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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작루(鸛鵲樓)에 올라

 

詩名: 登鸛鵲樓(등관작루)

作者: 왕지환(王之渙. 688~742)

詩體: 五言絶句

詩文: (押尤韻)

출전 :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

 

白日依山盡 밝은 해 산에 기대어 저물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네

欲窮千里目  천리 끝 다 보고파

更上一層樓  다시금 누대 한층 더 오르네

 

註釋

: 관작루(鸛鵲樓). 鸛雀樓라고도 쓴다. ‘鸛雀’ 혹은 ‘鸛鵲’이란 황새를 말한다. 긴 목과 붉은 부리, 흰 몸과 검은 꼬리 깃이 있다. 일명 부부(負釜), 혹은 흑고(黑尻), 배조(背竈), 혹은 조군(皁君)이라고도 한다. 관작루란 누각 이름으로, 山西의 포주부(浦州府. 지금의 영제현<永濟縣>) 서남쪽에 있었으니 그 위에 관작이 서식했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황하가 범람함에 따라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이 관작루에 대해서는 北宋 시대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 卷25 藝文2에 다음과 같은 증언이 남아있다.

 

하중부(河中府)의 관작루(鸛雀樓)는 3층이다. 앞에는 중조산(中條山)을 바라보고 아래로는 대하(大河)를 굽어본다. 唐나라 사람들이 남겨 놓은 시들이 많으나 다만 이익(李益)과 왕지환(王之渙)과 창당(暢當)의 3편이 그 정경을 형상할 수 있었다.

 

李益의 詩에 이르기를

 

鸛雀樓西百尺牆

汀洲雲共茫茫

漢家簫鼓隨流水

魏國山河半夕陽

事去千年猶恨速

悉來一日卽知長

風煙並在思歸處

遠目非春亦自傷

 

이라 했으며

 

王之渙의 詩에 이르기를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이라 했다. 暢諸의 詩에 이르기를

 

迥臨飛鳥上

高出世塵間

天勢圍平野

河流入斷山

 

이라 했다.

 

왕지환(王之渙. 688~742)이란 시인을 소개하면, 山西 太原人이며 일찍이 冀州 衡水主簿에 임명되었으나 毀謗을 받아 辭官하고 歸於鄉里했다. 在家하며 閑居하기를 十五年, 後에 文安縣尉가 되었다. 慷慨하며 大略이 있었으며 倜儻에 異才가 있고 工於詩하니 文名 역시 動於一時했다. 天寶 年間에 高適ㆍ王昌齡ㆍ崔國輔 等과 더불어 唱和하니 靳能撰(墓誌銘)이 그를 稱하기를 “嘗或歌從軍, 吟出塞, 噭兮極關山明月之思, 蕭兮得易水寒風之聲”이라 했다. 其作品은 深受樂工喜愛하여 一詩가 出할 때마다, 즉각 聲律에 올려져 人口에 傳誦했다. 可惜하게 作品은 多已 散佚하여 不傳하며 겨우 《全唐詩》에 絕句 六首를 저록했을 뿐이요 五絕〈登鸛雀樓〉ㆍ七絕〈涼州詞〉는 모두 盛唐詩中 代表作으로 꼽힌다. 

아래 소개하는 시는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랑 같이 감상하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6roNkyGBM

중국 고대 연애시 앤쏠로지인 《옥대신영玉臺新詠》 권1에 後漢시대 진가(秦嘉)라는 사람이 병들어 친정으로 요양간 아내 서숙(徐淑)에게 보낸 연작시 3편이 증부시(贈婦詩)라는 제목으로 연달아 수록되었으니, 그 서문에는 작자 진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秦嘉는 字를 사회(士會)라 하며, 농서(隴西) 사람이다. 군상연(郡上掾)이 되어 그의 처 서숙(徐淑)이 병이 들어 본가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직접 얼굴을 볼 수 없어 시를 주었으니 그 시는 다음과 같다.(秦嘉. 字士會. 隴西人也. 為郡上掾. 其妻徐淑寢疾. 還家. 不獲靣別. 贈詩云爾)


첫 번째(其一)

人生譬朝露 인생은 아침이슬 같고 

居世多屯蹇 세상살이 고난 많다오

憂艱常早至 근심과 간난 늘 빨리 오고

歡會常苦晚 기쁨과 만남 늘 늦어 괴롭소 

念當奉時役 시절 임무 받들어 떠나려니 

去爾日遙遠 떨어질 지낼 날 멀기만 하오 

遣車迎子還 수레 보내 당신 맞으려 했지만

空往復空返 공수레로 갔다 공수레로 오구려 

省書情悽愴 편지 살피니 마음 서글퍼져 

臨食不能飯 밥을 보고도 차마 먹을 수 없소

獨坐空房中 홀로 앉아 빈방 지키니 

誰與相勸勉 누구와 다독거리겠소 

長夜不能眠 긴 밤에 잠 못 이루고 

伏枕獨展轉 베개 깔고 홀로 뒤척이니 

憂來如尋環 걱정 일어나 뱅뱅 도는 듯하지만 

匪席不可卷 내 마음 돗자리 아니라 말지 못하는구려


이에서 보듯이 첫 번째 시는 신병 치료차 친정으로 돌아간 직후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 시는 아내의 친정 복귀 직후 집안의 휑뎅그레한 풍광과 그에서 격발하는 작자의 허전함과 애절함을 표현했다.


어느 독거중년


두 번째(其二)

皇靈無私親 신령은 사사롭게 편애 않으니

為善荷天祿 착한 일엔 하늘이 복을 주신댔소

傷我與爾身 가슴 아프오 당신과 나 

少小罹煢獨 젊을 적 기댈 곳 없이 홀로되어 

既得結大義 결혼이란 큰 뜻 이뤄지만 

歡樂若不足 함께하는 즐거움 아직 모자란듯 

念當遠離別 멀리 이별할 일 생각하며 

思念敘欵曲 그대 향한 맘 곡진히 펼쳐봅니다 

河廣無舟梁 황하는 넓어 건널 배조차 없고 

道近隔邱陸 길은 가까우나 구릉언덕에 막혔다오

臨路懷惆悵 떠나려니 가슴 속 먹먹해져 

中駕正躑躅 가다가 머뭇머뭇한다오 

浮雲起高山 뜬 구름 높은 산에서 일고 

悲風激深谷 서글픈 바람 깊은 계곡 치는구려

良馬不回鞍 좋은 말이라 안장 돌리는 일 없고 

輕車不轉轂 가벼운 수레바퀴 돌리지 않는다오

針藥可屢進 침과 약은 자주 댄다 하나 

愁思難為數 시름은 헤아리기 어렵다오 

貞士篤終始 정절 있는 남자 맘 변함없지만 

思義不可屬 그대 향한 생각 다 적을 수 없소


두 번째 시는 친정으로 떠나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역시 주조를 이루나 배경은 작자의 心相이다.


세 번째(其三)

肅肅僕夫征 어서어서 종들이 갈길 서두르고

鏘鏘揚和鈴 쨍그러렁 수레방울 소리내네 

清晨當引邁 이른 아침 먼 길 떠나려 

束帶待雞鳴 혁대 메고 닭울음 기다리며 

顧看空室中 텅 빈 방 돌아보니 

髣髴想姿形 당신 모습 있는 듯 

一別懷萬恨 한번 이별에 만 가지 회한 인다오

起坐為不甯 일어나 앉아도 편치 않으니 

何用敘我心 무엇으로 내 마음 펼치리오 

遺思致欵誠 그리움 전하며 정성깃든 선물 보낸다오 

寶釵可耀首 보석 비녀론 머릴 빛나게 하고 

明鏡可鑒形 밝은 거울론 얼굴 비출 수 있소 

芳香去垢穢 꽃다운 향기는 묵은 때 없애고 

素琴有清聲 소금에선 맑은 소리 난다오

詩人感木瓜 시인은 모과 선물에 감동하여 

乃欲答瑤瓊 아름다운 옥으로 보답하려 했다지요

媿彼贈我厚 부끄럽소 당신이 보내준 선물에 비하면

慙此往物輕 할말없소 내가 보내는 선물에 비하면 

雖知未足報 보답이 모자람을 내 알지만 

貴用敘我情 내 마음 알림이 소중하오


이 세 번째 시는 친정에서 요양하는 아내를 두고 서울로 떠나야 하는 작자를 노래했다. 종들이 서두르는 수레는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다. 작자는 隴西 사람이다. 한데 그는 이곳의 아전 혹은 서리로서 회계와 호구 조사 등의 예산 전반을 담당하는 군상연(郡上掾)으로 해마다 때가 되면 서울로 상경해 중앙조정에다가 郡의 재정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서울로 가는 발걸음은 바로 이런 공무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편지에 병든 아내 서숙은 어떤 답장을 보냈는가?

같은 옥대신영에는 그에 대한 아내의 답가가 ‘秦嘉 妻 徐淑 答詩 一首’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著錄되었다.


妾身兮不令 첩은 몸이 편치 못하여 

嬰疾兮來歸 병 걸려 친정에 왔습니다

沉滯兮家門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지만

歷時兮不差 날이 가도 차도가 없네요 

曠廢兮侍覲 당신 모시는 일 팽개치니 

情敬兮有違 정성스런 공경 어겼답니다 

君今兮奉命 당신은 지금 나랏일 받들어

遠適兮京師 멀리 서울로 떠나시지요 

悠悠兮離別 아득아득 이별은 멀고요 

無因兮敘懷 가슴에 품은 맘 말할 수 없네요

瞻望兮踴躍 하늘 쳐다보며 동동 구르다가 

佇立兮徘徊 우두커니 선 채 서성일 뿐 

思君兮感結 당신 생각에 감정 북받치는데

夢想兮容輝 꿈속에서 멋진 당신 모습 그려요

君發兮引邁 당신 먼 길 떠나시면 

去我兮日乖 저와 떨어질 날 갈수록 많겠지요 

恨無兮羽翼 한스럽습니다 날개 없으니 

高飛兮相追 높이 날아 당신 따를 수 없음이 

長吟兮永歎 길게 신음하며 오래 탄식하니 

淚下兮霑兮 눈물 흘러 옷깃을 적신답니다


둘은 어떻게 되었는가? 남편 진가는 서울로 갔다가 그곳에서 눌러앉아 黃門郞이라는 중앙관직에 임명되었다가 이내 죽으니, 친정에 남은 아내 또한 이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아래 텍스트는 《옥대신영玉臺新詠》 卷1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제목 왕소군사(王昭君辭)의 '사辭'란 굴원의 대표작을 《초사(楚辭)》라 하거니와, 이는 초 지방 노래라는 뜻이니 이에서 비롯되어 왕소군을 소재로 한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하다. 이 시에는 아래와 같은 서문에 있거니와, 이 서문이 《玉臺新詠》 찬자의 것인지, 아니면 왕소군사의 원래 저자인 석숭石崇의 것인지 지금 단안은 못하겠지만, 후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왕소군상. 연합DB..북방 흉노 선우가 왕소군을 왕비로 맞이하는, 혹은 그와 함께 마상 활보하는 모습을 형용한다.



석숭(249~300)은 서진시대를 대표하는 사치가요 권력가였다가 나중에 패가망신했다. 그를 둘러싼 사치 행각은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산발한다.

왕명군(王明君)이란 본래 왕소군(王昭君)인데, 曺나라 황제 문제文帝의 휘諱에 저촉된다 해서 이름을 고쳤다. 흉노匈奴가 강성하여 漢에다가 청혼을 하니 元帝가 詔를 내려 後宮 중에서 良家 女子인 명군明君을 골라서 그의 배필로 삼게 했다. 옛날에 公主가 오손(烏孫)에 시집을 가면 비파琵琶로 마상馬上에서 음악을 연주케 하여 길을 떠나는 이의 마음을 위로했으니 明君을 전송할 때도 이와 같았다. 그 새로 지은 곡에는 애상의 소리가 많아 그것을 종이에다가 펼치니 가사는 다음과 같다.(王明君者, 本為王昭君, 以觸文帝諱, 故改. 匈奴盛請婚於漢, 元帝詔以後宮良家女子明君配焉. 昔公主嫁烏孫, 令琵琶馬上作樂, 以慰其道路之思, 其送明君亦必爾也. 其新造之曲, 多哀聲, 故敘之於紙雲爾)

 

我本漢家子  저는 본디 한 왕실 여자랍니다

將適單于庭  선우 궁궐로 시집 가려는데

辭決未及終  이별한단 말 채 끝나기 무섭게

前驅已抗旌  앞서 끌 수레는 깃발 올렸네요

僕御涕流離  마부들이 이별에 눈물 적시고

轅馬為悲嗚  마차 끌 말은 고통스레 우네요

哀鬱傷五內  애잔한 마음에 오장이 상하는듯

泣淚霑珠纓  흐르는 눈물 진주영략 적셔요

行行日已遠  가고 또 가니 날마다 멀어져

乃造匈奴城  이윽고 흉노 도읍에 닿았어요

延我於穹廬  저를 게르로 맞아들이고는

加我閼氏名  저한테 알지라는 이름 덧붙이네요

殊類非所安  저와는 다른 족속이라 편치 않고

雖貴非所榮  귀하다지만 영광스럽지 않아요

父子見凌辱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욕보이니

對之慙且驚  그네들 마주하니 부끄럽고 놀랄뿐

殺身良未易  죽는 일도 정말로 쉽지는 않아

默默以苟生  숨 죽이며 살아가는 수밖에요

苟生亦何聊  구차한 삶 어디에다 기댈까요

積思常憤盈  쌓인 그리움만큼 늘 울분 가득

願假飛鴻翼  바라노니 기러기 날개 빌려

棄之以遐征  이 신세 버리고 멀리 달아나고파요

飛鴻不我顧  날아가는 기러기 저는 아랑곳없으니

佇立以屏營  우두커니 선 채 서성이기만 합니다

昔為匣中玉  옛날엔 보석함 구슬 같다가

今為糞上英  지금은 똥에 핀 꽃 신세랍니다

朝華不足歡  아침 꽃도 반길 처지 아니니

甘為秋草並  억지라도 가을풀과 함께할테요

傳語後世人  나중 사람들께 한마디 남깁니다

遠嫁難為情  멀리 시집가선 정들기 힘드노라고


2008 베이징올림픽 기간 전시한 중국 역대 4대 미녀. 왼쪽부터 차례로 초선(貂嬋)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연합DB


"나는 똥 속에 핀 꽃이랍니다." "귀하다지만 영광스럽지 않아요"

무수한 중국 시객이 왕소군이 되어 이리 읊었다. 어떤 경우에도 소군은 슬퍼야 했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흉노 땅에선 즐거움이 없어야 했으며, 언제나 남쪽을 바라보며, 한 왕실을 그리워해야 했다. 그렇게 소군은 언제나 중원이 그리는 한족의 슬픔과 분노를 대변해야 하는 존재였으며, 그래서 소군은 언제나 이민족에게 한족이 지배받을 수 없다는 표상이었다.

소군이 똥에서 피운 꽃이 되어야 했던 이유다.

여러 왕소군이 있다. 실제의 왕소군...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그 속내는 더더구나 알 수도 없다. 흉노왕비로 간택된 순간, 소군은 내 인생 드디어 땡잡았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살아보니 그런 대로 권력 맛을 알았다. 그래 이 기분에 권력권력 하는구나 했더랬다. 이 참에 나를 내친 더 漢 왕조 묵사발 함 내봐? 이리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저 남쪽 漢族이 생각하는 왕소군은 언제나 그 실상에는 전연 관심이 없어, 소군은 언제나 비련의 여인이어야 했다. 

무수한 묵객이 소군을 그리 그렸다. 

  1. 연건동거사 2018.10.21 19:56 신고

    저 왕소군상이야 말로 김샘께서 웅변하신 글과 같은 취지에서 만든것 같군요. 선우하고 같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걷는데 전혀 슬프지 않은 얼굴입니다.

李白의 ‘子夜吳歌’ 4首 중 春歌다.


秦地羅敷女 진나라땅 나부라는 여인

采桑綠水邊 푸른 강가에서 뽕을 따네 

素手青條上 고운 손 파란 가지에 올리니

紅粧白日鮮 붉은 화장 햇살에 희게 빛나네  

蠶飢妾欲去 누에가 배고파요 저는 가요 

五馬莫留連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



漢 樂府 중에 전쟁과 관련한 노래인 곡취곡사(鼓吹曲辭) 중에 나중에는 그 첫 대목을 따서 ‘성전남’(戰城南), 즉 ‘성 남쪽에서 싸우다가’라고 부르는 시 한 편이 있으니 가사와 옮김은 다음과 같다.

戰城南死郭北 내성 남쪽에서 싸우다가 외성 북쪽에서 죽고마네

野死不葬烏可食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 까마귀밥 신세

爲我謂烏 나 대신 까마귀에게 말해주오

且爲客豪 부디 객을 위해 곡이나 해주라고

野死諒不葬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

腐肉安能去子逃 썩은 육신 어찌 그대에게서 도망치리오

水深激激 깊은 물살 세차고

蒲韋冥冥 갈대 덮어 어둑어둑

梟騎戰鬪死 날쌘 말은 싸우다 죽어버리고

駑馬徘徊鳴 둔한 말만 서성이며 울부짓네

梁築室何以南何以北 집짓는 사람들 어찌하여 남북을 왔다갔다 하는지

禾黍不獲君何食 곡식 거두지 못하니 그대 무얼 먹으리오

願為良臣安可得 훌륭한 신하되고 싶어도 될 수 없으니

思子良臣良臣誠可思 저들 훌륭한 신하를 생각하니 그들이 그립네

朝行出功暮不夜歸 아침에 적을 치러 나갔다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는 이 없네



다음은 漢代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 중에 그 열 세 번째이니 이와 같은 民歌 성격이 짙은 시편은 원래 제목이 없는 일이 허다하니, 이것 역시 그런 신세지만 그 첫 줄을 제목으로 삼아 ‘구거상동문행驅車上東門行’이라 한다. 중국 고대 시가 제목 끝에 흔히 붙는 ‘行’은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流行歌’의 ‘行’ 아니겠는가?

아래 시는 그 전체 맥락이 carpe diem에 가깝지만 그 이면은 무척이나 씁쓸하다. 불교의 無常을 떠올리며 짙은 니힐리즘이 있는가 하면, 그리하여 그런 자각에서 마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 비디오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번역은 다듬어야 할 곳이 적지 않다.

더불어 먼 훗날 이태백의 춘아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연상케 한다.



 

驅車上東門 구루마 몰아 동문으로 오르니

遙望郭北墓 멀리 성곽 북쪽에 묘지 보이네

白楊何蕭蕭 백양나무 쏴쏴 살랑대고

松柏夾廣路 소나무 잣나무 넓은길 늘어섰네

下有陳死人 아래엔 죽은 지 오래된 사람들

杳杳即長暮 아득아득 길이 잠들었네

潛寐黃泉下 황천 아래 깃들어 잠든 채

千載永不寤 천년 지나 깨어나질 않네

浩浩陰陽移 끊임없이 시간은 흘러흘렀네

年命如朝露 목숨이란 아침 이슬 같고

人生忽如寄 인생이란 잠깐 맡기고 갈뿐

壽無金石固 목숨은 금석만큼 단단하지 않으니

萬歲更相送 만년이 흐르고 흘렀네

賢聖莫能度 성현조차 죽음 건너지 못하고

服食求神仙 약을 먹고 신선되고자 했지만

多為藥所誤 외려 그 약에 잘못된 일 많았네

不如飲美酒 차라리 좋은 술 마시고

被服紈與素 비단 옷 걸치고 놀아나 보네

다음은 漢代 상화가사相和歌辭 중에 ‘고아행’(孤兒行)이라는 시이니, 앞서 말했듯이 예서 ‘行’은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孤兒生, 孤子遇生, 命獨當苦! 고아가 태어났네, 우연히 고아 신세, 지독한 고난 당할 운명 

父母在時, 乘堅車, 駕駟馬. 부모 계실 땐 튼튼한 수레 올라 말 네 마리 몰았지

父母已去, 兄嫂令我行賈. 부모 돌아가시 형과 형수 날더러 장똘뱅이 하라네 

南到九江, 東到齊與魯. 남쪽으로 구강까지 가고 동쪽으로 제노 지방 다녔지

臘月來歸, 不敢自言苦. 12월에 돌아왔지만 힘들다 할 수 없네 

頭多蟣虱, 面目多塵. 머리엔 서캐와 이가 가득, 얼굴에는 때가 덕지덕지

大兄言辦飯, 大嫂言視馬. 형님은 밥 지으라 하고 형수는 말을 돌보라 하네

上高堂, 行取殿下堂, 孤兒淚下如雨. 웃방 아랫방 오르내리니 고아는 눈물이 주룩주룩 

使我朝行汲, 暮得水來歸. 날더러 아침에 물길어 오라해서 저녁이 되어 물 길어 왔더니 

手爲錯, 足下無菲. 손은 불어터지고 발밑엔 짚신도 없네 

愴愴履霜, 中多蒺藜. 먹먹하니 이슬 밟으니 길엔 가시가 더부룩 

拔斷蒺藜, 腸肉中愴欲悲. 가시 꺾으니 마음엔 슬픔이 북바치고

淚下渫渫, 清涕累累. 눈눌 콧물 줄줄 흘러내리네 

冬無複襦, 夏無單衣. 겨울엔 겹옷 없고 여름엔 홑옷도 없네 

居生不樂, 不如早去, 下從地下黃泉. 사는 게 즐겁지 않으니 일찍죽어 지하 황천길 가는 것만 못하리

春氣動, 草萌芽. 봄 기운 일어 새싹 돋아나면 

三月蠶桑, 六月收瓜. 3월엔 누에 치고 뽕 따고 6월엔 오이 따야지 

將是瓜車, 來到還家. 오이 실은 수레 끌고 집에 돌아오다 

瓜車反覆, 助我者少, 啗瓜者多. 오이 수레 엎어지니 날 돕는 이 거의 없고 집어가는 이 많기만 하네 

願還我蒂, 兄與嫂嚴, 獨且急歸. 제발 오이꼭지만이라도 주세요, 형과 형수 엄하시어 빨리 돌아가야 해요

當興校計. 한바탕 소동이 일겠네요 

亂曰:

里中一何饒饒, 마을이 왜 이리 소란한가?

願欲寄尺書, 편지 한 통 부쳐 

將與地下父母, 지하 계신 부모님에 보내고파 

兄嫂難與久居. “형님 형수 같이 살기 너무 힘들어요”



‘상야’(上邪)라는 제목을 단 漢代 악부민가樂府民歌가 있다. 話者를 외사랑에 빠진 여자로 설정해 그로 하여금 사랑에 빠진 남성 상대를 향한 애끓는 연모의 정을 토로케 한다. 한데 이 시가 구사하는 수사법이 어딘가 우리한테는 익숙하다. 고려가요의 그것이다. 


上邪!① 하늘이시어 

我欲與君相知②, 나 그대와 사랑하고 싶습니다 

長命③無絕衰. 오래도록 사랑 식지 않겠습니다. 

山無陵④, 산이 닳아 없어지면

江水爲竭, 강물이 다 마른다면 

冬雷震震⑤, 겨울에 우루루쾅쾅 벼락이 친다면

夏雨雪⑥ , 여름에 눈이 내린다면 

天地合⑦ , 하늘과 땅이 붙어버리면 

乃敢⑧與君絕![2] 그제야 그대 단념하지요


① 上邪(yé)!:天啊!. 上, 指天. 邪, 語氣助詞, 表示感歎.  

② 相知:相愛.  ③ 命:古與“令”字通, 使. 衰(shuai):衰減、斷絕. 這兩句是說, 我願與你相愛, 讓我們的愛情永不衰絕.  

④ 陵(líng):山峰、山頭.  

⑤震震:形容雷聲.  

⑥ 雨(yù)雪:降雪. 雨, 名詞活用作動詞.  

⑦ 天地合:天與地合二爲一.  

⑧ 乃敢:才敢,“敢”字是委婉的用語. [2]



염가하상행(豔歌何嘗行)이라는 제목이 붙은 다음 漢代 악부시樂府詩는 이런 성격의 민가가 대개 그렇듯이 이 역시 작자를 알 수 없다. 이른바 민중가요라 해서 어느 한 사람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시간이 누적한 이른바 민중가요일 수도 있겠고, 그것이 아니라 특정 작가가 어느 한 때 격발(擊發)해 쓴 작품이라 해도 그 작자가 내 작품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작자가 無名氏 혹은 失名氏라는 이름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 시대 악부시에서는 사람이 아닌 여타 생물이나 무생물을 사람으로 간주해 작자 감정을 이입하는 일이 흔하거니와, 그리고 이 시대 또 다른 특징으로 대화체가 많으니, 이 시 역시 그런 특성을 유감없이 보인다. 한데 제목에서 이 시 성격을 ‘염가’(豔歌), 다시 말해 연애시라 규정한 데서 미리 짐작하듯이 이 시는 근간이 남녀간 연애를 노래한다.  

서북쪽에서 날아든 白鵠을 사람으로 간주해, 그들을 인간사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설정하되, 무슨 일이 있어 그들 중 어느 한 쪽이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그리하여 북쪽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을 설정해 이 둘의 심정을 투영한다. 

아래 작품에서 보겠지만, 병이 난 쪽은 암놈이다. 이런 노래는 각 문헌별로, 판본별로 텍스트 넘나듦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훗날의 작업으로 미루면서 우선 대강 이런 작품이 있구나 하는 심정으로 봐주기 바란다.

한데 아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마지막에 보이거니와, 살아있을 제 딩가딩가 놀아보자는 뜻이거니와, 하지만 이것이 맹목적 유피큐리언과는 거리가 멀어 한창인 지금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 이면에는 짙은 니힐리즘이 잠들어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가슴이 쓰리다. 앞서 소개한 시처럼 太白 李白의 春夜宴桃李園序에 보이는 그 농밀한 生에의 悲哀가 다시금 엄습한다.


飛來雙白鵠, 乃從西北來. 날아든 흰 고니 한 쌍 서북쪽에서 왔네

十五十五, 羅列成行.  수십마리씩 죽 늘어서 줄을 이루네 

妻卒被病, 不能相隨.  아내가 병들고 지치니 따를 수 없네 

五里一反顧, 六里一徘徊. 5리마다 돌아보고 6리마다 서성이네

吾欲銜汝去, 口噤不能開. 내 당신 물고라고 가겠지만 입이 붙어 열리지 않고

吾欲負汝去, 毛羽何摧頹. 내 당신 업고라고 가겠지만 날개 펼 수 없네

樂哉新相知, 憂來生別離. 즐거웠소 처음 사랑할 때, 하지만 지금은 근심 들어 생이별 

躇躊顧群侶, 淚下不自知. 머뭇머뭇 다른 짝들 돌아보니 나도 몰래 눈물나네

念與君別離, 氣結不能言. 그대와 이별한다 생각하니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온다오

各各重自愛, 道遠歸還難. 나도 당신도 몸조심 길 합시다. 길 멀어 돌아오긴 힘들겠소 

妾當守空房, 閉門下重關. 첩은 빈방 지키며 빗장 꽁꽁 걸어 문 닫겠습니다 

若生當相見, 亡者會重泉. 살아 다시 볼지 모르지만 죽어 저승에서라도 보겠지요 

今日樂相樂, 延年萬歲期. 오늘 우리 즐기세나 천년만년 누려보세



中唐 여류시인 설도薛濤라는 이에게는 이른바 ‘십리시’(十離詩)라는 연작시편이 있거니와, 총애를 믿고 분수 모르고 날뛰다가 종국에는 주인한테 버림받은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아래는 그 중 첫 번째 ‘견리주(犬離主)라는 제목의 시이니, 우선 제목을 그대로 풀면 개가 주인한테 버림받았다는 뜻이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류창교 역해, 《설도시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26~27쪽 참조)


馴擾朱門四五年 떵떵거리는 집에서 길들여진지 4~5년

毛香足淨主人憐 털은 향기롭고 발은 깨끗해 주인이 아꼈네

無端咬著親情客 까닭없이 주인님 친한 손님 물어버렸다가

不得紅絲毯上眠 붉은 카펫에선 다시는 잘 수 없답니다


한데 이 시가 판본에 따라 약간 다르기도 하거니와, 다음과 같이 된 곳도 있다.  


出入朱門四五年 떵떵거리는 집에서 드나든지 4~5년

爲知人義得人憐 사람 뜻 알아 사람들이 어여뻐했지요

無端咬著親知客 까닭없이 주인님 친한 손님 물었다가 

不得紅絲毯上眠 붉은 카펫에선 다시는 잘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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