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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one 잡지..누구나 투고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한국 혹은 한국문화가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흔히 영어 번역 문제를 들기도 한다. 이들에 의하면,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영어로 번역되고,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서 국제사회가 한국과 한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가장 자주 나오는 데 중 하나가 역사학이다. 특히 동북공정이니 독도영유권 문제니 하는 역사 관련 국제분쟁이 나올 적마다, 이 분야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은 국내 학자들의 연구가 제대로 국제사회에 번역되고 소개되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거나, 혹은 그런 논쟁이 제기되어도 우리가 국제사회를 향해 제목소리를 내는 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비단 역사학이 아니라 해도, 번역이 태부족이라는 데는 국내 지식인사회가 널리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는 이렇다 할 이의 제기를 하기 힘들다. 


이런 목소리는 국가에 의한 의욕적인 영역 혹은 다른 외국어 번역본 출간을 통해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내기 시작한 문학계와 대비할 때, 어쩌면 타당성을 지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 작품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에 견주어 외국어로 번역이 많이 이뤄졌으며, 지금도 그러는 추세다.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 딸로서 그 자신 촉망받는 소설가 한강은 근자 맨부커상을 수상했거니와, 그 권위에서는 어쩌면 노벨문학상과 맞먹을 이 상을 수상한 가장 발본적인 이유가 영어 번역에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어로 번역되었기에 그 힘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이 외국에 널리 소개된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그의 작품 번역에 정부차원 지원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문학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외국어 번역이 이뤄지는 형편이며, 이를 기반으로 해서 한국문학이 세계에 알려지는 결정적인 통로가 되고 있다. 


이에 비견해서, 혹은 그에 발맞추어 다른 여타 학문 분야도 국내 연구성과가 영어 같은 외국어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번역되고 소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것이 역사왜곡도 막을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이 한국문화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세계에 소개할 창구가 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실제 내가 만난 이 분야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리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는 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영문학술잡지 KOREA JOURNAL..유네스코한국위원회서 발간하다 근자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운영주체가 넘어갔다.



첫째, 직업적 학문분야 종사자들이 그네들 연구성과를 국제무대에 알릴 통로는 엄청나게 많다. 무수한 통로가 있다. 관련 각종 외국어 학술잡지는 널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무수한 잡지 어디에도 국내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은 투고가 가능하다. 단, 해당 외국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영어가 국제사회 공용어이므로, 영어라면 어디에건 투고하는 데는 애로가 전연 없다. 따라서 이를 고려할 때 국내 학계의 연구성과가 국제사회에 알려지지 않는 까닭은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도사린다는 점을 단적으로 안다. 영어로 쓰면 된다. 본인이 영어가 되지 않으면, 영어로 전문 번역해주는 기관이나 개인한테 맡기면 된다. 그것을 하지 않을 뿐이다. 얼마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무대에 내 연구를 알릴 기회가 존재하는 데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뿐이다. 왜 그것을 불특정 국민다수한테 부담을 떠넘겨 꼭 국민세금을 쏟아부어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말인가?  


둘째,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영어로 번역되어도 국제사회 학술잡지가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더 간단히 말한다. 국내 학술연구성과가 영어로 번역되지 않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수준 미달인 까닭에 소개되지 않는 것 뿐이다. 좋은 논문이 영어와 같은 외국어로 작성되면 더욱 좋겠지만, 꼭 한국어 논문이라 해서, 알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뭄에 콩나듯 하다만, 반드시 언어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논문다운 논문, 글다운 글, 국제사회에 내놓아 부끄럼이 없는 글이 없는 까닭이 왜 엉뚱한 영어 번역에다 분풀이를 한단 말인가? 내 보기엔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나오는 우리 지식인 사회 논문을 보면 100편 중 99편은 쓰레기다. 쓰레기 중에서도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쓰레기다. 깡통이야, 비닐이야, 유리병이야, 철물이야, 청동이야 녹여서 혹은 갈아서 재활용이나 한다지만, 이 논문들은 그조차 불가능해 쓰레기 매립장에 묻고는 영원히 밀봉해야 한다. 


정리한다. 국내 학술계 연구성과가 외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발표할 매체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요, 더구나 영어로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서도 아니니, 오직 그 원인은 국제사회에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논문이 없기 때문이다. 


 


  1. yisabu 2018.08.27 19:51 신고

    한강의 소설 영역은 스미스가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압니다.

  2. 한량 taeshik.kim 2018.08.27 20:41 신고

    그렇군요..감사합니다

부여 능산리절터..저 넓은 절터 어디에도 나무 한 그루 없다.



무엇을 홀라당주의라 이름 하는가? 잔디잡풀주의의 다른 이름이라. 문화재 원형을 보여준다는 구실로 그에 방해가 되는 우수마발은 다 뽑아버림으로써 정작 현장에는 나무 한 그루 남기지 않고 잔디만 식재하거나 잡풀이 우거지게 하는 문화재 정책을 일컫는 말이다. 


문화재 그 자체를 빛나게 한다면서 그 시각적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물들을 모조리 치워버리는 경향을 나는 홀라당주의라 이름한다. 우리 문화재 현장에서 이런 경향은 매우 강해서 예컨대 고분군이나 성곽 사적 정비를 보면 예외없이 성벽 주변, 혹은 고분 주변 나무는 다 베어 버리는 소위 개활지 정책을 쓴다. 그리해서 베어낸 나무와 잡풀 자리에는 언제나 골프장을 연상케 하는 잔디밭이 무성하다. 하지만 나무는 있어야 한다. 나무 외 여타 시설물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다 어우러져 빚어내는 교향곡이 바로 경관landscape이다. 


누가 없애는가? 그 제일 원흉은 고고건축학도다. 이들 건축 혹은 고고학도는 보수정비 이전에 발굴조사를 진행하거니와 조사에 방해된다 해서, 나아가 그 조사 진행 중에는 사진 촬영에 방해된다 해서 조사구역 내 나무는 제아무리 고목이라 해도 보호수 따위로 지정된 극소수만을 제외한 모든 나무를 베어버린다. 두 번째 원흉은 이를 승인하는 문화재위원회와 행정 당국이라, 이들은 수목엔 전연 관심이 없고 오로지 유구 확인 노출에만 혈안인지라 범죄의 공모자들이다.


경주 나정 최근에 본 적 있는가? 그 울창한 숲 다 망실했다. 경주향교 뒤편 본 적 있는가? 숲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베어냈느냐 물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 내려왔다. 문화재청 지침이 그렇다는 것이다. 


분황사에서 바라본 황룡사터..역시 나무 한 그루 없다.


이에서 저 홀라당주의 세 번째 원흉이 다름 아닌 문화재청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대문 방화사건 이후 방재시스템 강화한다고 지정 문화재 주변에서 화인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뜯어제끼고 뽑아버리라고 한다. 


묻는다. 남대문이 주변에 숲이 있어 화재가 났는가? 노망난 늙은이 신나 들고 가서 뿌려 일어난 일이다. 저 홀라당주의를 대머리주의라 하고 싶지만 내 주변에도 독수리머리가 많고 또 인권침해 우려가 있어 참는다. 


익산 제석사지 중 탑지..희귀하게 고목을 남기고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2011년 12월 2일 오후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는 문화재청 주최 '덕수궁(사적제124호) 명칭 검토 공청회'가 있었거니와, 그에서 나는 토론자로 참여해 경운궁으로의 명칭 변경을 찬성하는 발표를 비판했거니와, 대회 개최 전에 주최측에 미리 제출한 내 토론문 '덕수궁德壽宮이 일제日帝 잔재殘滓라는 망언에 대하여'는 이미 이곳 블로그에 전재했거니와, 행사 당일 나는 현장에서 그 토론문과는 별개로 반대론을 보강한 추가 토론문을 현장에서 직접 제기했으니, 그것이 다음이다. 아래서 보듯이 나는 이 명칭 변경을 추진한 문화재청의 절차가 잘못되었으며, 나아가 맹렬한 찬성론을 전개한 홍순민 교수의 논거를 붕파하고자 했다. 결국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환치하고자 한 시도는 좌절됐다. 하지만 이 건은 언제건 다시 준동할 채비를 한다. 



덕수궁 명칭 변경론과 관련한 김태식의 토론 추가

 

1. 문화재청에 대하여 : 절차에 문제가 있다.


20119월 15일 문화재청은 덕수궁 명칭 변경 추진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이르기를

 

문화재청은 올해 7월 국가지정문화재 중 사적 439건의 지정명칭을 변경하여 고시했으나, 당시 덕수궁의 명칭은 덕수궁으로 유지할 것인지, 경운궁이라는 옛 이름으로 환원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고 했다. 이에서 함께 다뤘다는 사적 439건의 지정명칭은 토론자가 알기로 주소를 부여하거나, 관할 행정구역 변경 등에 따른 것으로 안다한데 덕수궁은 왜 문화재위 안건에 올라갔는가안건에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올리는 이유가 타당성을 갖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아무 것도 학문적으로 엄밀히 검증되지 아니했다. 변경론자가 덕수궁이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사실을 운운했지만, 그런 주장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이 역사적 史實일 수는 없다. 이러한 주장은 검증을 거치기 전에는 의의 제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주장에 대한 검증도 없이, 그런 검증되지 않은 이설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런 안건이 문화재위원회에 올라갈 수 있는가?


요컨대 덕수궁 명칭 변경과 관련한 문화재청의 절차 자체가 잘못되었다.

 

2. 홍순민 교수의 발제에 대하여

 

a. 홍 교수 발표에도 드러났듯이 덕수궁은 이미 태조 이성계의 退邸에 대해서도 사용됐다. 이로써 보건대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일제 잔재하고는 하등 관계없으며 퇴위한 帝王의 저택에 대해 사용하는 일반명사 같은 명칭임을 스스로 폭로한 것 아닌가?

 


b. 퇴위한 고종의 거처로 덕수궁이라는 궁호를, 그리고 부호를 승녕부로 정한 주체는 순종 아닌가? 무슨 일제인가?

 

c. 홍 교수

 

순종 즉위(1907)82일 궁호, 부호를 정할 때, 궁내부 대신 이윤용이 주도한 행태는 망()을 보통 삼망(三望), 곧 셋을 정하여 올려 임금이 그중에서 하나를 낙점(落點)하게 하는 이전의 관행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며, 그 후보 명칭조차도 새로 정한 것이 아니라 태조의 것을 그대로 빌어 한 것은 매우 무성의한 행위였다.”

 

홍 교수 견해에 따르면 덕수궁이라는 궁호는 태조 이성계의 선례를 빌린 것이다그렇다면 도대체 어찌하여 이것이 일제의 잔재란 말인가더불어 단수 후보로 궁호와 부호를 올린 것이 어찌하여 매우 무성의한 행위일 수 있는가?

 

d. 홍 교수는 이런 궁호 부호 책정을 주도한 인물로 이윤용을 지목하면서 이르기를

 

특히 이윤용이 이완용의 서형으로서 그의 친일 행각이 매우 현저함으로 볼 때 궁호, 부호를 정한 것은 고종과 대한제국 조정의 뜻이라기보다는 일제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묻는다이런 언급이 과연 역사학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린가?

 

e. 홍 교수는 또 이르기를

 

덕수궁은 태조가 양위한 뒤 1408524일 승하하기까지 10년 가운데 8년간만 상왕태상왕의 거처 이름으로 쓰였고, 그 이후는 그 기능이 변질되었다. 성종 연간 어간에는 후궁의 거처보다도 서열이 낮은 궁궐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한 사람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요컨대 그렇기 때문에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격이 낮다는 것이다묻는다.


창경궁은 애초 후궁을 위한 건물 아니었던가?


f. 홍 교수는 또 이르기를

 

이로 보건대 순종이 이어하였던 즉조당을 비롯한 본래의 경운궁 영역은 그대로 경운궁으로 불리었고, 덕수궁이 가리키는 공간 범위는 그 당시 고종이 머물던 중명전 일대를 가리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덕수궁 시대에도 경운궁하고 덕수궁이 따로 있었다는 의미로 홍 교수는 해석하면서 그 근거로 각주 18번에서 다음과 같은 황성신문 기사를 들었다

 

再昨日午前十時皇上陛下오셔 慶運宮에셔 德壽宮幸行오셧다가 午後四時二十分還宮오셧다더라.

 

홍 교수의 사료 해석 능력이 도처에서 의심이 되므로 알기 쉽게 내가 풀어준다.

 

再昨日午前十時皇上陛下오셔 慶運宮에셔 고종황제(德壽宮)幸行오셧다가 午後四時二十分還宮오셧다더라.”

 

위에서 말하는 德壽宮은 장소가 아니라 퇴위한 황제, 태황제 고종을 말한다. 황성신문시대에 무수하게 보이는 덕수궁 전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금갑이 유통한 경로>


같거나 비슷한 내용 혹은 같거나 비슷한 사건을 전하는 기록물 A와 B가 있을 때, 역사학도를 비롯한 텍스트 연구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그 편찬 선후를 배열하고선 그것을 계승 관계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A가 먼저 나온 기록물이라면 덮어놓고 B는 A를 베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안이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A와 B가 그 선대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C와 D를 각각 참조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가 사금갑 이야기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에 의하는 한, 현존 문헌 중에 이 이야기를 수록한 가장 이른 시기 문헌은 《삼국유사》 기이편이다. 이후 이 이야기는 각종 후대 문헌에 빈번히 등장한다. 한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후 문헌들이 모조리 《삼국유사》》를 참조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런 전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거니와, 

첫째, 이 이야기가 후대 문헌이 등장하는 시점에서는 오직 《삼국유사》만이 그 이야기를 수록해야 하며, 둘째 무엇보다 《삼국유사》가 가독성이 뛰어나야 한다. 쉽게 말해 널리 읽히고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사금갑 이야기는 이 조건 어디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당장 《삼국유사》 사금갑과 《삼국사절요》 및 《동국통감》》의 사금갑이 왕청 나게 다르니 이는 각기 모종의 원전이 있었다는 한 증거가 된다. 둘째, 《삼국유사》는 생각보다 독자가 거의 없었다. 


사금갑 이야기는 내가 연전에 텍스트 분석을 해보니 여러 버전이 있다. 《동사강목》을 보면 《삼국유사》》를 원전으로 삼은 듯 하지만, 실은 《절요》와 《통감》 등을 종합한 새로운 버전이더라. 나아가 그것을 수록한 《용재총화》가 다르고 《점필재집》도 다르더라. 이로써 볼 때 신라 소지왕 시대 왕비, 혹은 후궁의 간통사건을 빌미로 삼아 정월 대보름 약밥 만들기 전통을 정리한 저 유명한 사금갑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정리 저록되기 전에 적어도 2개 이상의 버전이 전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삼국유사》를 필두로 하는 후대 문헌들이 그것을 재정리 재수록하면서, 각기 다른 버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종래와 같은 편찬연대순을 수학적으로 배열한 다음, 그 후대 나온 문헌이 전대에 나온 문헌의 관련 기록을 전사傳寫했다고 간주함으로써 빚어진 패악의 또 다른 보기로 범엽의 《후한서》 중 한전韓傳이 있거니와, 유송(劉宋)시대에 범엽이 정리한 이 한전이 종래의 압도적인 견해로는 그 전대인 서진西晉시대 진수의 《삼국지》 중 위서魏書) 한전을 압축해서 베꼈다고 본다. 하지만, 두 한전을 교감하면, 결코 《후한서》가 《삼국지》를 베끼지 않았음은 명명백백하다. 


《후한서》와 《삼국지》 이전에 이미 후한시대 정사가 8종이나 현전하고 있었고, 그것을 《후한서》는 《후한서》대로, 《삼국지》는  《삼국지》대로 각기 전사 재배열 재정리했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순서대로 나열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그 선후를 배열하고는, 후대가 선대를 베꼈다고 간주하는 방식은 개돼지도 3년만 교육하면 아는 일이다. 이것이 무슨 대단한 발견인양 호들갑 떠는 일이 다대하거니와, 이것이 무슨 대단한 새로운 발견이겠는가? 가장 저급한 수준의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저급한 학문이 고고학에서도 실로 광범위하게 횡행한다.  


이와 더불어 비슷한 맥락에서 학계에 빠진 텍스트론 고질 중 하나가 문헌끼리 편찬연대를 배열하고선, 같은 내용을 전하는 대목을 비교하고는 그 차이가 보일 적에 덮어놓고 선대 문헌이 정확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후대에 내려오면서 전대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많아, 외려 후대 문헌이 정확한 일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진先秦시대 문헌을 보면, 가장 안정된 판본은 중화서국이나 상해고적출판사에서 근자에 나온 교감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 아래는 국립국어연구원 기관지 새국어생활》 2001년 11-1호에 언론의 남북한 언어 동질성 회복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투고한 졸고 중 마지막 대목이다. 표준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내가 이리 주장하고 생각하는 이유는 표준어규정이야말로 한국언어정책 최대 실패작이요, 그것이 언어를 말살하기 때문이다.  



8.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의 동질성 회복


다만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고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남북한 언어 동질성 회복이 어느 한쪽 말을 일방적으로 말살하는 쪽으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기우를 한다. 다른 나라 경우는 어떠한지 모르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남한과 북한 공히 언어 정책 중 가장 큰 실패작으로 표준어 규정을 든다. 언어 그 자체는 어느 것이 더 존귀하고 더 열등할 수 없다. 서울말이 남한 표준어로 된 것은 서울말이 남한지역 다른 지역말보다 월등히 우수해서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영어가 요지부동의 국제어로 통용되는 것도 영어가 한국어나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 어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북한이나 남한은 모두 평양말 서울말을 표준어로 설정함으로써 의도했건 아니했건 다른 지역말은 말살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서울에서는 서울말을 쓰고 평양에서는 평양말을 쓰는 게 당연하다. 광주에서, 대구에서, 대전에서 서울말이, 혹은 평양말이 표준어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언론은 통일시대를 대비해 표준어 규정 폐지에 앞장서야 한다. 언뜻 필자의 이런 말이 남북한 언어 동질성 회복과는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단언커니와 동질성 회복이 곧 언어의 획일성을 말하지는 않는다. 언어의 획일성은 로봇 인간을 양산할 뿐이다. 오히려 언어의 동질성 회복은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있지 않을까.



  1. 연건동거사 2018.08.07 09:00 신고

    하지만 현실은 김샘 의도와는 달리 사투리 사라질듯.. 지난주 주말에 휴가차 부산에 다녀왔는데 요즘 젊은 부산 친구들 상당히 경상도 액센트 사라졌더군요. 십년전과 비교해도 많이 달라진것 같더라고요.

  2. 연건동거사 2018.08.07 09:00 신고

    사투리가 사라진건 꼭 표준어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 한량 taeshik.kim 2018.08.07 11:25 신고

      그렇겠지요. 다만 표준어가 법적 강제적으로 퇴출을 가속화한 건 엄연하니깐 그 점을 지적했다고 생각하심 될 듯합니다.

<안내판이 없는 파리 노르트담 성당>


주로 유럽에 국한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네들이 자랑하는 유명 관광지 혹은 문화유산 현장을 국내의 그것과 견줄 때 두드러진 특징이 불친절성이다. 예컨대 파리 에펠탑을 보면, 주변 어디에서도 에펠탑을 소개한 안내판을 발견할 수 없으며, 같은 지역 노트르담성당도 그렇고, 루브르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로마? 콜로세움 어디에도 안내판이 없고, 판테옹 역시 마찬가지이며, 베드로성당도 안내판을 구비하지 않았다. 피렌체도 그렇고, 베네치아도 그렇다. 


<문화재 안내판이 없는 로마 판테온> 


한데 이런 사정이 그리스로 건너 가면 판이하다. 내가 작년 풍찬노숙 막바지 한달을 파리와 로마와 아테네를 주된 목적지로 삼아 돌았거니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아테네였으니, 이곳이야 말할 것도 없이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잡은 아크로폴리스를 뺄 수 없거니와, 이를 중심으로 삼은 사방에 고대 그리스 유적이 밀집했거니와, 그런 주요 유적지마다, 우리네 문화재 현장에서는 빠짐없이 만나는 해당 유적 내력을 자세히 설명하는 그 친철한 안내판이 예외없이 있다. 그리스 문화재 안내판은 그 친절함이 외려 번다하게 느껴질 정도 자세하고 친절하다. 


<아크로폴리스 한 안내판>


같은 유럽문화권이요, 같은 유럽을 대표하는 고도인데 이런 차이가 빚어질까? 절박함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무엇에 대한 절박함인가? 나를 알아달라는 절박함의 손짓이라고 나는 본다.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좋은 사람이니 제발 날 보러 와 줘요라는 절박함이 이런 안내판을 만든다고 나는 본다.  


내가 작년 저들 도시를 돈 시기는 해당 지역 주민들은 바캉스를 떠났지만,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는 시즌이었다. 파리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고, 베네치아가 그랬으며, 피렌체가 그랬다. 이들 도시는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했다. 이젠 새삼스런 사실은 아니지만, 저들 도시를 대표하는 유적지는 예매를 하지 않으면, 입장에만 2~3시간이 소요됨이 보통이다. 루브르박물관 그렇고, 노트르담성당이 그러하며, 콜로세움이 그러하며, 바티칸이 그러하고, 우피치미술관이 그러하며, 피렌체 두오모가 그러하다. 


한데 이 절정의 관광 시즌에 오직 그리스만이 파리가 날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저러하니, 나는 당연히 아크로폴리스 입장도 저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는 그에 견주면 텅텅 비었다. 그 아크로폴리스 기슭 저명한 제우스 신전은 한 시간가량을 머물렀지만 그 넓은 유적에 개미새끼 몇 마리만 구경했다. 


<수니온 베이 안내판>


이로써 보건대 그리스는 로마와 더불어 유럽문명의 본향이라는 허울만이 넘실댈 뿐, 그곳을 찾은 사람은 턱없이 적었다. 아크로폴리스 연간 관람객이 얼마인지 내가 통계치를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불국사 석굴암에 견주어 10분의 1수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만나 IMF 구제금융 신세까지 진 그리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견주어 경제규모가 아주 작다. 단순히 경제규모가 작다 해서 관광객이 적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그리스니깐 더할지도 모르겠거니와(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같은 지중해 국가들인 프랑스와 이태리와 스페인이 비대한 관광객 유입으로 몸살을 앓는데 견주어, 그리스를 찾는 사람이 없다. 저들 3개 국가는 역시 정확한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못하나, 관광수입만으로 실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그리스라 해서 관광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 오라고 손짓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절박함이 나는 친절한 안내판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요샌 외국물 께나 먹어대는 바람에, 이 시스템이 좋다 해서, 우리도 문화재 안내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언어도단이라 나는 본다. 겉멋만 잔뜩 들어, 그 내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는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역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절박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관광객을 끌어와야 한다. 그런 절박성이 있다. 그 절박성이 1년 열두달 가봐야 외국인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문화재 현장에 굳이 영어 안내판을 단 이유다. 그렇다면 저들 논리대로 아무런 안내판도 안 세워 놓는다? 가뜩이나 아는 것도 없는데 안내판까지 없어봐라. 어떤 놈이 다시 가겠는가? 절박하기는 우리나 그리스가 마찬가지다. 


<로마 마돈나성당 한 채플 안내판>


그렇다면 이태리 프랑스는 우리 기준으로 불친절하기만 한가?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전통사찰만큼 흔하디 흔한 성당을 보자. 유럽 성당은 구조가 내부에 작은 예배당 공간을 벌집처럼 갖추곤 하는데, 이를 채플이라 한다. 한데 전체 성당 안내판은 없지만, 이런 채플마다 자세한 문화재 안내판이 즐비하다. 참으로 친절하기만 한 안내판이 거의 반드시 있다. 로마 성당은 내가 지금껏 마흔군데는 돈 듯한데, 외부에서는 전연 쳐다보지도 않는 성당도 들어가 보면 채플별 안내판 설명이 그리 친절하고 번다할 정도로 자세하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노트르담 성당이나 바티칸 성당이 무슨 안내판이 필요하겠는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까닭에, 그리고 그에 관련한 정보는 넘치는 까닭에 현장에서 굳이 그것을 정리한 전체 안내판이 필요없기 때문에 안세웠을 뿐이다. 반면 그 내부를 구성하는 채플이나 조각상 등등은 생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소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래서 안내판이 생긴 것이다. 그네들 안내판이 불친절하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말은 표피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내막을 들여다 보면 저들 역시 친절하기 짝이 없다. 


정리한다. 

첫째, 문화재 안내판을 만든 절대의 동인은 절박성이다. 

둘째, 유럽의 문화재 안내가 불친절하다는 말은 무식의 소치다. 

 




 

  

  

  1. 연건동거사 2018.07.28 09:46 신고

    위에 안내판 사진 아크로폴리스 옆에 원형극장이죠?

    저기는 여름에는 오페라 공연도 합니다. 아직도 쓰고 있는 원형 극장임..

  2. 아파트담보 2018.07.28 23:59 신고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나 봅니다 남의 얘기를 듣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해야 된다는 걸 말이죠.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3. 연건동거사 2018.07.29 12:34 신고

    그리스 유적을 보려면 차라리 터키를 가라는 말도 있는 듯.. 그리스에 가면 그리스 유적 유물이 남은게 별로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서요... 그런것도 관광객 수가 많지 않은데 한몫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연건동거사 2018.07.29 12:35 신고

    그리스에서 수블라끼 드셔보셨슴까.

  5. 한량 taeshik.kim 2018.07.29 12:35 신고

    아무래도요..터키가면 그리스 로마 한꺼번에 본단 말 많이 하지요

  6. 한량 taeshik.kim 2018.07.29 12:35 신고

    전 먹으러 안갑니다


그들은 깨끗한가? 

이 속편을 시작하기 직전, 우리 종교 담당 강종훈 기자가 이번 사태 전개와 관련한 기사 한 편을 썼으니, 그 제목이 '조계종 내홍 연일 확산…해결방안 나올까'다. '종정 진제 스님 "종단사태 참담…해결책 기다려달라"'는 부제를 단 이 기사를 보면 설조 스님 단식이 40일을 향해가는 가운데 총무원장 설정 스님 퇴진과 종단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총무원은 지난달 출범한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만 견지할 뿐 혁신안이 종단 안팎의 개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한다. 

나아가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종단 내부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전국선원수좌회는 27일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대국민 참회 108배에 나서겠다고 예고하는 한편,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역대 중앙회장단은 이날 성명을 내고 설정 퇴진과 종단혁신기구 구성, 총무원장 직선제 시행 등을 촉구했다고 한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비구니 스님들은 이번 사태에 침묵하는 총무원장을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으니, 그에 서명한 비구니 스님이 전날 151명에 이어 이날 106명이 더 동참했다고 한다. 

이런 사태 전개는 앞선 글에서 내가 예고한 양상 그대로를 보여준다. 설정을 추대한 총무원 현 권력은 분명 숫자상으로 그 대척점에 선 이들보다는 절대 다수를 점하지만, 이미 흐름은 급격히 달라져, '반란' 혹은 '쿠데타'가 '혁명'으로 진화하는 징후를 곳곳에서 보인다. 이는 현 설정 체제를 출범케 한 자승 전임 총무원장 수렴청정을 붕괴하는 신호탄으로 나는 보고 싶다. 

제아무리 '쪽수'가 많다 해도, 그런 사람들이 이른바 '주류' 혹은 '권력'을 형성했다 해도, 그런 까닭에 자승 체제가 당분간 흔들림없을 것만 같은 철옹성처럼 보인다 해도, 강고한 제국일수록 붕괴는 훨씬 빨라 순식간에 종말을 고하고 만다. 시황제의 진 제국이 그러했고, 팔기군을 앞세운 청 제국도 다름 아닌 강희 건륭제의 황금기에 이미 종말의 싹을 튀우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권력의 속성이다. 

이렇게 된 판국에 이젠 설정의 퇴진은 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설정은 이미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의 퇴진은 시간문제이거니와, 이 퇴진이 조계종단 권력구도 재편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가 나는 못내 궁금할 뿐이다. 그들이 표방하는 소위 적폐청산이 어디까지 향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자승과 그와 협력한 종상을 비롯한 현재의 조계종단 이른바 권승(權僧)들의 퇴진까지 목표로 삼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이제는 설정 퇴진 이후 조계종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쿠데타의 성공은 언제나 공신 책봉을 둘러싼 권력암투를 부르기 마련이다. 설정 퇴진과 그것이 상징하는 자승 체계 전복이라는 같은 목표 아래 모인 지금의 '반란자'들은 같은 목표 아래 뜻을 같이했지만, 이것이 이합집산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체제 전복에는 재가 신도들의 역할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번 쿠데타는 실질로 기획하고 주도한 이는 승려가 아니라 재가신도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점을 못내 미심쩍게 바라본다. 


나아가 이번 쿠데타가 성공한 제1의 힘은 그들이 내세운 최대의 무기가 호소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도덕성이다. 이들은 현재의 조계종 권력이 부패했다고 시종 비판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며, 지난 9년에 이르는 자승 체제는 썩어서 그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자세를 시종일관 견지했다. 그리하여 기존 권력이 부패한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낱낱이 폭로하는 전법을 썼다. 그 썩어빠진 증후로 돈과 여자 문제를 들었다. 

나는 그들이 내세운 도덕성이라는 강점이 설정 퇴진 이후, 그들의 집권에 최대의 약점으로 작동할 것으로 본다. 현재의 권력이 물러난 자리를 누가 차지할 지는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하나 분명한 점은 수평이동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본다. 자승 체제가 또 다른 설정을 내세운다? 이는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또 다른 반발을 부를 것이며, 결국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지금의 권력이 현명하다면, 적정 수준에서 타협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타협이 빠를수록 그들이 지킬 기득권의 몫 역시 그만큼 커지지 마련이다. 지금의 적폐청산 세력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대폭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그들이 지키는 몫은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럴 가능성이 나는 적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찌 되는가? 축출당하고 말 것이다. 

바로 가건 모로 가건, 어차피 대세는 변화와 혁명을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지금의 반체제가 주류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중에 누군가가 총무원장에 취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개혁방향을 두고 현재는 한가지 구호 아래 단결한 반체제 진영은 분열이 불가피하다. 

그들이 설혹 단결한다 해도, 미래의 집권세력화가 유력한 그들이 봉착할 문제는 다름 아닌 도덕성이다. 그들이 기존 체제를 붕괴하는데 동원한 선동의 구호, 도덕성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그들 자신에게 돌아오고 말 것이다. 

그들은 깨끗한가? 

이를 두고 박터지는 내란이 당분간 이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조계종단 현 권력을 적폐라 지목하며, 그 청산을 외치면서 설조 스님이 단식투쟁에 돌입한지 며칠째인지 정확한 수치를 모르겠지만 한달을 훌쩍 넘긴 것만은 확실한 25일. 그 농성장이 마침 우리 공장에서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오후에 머리 좀 식힐 겸해서 짬을 내어 조계사 인접 지점 우정총국 건물이 자리한 그 뒤편 좁은 우정공원 나무 사이에 마련한 농성 텐트장을 돌아보니, 스님은 이 무더위에 천막 안에서 연신 생수통을 붙잡고는 물을 들이킨다. 스님은 세수 88세라 문구가 농성장에 붙었다. 농성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이런 세수를 내세운 의도야 뻔하지 않겠는가? 

한데 그런 스님과 그의 단식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한테는 적폐 대상자로 지목된 현 종단 측에서는 설조 스님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호적을 바꿔 실제 나이는 76세라 하는가 하면, 불국사 주지 재임 당시 스님이 분담금 수십억원을 체납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설조 스님은 개혁을 주장할 만한 도덕성이 없다는 폄훼다.  

그의 나이와 관련해 확실한 점 한 가지는 종단 측 주장을 따른다 해도, 설조 스님은 70대 중반에 이른 노인이라는 사실이다. 88세건 76세건, 이런 노인한테 한달을 넘긴 단식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러다 정말로 불상사가 나지는 않는가 하는 우려도 커지기도 한다. 그런 사태가 부를 여파는 만만치 않기에, 단식 돌입 한달이 되어갈 무렵, 종단에서는 그 타도 대상 주축 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설정 총무원장이 직접 천막을 찾아 설조 스님한테 단식 중단을 요청했는가 하면, 급기야 청와대까지 나서 지난 20일에는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설정 총무원장을 면담하고는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면서 불교계 내부의 원만한 사태 해결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런 사태 전개에 아직은 칼자루를 쥔 쪽이라 할 종단 측에서는 불교계 내부의 자체적이고 원만한 해결을 주장하는 한편, 소위 적폐 청산 세력이 외부 세력까지 끌어들여 종단 전체의 전복을 꾀한다고 비난한다. 이런 반발 혹은 대응이야 능히 예상된 수준이거니와, 이런 사태 전개가 시간이 흐를수록 현 종단 권력을 점점 궁지에 몰아넣는 반면, 소위 적폐청산 세력한테는 점점 세를 불리게 하는 모멘텀으로 작동하지 않는가 하는 인상을 준다.   


이번 종단 사태는 겉으로야 MBC 'PD수첩'에 의한 두 차례 조계종단 현 권력에 대한 부패 양상 고발 프로그램 방영이 촉발한 것이지만, 그에는 현 종단 주류에 대한 이른바 비주류의 누적한 불만이 뿌리깊게 작동한다. 현 종단 눈으로는 '반란자'들인 소위 개혁그룹 중 이 운동 주축이라 할 만한 사람 면면을 보면, 현 종단이 종단 주류 권력을 장악하면서 밀려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다. 

한데 이번 사태는 거의 필연적으로 당파성을 띤다. 당파성이란 정치성이다. 그리 약속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 운동 주축 세력은 암묵적 혹은 노골적 친여성향이다. 앞서 말한 '대체적인 공통점'과 더불어 촛불혁명에 따른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조계종단의 소위 '정풍운동'을 본격화한 시점이 현 정부 출범 직후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뇌관을 터뜨린 MBC 혹은 PD수첩 역시 이 당파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이 당파성, 혹은 정치성을 누가 옳고 그르다 하는 선악의 이분법 관점에서 재단하려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살피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에 더불어 현 종단 주류 역시 이 당파성 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그 당파성이 그 반대편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옅다고 할 수 있다. 주류는 언제나 멜팅 폿(melting pot)과도 같아, 그것을 구성하는 스펙트럼은 다양하기 마련이다. 


세상 거의 모든 종교는 언제나 권력 혹은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나,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것과 야합하거나 그에 종속하거나, 혹은 그와 협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류는 언제나 당대의 권력과 궤를 같이하려는 필연적 숙명을 지니며, 지금의 종단 주류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밀월 비슷한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긴 이번 종단 주류 역시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재빨리 인사 문제 일부에도 개입을 시도했으니, 불교계와 밀접한 문화재청장에 그들이 지목한 인사를 앉히려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런 점들로 볼 때 현 종단 주류는 누가 뭐라 해도 현 정치권력과는 대척점에 선 과거 보수정권과 상대적으로 더 밀접하다는 인상을 쉽사리 지울 길 없다. 지금 소위 개혁 그룹이 일단은 종단 권력 정점에 위치한 총무원장 설정을 끌어내리려 하지만, 그 종국의 목표가 설정 혹은 그 주변에 포진한 현응 등의 소위 권승(權僧) 몰아내기로 만족하리라고는 결코 보지 않는다. 

설정 체제는 많은 말이 있듯이 여전히 조계종단 주축을 차지한 자승 전임 총무원장이 내세운 허울 혹은 꼭두각시라는 인상이 짙다. 그 내막이야 그들만이 알 테지만, 총무원장은 연임을 하지 않는다는 관습을 깨고는 임기 4년 총무원장을 거푸 역임하면서 8년 조계종 제국을 구축한 자승은 본인 혹은 측근의 부인에도, 당대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알려졌다. 물론 자승 체제 역시 그 단독의 왕국은 결코 아니었다. 연합정권이었다. 

지금의 소위 개혁연대는 내가 알기로 자승 체제가 내세운 설정을 무너뜨리는 데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그 체제를 그물망처럼 떠받치는 현재의 종단 권력 체계 전반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고 안다. 소수가 다수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 쿠데타 밖에 없다.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선동이 성공해야 한다. 이 선동이 다수한테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순간, 쿠데타는 성공으로 기록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는 법이다. 선동은 언제나 최고의 강점은 도덕성이었다. 도덕성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는 인류가 아직 발명하지 못했다. 


이번 '정풍운동' 역시 한치 어긋남이 없다. 소위 개혁세력은 체제를 전복해야 하는 정당성으로 시종일관 기성 권력의 도덕적 타락을 내세우며, 이 점을 집중 부각한다. 설정 스님이 은처자가 있다 해서, 나아가 그가 승려한테 요구하는 금율을 어겨가며 여인을 품어 딸까지 두었다네, 거기다가 수덕사 왕국 제왕인 그가 종단 재산을 횡령했다네 하는가 하면, 이 체제를 출범케 한 자승과 그 연합정권 일원들인 불국사 종상 스님 등등이 절에다가 하우스를 차리고 노름을 했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해인사 돈을 쌈지돈으로 여겨 마구잡이로 썼고 그 과정에서 대구 룸싸롱을 제집 드나들듯 했네 하는 공격이 결국 이 도덕성 흠집내기 일환임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현재의 권력 혹은 주류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기 시작했거니와,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쿠데타'가 결국은 성공하리라 본다. 점점 궁지에 몰리는 쪽은 현재의 권력과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현 종단 권력 혹은 주류가 도덕적 흠결이 많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저 개혁세력이 숫자가 적지만, 그 세는 급격히 불어나리라 나는 본다. 

더구나 이들 뒤에는 막강 우군이라 할 속세의 정치권력이 있지 아니한가? 설조 스님 단식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할 일이 없어 조계종을 찾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설정 스님을 향한 무언의 압력이다. 물러나라는 뜻이다. 나는 그리 본다. 

결국 어느 시점, 어떤 형태인가가 문제가 되겠지만, 설정 스님은 내려올 수밖에 없다. 나는 시간 문제로 본다. 며칠 전 설정 스님이 이번 사태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가 취소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는 설정 체제가 연합정권이라는 단적인 보기다. 설정은 설정 혼자만의 총무원장이 아닌 것이다. 모르긴 해도 궁지에 몰린 현 권력은 설정 퇴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그 이후를 대비하는 전략으로 바꾸었다고 나는 본다. 

알려지기로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설정은 백의종군하기로 했다 하거니와, 그것을 취소한 까닭은 그 이후를 현재의 권력 재편 밑그림을 미쳐 준비하기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권력을 통째로 넘겨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며, 다른 인물을 내세워 권력을 연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그런 밑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 곧 설정의 퇴진 시점이라고 나는 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생평을 들판에서 일하면서 보내는 농부도 여름 대낮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지 아니하는 이유는 그랬다가는 자칫 죽음까지 부르는 까닭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더위 먹었다는 말이 나오는 시기는 이 무렵이다. 요새야 그것을 극복 혹은 억제한다는 미명 아래 냉방병을 운운하면서, 애꿎은 에어컨 탓을 해대거니와, 그러고 보니, 한국사회에 에어컨이 일반화한 시대가 불과 몇 십년이요, 그것이 없거나, 가뭄에 콩나듯 하던 시기는 어찌 이 여름을 보냈는지 그 시절을 겪은 나는 이미 아찔해 진다.  

혹한기 역시 마찬가지이긴 하나, 요즈음 이 혹한이라는 말은 전반적인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혹서에 견주어서는 그 심각성이 덜한 시대로 접어들지 않았나 한다. 

이런 혹서기, 혹은 그 반대편 혹한기에 극한직업 체험한다면서, 농약을 친다면서 한여름 무더위에 논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요, 혹은 혹한을 체험한다면서 북극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위 현지 체험형 예능 프로그램이 판을 치는 이 즈음, 어느 방송을 보니, 이 여름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을 만났으니, 내가 그 장면을 보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 역시 언젠간 말했듯이 세상 어떤 미친 놈이 한여름 대낮에 사막을 횡단한단 말인가? 유목민? 혹은 그곳을 무대로 삶을 사는 현지인들? 네버 에버, 그들이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 같은 체질을 타고 났기에 그 무더위를 견딘단 말인가? 

이런 여름철, 한국 축구대표팀이 중동에서 가서 경기를 할 무렵이면 언제나 한국 언론을 장식하는 말이 중동 무더위에 우리가 불리하다 하거니와, 이런 무식한 이해가 여전히 그럴 듯한 구호로 통용하는 한국사회다. 어떤 미친 놈이 사막 한가운데서, 더구나 수은주 40~50도를 헤아리는 그런 대낮에 경기를 한단 말인가? 

중동인이, 혹은 적도 일대를 사는 아프리카 친구들이 한국사람보다 더위를 잘 견디는 것은 아니다. 생평을 들판에 사는 농부가 에어컨 빵빵한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여름을 나는 서울 사람보다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이 한여름 무더위를 잘 견디겠는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고온에 헉헉대기는 마찬가지요, 그런 더위에 장시간 노출되어선 픽픽 쓰러기지도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수은주 35도를 넘어버리는 요즘...뭐 올해가 여타 해보다 더욱 기록적인 더위라 하지만, 언제인들 이때 한반도가 그렇지 아니했는가? 

한반도가 들끓는 시기는 딱 정해져있다. 장마가 끝나고 8월이 시작하는 무렵까지 대략 한달이다. 이 한 달, 나는 계속 주창하지만, 한반도 전체가 가동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무렵이면, 언제나 전력 부족 사태를 초래해, 정부는 우선 관공서에 대해, 그리고 민간에 대해서도 실내 온도 28도를 유지하라 하거니와, 글쎄 올해는 그런 강제가 덜한 듯도 하거니와, 이런 짓거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실내온도를 몇도 이상으로 맞출 것이 아니라, 그런 실내를 폐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이나, 혹은 걸핏하면 선망하는 OECD 수준 아니겠는가? 이 즈음 나라 전체가 쉬어야 한다. 쉰다는 것은 룰루랄라 배짱이가 되잔 말은 아니지 않는가? 탱자탱자 놀잔 말이 아니지 않는가? 곰이 미련해서 겨울엔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아니다. 지혜롭기 때문이다. 

이런 무더위도 벌써 8월 문턱에만 들어서면, 수은주가 여전히 35를 오락가락한다 해도 아침 저녁 공기가 달라지거니와, 해운대해수욕장 기준으로 내 기억에 8월5일 무렵이면 바닷물이 차가워져 해수욕이 불가능하게 된다. 시절은 그리하여 변환하고 다시 꼭지점을 돌아 구르고 오르는 과정을 간단없이 계속한다. 


양력 기준 7월은 한반도에 저주의 계절이다. 누가 이런 저주를 퍼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저주가 반가운 이는 오직 매미와 한여름 반짝 피었다가 사라지는 연꽃 로터스 플라워밖에 없다. 이 즈음 강물과 바다에서는 걸핏하면 녹조가 나타나거니와, 그리하여 그것을 부각하기 좋아하는 언론과 환경단체는 툭하면 그 녹조에 아가미가 막혀 집단 폐사한 물고기 떼를 비추는 일을 즐기니와, 이명박이 출현한 이후에는 어찌된 셈이지 그 모든 탓을 이명박으로 돌려, 그가 추진한 사대강 사업과 그것이 초래한 각종 보가 녹조라떼를 더욱 강화하거나, 악화한 것으로 호도하곤 한다. 

이명박이 싫다 해서, 그가 초래하지도 않은 녹조의 짐까지 뒤집어 씌워, 그걸 증명하고자, 그걸 완화 혹은 없앤다며 보를 여는 쇼를 계속할 수는 없다. 그가 사대강 사업을 하기도 전에, 그가 각종 보를 막기 전에 이미 한반도는 언제나처럼 단군조선 이래 늘 녹조사태였다. 

삼천리 금수강산? 내가 보니, 한반도는 단군조선 이래 시종 저주받은 땅이다. 사계절 내내 저주받은 땅이다. 그 척박함은 타클라마칸 사막보다 더하다. 여름이 무덥기는 이와 마찬가지, 혹은 더 심하기도 한 일본열도나 중국 강남은 비라도 자주 오지, 이 저주 받은 한반도는 제때 비를 몰라 어느 해 어느 시절엔 아주 한방울도 내리지 않는가 하면 어느 해엔 양동이로 쏟아붓는다. 올해 지금은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지만, 작년 이맘쯤 한반도는 물난리 아니었던가? 


그런가 하면 언제나 이 한반도 봄은 가뭄 사태라, 그때마다 관공서나 언론이 앞장서 산불 예방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다. 왜 불이 나는가? 건조하기 때문이다. 산불 예방 홍보 없는 봄, 그런 봄이 한반도에는 없다. 

이와 같은 여러 사정으로 볼 적에 이 한마디로 정리한다. 

한반도는 저주받은 땅이다. 


역대 정권을 보면 패턴이라 할 만한 게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총선에 패배하면서 여소야대가 된다. 차기 대권을 향한 권력투쟁이 치열해지면서 콩가루 집안이 된다. 


이를 다잡고자 권력은 검찰을 동원한다. 사정 바람을 일으켜 누가 권력인지를 과시하려 한다. 그리하여 본보기로 두어명 잡아넣고 기업 하나 골라 박살을 낸다. 그 전쟁을 최고 권력자가 독려한다.


하지만 이는 이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잡아넣고 희생한 그들이 결국은 그 정권이 보듬어 안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론은 외려 정권에 더욱 악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다가 마침 정권 핵심 한두 놈이 걸려든다. 그런 의혹이 제기되면 정권은 아니다고 펄쩍 뛴다.


단호해야 한다는 과시를 하고자 그런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를 고소고발하는 신속한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의혹은 이내 사실이 되고 그리하여 최고권력자는 단상에 서서 대국민 사죄를 한다. 권력은 그렇게 퇴장하더라. 


이상은 2016년 7월 22일, 내 페이스북 포스팅인데, 말년으로 치닫던 박근혜 정권 역시 이 길을 고스란히 밟은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탄핵까지 되어 중도퇴진하고 감옥까지 가버렸다. 지난 1년, 한창 잘 나간 문재인 정부 역시 이리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지만, 권력 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한 달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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