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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29)


산속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다(避暑山亭)


  송 조량파(趙良坡) / 김영문 選譯評


무성한 숲 깊은 곳

시원하거니


바위 틈 샘물 소리

흥취 돋우네


두건 높이 걸어놓고

편히 쉬는데


불볕 바람 어떻게

산장에 오리


茂林深處散淸凉, 石罅泉聲引興長. 高掛角巾舒嘯傲, 炎飆那得到山莊.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옛날보다 여름이 더워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옛날에도 여름은 불볕더위의 계절이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자는 임시로 시원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몸의 열기를 식히는 선비들의 피서법이었다. 정자 내부에 온돌 시설을 갖춰 겨울에도 거처가 가능하게 만든 곳도 있지맡 대부분의 정자는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한 임시 거처였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 잡은 유명 누정(樓亭)에 올라보면 시원한 산바람과 청량한 계곡물이 자연 에어컨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냉매를 이용한 현대 에어컨보다 훨씬 상쾌하고 안락하다. 아름다운 산수와 청량한 공기를 단번에 즐길 수 있는 정자에 앉으면 그야말로 “삼정승 벼슬로도 이 강산 안 바꾸리(三公不換此江山)”란 시구가 저절로 읊어질 정도다. 실제로 곳곳의 유명 정자에는 시인묵객들의 시판이 줄줄이 걸려 있다. 쾌적한 자연 에어컨 속에서 관모를 벗어던지고 산천의 절경을 시로 읊고 있으면 불볕더위가 저 멀리로 물러날 것임에 틀림없다.



한시, 계절의 노래(95)


임호정(臨湖亭)


 당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가벼운 배로

좋은 손님 맞으러


여유롭게

호수 위로 나왔네


정자 마루에서

술동이 마주하니


사방 호수에

연꽃이 피네


輕舸迎上客, 悠悠湖上來. 當軒對尊酒, 四面芙蓉開.


왕유는 성당(盛唐) 산수전원파의 대표 시인이다. 그는 개원(開元) 말년 망천(輞川)에 은거하여 그곳 산수와 혼연일체가 된 삶을 살았다. 그곳의 삶을 읊은 시가 그의 대표작 『망천집(輞川集)』 20수다. 앞에서 읽어본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채(鹿柴)」도 『망천집』 20수에 들어 있다. 북송의 대문호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평하여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之詩, 詩中有畫, 觀摩詰之畫, 畫中有詩.)”라고 했는데, 이 평가에 가장 걸맞은 시집이 바로 『망천집』이다. 이 시를 포함하여 그의 『망천집』을 읽어보면 산수화 같은 풍경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과 융화된 아주 작은 인물이 등장한다. 산수화 용어로 이런 인물을 ‘점경인물(點景人物)’이라고 한다. 산수를 즐기는 주인이면서 산수의 일부로 녹아든 손님이다. 산수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는 주체이지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또 그는 광활한 우주의 일부로 고독한 존재이나 우주의 모든 생명과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사유의 각자(覺者)이기도 하다. 그가 좋은 벗을 맞아 술잔을 기울이므로 사방 연못 위에 연꽃이 피는 게 당연하다. 굴원이 벌써 노래했듯 연꽃은 군자의 꽃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정경교융(情景交融),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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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송강정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3수(首)

 

[1]

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 되었나니,     借名三十載,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오.      非主亦非賓。

띠풀로 겨우 지붕만 이어놓고서,      茅茨纔盖屋,

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     復作北歸人。

 

[2]

주인이 객과 함께 이르렀을 때,        主人客共到, 

저녁 호각소리에 물새 놀랐더라.      暮角驚沙鷗。 

물새들 주인과 객을 배웅하려고,      沙鷗送主客, 

물속 모래톱에 도로 내려앉는다.      還下水中洲。 

 

[3]

밝은 달 적막한 뜰에 떠 있거늘,       明月在空庭, 

송강정사 주인은 어디를 가셨소.      主人何處去? 

낙엽이 수북하게 사립문 가렸고,      落葉掩柴門, 

바람과 소나무 밤 깊도록 이야기.     風松夜深語。 

 


송강정 각석



[해제] 

송강정사(松江亭舍)는 증암천(甑巖川)이라고도 일컫는 담양 죽녹천(竹綠川) 가에 있는 송강정으로 원래 이름은 죽록정이었다. 정철의 호 송강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정철이 50세이던 1585년(선조18) 양사(兩司)의 논척을 받아 고양(高陽)에 물러나 지내다가 청평(昌平)에 내려와 살던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수에서 ‘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이라고 한 것은 그가 젊었을 때 창평에 살며 여기에서 송강이라는 호를 딴 것을 이른다. 송강이라는 호를 지었음에도 삼십년을 오지 못하여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는 송강정사에 오래도록 머물 생각은 없었고 ‘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의 것이었다. 다시 출사하게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이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 


둘째 수에서 함께 이른 ‘주인과 객’은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 송강 한 사람이다. 그가 송강정사에 이른 것은 ‘모각(暮角)’이었다. 모각은 저녁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인데, 송강 자신이 이미 모년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20대에 노닐던 곳에 50대에 접어들어 찾아오자 ‘사구(沙鷗)’ 즉 모래톱의 물새는 놀라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가 송강정사에 오래 머물 사람이 아니기에 머지않아 송강을 배웅하려고 모래톱에 내려앉는다. 


셋째 수에서는 그가 도로 서울로 떠나면 비게 될 송강정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오른 뜰에 주인은 어디로 떠나고 사립문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이고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윙윙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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