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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3152

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인 호태왕비문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만 하는 놈들 주특기가 방금 전에 지가 한 말도 잊어버리고선 스스로 배신하는 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점이다. 나는 광개토왕비문이 북한의 작금 로동신문과 똑같다 했다.로동신문을 보면 북한 같은 지구상 낙원 없다. 위대하신 령도자 지휘 아래 그 신민은 천국을 구가한다. 하지만 뜯어보면 이를 배신하는 것 천지라, 그런 증거를 다름 아닌 로동신문 구절에서 일일이 찾아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서 그러한 명백한 증거로 추모에 의한 고구려 건국 신화를 예로 들었거니와, 개뻥은 이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넘쳐 난다. 비문에 이르기를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屬民이었기 때문에 (죽죽 조공했지만) 왜가 신묘년(391)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 하여 .. 2026. 6. 6.
사료비판은 아예 시궁창에 던져버린 호태왕비 역사학 출발이 사료비판이라면서 정작 호태왕비 의심하는 역사학도 단 한 놈도 못봤다삼국사기는 그렇게 난도질내기 좋아하는 역사학도들이,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라, 엄정한 사료비판은 역사학 출발이랜다. 그래 그런 놈들이 어찌하여 저 광개토왕비는 단 한 놈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는가?그래 나름 사료비판 흉내를 내기는 하더라만, 삼국사기에 대해 들이댄 그런 '엄정한 사료비판'을 가하는 역사학도를 나는 단 한 놈도 보지 못했다. 당대 기록이라서 그보다 훨씬 후대에 정리된 삼국사기에 견주어 비할 수 없는 정확성이 있어?어떤 개새끼가 이딴 망발을 한다더냐?내가 맨날 드는 보기가 로동신문이라, 그게 당대 기록이라 지금 이 순간순간마다 북한 정권이 써내려가는 실록이라, 어찌 저딴 거지 같은 언동 언설이 당대 북한.. 2026. 6. 6.
[고고논단] 방추차가 어쨌다고? 단 한 놈도 고민 않은 옷감, 특히 그 재료와 제작 공정 그래 또 대뜸 우리가 언제 그랬냐고 목청 높이는 놈 있으리라. 방추차 혹은 가락바퀴라면 고고학과 1학년 생도 아는 너무나 익숙한 도구라 할 것이다. 그래?알긴 뭘 알어?저것이 직조 도구 혹은 그런 도구 부품임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저런 유물만 이야기했지, 저런 유물이 말하는 사회문화사를 언제 너희가 제대로 조명한 적 있는가 말이다. 그래 다 좋다. 직조 도구 맞다. 이건 반달돌칼이랑 달리 그 기능 쓰임새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신석기 이래 선사시대 이래 열라 많이 나온다. 얼마나 많이?집집마다 거의 다 나온다 해도 틀린 말 아니고, 적어도 마을마다 하나씩 옷공장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그 정도로 많이 나온다.문제는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냐는 것.출토 양상을 보건대 섬유산업은 철저한 가내수공업이.. 2026. 6. 5.
반달돌칼 그 백년의 사기행각을 끝장낸다 에둘러 갈까 생각했다가 결론부터 제시한다. 반달돌칼을 곡물 수확용 도구, 예컨대 벼이삭 따기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 해서 이를 곡물수확용 낫이라는 지난 백년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이요, 단 한 군데서도 증명된 적이 없다.그렇다면 무엇인가?직조 도구다! 왜 그런가?나는 이 반달돌칼을 볼 때 세 가지 점을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엄청난 출토량과 그것이 출토되는 지점은 집구석 방구석이고 그와 같이 출토하는 공반 유물이 그것이라, 이 점을 한국고고학은 전연 주목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출토량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논리라면 삼국시대 이후 주거지마다 낫이 쏟아져야 한다! 낫이 출토된 사례 무지무지 많을 거 같지? 몇 점 되지도 않는다. 동시대 반달돌칼 만큼이나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는 .. 2026. 6. 5.
벼농사 과대망상이 반달돌칼 신화의 배양토다 "특히 청동기시대에 많이 쓰여졌는데, 지금까지 드러난 한국 청동기시대의 집자리(住居址) 유적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반달돌칼이 나왔으며 그것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유물에 속한다. 한국에서 이처럼 반달칼이 많이 확인되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의 생산활동에서 농업의 비중이 컸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반달돌칼은 농경의 도구임이 분명하나 농경의 시작과의 관계는 명확하지가 않다. 반달칼 사용 이전인 황해도 지탑리 지층에서 탄화된 조와 함께 곰배괭이가 발견되어 반달칼 이전으로 농경이 소급될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게다가 반달칼은 수확의 도구이지 재배하는 도구는 아니라는 점에서 반달칼과 농경의 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삼각형돌칼이 남한지역과 일본의 도작(稻作) 증거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26. 6. 4.
동남아와 농경, 반달돌칼을 질식케 하는 두 악령 나는 저 반달돌칼을 보고선 그 쓰임새로 곡물 수확을 생각한 그 원인 제공자를 찾아서는 단두대에 세우고선 추궁하고 싶다.네 머리는 도대체 어떤 돌대가리기에 저처럼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그 동기를 캐보았음 한다.어디 동남아 관광 갔다가 대나무 모자 뒤집어 쓴 이모작 삼모작 농부들이 벼 이삭 꼬다리 톡탁톡탁 따는 도구를 보니 어랏? 반달돌칼 비슷하네 하고선 본국 돌아와선 반달돌칼은 벼 이삭 따는 낫이다! 이렇게 농담 삼아 쓴 글이 어느새 저리 군림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거니와그리 되니 이른바 농경으로 밥 먹고 산다는 고고학도들한테 저 농담은 구세주였으니 오호 농경 수확도구? 그 좋네 하고선 맞장구 치기에 이르렀으니 저에 대한 모든 기술을 맡은 자들이 첫째 고고학도요 둘째 농경으로 먹고 산다는 자들이라는..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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