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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주8

딸을 과부로 만든 김유신(1) 풍월주 김흠순 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이 내세운 인물 중 김영윤金令胤 전기는 실은 김영윤을 중심으로 그의 아버지 김반굴金盤屈, 그의 할아버지 김흠춘金欽春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문 전기물이다. 물론 주인공은 김영윤인 까닭에 그의 아버지와 조부는 간략히 생애가 언급된다. 하지만 비록 짧은 분량에 지나지 않으나, 이를 통해 반굴과 흠춘에 대한 생애의 몇 가지 중요한 단락을 우리는 보충한다. 먼저 김영윤을 본격 다루기에 앞서 등장하는 반굴과 흠춘은 행적이 다음과 같다. “김영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 각간 흠춘欽春[혹은 흠순欽純이라고도 한다.]은 진평왕眞平王 때 화랑이 되었는데 인덕이 깊고 신의가 두터워 뭇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장성하자 문무대왕이 발탁하여 재상으로 삼았는데, 임금을 충.. 2023. 12. 27.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4) 지방 떠돌며 전쟁만 기다리는 동생 낭비대첩을 대승으로 이끌고 화려하게 귀환한 형과 아버지를 한없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분을 삭이지 못한 흠순은 춘추의 뒤를 이어 대권을 거머쥐어 제19대 화랑이 되긴 했지만, 의욕상실증에 걸리고 말았으니, 낭정郎政이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교단 운영은 패대기치고는 짐을 싸고는 부모 형님, 그리고 그 절세가인 마누라한테 빠이빠이 나 댕기온데이, 오데 가는지는 묻지 마레이, 서늘해지마 돌아오겠구마 하는 말을 남기고는 표연히 길을 나섰으니, 그렇다고 그가 따로 갈 데를 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런 점에서 그는 방랑객 김삿갓 대선배이기도 했다. 마침 그때가 한반도는 전쟁의 시대라, 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들도 전장에서 공을 세우기 좋아하는 시대 흐름이었으니 그 현상을 흠순공 전은 이렇게 말한다. “대개 .. 2023. 6. 16.
《화랑세기》에 보이는 진흥왕 말년~진지왕 시대 화랑과 원화, 그 왔다리갔다리 혼란상 - 562년 5세 풍월주 사다함 사망, 6세 풍월주 세종 취임 - 568년 원화源花 부활, 29년 만(540년 기준), 미실美室 원화 취임, 연호 대창大昌 개원 - 572년 홍제鴻濟 원년 3월, 동륜태자 보명궁 개한테 물려 사망, 미실 연루, 원화 4년 만에 폐지, - 572년 풍월주 세종 재취임. 세종, 설원랑에게 풍월주 양위(양위연대는 불명, 아마 572일듯) - 576년 진흥 사망, 진지 즉위와 더불어 화랑 분열, 호국선護國仙 문노파가 독립해 설원랑의 운상인파雲上人派와 대립 - 579년, 진지 폐위 직전 진흥왕비 사도태후가 두 파를 통합, 원화 부활, 미실 원화 재취임. 미실이 설원랑을 다시 풍월주로 임명, 곧이어 문노에게 풍월주 양위 *** 이것이 화랑세기에 보이는 진흥왕 말년과 진지왕 시대에 걸.. 2020. 12. 5.
김대문(金大問) 생몰년 미상. 신라인.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에 임명되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화랑 집단 우두머리인 풍월주를 배출했다. 아버지 오기는 27세 풍월주이며, 할아버지 예원은 20세, 증조부 보리는 12세, 고조부 이화랑은 4세, 5대조 위화랑은 초대 풍월주였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김대문 열전 : 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의 귀문(貴門)의 자제로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 그가 쓴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삼국사기 권제1(신라본기 제1) 남해차차웅 :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위에 올랐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운(法雲) 전 : (진흥왕) 37년(576)에는 처음으로.. 2018. 3. 19.
검군(劍君) 진평왕 시대 신라인으로 사량궁 사인으로 있으면, 다른 사인들이 관청 곡식을 몰래 빼돌리는 일에 가담하지 않아 그들에게 독살됐다. 근랑(近郞)이라는 풍월주를 따라 수양하면서 의로운 것이 아니면 사사롭게 취할 수 없다는 신념을 익혀 이를 실천에 옮겼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검군 열전 : 검군(劍君)은 대사(大舍) 구문(仇文)의 아들로 사량궁(沙梁宮)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건복(建福) 44년 정해(진평왕 49: 627) 가을 8월에 서리가 내려 여러 농작물을 말려 죽였으므로 다음 해의 봄으로부터 여름까지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자식을 팔아 끼니를 메웠다. 이때 궁중의 여러 사인(舍人)들이 함께 모의하여 창예창(唱倉) 곡식을 훔쳐 나누었는데 검군만이 홀로 받지 않았다. 여러 사인이 말하기를 “.. 2018. 3. 15.
미진부(未珍夫) 화랑세기 미진부공 전 : 미진부공(未珍夫公)은 아시공 아들이다. 어머니는 삼엽궁주(三葉宮主)이니 법흥대왕 딸이다. 꿈에 백학을 보고 낳았다. 공은 모습이 아름답고 재주가 많아, 법흥대왕이 총애했다. 비대공(比臺公) 등과 함께 궁중에서 자랐다. 그 때 법흥대왕의 옥진궁주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 지소태후가 (진골)정통이 즉위하기 어렵다 하면서, 삼엽과 함께 아시공이 태후를 지지했다. 이로써 태후가 삼엽(三葉)과 공을 총애했다. 태후가 정치를 맡게 되자 공을 폐신(嬖臣)으로 삼으니 그 때 공은 나이가 16살로 능히 태후 뜻에 부합할 수 있었다. 앞서 삼산공(三山公) 딸인 준정(俊貞)이 원화(源花)가 되어 많은 낭도를 두었다. 그 때 법흥대왕 딸인 남모공주(南毛公主)는 백제 보과공주(寶果公主) 소생인데, 또한 뛰.. 201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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