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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 作 이순신 표준영정>

이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12월17일(월)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가량 국립고궁박물관 1층 강당에서 개최한 ‘표준영정ㆍ동상 심의, 이대로 좋은가? - 제도 운영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 -’의 김태식 토론문이다. 토론집에 실린 문장은 이곳에 전재하면서 오자와 비문 등을 일부 손질했지만 논지는 그대로다.(2012.12.18)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함이 진정한 앎이다”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조선 세종시대 이른바 6진을 개척했다는 김종서(金宗瑞)는 기실 文班과 武班의 兩班 지식 테크노크랏이 지배계급을 형성한 조선사회에서는 철저히 文班이다. 이런 그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극이 국내에서는 끊임없이 생산되거니와, 그런 드라마 중에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인물이 얼마 전에 타계한 탤런트 조경환이다. 그가 김종서로 扮한 TV 사극 이름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만큼 그가 주는 김종서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조경환과 비슷한 연배의 다른 연기자로 역시 고인이 된 김무생이 있다. 김무생이라면 나는 조선왕조 개창자 이성계를 떠올린다. 태종 이방원이라면 유동근, 삼봉 정도전이라면 김흥기 이런 식으로 요즘 나의 뇌리가 매치업을 이루곤 한다.

이들 조선시대 인물 중에서 아마도 생전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그림이 전하는 인물은 이성계가 유일할 것이다. 이씨 왕실의 발상지 전주의 경기전에 봉안한 그의 지금 초상화는 비록 고종 시대에 모사(模寫)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전 시대부터 내려오는 초상화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모습이 이성계에 가깝다고 해도 좋다. 나아가 이 초상화와 그를 扮한 김무생을 보면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런대로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타 인물은 지금의 우리가 실제 모습을 알 수 있는 창구가 없다. 이 중에서도 실제와 전연 안 어울리는 매치업이 조경환-김종서다. 조경환은 시기별 넘나듦이 있겠지만 몸무게 100㎏ 이상을 헤아리는 거구였음이 분명하거니와, 드라마 제작진이 이런 그를 김종서로 내세운 까닭이 김종서는 호방한 무인으로 그리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대 그를 증언하는 기록은 이와는 전연 달라 실록을 보면 그를 일러 세종이 체구는 작고 무예도 부족해서 장수로 쓰기는 힘들다는 증언을 채록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김종서라고 하면 대뜸 조경환을 떠올리고, 그런 조경환을 통해 조선시대의 김종서를 상상케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늘 이 자리에서 ‘표준 영정․동상 심의제도’를 두고 찬반 토론에 부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 제도의 도입과 전개, 그리고 그 효능이라든가 현 시점에서 필요한 보완점에 대해서는 표준영정동상심의위원회 위원인 조용진 교수께서 훌륭하게 설명해 주셨다고 본다. 나아가 이 제도 자체가 태동한 시대의 배경이라든가,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초래한 문제점을 착목하면서 이 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았으며, 그런 견해를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재동 교수께서 집약하고 대변해 주셨다고 나는 본다.

이 제도 존치 여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다면 단연코 폐지해야 한다는 쪽이다. 하지만 결론이 같다고 해서 그 이유조차 박 교수님과 같지는 않다. 실은 왕청나게 다르다.

나는 지금 논란이 되는 이 제도가 1970년대 초반에 일어난 전국적인 위인동상 건립 붐, 특히 그것을 주도한 ‘애국선열조상건립’의 흐름에서 비롯되었고, “박정희 정권의 이데올로기 선전 도구·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정통성 부재를 ‘반공, 안보위기, 총력안보, 통일, 민족중흥’ 등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메우고자 했”으며, “애국선열조상건립도 그러한 이데올로기 선전 도구의 하나였”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는 보지 않는다. 나아가 그렇게 제작된 영정이나 초상이 “친일화가가 그”렸다고 해서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이 누구의 손으로 제작되었건 그 결과물이 “실어증 환자 같”다고 해서, 그것이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결코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고 본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모든 영정은 이미 관속에 들어간 백범 김구나 안중근을 관에서 끄집어내어 그리게 해야 한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예술에는 문외한이지만 민족주의 정신에 투철해야 그 작품이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나아가 친일파라면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닐 터이다. 20세기 친일파도 왜적을 물리치고 왕조국가를 수호한 이순신의 동상도 만들 수 있고, 초상도 그릴 수 있다. 20세기 벽두의 내셔널리즘을 그러한 내셔널리즘이라고는 씨앗도 없던 300년 전 조선 중기, 임진왜란에 대입하고 투영할 수는 없다.

결론은 버킹검이다. 요는 지금의 표준 영정ㆍ동상 심의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결론은 내가 박 교수님과 같다. 하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과 논리는 判異하다. 나는 이런 제도를 박정희 정권이 도입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도입 이유가 “정통성 부재를 ‘반공, 안보위기, 총력안보, 통일, 민족중흥”으로 돌파하고자 한 데 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찬동을 보내고 싶지 않다. 이런 논리를 극단적으로 뒤집으면 박정희가 아닌 장면 정권이 도입했으면, 그리고 이순신 동상을 백범이 제작했다면 그 제도를 존속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보건대 저런 동상과 영정은 (그것이 표준과는 상관없이) 과거 전통 왕조시대를 벗어나 국민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순신과 같은 영웅은 박정희만, 더구나 정통성 부재를 가리기 위한 군사정권만이 호명(好名)한 것도 아니다. 열렬한 내셔널리스트들인 백암 박은식이나 단재 신채호도 영웅의 재림을 갈망했다. 그런 재림이 반세기 정도가 흘러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상으로써 구현한 형태가 바로 영정이고 동상이다. 그런 영정과 동상은 나름대로 국민국가가 표방하는 국민통합, 국가통합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는 없다. 요컨대 박정희가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떤 경우에도 성립 불가능이다.

나는 개인이나, 문중, 혹은 특정 단체가 누군가를 선양하기 위해 제작하는 영정이나 동상을 국가가 간섭할 수도 없거니와 간섭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내가 오늘 논의 주제인 ‘표준 영정․동상 심의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그것을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의 강압적 폭력 아래 특정한 작품을 ‘표준’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작가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목적으로 제작한 특정 작품을 국가가 개입해 폭력적으로 그것을 ‘표준’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런 폭력적 표준이 아무런 역사상의 전거(典據)를 동반하지 않음에랴?

돌이켜 보면 영정이나 동상은 그 가장 주된 기능이 追慕에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추모의 대상은 추상으로만 남을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눈으로 만질 수 있고 내가 말을 걸 수 있고, 내가 접촉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로 구상화해야 한다는 욕망에 늘 우리는 노출돼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동상과 초상이 그렇게 탄생하는 것으로 안다. 요즘은 그 자리를 영상이나 사진이 대체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1세기 이상을 올라가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런 욕망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작가적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인물을 나름대로 창안하는 예술행위는 분명히 존숭되어야 하겠지만, 그런 결과물 중 특정한 것을 골라 국가의 폭력으로 ‘표준’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공자가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진정한 앎이니라”.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놔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순전히 작가의 창작력의 범위에 두어야지, 그것을 끄집어내어 등급화면서 오직 이것만이 ‘표준’이라 할 수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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