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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먼 시대 이야기이긴 하나, 1996년 9월 한국마사회가 당시 과천 서울경마장 주로를 달리던 경주마 1천300여 마리를 대상으로 계절별 체중 변화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더러브렛종 경주마가 매년 9~11월 중 평균 체중이 6.3kg가량 더 늘어난 것을 비롯해 전체 경주마가 가을철 체중 증가세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국산 경주마는 가을철에 살찌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 호주, 뉴질랜드산보다  평균 0.3kg가량 더 몸무게가 불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비단 경주마뿐만 아니라 말을 비롯한 동물이 가을에 살이 더 찌는 현상은 본능적으로 겨울철에 건초 부족 등으로 먹이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리 체내에 에너지를 비축하고자 하는 데다 특히 가을철에 성장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흔히 가을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 해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하거니와 하늘이 더 높아지는 지는 모르겠으나 말이 살찐다는 속설은 참말인 셈이다. 


몽골고원



술만 마시면 시가 절로 나왔다던 중국 최대 시인 이태백(706~762). 그를 흔히  남이야 굶어죽든 얼어죽든 저 혼자만 부어라 마셔라 흥청대던 이기주의 시인의 대표쯤으로 알지만 사실 이태백만큼 서민들의 애환을 잘 읊은 시인은 드물다. 태백은 특히 그칠 줄 모르는 전쟁에 따라 민중이 겪는 고통을 잘 알았다. 그의 4편 연작시인 자야오가(子夜吳歌) 중 제3편을 보자.


長安一片月

萬戶擣衣聲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장안(長安)에 조각달 걸렸는데  

집집마다 다듬이질 하는 소리 

가을바람 불어 그치지 않으니 

이는 모두 옥관(玉關)의 시름

언제나 저  오랑캐 쳐부수고

님께선 먼 원정 마치실꼬  


장안은 당나라 서울이고 옥관은 감숙성에서 신장성으로 가는 군사 관문. 이태백은 이 시를 통해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밤늦도록 다듬잇소리를 내는 여인네 입을 빌어 그들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다. 계절적 배경이 가을이다. 그의 다른 시 중에 새하곡(塞下曲)이 있는데 새(塞)란 말할 것도 없이 변방이다.  연작시 5편 중 제2편 역시 계절 배경이 가을인데 이렇다. 


天兵下北荒

胡馬欲南飮

橫戈從百戰

直爲銜恩心

握雪海上飡

拂沙隴頭寢

何當破月氏

然後方高枕


천명 받은 군대는 북쪽 벌판으로 치달리는데 

오랑캐 말은 남쪽으로 달려 물 마시려 하네 

창을 비껴 들고 온갖 전투에 임하는 까닭은 

바로 성은(聖恩)을 머금었기 때문이라네 

눈을 움켜쥐곤 청해에서 밥해 먹고 

모래 툴툴 털고 농산에서 잠을 자네

언제쯤 월지 맞아 깨뜨리고

그런 다음 높은 베개 베고 자려나 


천자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는 북쪽으로 말을 몰아 유목민들을 몰아내고자  하는데 북쪽 오랑캐 말들은 남쪽, 즉 중국으로 내달리고자 한다는 이태백의 바로 이  시에 우리가 낭만적으로 알고 있는 천고마비 그 본래의 뜻이 숨어 있다. 천고마비는 그 뜻이 글자 그대로지만 원래 이 말은 음산하고 피비린내가 난다.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한 중국 변방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이 일찍 온다. 그러면 초목이 말라 버려 말이나 사람 할 것 없이 먹을 것이 없어진다. 이때 말은 본능적으로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철 초목을 닥치는대로 먹으려 한다. 하지만 초목은 이미 매말라 버렸다. 이렇게 되면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유목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바로 약탈이다. 그래서 가을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중국은 언제 북방 유목민족들이 밀려내려와 닥치는대로 약탈을 일삼을 지 바짝 긴장했다.


북방 유목민족 혹은 국가 중에서도 한나라 때 강성함을 자랑한 흉노와 오환은 특히 중국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이 중에 고구려도 가끔 끼어든다. 중국은 고구려 왕 중에서도 걸핏하면 북경 근처까지 쳐든 태조왕과  동천왕을 특히나 두려워 했다. 그래서인지 중국역사에는 태조왕과 동천왕은 마치 괴물처럼 그린다.


이런 유목민족들의 약탈을 막아내고 때로는 원천봉쇄하기 위해 중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고 백성들을 군대로 강제징발해 변방으로 내몰았다. 천고마비가  중국민중들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천고마비 고통을 가장 잘 노래한 시인 중 한 명이 이태백이었다. 


** 이는 2000년 10월 17일 연합뉴스를 통해 송고한 내 기사 '<천고마비(天高馬肥)와 이태백>'을 약간 손질한 것이다. 


충주호


한시, 계절의 노래(195)


동정호에서 놀다 다섯 수(遊洞庭湖五首) 중 넷째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동정호 서쪽엔

가을 달 빛나고


소상강 북쪽엔

이른 기러기 날아가네


배에 가득한 취객

백저가 부르는데


서리 이슬 가을 옷에

스미는 줄 모르네


洞庭湖西秋月輝, 瀟湘江北早鴻飛. 醉客滿船歌白苧, 不知霜露入秋衣.


중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새롭게 확인한 충격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태백이 자신의 친척 이양빙(李陽氷)의 집에서 병사한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노래를 부르며 이태백의 죽음에 관한 전설을 들었다. 이태백은 휘영청 달이 뜬 밤, 동정호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달을 건지러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태백이 자기 집도 아닌 친척 집에서 병에 걸려 골골 않다가 죽다니... 그 이후로는 깨어진 낭만과 환상 위에서 새로운 이태백 찾기가 계속됐다. 그런데 이태백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동정호에 달을 건지러 들어갔다는 전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이 시도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다. 동정호 서쪽에 달이 빛나고 있으므로 때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초승달이 서쪽에 떴을 때나 둥근 달이 서쪽으로 기운 때다. 그러나 초승달은 초저녁에 잠깐 서쪽 하늘에 떴다가 금방 사라지므로 배를 띄우고 만취하도록 술을 마실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동정호의 야유(夜遊, 野遊)는 둥근 달이 떠오른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달이 이슥하게 기운 새벽까지 계속되었다고 봐야 한다. 뒷구절에도 이른 새벽에 기러기(早鴻)가 날아간다고 했다. 뱃놀이를 즐긴 신선들은 이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백저가(白苧歌)」는 당시 유행한 인기곡이다. 내용과 가락은 알 수 없다. 다만 올나이트를 했으므로 정황상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이거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정신없이 취한 주정뱅이들이 출렁이는 배 위에서 비틀 거리는 상황이니 어찌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취한 와중에 객기 부리는 놈이 꼭 하나는 있지 않던가? 이태백이 바로 그러했다. “얘들아, 내가 저 달을 건져서 돌아오마... 풍덩~”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까? 우리의 환상과 낭만이 다시 살아나는 때다. 내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다시 이 시를 음미해보시라. 

  1. 아파트담보 2018.10.11 20:42 신고

    한시 300수 돌파를 축하합니다. 짝짝짝!

  2. 한량 taeshik.kim 2018.10.14 16:55 신고

    부지런히 나가서 천수 만수 채워야지요



한시, 계절의 노래(185)


고요한 밤 고향 생각(靜夜思)


 [唐]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침상 맡에

빛나는 달빛


땅 위에

내린 서리인가


고개 들어

산 위 달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군더더기가 없다. 시에서는 같은 단어의 중복을 기피하지만 월(月)과 두(頭)를 중복해서 썼다. 그럼에도 중복해서 쓴 느낌이 없다. 차가운 달빛을 서리에 비김으로써 나그네 독수공방의 냉기와 고독을 뼈저리게 드러냈다. 그러고는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 생각에 젖는다. 객창의 냉기와 고독 밖에는 고향의 온기와 단란함이 존재한다. ‘시어 밖의 의미(言外之旨)’가 깊이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먼 곳에 가서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향의 노래를 불렀다. 나이가 들면 고향 생각이 더욱 짙어지지만, 다시 돌아가 본 고향은 이미 어릴 적 고향이 아니다. 정지용도 「고향」에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읊었다. 우리는 어쩌면 고향에 돌아가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이육사는 “수만호 빛이래야할 내 고향이어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우에 이끼만 푸르러라”라고 탄식했다. 우리에게 고향은 이제 조상의 무덤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 고향을 떠나 다시 익숙한 타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니 고향에서 또 다른 마음속 고향을 그리며 또 다른 방랑길을 떠날 시간이다.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어구



한시, 계절의 노래(178)


가을에 형문으로 내려가다(秋下荊門)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형문에 서리 내려

강가 나무 휑한 때에


베 돛은 무탈하게

추풍 속에 걸렸네


이번 길은 농어회를

먹으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명산 좋아

섬중으로 들어가네


霜落荊門江樹空, 布帆無恙掛秋風. 此行不爲鱸魚鱠, 自愛名山入剡中.


아미산 반달을 데리고 이백은 어디로 갔을까? 「아미산 달 타령(峨眉山月歌)」에서 제시한 경로대로 평강강의 청계를 떠나 투주(渝州: 지금의 충칭重慶)를 거쳐 삼협(三峽)을 통과했다. 지형이 험하고 물살이 세찬 삼협을 지날 때는 아슬아슬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으리라. 가슴 졸인 험로를 빠져나온 후 이백은 짐짓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기가 탄 배의 베 돛은 아무 탈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것도 유명한 ‘포범무양(布帆無恙)’이란 고사성어를 빌려서 말이다.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凱之)는 한 때 형주자사 은중감(殷仲堪)의 막료로 있다가 잠시 귀향할 때 그의 돛배를 빌려 파총(破冢)이란 곳을 지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강풍을 만나 배가 파손되었다. 고개지는 은중감에게 편지를 띄워 베로 만든 돛만은 무사하다고 소식을 알렸다. 대체 도와달라는 말인가, 아닌가. 어떻든 이후 ‘포범무양’이란 말은 무탈한 여행길을 비유하는 성어로 쓰이게 되었다. 험준한 파촉의 산하를 벗어난 이백 앞에는 형문산 석벽 아래로 드넓은 장강이 펼쳐지고 있었다. 때는 강가 나무의 잎조차 모두 떨어진 늦가을이니 그 휑한 공허감이 아득한 장강 물결과 어울려 더욱 광막한 느낌을 짙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백의 너스레는 제3구에서 어린 아이 같은 시치미로 이어진다. 아무도 이백의 여행 목적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백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이번 여행은 농어회를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섬중(剡中)의 아름다운 강산을 구경하러 간다고 굳이 강조한다. 이 대목을 읽고 우리는 이백의 이번 장강 여행 목적이 볼 것도 없이 오(吳) 땅의 농어회를 먹기 위한 것임을 직감한다. 그럼 반달 뜬 아미산에서 출발한 행차는 결국 미식 여행에 불과했다는 것인가? 그런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를 읽고 미식 여행의 유래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한시, 계절의 노래(176)


아미산 달 타령(峨眉山月歌)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아미산에 반달 뜬

이 가을날에


달그림자 평강강에

비쳐 흐르네


밤중에 청계 떠나

삼협 향하며


그리운 임 못 만나고

투주로 가네 


峨眉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水流. 夜發淸溪向三峽, 思君不見下渝州. 


너무 식상한 평어(評語)이지만 또 다시 천의무봉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다. 칠언절구는 4구 28자로 구성되는 지극히 정련된 시 형식이다. 이처럼 짧은 시에 지명이 다섯 개나 등장한다. 아미산(峨眉山), 평강강(平羌江), 청계(淸溪), 삼협(三峽), 투주(渝州)가 그것이다. 총 28자 중 12자가 지명이다. 동서고금의 어떤 시인이 시 한 수를 지으면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어를 지명으로 채울까?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오히려 지명의 의미가 시에 완전히 녹아들어 시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아미(峨眉)는 아미(蛾眉)와 발음이 같아 뾰죽한 산봉우리와 눈썹달을 연상하게 한다. 그 발치를 흐르는 평강강(平羌江)은 넓은 평지를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다. 아미산에 뜬 아미월(눈썹달)이 강물 속으로 비쳐들어 강과 산이 한 몸이 된다. 절묘하다. 청계(淸溪)는 맑은 물이므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사천(四川)의 풍경을 상징한다. 그 깨끗한 고을을 출발하여 험준한 삼협으로 향하는 마음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다. 고향을 처음 떠나 객지로 나갈 때 우리도 이와 같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겐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나는 곳이 어디인가? 투주(渝州)다. 투(渝)는 마음이 변한다는 뜻이다. 땅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애틋했던 마음도 담담해지기 마련이다. 대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저 아미산에 뜬 달이 내가 탄 배 위로 끝없이 따라 오듯 나의 마음도 달님을 매개로 그리운 사람을 잊지 못한다.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평안하신가? 한가위가 다가오는 저녁, 저 하늘 위에 뜬 아미월을 한 번 올려다보시기를. 

  1. yisabu 2018.09.18 22:29 신고

    강을 따라 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영어제목은 문리버라고 하면 되것구먼요. 사진도 그렇고.

  2. yisabu 2018.09.18 22:53 신고

    지명도 다 쓰임새가 다른 듯 합니다.
    “峨眉山月”、“平羌江水” 는 경치에 빗대어 가상의 모습을
    “发清溪”、“向三峡”、“下渝州”는 실제 움직이는 방향을 나타낸 듯 하여
    다 지명인 줄 모르고 깜박 속아 넘어가게끔 시를 허허실실 꾸몄네요.



한시, 계절의 노래(175) 


천문산 바라보며(望天門山)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천문산이 중간에 끊겨

초강이 열리니


벽옥 강물 동류하다

북쪽으로 감아도네


양쪽 강안 푸른 산이

마주한 채 튀어나오자


외로운 돛 한 조각

태양 곁에서 다가오네


天門中斷楚江開, 碧水東流至北回. 兩岸靑山相對出, 孤帆一片日邊來.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곳곳의 강산을 유람해보면 강이 산을 꿰뚫고, 산이 강을 건너는 곳이 허다함을 알 수 있다. 천고의 세월은 강과 산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말 그대로 아름다운 ‘강산’을 빚어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성립하듯,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말도 성립한다. 한계를 돌파한 곳에서 새로운 천지가 열리는 법이다. 강과 산의 변증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중국 장강(長江)이다. 배를 타고 장강삼협(長江三峽)을 흘러가보면 눈앞을 압도해오는 강산의 천변만화에 말문이 막힌다. 그저 감탄사만 내뱉을 수 있을 따름이다. 삼협에 속하지는 않지만 천문산도 장강의 그런 명소 중 하나다.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당도현(當塗縣) 남서쪽에 자리한 천문산은 장강이 비스듬히 북류하면서 단애를 만든 곳이다. 동쪽에는 박망산(博望山)이, 서쪽에는 양산(梁山)이 우뚝 솟아 마치 하늘이 만든 관문처럼 서로 대치하고 있다. 이백은 배를 타고 그곳을 지나며 눈앞에 다가오는 장관을 신속하게 포착했다. 저 멀리서 칼로 잘라놓은 듯한 절벽이 서서히 다가오자 벽옥색 강물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감아 도는 눈앞에 문득 거대한 바위 산이 박두하듯 나타나고, 그 사이로 태양이 비치는 수평선에서는 외로운 돛단배가 천천히 흘러온다. 장엄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도도한 강물 위에서 작은 돛단배는 늘 외롭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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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isabu 2018.09.17 23:53 신고

    천문산이란게 미국으로 치면 Delaware Water Gap 국립공원 같은 곳인가 보군요. 거기서도 카누 대여하면 태양을 등지고 강물따라 내려올 수 있습니다. 역시 이태백!


한시, 계절의 노래(163)


흰 왜가리(白鷺鶿)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흰 왜가리 가을 물로

내려앉는데


외롭게 나는 모습

서리와 같네


마음도 여유롭게

떠나지 않고


모래톱 가에

우뚝 서 있네


白鷺下秋水, 孤飛如墜霜. 心閑且未去, 獨立沙洲傍.


가을 물 가에 우뚝 서 있는 왜가리를 보고 이백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너무나 깨끗하고 고고하다. 이백의 생애를 훑어보면 기실 이런 모습과 꽤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백은 불우한 현실에 맞서 파격적이고 광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울분을 표현했다. 그의 울분과 표리를 이루는 일부 시에는 잔잔하면서도 고독한 영혼이 숨어 있다. 여유, 한적, 고독, 비애가 짙게 스며 있는 그의 일부 시는 낭만, 호방, 열정, 환희를 내뿜는 그의 다수 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독립’이란 말이 이백의 성격을 잘 규정한다. 홀로 우뚝 선다는 의미다. 한 개인이 인격, 지성, 감성으로 홀로 우뚝 서지 못한다면 그 삶의 의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호방하고 표일하다는 이백의 이미지는 이처럼 ‘특립독행(特立獨行)’하는 그의 행적이 발현된 것이라 할 만하다. 




한시, 계절의 노래(154)


열일곱수 추포가(秋浦歌十七首) 중 열다섯째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하얀 머리카락

삼천 장(丈)인데


시름 따라 이처럼

길어졌구나


모를레라 거울 속에

비친 저 모습


어디서 가을 서리

얻어왔을까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통 큰 시름이라고 해야 할까? 이백은 백발을 시로 읊으면서도 특유의 과장법을 사용한다. 백발이 삼천 장(丈)이라니... 말이 되는가? 이백은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에서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려 꽂히니(飛流直下三千尺)”라고 읊었다. 여산폭포 물줄기도 겨우 삼천 척(尺)에 불과한데 백발은 그 열 배에 달하는 삼천 장(丈)이라 했다. 어떻게 이처럼 길게 자랄 수 있을까? 다음 구절에서 묘사한 것처럼 그건 시름 때문이다. 한(漢)나라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에서는 “삶은 100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늘 천 년 근심을 안고 사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라고 탄식했다. 하긴 붓다도 이 세상을 고해(苦海)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이백의 묘사가 이뿐이었다면 기상천외한 과장법으로 그쳤으리라. 하지만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처럼 '밝은 거울[明鏡]'을 들여다보며 가을 서리 같은 백발을 어디서 얻어왔느냐고 묻는다.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으므로, 역시 자신이 대답해야 한다. 앞 구절에서 백발 3000장은 시름 때문에 자란 것이라고 이미 밝혀놓고 왜 같은 질문을 던지는가? 따라서 이 질문은 백발의 원인인 시름에 대한 질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 깊은 시름을 대체 어디서 얻어왔는가? 질문만 있고 대답은 없다. 이 시의 기상천외한 과장법이 속되지 않게 인간 내면의 슬픔 속으로 스며드는 까닭이 바로 이 지점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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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21)


여름날 산속에서(夏日山中)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흰 깃 부채 게으르게

흔들거리며


푸르른 숲속에서

발가벗었네


두건 벗어 바위벽에

걸어놓고서


맨 머리로 솔바람을

쐬고 있노라.


懶搖白羽扇, 裸體靑林中. 脫巾掛石壁, 露頂灑松風.


더위 탓을 하지만 일탈과 자유를 추구하는 시선(詩仙) 이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어가 모두 구속을 벗어던진 신선의 경지를 보여준다. 맨 몸과 맨 머리는 속세의 의관(허례, 가식)을 벗어던진 신선의 모습이다. 누구의 눈길도 받지 않는 푸른 숲속, 솔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곳, 옆에 있는 바위 절벽에 벗은 의관을 걸어두고 맨몸에 깃털 부채를 부치고 있으면 그곳이야 말로 ‘인간을 떠난 신선 세계’에 다름 아니다. 여름날 더러 계곡을 따라 등산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이목이 빈번한 곳에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기는 분들이 있다. 일탈이 아니라 소위 ‘알탕’이다. 알탕 삼매경에 드신 분은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분이 ‘알탕’하는 분의 몸매를 아름답게 여기지는 않는다. ‘알탕’을 하든 ‘거풍’을 하든 혼자만의 선계를 즐기는 것이 진정으로 이백의 경지에 다가가는 일일 터이다. 자신의 외로움에 다가서야만 타인의 외로움에 공명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피서는 단순한 더위 식히기가 아니다. 신선이 되려는 분들은 피서의 급을 높이시기 바란다. 



한시, 계절의 노래(92)


아침에 백제성을 출발하다(早發白帝城)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아침에 백제성

채색 구름 떠나서


천 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양쪽 강언덕 원숭이

끊없이 우는 가운데


가벼운 배는 이미

만 겹 산을 지나왔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동서고금을 통틀어 나는 번지점프의 달인으로 이백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가 직접 번지점프를 했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을 읽어보라. “휘날리는 물살이 삼천 척 내려 꽂히니(飛流直下三千尺)”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 위에서 쏟아져내려오는 것을(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이 시에서도 아침 채색 구름 사이에서 떠난다고 했으므로 구름 속에서 번지점프하듯 배가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강릉까지 가는 천 리 길은 하루씩이나 걸릴 것도 없다. 번지점프가 오히려 소소한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때 이백은 영왕(永王)의 반란에 연루되어 야랑(夜郞)으로 귀양을 가다가 백제성에서 사면 통보를 받았다. 채색 구름의 찬란함과 가벼운 배의 질주감(疾走感)은 그의 기쁨을 드러낸다. 또 원숭이가 득시글거리는 궁벽한 땅에서 벗어나 어서 빨리 일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소망도 깊이 스며 있다. 지금은 중국 장강(長江)에 싼샤(三峽) 댐이 조성되어 이런 질주감을 느낄 수 없다. 이백의 호방한 기상도 맥이 끊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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