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작년 7월 4일인가 5일, 독일 본 세계유산위서 일본의 메이지시대 소위 산업혁명 유산군이 질긴 줄다리기 끝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자마자 중국대표단이 회의장 각국 대표단에 뿌린 유인물이다. 서명도 없고 대표자 명단도 없으며 날짜도 없으니 공문서로서의 그 어떤 효력도 지니지 못한다. 본국 외교부에서 훈령도 받지 못했으므로 이런 식으로 분풀이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막강한 중국도 세계유산위 21개 위원국이 아닌 까닭에 그 어떤 발언권도 없어 분통만 터뜨리고 일부 대표단원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유인물은 당시 내가 폰카로 촬영한 자료만 남고 실물은 멸실했겠거니 했는데 어제 서재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작년 세계유산위 찌라시 뭉치에서 찾아냈다. 고화질 스캔을 하러 가는 길에 일감一感을 초草하노라.


전문을 번역한다. 거친 번역임을 감안해줬으면 한다.


제39차 세계유산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에 대한 중국 대표단 성명


중국은 세계유산위 위원국들에게 강제노역과 관련되지만 그런 사실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면서 저들 유산을 등재하고자 하는 일본을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저들 유산에는) 도합 2천316명에 이르는 중국인이 수년간 모진 환경에서 강제로 노역해야 했으며 그들 중 323명이 일본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제노역은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이자 인권 위반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나는 일본 대표단이 그들의 성명에서 많은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1940년대에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저들 유산 중 몇 곳으로 강제동원되어 모진 조건에서 강제 노역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런 사실이 일본의 등재신청서에서는 무시된 사실을 주시했다. 하지만 강제노역을 둘러싼 총체적 사실에 대한 일본 측의 충분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나는 일본에 대해 역사를 직면하고, 나아가 이코모스와 세계유산위가 요구한 것처럼 각각의 유산에 대한 전체 역사를 이해하게끔 하는 구체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며, 또한 모든 개별 강제노역 피해자의 고통이 기억되고, 더불어 그들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확실히 해줄 것을 촉구한다.


** 이는 꼭 2년 전인 2016년 9월 6일 내 페이스에 게재한 글이다. 

  1. yisabu 2018.09.09 12:43 신고

    사진속 글을 쓴 이는 Zhang Xiuqin라고 합니다.

<라인강의 노을>


아래는 <독일 본 라인강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July 6, 2015 at 5:37 AM에 내 페이스북 계정에 게재한 글이다. 2년 전 오늘에 있었던 일이기는 하나, 그런대로 음미할 대목은 없는 않은 듯해서 관련 사진을 첨부하며 재게재한다. 


독일 본 라인강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의 혼란으로 이곳 독일 본 기준으로 오늘이라 하겠다. 이곳 제39차 세계유산위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 산업유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가 무엇을 인증하고 증명하는 국제기구는 아니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에서는 세계유산이 되고, 그것을 뒷받침한 여러 조건이 유네스코라는 이름에 맞물려 그리 통용되는 것 또한 엄혹한 사실이다. 세계유산...나도 아직 그 정체를 모르나, 이 현실세계의 통념이 세계유산의 이념 혹은 이상과 갖은 충돌을 빚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요 괴리이기 때문이리다.


이곳에서 잠깐잠깐 이번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한국과 일본간 합의를 두고 그것을 전하는 각종 뉴스에 오뉴월 소불알처럼 열린 댓글이라는 것들을 보니, 

첫째, 우리가 그 등재를 저지했어야 하고

둘째, 적어도 그것이 아니라 해도 등재 대상 23건 중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7개 현장은 등재 목록에서 삭제했어야 하며

셋째, 그렇기에 이번 협상은 굴욕이라 하며 

넷째, 이를 종합하여 한국 외교력의 실패를 운운하는 압도적인 논조를 본다.


<독일 본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하지만 이번 협상단 한국 어떤 외교관이 쓴 말을 동원하건대 세계유산은 레고 블럭 쌓기가 아니다. 블럭 몇 개를 넣고 빼고 하는 게임이 아니다. 내가 섣부르게 알지만 세계유산이 빵조각 뜯어먹기는 아니다. 그리고 등재 저지는 생각보다도 더 큰 문제를 유발한다.


나는 기자로서 이번 사안에 생각보다는 조금 더 관여했다. 지금 고백하거니와 외교부에 불려간 일도 있고, 그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 세 가지를 제시하기도 했으며, 입에 발린 소리인 줄 모르나 이번 협상단 주축 중 한 명은 오늘 회의장을 나오면서 내 제안이 사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이번 대회에 한국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나 혼자 현장을 지켰고 혼자서 왔다. 혹자는 어떻게 해서 나 혼자만 여기 오게 되었는가 의아함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나, 우리 언론의 엄혹한 현실이 속된 말로 대통령 해외순방 말고는 회사 자비로 출장을 보내는 곳은 없다.


내가 분에 넘치게 현장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기자로서, 혹은 그것을 벗어난 일종의 세계유산 자문관으로 이번 사태 귀퉁이 0.1%에 발을 걸쳤기 때문이다. 그에서 비롯되어 지금은 밝히기 힘든 어떤 기관의 힘을 빌려 독일까지 날아오게 되었다. 


애초 이번 사태가 커지면서 내가 외교부에 불려갔을 적에도 그렇고 그 초반기 한동안 나는 이번 사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피상으로 알던 이른바 한국 외교부의 불난집 호떡구워먹기식 기관이라는 이미지 혹은 선입관이 있기도 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우리는 저 댓글 퍼레이드가 피상으로 말하는 그것보다 훨씬 위대한 성과를 냈다. 


forced to work in harsh conditions 


이 말을 읽는 이는 다름 아닌 일본 정부를 대표한 일본 대표단이었다.


<강제동원 사실을 독일 제안으로 등재 결정문에 반영하는 장면> 


나는 23년전 기자 업계에 투신하고서 이내 이른바 대일전후청산 운동으로 내 전공을 삼은 전력이 있다. 원폭피해자니 위안부니 혹은 관동군포로니 하는 문제에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미친 정도로 기자 생활 초창기를 불살랐다. 그런 나를 늘 환장하게끔 만든 일이 각종 논리로 이를 거부하는 일본 정부의 궤변의 논리였다. 나는 일본정부가 저런 식으로 과거사를 인정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내가 한동안 과거사청산 운동을 쳐다보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주는 좌절감 때문이었다.


혹자는 천황 이름으로 과거 어느 시점에 말한 통석의 념을 들 수 있겠지만, 일본 헌법을 봐라. 천황은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상징일 뿐이요, 모든 책임은 일본 국회에 귀속한다. 일본은 내각책임제다. 국회가 절대 권능을 갖는 내각책임제 국가다. 그런 일본에서, 내 기억으로 사상 처음으로 태평양전쟁기에 조선인을 비롯한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장면을 목도하리라고는 불알이 떨어지기 전에는 없을 줄 알았으니, 

오호라, 

그래서 오늘 본은 나에겐 awakenig city노라. 


<등재 순간 일본대표단과 그 주변>


이로부터 꼭 1년 뒤 같은 날, 나는 같은 페이스북 내 계정에 다음 글을 포스팅 했다. 


일본 산업유산 등재 1주년에 즈음한 소회


아래 공유한 작년 오늘 포스팅에 잠깐 적었지만, 이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질 무렵, 우리 외교부에서 나를 불렀다. 가서 그 한-일 협상단 한국 대표를 면담했다. 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이 대표가 대학교 선배더라. 나는 내가 생각하는 사태 해결 방안을 A4 용지 두 장 정도 분량으로 정리해 들어갔다. 이 문건이 어디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소중한 문건인데 말이다. 그러니 기억에 의존해 당시를 증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때 세 가지 해결 방안을 제안했다.


1. 등재 자체 저지...이건 불가능하다. 

2. 제목 교체...등재 시설물 기간을 아주 제목에다가 1910년 이전까지로 박아서 교체하자. 

3. 등재 결정문statement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문구를 집어넣자.


이 중에서도 나는 세 번째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제안했다. 내 제안이 무슨 여파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산업유산 등재가 확정되고, 그 협상단 우리측 대표가 입에 발린 소리인지 모르나 "김기자 제안이 결정적이었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위안한다.


<유일한 한국기자>



hahaha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되어 봤다. 

podium에 서 봤다. 

2015년 6~7월 독일 본 World Congress Center에서 열린 39th session of the World Heritage Committee에 나는 한국 취재단 일원으로 참관했다. 일원이라 하지만 유일한 한국기자였다. 

당시 이 회의에서 우리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했고, 일본은 진통 끝에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을 등재했다. 

두 건이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회의장도 그날 일정을 마치고 참관자들이 떠날 무렵, 이쪽에 서 봤다. 

대회기간 내내 저 자리는 내가 알기로 딱 두 번인가 사용했을 것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Irina Bokova가 개회를 선언하고, 폐회를 선언했을 것이다. 두 장면 모두 보지 못했지만, 아마 그리했을 것이다. 

   


뭐, 어느날 저 자리에 내가 서지 못하란 법 없지 아니한가? 


'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Waste Land by T. S. Eliot  (0) 2018.04.04
낙안읍성에서  (0) 2018.04.02
Being the Director-General of UNESCO  (0) 2018.03.31
황사에서 미세먼지, 미세먼지에서 초미세먼지로  (0) 2018.03.29
日本後紀・船の記録  (0) 2018.03.27
지옥과도 같은 나날들  (0) 2018.03.21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곳은 몇 되지 않은 줄로 알며, 개중 하나가 유네스코다. 팔레스타인이라면 내 세대에는 아라파트로 상징한다. 또 에드워드 사이드가 열렬한 팔레스타인 내셔널리스트라는 사실도 팔레스타인을 친숙하게 만들지 않나 한다.


아라파트와 사이드를 양날개로 장착한 팔레스타인이 거의 유일하게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국제무대가 유네스코인 까닭에 이들은 외교 총력을 유네스코로 쏟을 수밖에 없다. 그런 팔레스타인이 이번에 그들로서는 세 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한 곳이 헤브론 유적(Hebron/Al-Khalil Old Town)이다. 


팔레스타인은 유네스코 가입 이듬해인 2012년 예수 탄생지 베틀레헴(Birthplace of Jesus: Church of the Nativity and the Pilgrimage Route, Bethlehem)을 사상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한 데 이어 2014년에는 베들레헴 근교 남예루살렘 올리브와 포도 산지 바티르(Battir) 문화경관(Palestine: Land of Olives and Vines – Cultural Landscape of Southern Jerusalem, Battir)도 세계유산에 추가했다. 


팔레스타인은 앞서 2011년 10월 31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이 국제기구 총회에서 회원국 자격을 얻었다.  총회에 상정한 팔레스타인 정회원 가입안은 193개 회원국 중 173개국이 참여한 결과 찬성 107표를 얻어 가결됐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브라질과 인도, 남아공 등은 찬성표를 던졌으며 영국은 기권했다.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미국을 필두로 팔레스타인과 시종 적대적인 이스라엘, 그리고 독일,호주,캐나다를 포함한 14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인정한 유엔 산하기구로는 유네스코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유네스코 전체 분담금 중 약 22%를 지원하던 미국이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들어 분담금 지불 정지를 결정했다. 이 일로 유네스코는 극심한 재원 위기에 몰렸으며 이런 사정이 현재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외부 세계가 간절히 자신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유네스코는 그 희망의 빛일 수밖에 없다. 유네스코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팔레스틴은 이에 유네스코를 발판으로 삼아 그들이 독립국가임을 더욱 확고히고 하고자 하는 대외적 상징조치를 잇달아 시도하게 되니, 세계유산 등재도 는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 


이런 움직임에서 주목할 것은 팔레스타인이 등재한 3건 모두가 그 등재 절차가 비록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지침이 규정하는 절차를 모두가 비상절차에 가까운 방식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세계유산 등재는 시일도 많이 걸리고 심사도 까다롭기 짝이 없지만,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처지, 다시 말해 언제나 이스라엘에 당한다는 약자 논리에다가 그들의 위협에 유산들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점을 내세워 fast-track 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언제나 비정상에 가까운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했다.  


이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패스트 트랙, 우선 이름부터 급박한 느낌을 주니, 세계의 시선을 끌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등재방식을 찾기는 힘들다. 그들의 전략은 내가 보기엔 크게 성공작이다. 

이 제도를 통해 팔레스틴은 이스라엘의 부당성을 널리 홍보했다. 이스라엘 대표단 단장은 이번 세계유산위 의장 단상으로 다가가 의장을 협박하는 장면을 연출했으니, 이보다 더한 이스라엘 부당성을 선전하는 효과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어쩌면 더 불쌍한 곳이 이스라엘이라 할 수도 있다.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도, 그들로서는 저리 저항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대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세번째 등재에도 역시나 이스라엘은 온몸으로 저항했다. 


저 등재가 있기 이틀 전, 세계유산 보존문제를 다룬 세계유산위에서 기등재한 유산 중 예루살렘 문제를 이미 다루었다. 이 역시 위험에 처한 유산이기도 하다. 


위험에 처한 유산....

그걸로 계속 예루살렘을 묶어둔다는 것은 이스라엘로는 치욕일 수밖에 없다. 내가 현장을 지켜보지 않아, 또 생중계까지 지켜보지 않아 자신은 없으나, 이를 전하는 유대계 언론과 친아랍계 언론, 그리고 중도적인 외신들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 분야는 헤브론 유산 등재 자체 보다. 그것의 위험유산 등재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헤브론 유산은 세계유산 등재와 더불어 곧바로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도 동시 등재됐다. 2관왕 타이틀을 쓴 것이다. 실상 위험에 처한 유산이 패스트트랙이라는 등재 편법을 쓰는 일이 많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지만,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도 이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위험에 처한 유산에 더욱 민감한가? 논리는 실로 간단하다. 내가 점령 혹은 관리하는 유산인데, 그것이 위험에 처했다? 누구의 탓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 나라 책임으로 귀결한다. 이스라엘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 문제 없는데 왜 위험하다 하는가? 바로 이 심리다.


사이드 열풍이 이는 바람에, 그리고 이스라엘은 언제나 침략자, 팔레스타인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등식이 우리에게 자리잡았기에(이것도 물론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면 다르지만) 우리 사회 일반은 막연히 팔레스타인=좋은놈, 이스라엘=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다. 이는 사이드 시각이다. 물론 국내 기독교인들에게 이는 정반대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봐야 한다. 팔레스틴에, 혹은 그 이전 이스라엘에 우리를 투영해 우리가 그리는 팔레스틴, 우리가 그리는 이스라엘에 만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하필 유네스코일까? 국제관계가 철저한 힘의 논리로 지배된다는 거 반복이 필요없다.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가 깽판치는 유엔이 증명하지 않는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산하 기구 유네스코는 좀 묘해서 그런 힘의 지배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팔레스타인이 회원국 자격을 획득한 가장 큰 힘은 쪽수가 많은 아랍권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들 힘이다. 

폴츠카 관광도시 크라코프(Krakow)에서는 현지시간 2일 개막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제41차 회의(session)가 진행 중이다.

오는 12일까지 계속할 이번 회의에 한국에서는 전연 관심이 없다. 

야심찬 계획에 의하면, 이 회의에서 우리는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자문기구인 이코모스에서 누더기 걸레에 가까운 평가에 최하등급인 '등재불가(not inscribe)' 판정을 받으면서 등재 신청 자체를 자진 철회하고 말았다.

왜 한양도성이 저와 같이 처참한 결과를 빚고 말았는지, 저간의 자세한 사정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내가 이곳저곳 수소문해 알아낸 분명한 사실은 거의 다 F 학점을 맞았고, 개중에 유일하게 진정성(authenticity)에서만 그런대로 좋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이 평가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까닭에 작금 갖은 억측이 사실처럼 난무한다. 

혹자는 성벽을 다 뜯어고쳤기에 그것이 치명타였다 하기도 하지만, 개소리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자세히 공개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 자세한 실상은 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낱낱이 보고되어야 한다.

박 시장은 알아야 한다.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각각 1건씩 제출해 두 건 모두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으며, 일본은 오키노시마 한 곳을 제출해 역시 등재권고를 받았다.

이 등재 시스템도 내년까지만 1국 최대 2건 등재 신청이 가능하며, 그 이후에는 자연 문화유산을 막론하고 1국 1건만 등재 신청이 가능하다.

'세계유산 정책 이대로 좋은가' 시론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소식지 올해 6월호에 실렸다. 

이 원고는 최근 문화재청 주최 공청회 발표문을 다듬었음을 밝혀둔다. 

이른바 우라까이다.


732

유네스코뉴스 2017년 6월호(732호) 발간

ISSUU.COM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