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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11)

대청호


홍엽(紅葉)

[宋]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시인은 뱃속 가득
맑은 우수 품어

천 편 시 토하고도
멈추려 하지 않네

벽마다 가득 썼지만
더는 쓸 곳 없어

붉은 잎에다 가까스로
가을 시를 적어보네

詩人滿腹著淸愁, 吐作千詩未肯休. 寫遍壁間無去處, 卻將紅葉強題秋.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국화꽃 저버린/ 가을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길 가의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불어/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었네” 지금 떠오르는 대로 써본 가을 시와 가을 노래 구절들이다. 가히 가을은 시의 계절이라 할만하다. 미국 작가이자 공연예술가인 패티 스미스(Patti Smith)도 가을 거리를 바라보며 “이 거리들은/ 알을 깨고 나오기만 기다리는/ 한 편의 시다”라고 읊었다. 우리나라 정용철도 “가을은 시인의 집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시인이 됩니다”라고 고백했다. 위의 시인 양만리도 나뭇잎이 붉게 물든 가을날, 맑은 우수를 천 편의 시로 써내고도 멈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의 서재에는 시를 쓴 종이가 마치 낙엽처럼 뒹굴고, 사방 벽에도 온통 휘갈겨 쓴 시구로 빈 틈이 없을 터이다. 더 이상 시를 쓸 곳이 없는 그는 붉게 물든 단풍잎을 종이로 삼는다. 하긴 뱃속 가득한 시심을 남김없이 써내기 위해서는 가을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나뭇잎 말고 다른 지면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이미 처연한 가을 시이니 그걸 뿌리기만 해도 가을 창공이 시 낭송 소리로 가득 차는 것일까? 그럼 낙엽을 태우는 건 시를 태우는 장례 의식일까?


가을 산 두 수(秋山二首) 중 둘째


[宋] 양만리(楊萬里·1127~1206) / 김영문 選譯評 


창덕궁 속 가을



오구나무는 평소에

노련한 염색공이라


서둘러 검푸른 색을

선홍빛으로 바꿔놓네


어린 단풍 하루 밤새

하늘 술을 훔쳐 먹고


취한 모습 가려 달라고

고송(孤松)에 간청하네


烏桕平生老染工, 錯將鐵皂作猩紅. 小楓一夜偷天酒, 却倩孤松掩醉容.


어릴 적 가을 시골 앞산 뒷산에서 가장 붉게 물드는 나무는 뿔나무와 옻나무였다. 뿔나무의 표준말은 붉나무인데 나무 이름 그대로 가을 산을 붉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가을나무다. 옻나무 단풍도 뿔나무에 못지 않다. 이 두 나무는 생긴 모양도 비슷해서 초보자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선홍빛에서 검붉은색으로 물드는 옻나무와 뿔나무 단풍은 가을산을 불태우는 주인공이지만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처럼 크고 높게 자라지 않아 사람들의 눈길을 강하게 끌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라도나 제주도 등 남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오구나무(조구나무)도 가을 빛이 붉고 예쁜 나무다. 오구나무의 수액은 양초와 비누 원료로 쓰인다. 물론 당단풍, 홍단풍, 꽃단풍, 신나무, 고로쇠나무 등 단풍나무가 붉은 가을 산을 대표하는 수목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다양한 가을나무 중에서도 오구나무와 어린 단풍나무를 불러왔다. 동시의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술도가에서 술을 받아오다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마셔본 경험들이 있으시리라. 처음 맛본 들쩍지근하면서도 씁쓸한 막걸리의 미묘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집에 와서 대접에 막걸리를 붓고 사까리(사카린)를 타서 마시기도 했다. 이 시의 어린 단풍나무도 하늘의 술을 훔쳐 마시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고 했다. 지금 온 산천은 천주(天酒)를 마신 단풍나무의 술주정판이 벌어지는 현장인 셈이다.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날이 새도 깨지 않고 저 붉은 얼굴을 부끄럼 없이 자랑하고 있을까? 그 옆의 푸른 소나무는 그런 어린 단풍을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는 우리 어릴 적 아버지와 같다. 아니 푸른 소나무조차 가을 산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작은 구성원일 뿐이다. 천주(天酒)의 술기운이 온 거리의 가로수까지 물들이고 있다.


한시, 계절의 노래(134)


저녁 더위로 연꽃 연못에서 놀다 다섯 수(暮熱遊荷池上) 중 넷째


 송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입추인지라


남은 더위에 이르노니

어서 물러가라


야윈 매미 기운 많이

남아 있는지


석양에 소리 잦아들어도

쉼 없이 우네 


也不多時便立秋, 寄聲殘暑速拘收. 瘦蟬有得許多氣, 吟落斜陽未肯休.


매미는 한 달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눴을까? 거미줄에 매달린 매미 시신이 뜨거운 햇살에 말라간다. 오랜 기간 땅 속에서 살다가 짧은 이승의 삶을 마치고 허공에다 영원히 몸을 묻었다. 뜨겁던 사랑, 뜨겁던 여름도 그렇게 물러나고 있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무더위도 담담하게 망각되어 어느 순간 추억으로 변하리라. 왕가위(王家衛)의 명화 『동사서독(東邪西毒)』에는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이 나온다. ‘취생몽사’를 마시면 머릿속 기억이 사라진다. 황약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건 기억 때문이라 하더군” 구양봉은 ‘취생몽사’를 마시고 기억을 잃는다. 『동사서독』은 왕가위 영화의 고전이다. 왕가위 영화의 일관된 주제는 ‘무상한 세월과 어긋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취생몽사’란 술은 “세월이 약이겠지요”의 홍콩 버전인 셈이다. 입추가 멀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사랑이 물러나고 있다. 아직은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지만 그 지긋지긋한 집착에서도 조만간 벗어날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살을 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우리는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망각 저편에서 이 뜨거운 여름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며 추억할 것이다.


한시, 계절의 노래(130)


여름밤 시원한 곳 찾아(夏夜追凉)


 송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밤이 돼도 여전히

낮과 같이 더운지라


문 열고 잠깐 동안

달빛 속에 서보네


대숲 깊고 빽빽하여

풀벌레 우는 곳에서


바람 없어도 시원함이

언뜻언뜻 느껴지네


夜熱依然午熱同, 開門小立月明中. 竹深樹密蟲鳴處, 時有微凉不是風. 


내 고향 영양은 평지가 해발 200m 이상인 산촌이다. 한여름에도 밤에 선선함이 느껴지는 준고원지대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 대구로 나왔다. '대프리카'살이 첫 해 한여름 어느 날 나는 도저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것이 더위 탓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뭔가 답답하고 불쾌한 기분만 느껴졌다. 그것이 열대야 때문임을 다음날 뉴스를 듣고 알았다. 즉 하루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이면 열대야라고 했다. 이후 대프리카 한여름은 열대야가 일상이며 심지어 대구 사람들은 ‘덥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덥부심’이 무엇인가? ‘전국에서 제일 덥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대구 시내 중심인 대구역 지하도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돌로 포장되어 있다. 그곳 아스팔트가 여름 무더위를 견디지 못해 계속 녹아내려서 할 수 없이 돌을 깔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근래에는 도시 녹지 확대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여 여름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다. 그럼에도 최저기온 31도 이상 밤이 지속하는 초열대야는 여전히 자주 발생한다. 정말 밤이 돼도 여전히 낮처럼 무덥다. 하지만 벌써 계절은 중복을 지났으므로 한여름밤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 달빛 아래에 서보면 미약한 한기가 언뜻언뜻 스쳐지나감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가을의 선선함은 그렇게 벌써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여름에 덥지 않으면 어느 계절에 덥겠는가? 또 태풍 '종다리'가 길을 반대로 돌아서 온다지 않는가? 길을 반대로 돌았으니 일상으로 고착된 무더위를 뒤흔드는 힘 또한 강력하리라 믿는다. 


한시, 계절의 노래(128)


여지가(荔枝歌) 제2절


 송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도성 유월 정오에

태양이 내리쬐니


불 땔 때처럼 시장 사람들

비오듯 땀 흘리네


얼음 팝니다 한 목소리

물 건너 들려오면


행인들은 먹지도 않고

마음과 눈이 열리네


帝城六月日卓午, 市人如炊汗如雨. 賣氷一聲隔水來, 行人未吃心眼開.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5일장에 가곤 했다. 우리 고향에서 읍내 장까지는 걸어서 20리 길이다. 중간에 하늘목재를 넘어야 하므로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힘든 길을 따라 가면 평소에 먹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름에는 ‘아이스케키’를 먹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 ‘아이스케키’를 먹을 때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혀가 살살 녹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20리 땡볕 길을 걸어 땀범벅으로 장마당에 들어설 때 멀리서 ‘아이스케키!’라는 소리가 들리면 정말 귀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대개 이런 추억 때문에 여름 얼음은 근대의 산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겨울 얼음을 갈무리하여 여름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은 매우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 『시경(詩經)·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이미 “섣달에 얼음을 꽝꽝 깨서, 정월에 얼음 창고에 넣네(二之日擊氷沖沖, 三之日納于凌陰)라 했으며, 『주례(周禮)·천관(天官)』 「능인(凌人)」에도 얼음을 관장하는 관리를 능인(凌人), 그 정책을 빙정(氷政)이라 한다고 했다. 『시경』의 내용은 무려 3천여 년 전, 『주례』의 내용은 2천5백여 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부여시대와 삼국시대부터 여름에 얼음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여름에 얼음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개 왕족과 귀족이었다. 하지만 중국 당·송 이후로는 민간에서 겨울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파는 장사치들이 많아졌다. ‘아이스케키!’를 외치는 것처럼 ‘매빙(賣氷)’이라고 외쳤다. 얼음 이야기 하다 보니 갑자기 ‘아이스케키’가 먹고 싶어진다. 그 여름 장에 가기 위해 넘던 하늘목재는 지금도 잘 있을까?



한시, 계절의 노래(120)


대청 앞 자미화에 이슬이 맺혀...두 수 중(凝露堂前紫薇花兩株每自五月盛開九月乃衰二首) 둘째


 송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멍하니 도취할 듯

약하고도 고운 모습


이슬 무게와 바람 힘에

심하게 기울었네


백일 붉은 꽃 없다고

그 누가 말했는가


자미화는 오래오래

반 년 동안 피어 있네


似癡如醉弱還佳, 露壓風欺分外斜. 誰道花無紅百日, 紫薇長放半年花.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한자로는 자미화(紫薇花, 紫微花), 양양화(痒痒花), 백일홍(百日紅) 등으로 불린다. ‘자미(紫薇)’는 배롱나무의 대표적인 꽃 색깔(紫)과 자잘한(微, 薇) 꽃 모양을 형용한 이름이다. ‘양양(痒痒)’은 ‘간지럽히다’는 뜻인데 배롱나무 표피를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우리말로도 ‘간지럼나무’라고 한다. 또 배롱나무는 7월에서 9월에 걸쳐 100일 이상 꽃을 피우므로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심지어 위의 시 제목에서 양만리는 음력 5월에서 9월까지 반년 동안이나 꽃을 피운다고 했다. 중국 당 현종(玄宗) 때는 중서성(中書省)을 자미성(紫微省)이라고 불렀다. 별자리 자미원(紫微垣)을 황제의 거처에 비견했기 때문이다. 중서성은 임금의 조서를 작성하고 명령을 반포하는 조정의 중추기관이다. 이런 연유로 궁궐 자미성(중서성) 근처에 이름이 비슷한 자미화를 심었고, 중서령(中書令)을 자미령(紫薇令), 중서랑(中書郞)을 자미랑(紫薇郞)이라고 불렀다. 중서성에서는 특히 황제의 문서를 관장했기에 이후로는 자미화가 문서나 서책을 비유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원이나 유학자의 집에 자미화를 많이 심었다. 무더위 속에서도 기품 있는 자태로 여름을 아름답게 수놓는 꽃이다.


한시, 계절의 노래(114)


남계에서 저녁 무렵 강물을 구경하다(南溪薄晚觀水)


 송 양만리(楊萬里) / 김영문 選譯評


그 누가 모래 자갈로

비스듬히 제방 쌓았나


세찬 물결 제방 부딪쳐

절로 모래둑 터졌네


작은 물고기 무수히

어지럽게 뛰어 오르고


유리판 아래에서

은빛 꽃처럼 까부네


誰將沙礫壅堤斜, 水怒衝堤自決沙. 無數小魚齊亂跳, 琉璃盤底簸銀花.


장마철에 큰물이 지면 강물 흐름에 따라 저절로 모래와 자갈이 모여 둑이나 작은 제방이 생긴다. 깊은 곳은 깊어지고 얕은 곳은 얕아지며 자연의 질서가 이루어진다. 물살이 부딪쳐 둑이 터진 곳에는 작은 여울이 생기고 그곳으로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특히 여름 저녁이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살에 피라미들이 비늘을 반짝이며 여울물을 거슬러 뛰어오른다. 여울물 아래 깊은 소(沼)에도 온갖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헤엄치며 자연의 생기를 드러낸다. 이 시에서 양만리는 맑은 물을 유리판, 그 속에서 활발하게 유영하는 물고기를 은빛 꽃으로 묘사했다. 그야말로 반짝이는 비유다. 이 시를 지은 양만리는 육유(陸游), 우무(尤袤), 범성대(范成大)와 함께 남송사대가에 속한다. 모두 남송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자연을 묘사하는 양만리의 맑고 감각적인 시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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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쯤 비가 내리면 아버지는 삽자루 들고는 갓빠 같은 우의 걸치고 논으로 행차했으니, 물을 보고는 물꼬를 텄고 도랑을 팠으니, 물이 넘쳐 나락을 망칠까 해서였다. 그땐 이렇다 할 의미가 없는 장면이었으나, 갈수록 그 장면이 오버랩한다.(김태식) 


한시, 계절의 노래(62)


저물녘 논밭 사이를 거닐며 두 수(暮行田間二首) 중 첫째 


  송(宋) 양만리(楊萬里) / 김영문 選譯評 


뻐꾸기 울음 속에

해님 발길 거둘 때


지팡이가 나를 불러

서쪽 논둑 가보게 하네


진주 이슬 푸른 벼 잎에

도르르 구르다가


잎 끝까지 가지 않고

머물러 쉬려 하네


布穀聲中日脚收, 瘦藤叫我看西疇. 露珠走上靑秧葉, 不到梢頭便肯休.



뻐꾸기를 중국에서는 ‘布穀(포곡·bugu뿌꾸)’라고 한다. 우리와 같은 소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수(日脚收)’란 표현이 흥미롭다. 해님도 발이 달려 하루 종일 열심히 달리는데 이제 산 너머로 돌아가야 하므로 발길을 거둔다는 의미다. ‘수(收)’도 중국에서 아직 흔히 쓰는 표현이다. 시골 마을에서 저녁 어스름에 돌아오는 농부를 보고 “收工了?(shou gong le?)”라고 인사한다. “일 마쳤어요?”라는 뜻이다. 둘째 구 묘사도 재미 있다. ‘수등(瘦藤)’은 등나무를 말려서 만들었다. 산신령이 짚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지팡이다. 그 산신령 지팡이가 나를 불러 해지는 서쪽 들녘으로 나가보게 했다고 표현했다. 기실 자신의 들뜬 산보 욕망을 슬쩍 지팡이에 원인을 돌리고 있다. 마지막 두 구절은 어떤가? 비스듬히 비치는 저녁 햇살 속, 푸른 벼 잎에 맺힌 이슬은 떨어질 듯 말 듯 반짝반짝 빛난다. 아름답고 세밀한 표현이다.(김영문) 



  1. 연건동거사 2018.06.09 22:10 신고

    https://030b46df30379e0bf930783bea7c8649.cdnext.stream.ne.jp/archives/002/201805/large-ca9fa48fa7ee14489a155168ed23d612.jpg

    梢頭의 잎끝은 줄기쪽 끝이군요. 잎의 바깥쪽 끝이 아니라..




한시, 계절의 노래(41)*


찔레꽃(野薔薇) 


  송(宋) 양만리(楊萬里) / 청청재 김영문 選譯


붉은 꽃지고 녹음이

벌써 짙을 때


길가의 산꽃도

보기 드무네


추레하게 남은 봄이

아직 공 들여


찔레꽃에 연지를 

짙게 칠했네


紅殘綠暗已多時 

路上山花也則稀 

藞苴餘春還子細 

燕脂濃抹野薔薇


퇴근길이었다. 광화문을 출발해 남영동으로 빌딩숲 헤치며 걷다 경희궁 인근 서울역사박물관에 괴나리봇짐을 잠시 내려놨다. 보니 만개한 찔레꽃에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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