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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전에 이 블로그에 '문화재청의 지방청 움직에 대하여'라는 글을 게재하고, 그를 통해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조직 확대 차원의 지방청 설립 움직임을 시종 비판적으로 보면서, 그 대안으로써 지방청 설립보다는 지차제의 관련 조직 인력 확대를 주창한 바 있다. 다음은 그런 생각이 표출한 2013년 11월 25일자, 내 페이스북 내 포스팅이다.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 이 글이 걸려 다시금 전재한다.  



아기 황조롱이. 2013. 6, 3 백옥련 선생 페이스북 포스팅. 길을 잃고 도로 한가운데서 로드킬 위험 있다해서 광주 광산구청에서 구조하고 천연기념물 동물병원으로 보냈다. 이 일 역시 지자체 학예연구사 업무 중 하나다.




문화재청 조직 확대가 능사는 아니다


지방청 설립을 통한 국가지정 문화재의 국가에 의한 직접 관리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문화재청 주변에서 나오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경질된 청장(변영섭을 말한다-인용자 주)과 그 주변 외부 인사 몇몇도 아예 맞대놓고 이를 주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능사인가? 그리고 그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만능열쇄인가? 이르노니 시대 흐름에도 역행하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지방화 시대에 발맞추고 중앙 권력의 지방 이양이라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해당 지자체의 문화재 관리 인력 조직 강화를 제안한다. 다시 말해 조직을 확대하고 예산을 확충해야 하는 곳이 중앙정부 기관인 문화채청이 아니라 해당 지자체다.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 이 역할의 상당함이 넘어가야 하며 주어져야 한다. 이것도 세부로 들어가면 복잡다단하기 짝이 없지만, 유홍준 시대에 추진하기 시작한 지차체의 학예직 인력 갖추기는 법적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실제 이런 흐름에서 꽤 많은 지차체가 기초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전문 학예직을 고용하기 이르렀다. 


하지만 그 내실을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어 

1. 조직이 부재한 데가 대부분이고 

2. 인력의 부실이 대부분이다. 


경주시 같은 특수 지역에서는 문화재과가 있는 걸로 알지만(이것도 정확치 않다) 적어도 고도古都로 분류할 수 있거나, 그에 버금가는 기초자치단체는 적어도 문화재계 이상을 갖추어야 하며, 어쩌면 문화재과가 법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예직 인력 상당수는 파리 목숨이라 이들은 정규직이 아닌 까닭에 툭하면 짤려버리는가 하면, 계약을 연장한다 해도 몇년 단위로 재계약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소신있는 행정은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정규직으로 있다고 해도 그 숫자는 한두명에 지나지 않아 그들의 소신을 펼 구조가 전연 없으며, 이런 그들이 살아남는 길은 그만 두거나, 아니면 해당 지차체의 요구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하도 길고, 매개 변수가 많아 일단 이 정도로 가늠하기로 한다.


이에 대해 당시 이 글에 댓글 형태로 여러 의견이 피력되었거니와, 개중 의미 있는 것으로써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음을 밝혀둔다. 


김란기(건축학자) : 맞습니다. 지자체에 전문공무원을 법률적으로 두도록 하고 또 시민들이 많은 부분(현장 관리, 관찰, 감시 등)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이 좋을 것입니다.


강경환(문화재청 국장) : 미국의 문화재보호법(national historic preservation act of 1966)에는 주정부문화재담당관(SHPO), 부족문화재담당관(THPO/인디언 등), 심지어 일부 연방정부기관에도 문화재담당관(FPO)을 두도록 하고있습니다 우리도 중앙정부의 정책기능 강화와 함께 지방정부의 현장관리가 균형있게 조화되는 문화재관리체계의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턱없이 부족한 지방의 문화재 전문인력의 보강이 시급합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겠지요. 일단 공무원이 되면 관료화되어 버려 비효율이 상례화될 수 있는 폐단이 생기겠지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지방의 학예직이나 기술직이 과장이 되기도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는 개선해서 제도적으로 전문가들이 문화재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김현식(고고학도) : 지방으로 갈수록 문화재부서 학예사들의 여건은 심각합니다. 정말 상상도 못할 비상식적인 일이 많아요. 관건은 지방정부의 인사권에서 얼마나 독립이 되느냐인데, 지방청 이야기가 나온것도 결국은 그 문제 아닌가요? 지금의 체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계약직에다가 인사권까지 시장이 쥐락펴락하는데......


김재홍(건축학도/문화재활용사업) : 제가 이곳에 한가지만 올리고 싶습니다.... 지방 학예사제도에도 수정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조사한 결과 문화재청은 학예사 제도에 건축사 전공도 별도로 뽑고 있지만 지방은 아직도 문화재분야에서 한국건축역사 파트를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방학예사들의 대부분의 업무가 민원과 행정 그리고 현장관리인데, 이 중 대부분이 건조물문화재 현장감독을 하는경우가 많습니다.. 학예직 파트에 건축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함께 포함하여 공고해서 경쟁으로 시험볼수있도록 해서 서지학, 고고학, 사학, 미술사학, 국문학, 민속학, 박물관학 , 건축역사학 등등 다양한 파트의 문화재 인력이 구성되고, 서로 전문성을 교류하며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본용(거창군 학예사) : 공감...........일정 규모 이상은 의무적으로 매장문화재 사전 협의를 마지못해 하지만 그외는 그냥 공사 시행합니다. 공사현장마다 확인할 수도 없고...................


이채경(당시 경주시 학예연구관, 현 동 문화재과장) : 지지체의 인력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전체 공무원의 정원이 정해집니다. 여기에 문화재분야 공무원 한두명은 추가(그것도 마지 못하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체계적인 관리인력을 구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청 지방청설립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자체의 학예직은 안팎으로 싸워야 하는, 사면팔방이 적군으로 둘러싸인 사면초가의 처지입니다. 끊임없이 싸우면서 공공의 적이 되거나 아니면 학예직이기를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어떨 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건 도대체 기능직보다도 못하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화종(퍼블릭 아키올로지 전공 고고학도) : 한국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군요... 전부터 생각 해봤던 이야기였는데..지자체 문화재 담당부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오랜 일이고, 이걸 문화재청 지방청을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건 좀 전 근대적이네요... '국보, 사적 국가지정문화재 = 문화재청 관리'라는 등식은 한국적인 관리형태가 아닌가 함니다. 흔이 영국의 문화재청이라 많이 인식되는 English Heritage는 실제로 문화재를 관리하는 권한이 전혀 없습니다...관리와 관련된 조언을 문화체육 관광부에 하고, 실제적인 관리와 그 책임은 문화재를 소유한 지자체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참고 할 만 하지 않을가 합니다...




첨부사진은 보다시피 1976년 7월 12일 월요일판 경향신문 2판 제5면 머릿기사로 실린 김정배 기고 시론이다. 시론이란 간단해 말해 시사 문제와 관련한 논설이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 신문이 지면을 배치하지는 않거니와, 시론 같은 논설류를 모은 면이 아님에도 시론을 각종 시사 문제를 전하는 면 머리기사로 올린 점이 지금과 비교하면 독특하다. 이 기고문이 말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기 위해서는 왜 저 시기에 저 기고문이 배태되었는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본문 분석이 중요하다. 


기고문을 보면 크게 두 부문으로 구성한다. 첫째, 당시 광범위한 도굴 실태에 대한 고발이다. 둘째, 이를 토대로 하는 대응책 주문이다. 논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시론은 이 두 가지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아니한다. 시론으로서는 빵점짜리에 가깝다. 다름 아니라 도굴 실태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면, 그 대응책으로서는 그 도굴을 근절하고, 도굴범들을 색출하기 위한 관계당국의 노력 경주를 주문해야 지극히 정상이겠지만,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으니, 느닷없이 그 대응책으로 김정배가 제시한 방법은 대학에서 발굴하게 하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뚱딴지도 이런 뚱딴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 시론은 어찌해서 나왔으며, 과연 저자가 주장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이를 위해 우리는 시계추를 돌려 40여년 전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 이 무렵 고고학계 사정을 보면, 박정희 유신정권이 추진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 본궤도에 오르고, 그에 따라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 주도 발굴이 한창 굉음을 내던 시기다. 그 일환으로 경주에서는 천마총에 이어 황남대총 발굴이 대략 마무리되고, 곧이어 안압지와 황룡사지 발굴이 닻을 올렸다. 


이 시론 기고 당시 김정배는 고려대 사학과 교수였다. 나중에는 제14대 고려대 총장까지 역임하고, 그 이후에도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며 문화재위원장이며, 국사편찬위원장이며 하는 각종 중책을 비교적 최근까지 연이어 역임한 사학계 거물이다. 이런 이력을 보면 그는 사학도라기보다는, 뭐랄까 역사학 tycoon 정도로 자리매김해야 할 성 싶다.  


각종 그의 이력을 보면 1940년 8월 1일생이니 저 기고문 작성 당시 그는 36살, 전도 유망한 새파란 청년 교수였다. 휘문고와 고려대 사학과 출신인 그는 미국으로 1970년 미국 하와이대학으로 건너가 그곳 대학원에서 인류학 세례를 받는다. 당시 미국 인류학은 이른바 신고고학이라 하는 흐름이 일대 유행한 것으로 기억하거니와, 그는 단순히 문헌사학도로 만족치 아니하고 역사학에 고고학과 인류학을 접목을 시도한다. 귀국해 1975년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만 서른살 1970년에는 모교 한국사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하면서 긴 교수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니 '古文化(고문화)의 原形(원형)을 훼손말자'는 저 칼럼은 그가 한창 교수생활로 재미를 붙일 무렵에 쓴 셈이다. 하기야 그때야 벌써 저때는 학계 중진으로 취급될 무렵이다. 


이 칼럼에서 김정배는 도굴이 대표하는 당시 문화재 관리 참상과 관리실태를 고발하면서 시종 분노에 찬 어조로 국가를 질타한다. 그런 그가 일필휘지로 붓끝을 맘껏 휘두르면서 국가까지 질타했으니, 그 기개는 높이 살 만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글을 김정배는 왜 썼던가? 다음 구절에 그 저의를 폭로한다. 


"지난날의 발굴이 얻은 것 못지 않게 잃은 것이 많았음을 고려해두어야 한다. 學術的 發掘(학술적 발굴)은 대학으로 하여금 조용하게 진행시키고 차분한 연구결과로 보고서가 간행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發掘(발굴)과 盜掘(도굴)이 뒤범벅이 되고 文化財(문화재)는 黃金(황금)의 축재로 전락되며 돈이 있는 者에게는 국내외 인사에게무질서하게 물건이 들어갈 때 이 땅의 문화재는 설 땅을 잃게 된다."


왜 썼는지 그 목적성이 명확하지 않은가? 그는 당시 문화재관리국 주도 국가 발굴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문화재관리국이 주도한 발굴은 곧 그 몫을 담당한 대학 발굴에는 일대 위기였으며, 그것은 곧 대학 발굴의 잠식이었다. 김정배가 저에서 하고자 한 말은 국가가 대학이 해야 하는 발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저 칼럼에서 노출한 김정배의 문제의식 혹은 위기의식이 단순히 김정배 개인의 생각을 넘어 당시 대학사회, 특히 고고학을 주된 밥벌이 수단으로 삼은 교수사회의 그것을 고스란히 대변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 이데올로기를 간파해야만 저가 말하는 것들이 어떠한 거짓으로 얼룩졌는지를 비로소 만천하게 폭로하게 된다. 저에서 분명히 보이듯이 김정배와 '김정배들'에 따르면 국가는 대학에 돈만 주고 간섭하지 말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발굴하게 하라는 것이며,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예산은 감사도 감시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정당한가? 아니, 그 시대에 비추어 봐도 정당했던가? 


김정배는 학술발굴은 대학에 맡기고, 대학은 차분히 연구하고 발굴보고서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리된 적도 없고, 대학이 제대로 발굴보고서를 낸 적도 없다. 저런 주장이 어느 정도는 관철되어 당시 고고학 발굴 현황들을 보면, 비록 소위 큰 건수 발굴은 문화재관리국이 주도했지만, 각 대학 박물관 역시 연합발굴 등의 이름으로 적지 않은 곳에서 발굴에 뛰어들었으니, 경주만 해도 고고학 교수들 전성시대라, 이곳저곳 발굴현장 하나씩은 나눠 먹기했다. 


한데 주의할 점은 차분한 연구는 고사하고, 그 발굴 현장 대부분 대학 박물관은 보고서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때 발굴한 고고학 성과는 수십년이 지나도록 안낸 보고서가 수두룩하다. 보고서 비용은 도대체 어디서, 누가, 언제, 어떤 방식을 떼먹었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최근에는 저리 밀린 보고서를 국가가 지원해 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더러 나오는 실정이다. 돈은 지들이 다 빼돌리고, 국민한테 책임을 전가한단 말인가? 보고서 비용은 이제는 퇴임한 저들 발굴 책임자들한테 추심해서 강제로 빼앗아 와야 한다. 


김정배는 저에서 발굴이 파괴라는 말을 한다. 이 말, 고고학에서는 여느 개론서엔 다 나오는 말로 기억하거니와, 그렇다면 대학박물관이 차분히 발굴하고 차분히 연구하면 그건 파괴 아닌가? 발굴은 파괴라는 말이 지금도 고고학의 순수성을 말해주는 증좌로 고고학 현장에서는 언제나 금언 혹은 권리장전처럼 통용하나. 퇴출해야 할 괴물이다. 


발굴이 무슨 파괴란 말인가? 발굴은 창조다. 해당 유적과 유물에다가 새로운 바람과 생명을 불어넣는 창출이다. 언제까지 발굴은 파괴라는 구닥다리 금언을 되뇌이겠는가? 


한데 김정배가 40년 전에 제기한 저 울분, 곧 발굴은 대학이 하게 해달라 하는 읍소 혹은 협박이 40년이 흐른 지금, 고고학계에 다시금 유령처럼 강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르기를 첫째, 발굴조사에서 적어도 책임조사원 혹은 정식 조사원이 되려면 대학 관련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지금은 완전히 퇴출된 대학 박물관의 구제발굴 현장 참여를 許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별도 마련하고자 한다. 

  1. 종부세 2018.09.16 14:56 신고

    학술적 발굴만 대학에서 조용히... ㅋㅋㅋ

나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적폐 청산, 혹은 정권 교체 작업에 찬동을 하면서도 박수는 내가 미루고 있다 했거니와, 그러면서

그것은 내 관심 분야인 문화 쪽 기관장 인선과 언론 적폐 청산을 보고 최종 판단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언론은 일단 논외로 친다. 

문화는 언제나 역대 정부 출범에서 조직 개편이나 장차관 등의 수뇌부 인선은 맨 마지막에 이뤄지거니와, 이것 역시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라, 더디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시인 출신인 도종환이 문화부 장관 후보에 지명되었다. 

나는 도종환을 개인적으로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도종환은 시인이면서, 국회의원 재직시절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다는 사실이다.

그런 행보에서 내가 우려한 대목이 있으니, 그의 문화재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로선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어떻든 그는 문화재정책에 대한 질타가 유별났다고 기억한다.

도종환은 국회의원 재직 시절 춘천 중도 유적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나는 이것이 문화재 자체를 향한 그의 몸부림이었는지, 혹은 그의 사상적 뒷받침과 관련한 움직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레고랜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춘천 중도 유적은 그것을 보존하자고 추진한 사람들에 의해 고조선 유적으로 돌변했다. 

고인돌이 나왔다 해서, 그리고 그것이 축조된 연대(아마 기원전 10세기 어간?)가 고조선이 존재했을 법한 연대라 해서, 그것을 고조선 유적과 연동하는 주장을 나는 용납하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 해서, 중도 유적 고인돌 유적이 고조선과 관련이 없다 해서 보존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주장은 역으로 결코 성립할 수 없다. 

고인돌 유적 자체만으로 의미는 대단히 크다.

나는 다만, 그의 유별난 중도 유적 관심이 이 고조선과 연동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가져본다. 만약 그것이라면, 이는 문제다.

이런 그가 문화부 장관 후보에 지명됨으로써, 그가 중도유적이 표상하는 각종 문화재 현장에 문화부 장관이 직접 개입하는 발판을 마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덧붙여 본다.

물론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문화부 장관이라 해도, 막상 장관하다 보면 문화재는 쳐다볼 시간도 없다. 그만큼 문화부 장관은 열나 바쁘다.

그에 더해 문화재보호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을 봐도 문화부 장관이 문화재에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문화재청이 문화부가 관할하는 외청이라 하지만, 관련법상 문화재정책은 거의가 문화재청이 독자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이를 무시한 개입은 나중에 또 다른 논란을 부른다.

문화재는 문화재로 봐야 한다.

우쒸...이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었는데 길어져서 우선 이걸로 일단락한다.(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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