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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초상화에 부친 찬가〔對右菴金君像贊〕


남이 남의 초상화를 그리면 그 사람의 고움과 추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반면, 내가 나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면 내 주견에 제약을 받는다. 그런 까닭에 김군(金君)이 신군(申君)을 시켜 자기 얼굴을 그리도록 했다. 문인은 자기 글에 서문을 쓰지 않고, 명사는 자기 자신의 전기(傳記)를 쓰지 않는 옛날의 법에서 나온 생각이다.

세상에서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김군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예술가로서의 재능 때문에 김군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이제 김군의 초상화를 보니 영롱한 옥인 듯, 향기로운 난초인 듯하여 듣던 것보다 훨씬 나은 인물이다. 이야말로 그저 화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온아(溫雅)한 군자로구나.

그랬더니 김경오(金景五)와 정성중(鄭成仲)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 김군의 용모와 행동거지를 직접 보시고, 그가 하는 말을 직접 들어보신다면 이 초상화가 김군의 진면(眞面)을 7할밖에 드러지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본관 여주(驪州). 평생 재야문사로 18세기 조선 문단에 우뚝한 자취를 남긴 이용휴(李用休.1708~1782)가 남긴 글 중 하나이다. 앞선 조희룡의 글에서 보았듯이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라는 인물이 18세기 이후 조선 화단에서, 특히 사대부들 사이에서 일종의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이런 평가가 이미 당시에 존재했음을 두 글을 단적으로 엿보이고 있거니와, 위에서 말한 김홍도가 자기 초상을 그리게 했다는 또 다른 화공 申君은 혹여 신윤복일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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