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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4)

눈이 오려나(雪意)

[宋] 주희 / 김영문 選譯評 


저녁 무렵 뜬 구름이
사방에 평평하더니

북풍이 노호하며
새벽까지 불어대네

추운 창에 온 밤 내내
정신 맑고 잠이 안 와

삼나무 대나무 잎에서
나는 소리 듣고 있네

向晚浮雲四面平, 北風號怒達天明. 寒窗一夜淸無睡, 擬聽杉篁葉上聲. 

나이가 들어서 잠이 없어진 것일까? 정좌(靜坐)에 들어 격물치지(格物致知)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것일까? 삼나무와 대나무 잎새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천지자연의 리(理)를 알리는 자명종일까? 과연 격물을 통해 치지에 이를 수는 있을까? 왕양명(王陽明)은 정좌를 통해 대나무를 바라보며 격물을 추구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병만 얻었다. 이에 리(理)는 물(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심(心)에 있을 뿐이다라고 선언했다.(心卽理) 정좌, 참선, 묵상, 명상 등은 모두 형이상학의 세계다. 쉽게 말하면 본래의 마음자리를 닦아 도(道)에 이르는 과정이다. 타이완의 현대 학자 남회근(南懷瑾)은 『대학(大學)』의 삼강령(三綱領)을 사강령(四綱領)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학지도(大學之道),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그것이다. 삼강령이 마침내 도(道)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참선과 정좌 등을 통해 유, 불, 선 삼도(三道)의 이치에 무불통지한 남회근도 역대로 중국은 한 번도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망발을 늘어놓았다. 이를 보면 철저한 마음공부를 통해 도달한 형이상학의 세계가 형이하학의 배움으로 습득한 망상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듯하다. 이 때문에 선(禪)과 교(敎)가 박 터지게 싸우고 있을까? 리(理)는 물(物)에만 있지 않고, 마음(心)에도 있으며, 마음(心)에만 있지 않고 물(物)에도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도(道)란 아무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니다. 


  1. 연건동거사 2018.12.13 21:32 신고

    양명학은 돈오돈수이죠. 성리학은 점오점수-.

  2. 연건동거사 2018.12.13 21:37 신고

    삼강령이 마침내 도(道)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 양명학에 관한 한 맞는 이야기 입니다.

    일반적으로 양명학을 수식할때 나오는 지행합일은 우리는 아는 것은 행해야 한다, 고 새기는데 실제로 양명학자의 논리를 보면 "알게되면 행하게 된다"이죠. 반대로 대우명제인 "행하지 않는다면 아는것이 아니다"도 참이죠. 꺠닫는 순간에 스스로 행하게 되니 이것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이죠.

  3. 연건동거사 2018.12.13 21:38 신고

    사실 양명학의 입장에서 대학의 팔조교를 보면 성의-정심 부분은 구체적으로 뭘 가리키게 되는지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죠. 성리학이라면 아주 간단히 설명가능한데.

매화를 읊은 절구 두 수[梅花兩絶句] 


[南宋] 주희(朱熹, 1130~1200) / 기호철 譯 




구례 화엄사 홍매




개울가 매화꽃도 이미 피었으련만       溪上寒梅應已開 

친구는 한 가지 꺾어 보내질 않네        故人不寄一枝來 

하늘 끝에 어찌 향기론 꽃 없을까        天涯豈是無芳物 

무심한 그대 향해 술잔을 든다오         爲爾無心向酒杯 

  

깊은 골짜기에 졸졸 시냇물 흘러가고   幽壑潺湲小水通 

초가엔 보슬비 오는데 대울도 없구나   茅茨煙雨竹籬空 

울 가 매화나무엔 꽃이 흐드러졌는데   梅花亂發籬邊樹 

앙상한 가지에 붙어 북풍 원망하는 듯  似倚寒枝恨朔風




세모[殘臘] 


[南宋] 주희(朱熹, 1130~1200) / 기호철 譯評  


공주 공산성



겨울 끝자락에 봄볕이 생겨나고     殘臘生春序   

지루한 궂은비 세밑이 다해간다     愁霖逼歲昏  

꽃망울 곱고도 산뜻한 꽃 피우고    小紅敷艶萼  

갖가지 신록이 해묵은 풀 덮도다    衆綠被陳根  

깊은 골짝 샘물이 졸졸 흘러오니    陰壑泉方注  

들판 물은 콸콸 흐르려 하는구나    原田水欲渾  

농가에서는 봄농사 때 닥쳐오니     農家向東作  

온갖 일들이 사립문에 모여드네     百事集柴門  

     

《주자대전》 권1에 수록된 시다. 연말에 봄이 다가오는 농촌을 담담하게 읊은 시이다. 

3행 소홍(小紅)은 연분홍빛 꽃망울을 이르는 말이다. 

6행 혼(渾)은 큰 물줄기가 흐르는 의성어이다. 


단양 도담삼봉



한시, 계절의 노래(194)


책보다가 느낀 바 있어(觀書有感) 


[宋 주희(朱熹)


반 뙈기 네모 연못

거울인양 펼쳐져서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다 함께 배회하네


묻노니 어떻게

그처럼 맑은가


원천에서 샘물이

흘러오기 때문이지 


半畝方塘一鑒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남송 주희(朱熹)는 조선시대 유학자들 사이에서 공자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았다.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이 퇴계와 율곡을 위시한 우리나라 선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주희의 업적은 문학보다 철학이나 사상 부문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성리학을 빼고는 중국, 한국, 일본의 사상사를 논할 수 없다. 이런 연유로 중국문학사에서도 주희의 문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희 시를 읽어보면 그가 의외로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희 시는 바로 「권학시(勸學詩)」다.(제목이 「우성(偶成)」으로도 알려져 있음)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 순간의 세월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리. 연못 가 봄풀은 꿈도 깨지 않았는데, 섬돌 앞 오동나무 벌써 가을 소리 전하네.(小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내용 중심은 물론 배움을 강조함에 놓여 있지만 후반부 두 구만 놓고 보면 짧은 인생과 덧없는 세월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묘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어릴 적에는 봄풀을 보고 가을 소리를 듣는다는 발상이 너무 심한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그 또한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다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런 훈계 시가 부모님이나 선생님 잔소리 같아서 그렇게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체로 주희의 다른 시들도 이런 잔소리 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이데올로기가 생경하게 겉으로 드러난 현대의 선전시와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위의 시도 마찬가지다. 제목이 ‘독서유감(讀書有感)’이므로 전체 시 전개를 책 읽기 과정의 비유로 보면서, 궁극적으로는 성리(性理)의 본질을 인식하기 위한 격물(格物)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시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비친 맑은 연못 한적한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시경(詩境)에 도달했다고 할 만하다. 거기에 제목처럼 책 읽기 과정이 흔적없이 녹아있으므로 주희는 이미 사상과 형상이 일체화한 천서(天書) 읽기의 경지에 이르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주희 시는 어떤 경우에나 사상이 문학적 형상보다 앞서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물론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나 문학적 형상 속에 그의 사상이 완전히 녹아 든 작품들에까지 사상적 잣대만 들이대는 것은 문학을 과학이나 신문기사로 논단하려는 자세와 다를 바 없는 태도가 아닌가 한다.

  1. 아파트담보 2018.10.11 20:40 신고

    저 권학시가 정말 주희작이라면, 그가 위대한 아카데미언 였으니 만큼, 해석을 달리 해볼수도 있을 것입니다. 봄학기에 시험을 망친 것 메이크업하기도 전에 가을학기 중간고사가 닥쳐온다, 방학때 뭘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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