 신청이 가능하다.

'세계유산 정책 이대로 좋은가' 시론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소식지 올해 6월호에 실렸다. 

이 원고는 최근 문화재청 주최 공청회 발표문을 다듬었음을 밝혀둔다. 

이른바 우라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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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뉴스 2017년 6월호(732호)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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