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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5

[문화재 기자 17년] (14) 유홍준을 대체한 최광식 시대의 개막(1) (1) 승승장구하는 최광식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문화유산계로 국한해도 권력이동의 신호탄이었다. 유홍준 시대가 저물고 최광식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내실보다는 이른바 보여주기형 치적 쌓기에 치중했다는 점에서 둘은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한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꽤나 다르다. 그 스타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속성 일람표로 정리할 때가 있을지 모르겠다. 유홍준은 진위 확인은 불가능하나, 들리는 말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교체가 확정된 시기에도 연임에 욕심을 냈다고 한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고 알지만, 주변에서는 모두가 그리 말했다. 이는 무엇보다 당시 이명박 예비 정부 실세로 통하던 이재오와 친분이 보통 이상이인 점.. 2023. 3. 7.
[태안, 해저에서 찾은 경주] (2) 주인공으로 주꾸미가 떠오르고 태안 해저에서 고려청자 9점을 긁어올린 그 소식을 1보와 종합기사로 전한 그날 오후, 나는 별도 박스 기사 하나를 준비해서 내보냈다. 어민 신고로 시작한 해저 조사에서 청자 9점을, 것도 시덥잖은 대접과 유병을 건져올린 데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반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사진 때문이었다. 해저 유물 발견 사실을 언론에 배포하면서 그 조사기관인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는 관련 사진 석 장을 참고자료로 배포했는데, 개중에 이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오판일 수도 있지만, 이 꼴을 보니, 딱 침몰선박이었다. 침몰선박 아니고는 이 꼴이 벌어질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사진 속 청자대접은 파손됐다. 한데 이 파손 청자대접은 인양한 청자 9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보도자료를 접하고 문환석 당시 담당 .. 2019. 12. 2.
청와대 광화문 시대를 준비한 유홍준의 꺾인 꿈 오늘 오후 우리 공장 정치부발로 청와대 광화문 이전이라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 무산됐다는 긴급 기사가 나갔다. 아래는 그것을 종합한 정치부 기사다. 대통령집무실 광화문 이전 보류…현정부서 사실상 무산(종합) 이를 둘러싼 정치성이야 내가 이 자리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문 대통령 캠프에서야, 나름 자신 있다 해서, 그리고 박근혜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몰아부치면서, 그 대항마로, 자신들은 시민과 국민에 가까이 가는 정권임을 선전할 요량으로 청와대 광화문 이전 안을 들고 나온 것으로 아는 정도가 전부다. 그 추진을 위해 현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광화문시대자문위원회'라는 임시기구를 출범하는가 하면, 그 위원장에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을 앉히면서 공약 실천을 위한 가속 페달을 밟아갔다. 이 위원회가 독특.. 2019. 1. 4.
산 사람을 죽었다 한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자기 책을 낸 사람이 자기 원고를 보지 않았음이니, 이는 우롱이요 사기다. 헛되게 쌓은 이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호탄이다. 뭐, 그걸 보호하겠답시며, 저자보다 위대한 출판사는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일삼는다. 그 변명, 기록으로 남기고자 그대로 인용하고 그대로 써 줬다. 왜? 그래야 어처구니 없는 우롱이 후세에 전하는 까닭이다. 도서출판 창비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산사편'을 냈다가 부랴부랴 회수하는 소동을 겪었으니, 지금도 멀쩡히 활동하는 미술사학자 강우방(77)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을 죽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이런 소문을 접한 나는 우선 강우방 선생한테 직접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 2018. 9. 1.
문화재위 회의록 공개를 거부한 유홍준 유홍준이 문화재청장에 임명되고서 얼마 뒤의 일이다. 그러니 아마 2005년 하반기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 문화재위 회의록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개선을 촉구한 적이 있다. 내가 그에게 말한 요지는 이랬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 곧 결정 내용만 덩그러니 게재하는 일은 말도 안 된다. 문화재위 심의 의결은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오고간 발언론이 기록되지도 않고, 공개도 안되는 것은 역사의 죄악이다. 국회가 왜 모든 발언록을 공개하는가? 시의회 구의회도 모든 발언록 기록하고 공개하며, 하다 못해 일선 학교에서도 학급 회의 같은 것은 발언록을 남긴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문화재위가 왜 이 따위로 하는가? 모든 국민은 알아야 한다. 왜 그런 결정을 .. 201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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