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3168 호태왕비 또 하나의 개사기 "왜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그래 솔까 저 비문 이른바 신묘년 조는 논란이긴 하나 아래와 같이 판독하는 일이 많거니와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東新羅以爲臣民다만 문맥으로 보면 저런 판독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설라무네, 破∨百殘하고 東∨新羅하여 (백잔과 신라를)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라 해서 東으로 판독한 글자는 그 앞에 나오는 破와 같은 뜻이 되는 동사가 와야 하니, 東은 잘못된 판독 같다. 아무튼 저 문장은 여러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대략 아래와 같이 봐야 하니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屬民이라 (예로부터 우리 고구려에) 조공했거니와, 왜가 신묘년(서기 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 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정도가 된다. 간단히 본래 백제와 신라는 우리 고구려.. 2026. 6. 10. 동부여東扶餘가 옛날부터 추모왕의 속민? 구제불능 호태왕비 거짓말도 밥 먹듯 하다 보면 진짜라고 자신도 믿게 된다.이를 무슨 증후군인가 하더라만 호태왕비가 이 증후군이라 입만 열었다 하면 속민 타령이라 무슨 정복지만 나왔다면 그 정복한 땅은 옛날부터 고구려 속민이라 운운했거니와이 타령에 백제도 신라도 다 지 아랫것들이고 동부여 또한 아주 대놓고선 이미 시조 추모 시절부터 고구려 시다바리라 한다.[영락] 20년 경술(410)에 이르기를 동부여東扶餘는 옛날부터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중간에 배반하여 조공을 하지 않아, 왕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가 토벌하였다. [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동부여가 추모의 속민?거짓말도 정도껏 해야 한다.빌빌 싸던 추모가 빌붙어 산 데가 동부여다.함에도 아예 주술 관계까지 바꾸어버렸다.숙신[이 부분은 판독 논란이 있다]도 까불어서 담덕 .. 2026. 6. 10. [교감학] 역전앞을 방불하는 玲瓏, 그에서 돌발하는 충돌들 일상 생활에서도 더러 사용하는 말 중에 영롱이라는 말이 있다. 새벽 이슬이나 귀금속을 두고서 영롱하다라는 식으로 쓰는 말이다. 이 말 한자어다. 玲瓏이라 쓴다. 북한에서는 령롱이라 하겠지만,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해 영롱이라 쓴다. 저 말 역전앞과 발상이 같다. 결국 같은 말을 반복해서 그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발음도 거의 같고 음절 구성도 같다. 의성어이기 때문이다. 구슬이 구르는 소리다.玲이나 瓏이나 두 글자 모두 구슬 玉이 뜻을 한정하는 형성자다. 令과 龍이 소리 부호다. 따라서 저 말은 애초에는 '령룡'이었겠다. 두 말 모두 저런 합성어에서나 가끔 대하지, 일상생활에서 그리 쉽게 접할 말은 아니다. 구슬은 귀금속이라, 그런 귀금속 자체가 희귀하던 시절에 무엇이 玲이고 무엇이 瓏인 줄 구분할 .. 2026. 6. 10. [교감] 文王과 文汪의 경우 텍스트에 따라 저 두 가지 표기가 혼용되는 같은 인물이라전자라고 하면 흔히 상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의 시호를 연상하기 쉬우나저 두 가지 표기로 등장하는 인물은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그의 정비 문명태후 소생인 아들로훗날 죽어 문무왕이라는 시호를 받는 김법민과 죽어 태대각간에 추증되는 김인문의 동부동모 동생이다.아버지가 왕이 되기 전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될 적에 아버지를 수행해 들어가 숙위학생인가로 눌러앉기도 한 중국통이다.이런 전력은 형 김인문과 아주 비슷해서 문왕 역시 인문처럼 중국말을 아주 쏼라쏼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아무튼 텍스트에 따라 저이는 저 두 가지 표기가 혼용하지만 文王이 많고 文汪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글타면 어느 쪽이 그의 진짜 이름인가?첫째 사용빈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文.. 2026. 6. 10. 진흥왕의 순수巡狩를 벤또 투어로 생각하는 놈들이 봐야 할 정조의 화성 행차 뭐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 바락바락 아니라 우길 놈 천지리라아니긴 무슨 개뿔?진흥왕 순수 관련 논문들 읽어봐! 단 한 놈도 그 규모를 논한 놈 있는지?한 놈도 없어.그러고선 매양 하는 말이 이때 왕을 수행한 인물, 곧 수가 명단이 어떻고저떻고 하는 헛소리밖에 없다.그 수가 명단, 20명밖에 되지 않아!그래 순수비는 아니지만 이른바 창녕 척경비 봐바. 거기 등장하는 왕을 따라간 관료도 50명도 되지 않을 걸?그래서 진짜로 20명, 혹은 50명 안팎으로 쫄래쫄래 벤또 싸들고 소풍 갔냐고?벤또 여행이랑 순수巡狩를 왜 차별해야 하는가?문제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달라지면 논문 수준이 달라진다. 벤또 명단 두고서 거칠부가 어떻네 김유신 할아버지가 어떻네 이딴 소리는 개돼지나 하는 말이다. .. 2026. 6. 9. [삼국국경] 동해안 주인은 고구려가 아닌 말갈로 반환해야! 흔히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직후 장수왕 시대 삼국강역도를 저리 묘사하거니와 그래 딴 문제 다 차치하고 동해안 문제를 집중하기로 한다.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했는가?다시 말하지만 고구려는 동해안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적이 없다. 이걸 한 놈도 의심조차 않는다. 모르겠다 이 문제 역시 내가 하도 지껄여댔으니 근자엔 누군가 다루었는지도.저 동해 문제가 논급되는 때가 내 기억에 딱 한 번인가 동천왕 시대인가에 있다. 관구검이 침략하자 수도를 버리고 열라 도망한 동천왕이 동해까지인가로 갔다는 기록이 있을 것이다. 기타 고구려와 동해안 접선을 증언하는 다른 간접 기록이 있으니 태조왕에 의한 책성 순수가 그것이다. 이 책성이 정확히 어디쯤인지 논란이 많다고 알며, 그런 가운데서도 아마도 두만강 하류 어느 쪽을.. 2026. 6. 9. 이전 1 2 3 4 5 6 7 ··· 52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