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신라인. 제23대 법흥왕 때 주된 활동을 보였다고 생각되는데 불교를 공인 포교하려는 법흥왕에 맞서 그것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대표하는 인물인 듯하다. 다른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어떤 기록에는 알공謁恭이라 등장한다. 착간錯簡이 일어난 듯하나, 어느 쪽이 타당한지 판단은 어렵다.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厭髑滅身 : [원종이 불법을 일으킨 것은 눌지왕訥祗王 시대부터 100여 년 뒤의 일이다.] 신라본기新羅本記에 이르기를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왕위에 오른 지 14년에 하급 신하인 이차돈異次頓이 불법을 위하여 자기 몸을 죽였다”고 했으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527)로 서천축西天竺 달마達摩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처음으로 영취산靈鷲山에 머물면서 불법을 열었으니,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남간사南澗寺 스님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는데, 이 일이 매우 상세하게 실렸으니 그 대략은 이렇다. 옛날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왕위에 올랐는데 동쪽을 굽어 살펴보면서 말하기를 ‘예전에 한나라 명제明帝 꿈에 감응을 받아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과인이 왕위에 오른 다음부터 백성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정 신하들이[향전鄕傳에서는 공목工目과 알공謁恭 등이라고 한다.]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다만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大義만을 따를 뿐 절을 세우려는 신령스런 생각을 따르지는 못했다.
☞ 공알恭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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