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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07)


여름비가 시원함을 가져오다 세 수(夏雨生凉三首) 중 둘째


 송 주숙진 / 김영문 選譯評 


높이 솟구친 황금 뱀이

우르릉 천둥 울리고


천둥 지나 얼룩진 하늘

차츰차츰 맑게 개네


비는 시원함 재촉하고

시는 비를 재촉하니


새로 거른 맛있는 술

남김없이 마시리라


崒嵂金蛇殷殷雷, 過雷斑駁漸晴開. 雨催凉意詩催雨, 當盡新篘玉友醅.


당시(唐詩)에 비해 송시(宋詩)는 대체로 시어가 어렵다. 첫째 구의 줄율(崒嵂)은 높이 치솟은 모양 또는 높은 산을 의미하고, 둘째 구의 반박(斑駁)은 얼룩덜룩한 색깔을 형용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먹구름 사이에서 번개가 치면서 빛과 어둠이 엇섞여 드는 풍경을 가리킨다. 넷째 구의 신추(新篘)는 술을 새로 걸렀다는 뜻, 옥우(玉友)는 술, 배(醅)는 아직 거르지 않은 술이다. 모두 쉬운 어휘가 아니다. 송대의 시인들은 당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어도 평범하지 않은 말을 골라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천둥 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지다가 금방 날씨가 개는 여름 풍경을 묘사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황금빛 뱀과 같은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울리면 흡사 음양이 처음 갈라지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부정하게 산 자들은 벼락을 맞을까 조심해야겠지만 우리처럼 착하게 산 소시민들이야 두려워할 게 무엇이랴? 이런 날은 오히려 따끈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으로 여름 속 시원함을 즐기는 것이 제격일 터이다. 여기에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나 “두 사람이 술을 마시니 산꽃이 핀다(兩人對酌山花開)” 등과 같은 명시를 안주로 곁들이면 이보다 여유 있고 넉넉한 삶은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런 소소한 낭만조차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한시, 계절의 노래(105)


여름비 내린 후 청하 절집에 쓰다(夏雨後題靑荷蘭若)


 당 시견오(施肩吾) / 김영문 選譯評


절집은 청량하고

대나무 산뜻해라


한 줄기 비 지난 후

온갖 티끌 다 씻겼네


산들바람 문득 일어

연잎을 스쳐가니


청옥 쟁반 속에서

수은이 쏟아지네


僧舍淸涼竹樹新, 初經一雨洗諸塵. 微風忽起吹蓮葉, 靑玉盤中瀉水銀.


옛날 문인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거나 인생의 주요 대목에 처할 때마다 시를 썼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 오언시와 칠언시는 문인들의 교양필수 도구였다. 시를 좋아하는 선비들은 늘 지필묵과 시 주머니를 가지고 다녔다. 또 종종 산 좋고 물 좋은 정자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곤 했다. 요즘은 어떤가? 시인들 이외의 지식인 사이에서 시를 주고받는 전통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그럼 옛 사람들처럼 시를 써야 할 대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소위 ‘인증샷’이다. 풍경 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게다가 ‘자투리 이미지’를 뜻하는 ‘짤’도 있다. ‘플짤’, ‘표정짤’, ‘혐짤’, ‘인생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짤’이 넘쳐난다. 이렇게 보면 ‘인증샷’이나 ‘짤’이야말로 옛 시인들의 오언시와 칠언시에 해당하고, 그걸 쓴 옛 시인들은 요즘의 ‘짤쟁이’나 ‘샷쟁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들의 묘사력은 사진의 생동감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보라. “청옥 쟁반 속에서 수은이 쏟아지네.” 수묵화라기보다는 수채화 같은 풍경 속에서 옥구슬 구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뛰어난 시인의 묘사력은 평범한 ‘샷쟁이’의 ‘인증샷’을 훨씬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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