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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혜공왕 4년(768)에 일길찬으로서 아우 대렴(大廉)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했다. 

삼국사기 권제9(신라본기 제9) 혜공왕 : 4년(768)...가을 7월에 일길찬 대공(大恭)이 아우 아찬 대렴(大廉)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무리를 모아 33일간 왕궁을 에워쌌으나 왕의 군사가 이를 쳐서 평정하고 9족(九族)을 목베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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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혜공왕 4년(768)에 아찬으로서 형인 일길찬 대공(大恭)과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했다. 

삼국사기 권제9(신라본기 제9) 혜공왕 : 4년(768)...가을 7월에 일길찬 대공(大恭)이 아우 아찬 대렴(大廉)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는데, 무리를 모아 33일간 왕궁을 에워쌌으나 왕의 군사가 이를 쳐서 평정하고 9족(九族)을 목베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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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년(785) 2월에…문무백관의 관작을 한 등급씩 올려주고, 이찬 병부령 충렴(忠廉)을 상대등으로 삼고, 이찬 제공(悌恭)을 시중으로 삼았다. 제공이 관직에서 물러나자 이찬 세강(世强)을 시중으로 삼았다. …7년(791) 봄 정월에…이찬 제공(悌恭)이 반역하다가 목베여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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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 : 53년(631)…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 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와 자식을 보고 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에까지 돌아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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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 53년(631), 아마도 왕권을 노렸을 반란 주모자로, 당시 벼슬은 이찬으로서, 아찬 석품(石品)과 더불어 난을 도모했지만, 모의 단계에서 적발되어 목베임을 당했다. 화랑세기 자매편으로 그 등장인물들의 족도(族圖)인 상장돈장(上狀敦牂)》에 의하면 그는 진흥왕 서자다. 즉, 미진부(未珍夫)와 묘도(妙道) 사이에서 난 자식들로 미실(美室)과 미생(美生) 외에도 아들인 미경(美京)과 딸들인 미질(美質)과 미옥(美玉)이 있어, 이 중 미질이 진흥왕한테서 씨를 받아 낳은 아들이 칠숙이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 : 53년(631)…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 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화랑세기 17세 렴장공(廉長公) 전 : (렴장공은) 선덕공주를 몰래 도와 칠숙(柒宿)의 난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발탁됐다. 선덕이 즉위하자 들어가 조부(調府)의 영(令)이 되어 유신과 춘추에게 재물을 공급하여 주었고 또한 사적으로도 치부했다. 그때 사람들이 공의 집을 가리켜 수망택(水望卷)이라 했으니 금이 들어가는 모습이 홍수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는 공을 미생공과 비교하기도 했는데, 미생은 극도로 사치했지만 공은 검약을 몸소 실천했으니, 그 부유함은 미생공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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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 ?~501. 동성왕 8년(486)에 위사좌평에 임명됐다가 동왕 23년(501)에 가림성으로 지키라는 왕명을 받았지만, 이에 불만을 품고 그해 겨울 사비 서쪽 벌판으로 사냥나간 동성왕을 자객을 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 뒤이어 즉위한 무령왕에게 토벌돼 주살됐다. '苩'이 성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 : 8년(486) 봄 2월에 백가(苩加)를 위사좌평(衛士佐平)으로 삼았다. 3월에 사신을 남제에 보내 조공했다. 23년(501)…8월에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衛士佐平) 백가(苩加)에게 지키게 했다. 겨울 10월에 왕이 사비(泗)의 동쪽 벌판에서 사냥했다. 11월에 웅천(熊川)의 북쪽 벌판에서 사냥했고, 또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馬浦村)에서 묵었다. 이보다 앞서 왕이 백가로 가림성을 지키게 했으나 백가는 가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 삼아 사양하고자 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왕을 원망하다가 이 때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훙하니 시호(諡號)를 동성왕(東城王)이라 했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무령왕 : 무령왕(武寧王)은 이름이 사마(斯摩)<융(隆)이라고도 한다>이고 모대왕(牟大王) 둘째 아들이다. 키가 여덟 자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따랐다. 모대가 재위 23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봄 정월에 좌평 백가(苩加)가 가림성(加林城)을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牛頭城)에 이르러 한솔(扞率) 해명(解明)에게 명령하여 토벌하게 하였다. 백가가 나와 항복하자 왕은 그의 목을 베어 백강(白江)에 던져버렸다. 論한다. 춘추(春秋)에 “남의 신하가 된 자는 반역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無將], 반역하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다. 백가(苩加)와 같은 흉악한 역적은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는 바인 데 곧장 죄주지 아니하고, 이에 이르러 스스로 [죄를] 면하기 어려움을 알고 반란을 꾀한 후에야 죽였으니 때가 늦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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