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901 미워하며 산다는 것, 저주를 퍼붓는 사람 로마 시대 이 바스 저주판Bath curse tablet은 그런 류 130점 중 하나로, 영국 라틴어British Latin로 빌비아Vilbia라는 여자를 뺏어간 놈과 그녀에게 해를 끼친 자를 저주하는 내용을 잔뜩 새겨 놓았다."빌비아를 내게서 납치한 자는 물처럼 녹아 흐믈흐물해지기기를. 그녀를 그토록 음탕하게 잡아먹은 자는 벙어리가 되기를."저주판은 보통 얇은 납판에다가 새겼으며 땅에 묻거나 물에 던지거나 사원에 보관하는 일이 많았다.또한 사랑의 주문과 연관되기도 했는데, 때로는 대상을 닮은 조각상을 묶고는 못으로 뚫기도 했다.이러한 저주판에는 특히 사랑의 주문에서 효과를 높이기 위해 머리카락이나 옷과 같은 개인 소지품이 포함되기도 했다.저주판에 적힌 많은 글귀가 플루토Pluto나 헤카테Hecate와 .. 2025. 8. 29. 인간은 언제쯤 어디에서 말을 길들였을까? 고대 DNA 분석에 기초한 연구 결과 지금의 스페인 포르투갈 땅인 이베리아 반도에 길들인 말이 등장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대략 4천 년 전쯤이라는 보고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야생마가 언제쯤 어느 지역에서 가축화하기 시작했을까를 심층으로 다룬 비교적 최근하는 아티클 하나가 May 19, 2022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실린 적 있으니, 최근 이 분야 흐름을 간취하는 데는 요긴하다 생각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은 언제쯤 말을 길들였을까?과학자들은 최근에야 말을 야생에서 길들인 정확한 시기와 장소를 밝혀냈다. 개는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지만, 말 또한 그 칭호를 공유할 만하다. 말은 사람과 물건을 운반하는 수단, 말 그대로의 마력馬力horsepower을 제공했다. 전차를 끄고 기병을 태.. 2025. 8. 24. 인종차별적 두개골 연구는 어떻게 빅토리아 시대 영국 과학자들을 사로잡았나 by Elise Smith / The Conversation 에든버러 대학교의 최근 인종과 역사 리뷰[Review of Race and History]는 19세기에 연구를 위해 조달된 1,500구 인간 두개골을 소장한 "두개골 연구실skull room"에 주목했다. 두개골 측정을 연구하는 두개골 계측학Craniometry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 유럽, 미국의 의과대학에서 널리 교육되었다. 오늘날 두개골 계측학의 해롭고 인종차별적인 근거는 신뢰를 잃었다.머리 크기와 모양이 개인이나 집단의 정신적, 행동적 특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초, 과학적 인종차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위해 수천 개 두개골이 수집되었다.에든버러 두개골 보관실은 결.. 2025. 8. 23. 노비 사보타지론에 부친다, 쥐도새도 모르게 주인을 살해하는 사람들 조선시대 문건들을 보면 법과 실상이 따로 노는 일이 너무 많아 땅 주인과 실제 땅 주인은 따로 노는 일 또한 너무나 많다. 조선시대 지주라는 사람들 양태를 보면 그 태동 운영 양태를 보면 결정적인 하자가 있으니, 집약적 농장화가 아니라 실은 그네가 소유한 땅이 전국에 산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예컨대 김태식이가 땅 주인이라 치면, 명실이 상부하려면 내가 그 농장을 한 눈에 조직으로 제대로 관리할 그런 입지 공간을 갖춰야 하지만,실제는 그러지는 못해서 고향 김천에도 있고, 저쪽 전라도 쪽 영디기 고향 장흥에도 있고 하는 그런 식이다. 이 땅들을 부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이들이 문서상 땅 주인과 상하관계, 주종관계 주인과 외거노비 이런 관계인지 아닌지는 내가 지금 자신이 없지마는, 그런 관계가 있다 해도.. 2025. 8. 21. 시흥과 금천, 그 절묘한 통합을 꾀한 ‘금천 시흥행궁’ 시흥과 금천, 그 절묘한 통합을 꾀한 ‘금천 시흥행궁’ 김태식 국토문화유산연구원 전문위원, 전 연합뉴스 문화재 전문기자 발표문을 통독하면서 무엇보다 발표자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 발표문을 살피거나 이곳에서 들으신 분 누구나 동감하겠듯이 발표자가 고생했을 흔적이 역력한 까닭이다. 지도와 회화 자료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을 오늘날 지도에다 얹히는 작업은 그야말로 인내와의 싸움이다. 그 사투를 벌인 발표자,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그에 어느 정도 토대가 되었을 선행 연구진에 대해서도 다시금 감사드린다. 발표자는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시흥과 금천이라는 지명, 혹은 그런 역사에서 비롯하는 오늘날의 혼란상을 연원을 차곡차곡 짚었으니, 이는 이곳 .. 2025. 8. 21. 임시정부를 지탱한 살림꾼 한진교 패망 뒤 중국 망명, 회사 설립해 언제나 임정 자금책해방 뒤 귀국해 한경직 목사와 영락교회 창설, 한태동 선생 선친 어느 기관이나 조직이든 실제로 운영을 하는 데에는 살림꾼이 필요한 법이다. 26년이나 존속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중 한 명이 평안남도 중화 출신 독립운동가 한진교韓鎭敎(1887~1973)다. 일찍이 개신교에 입교하고 평소 정의감이 남달랐던 한진교는 망국 이후 베이징으로 망명했다가 1914년 상하이로 가서 해송양행海松洋行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경영했던 인물이다.그곳에서 나온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헌납했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다.1918년에는 청년 독립운동단체인 신한청년당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한진교를 포함한 6인 창당 멤버는.. 2025. 8. 18. 이전 1 2 3 4 5 6 7 ··· 48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