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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04)


경복궁 은행나무



나무 심지 마라(莫種樹)


[唐] 이하(李賀) / 김영문 選譯評 


뜨락 안에 나무를

심지 마시라


나무 심으면 사시사철

시름에 젖네


혼자 잘 때 남쪽 침상에

달빛 비치면


올 가을이 지난 가을과

흡사할 테니


園中莫種樹, 種樹四時愁. 獨睡南床月, 今秋似去秋.


한자로 시름을 나타내는 말은 ‘수(愁)’다. ‘愁’를 파자하면 ‘추심(秋心)’ 즉 ‘가을 마음’이 된다. ‘가을 마음’이 바로 시름이다. ‘수심(愁心)’, ‘애수(哀愁)’ 등에 모두 ‘가을 마음(愁心)’이 들어간다. 가을에 사람의 가슴이 쓸쓸해지는 현상의 유래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의 이 오언절구는 바로 시름에 관한 시다. 보통이라면 뜰 안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서 사시사철 그 풍경을 즐기라고 권할 테지만 이하는 뜰 안에 나무를 심지 마라고 만류한다. 무슨 이유인가? 나무를 심어놓으면 사시사철 시름에 젖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름은 어디서 오는가? 사계절 중 삼계절은 언급하지 않고 가을의 경우만 예로 들고 있다. 달빛 비치는 남쪽 침상에 혼자 잠을 청할 때 그 가을 풍경이 지난 가을 풍경과 흡사할 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봄, 여름, 겨울 풍경은 흡사하지 않을까? 물론 똑 같이 흡사하다. 당나라 유희이(劉希夷)는 「백두음(白頭吟)」에서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하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 서로 같지 않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라고 읊었다. 봄꽃은 모두 져도 내년에 다시 피고, 가을 기러기 울고 가도 내년에는 돌아온다. 하지만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고, 새로 돋은 백발은 다시 흑발로 변하지 않는다. 올해 달빛은 작년과 같지만 먼 길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자연 앞에 인간의 삶은 하루살이일 뿐이다. 온 산천에 단풍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다시 푸른 잎이 돋아날 저 나무들이......

한시, 계절의 노래(203)


산속(山中)


[唐] 왕유 / 김영문 選譯評 


경주 경덕왕릉



형계 시냇물에

흰 돌 드러나고


날씨는 차가워

단풍 잎 드무네


산길엔 원래

비도 오지 않았는데


허공의 비취빛

옷깃 적시네 


荊溪白石出, 天寒紅葉稀. 山路元無雨, 空翠濕人衣.


한자로 ‘남기(嵐氣)’란 말이 있다. 산 속에서 생기는 푸르스름한 기운이다. 벽옥색인 듯 하지만 오히려 청옥색에 가깝고, 청옥색인 듯하지만 벽옥색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명산일수록 드넓은 남기가 사방을 감싼다. 남기의 푸른색은 유토피아(烏託邦)의 빛깔로 인식되기도 한다. 청학동(靑鶴洞)의 푸른색이 그러하며 스테인드글라스의 푸른색이 그러하다. 하늘은 푸른색이지만 색의 실체가 없으며 바다 또한 푸른색이지만 색의 실체가 없다. 푸른 장미 또한 그런 색깔일까? 가을에는 하늘이 맑아지면서 온 산천의 남기가 우리 곁에까지 스며든다. 유토피아가 가까이 다가오는 셈이다. 도연명은 「음주(飮酒)」 다섯 번째 시에서 일상 속에 스며든 남기를 이렇게 노래했다. “산 기운은 저물녘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 서로 함께 돌아오네./ 이 속에 진정한 뜻 스며 있나니,/ 말 하려 해도 말을 잊었네.(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왕유는 그렇게 다가온 남기의 비취빛이 사람의 옷깃을 적신다고 했다. 기화(氣化)와 액화(液化)의 경계가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는 물이 언제나 안개가 되고, 남기는 언제나 만물을 촉촉이 적시며, 인간은 언제나 신선이 된다. 우리 옷깃을 적시는 남기가 우리를 신선의 경지로 이끈다. 가을은 우리 소소한 일상을 유토피아로 승화시킨다.


  1. 연건동거사 2018.10.22 17:12 신고

    空翠濕人衣 뛰어나네요.
    비슷한 표현을 누군가의 한글 시에서도 본듯도.

한시, 계절의 노래(201)


국화(菊花)


[唐] 원진 / 김영문 選譯評 




국화 떨기 집을 둘러

도연명의 옛집인 듯


울타리 두루 도니

해는 점점 기우네


꽃 중에서 국화만

아끼는 게 아니라


이 꽃 모두 피고 나면

다시 필 꽃 없음에


秋叢繞舍似陶家, 遍繞籬邊日漸斜. 不是花中偏愛菊, 此花開盡更無花. 


가을꽃을 대표하는 국화가 언제부터 은자(隱者)의 상징이 되었을까? 대개 중국 동진(東晉) 시대부터로 본다. 도연명이 은거생활을 하면서 자기 집 울타리에 두루 국화를 심었다.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니, 유연히 남산이 눈에 들어오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도연명의 「음주(飮酒)」 다섯 번째 시에 나오는 천고의 명구다. 맑고 투명한 가을날 울타리 곁에서 노란 국화를 따는데 저 멀리 푸른 기운이 감도는 남산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 꾸밈이 없고 아무 가식이 없다. 역대로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도연명의 이 시구를 본받아 국화를 기르고, 국화를 감상하고, 국화를 읊었다. 또 국화는 매(梅)·란(蘭)·국(菊)·죽(竹) 즉 사군자에 속하여 문인화의 단골 소재로도 사랑을 받았다. 사군자가 언제부터 군자의 네 가지 전형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원(元)·명(明) 시대 이후 정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흔히 매화는 봄, 난초는 여름, 국화는 가을, 대나무는 겨울에 대입하여 그 변함없는 품격을 찬양한다. 이 중 국화는 특히 서리를 맞고 피어나므로 그 꿋꿋한 모습을 ‘오상고절(傲霜孤節)’이란 말로 형용했다. 요즘은 모양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채로운 온갖 국화가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모양이나 색깔이 어떻게 변해도 그 모든 국화가 다 지고 나면 어김없이 겨울이 박두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거리마다 노란 국화가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의 마지막 꽃 국화의 계절이다.

경주 괘릉



한시, 계절의 노래(202)


가을 가사(秋詞) 


[唐] 유우석(劉禹錫) / 김영문 選譯評 


옛날부터 가을 되면

쓸쓸함을 슬퍼하나


가을날이 봄날보다

더 낫다고 말 하리라


맑은 창공 학 한 마리

구름 밀며 날아올라


시심을 이끌고

푸른 하늘에 닿는구나


自古逢秋悲寂寥, 我言秋日勝春朝. 晴空一鶴排雲上, 便引詩情到碧宵. 


가을은 적막하고 쓸쓸한 계절임에 틀림없지만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시인이 똑 같은 감정을 시에 쏟아 붓자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런 추세에 대한 반발은 일찍부터 있었던 듯한데 유우석의 이 시도 그런 반발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일은 “끝 간 데까지 가면 반드시 반발이 일어나게 마련이다.(窮則必反.)” 슬픈 가을이 있으면 기쁜 가을도 있고, 공허한 가을이 있으면 알찬 가을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가을이 슬프지 않은 이유를 유우석은 시심(詩心)을 품은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오른 하얀 학의 자태가 눈이 시릴 정도다. 그런 학이 시심을 이끌고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으므로 그 학이야말로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창공에 울려 퍼지는 학의 노래가 투명한 가을 공기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학이 시를 읊는 창공은 우주에서 가장 드넓은 시 낭송 무대다. 학조차 시인이 되는 계절, 모두들 좋아하는 시 한 수 읊으며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보시기를...

한시, 계절의 노래(200)


가을 저녁 퇴락한 산사에 묵다(秋晚宿破山寺)


[唐] 교연(皎然) / 김영문 選譯評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靈山殿



가을바람에 잎 떨어져

빈산에 가득


석벽 사이 옛 절엔

잔약한 등불


지난 날 들렀던 이

모두 떠나고


찬 구름만 밤마다

날아 드누나


秋風落葉滿空山, 古寺殘燈石壁間. 昔日經行人去盡, 寒雲夜夜自飛還.


가을을 고독과 비애의 계절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추워지는 날씨가 그 원천이 아닐까 한다. 옛날에는 더 그랬지만 지금도 날씨가 추워지면 인간의 활동 반경은 좁아져 집안에 웅크리는 날이 많다. 자연히 찾아오는 손님도 줄어들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한다. 이 때문에 추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따뜻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오소소 돋는 소름은 추위에 대한 절실한 느낌을 넘어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감지하게 한다. 이런 시절에는 추수한 곡식을 아껴 먹으며 찬 서리와 눈보라를 견뎌야 한다. 겨울은 가깝고 봄은 멀다. 어쩌면 빙하기를 겪으며 살아남은 인류의 유전자 속에 추위와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가 스며든 듯하다. 하나뿐인 인간의 목숨 앞에 추위, 빙설, 고립은 얼마나 두려운 상황이었으랴? 어떻게 생각해보면 화석 같은 느낌인데 그것이 뼈가 시릴 정도로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그건 화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임도 확실하다. 가을의 고독과 비애를 읊은 시 중에서 가장 절창을 들라면 나는 주저없이 정완영의 「애모」를 꼽는다. 전체 3련이나 첫 련만 든다. “서리 까마귀 울고 간 북천은 아득하고/ 수척한 산과 들은 네 생각에 잠겼는데/ 내 마음 나뭇가지에 깃 사린 새 한 마리” 형식이 시조이므로 다소 영탄조의 운율과 고답적인 시어가 신선감을 떨어뜨리긴 하지만 가을에 관한 시로서 매우 탄탄한 풍격을 갖추고 있다. 이 시조에 버금가는 한시를 들라면 나는 위 교연의 칠언절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절벽 사이에 자리잡은 퇴락한 절집, 온 천지 가득 낙엽이 휘날리고, 잔약한 등불은 꺼질 듯 말 듯 흔들리는데, 캄캄한 어둠을 휘감으며 찬 구름만 처연히 날아들고 있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영탄조의 시어를 한 글자도 쓰지 않고, 가을의 고독과 비애를 묘사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 자리에까지 밀고나간 점이다. 인간은 끝내 혼자 죽는 존재다. 이 스산한 가을이 그것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한시, 계절의 노래(199)




권하는 술을 사양하며(辭勸飲)


[宋] 위양(韋驤) / 김영문 選譯評 


주인 마음 진실로

은근한지라


사양해야 하지만

술맛 좋구나


환대 받아 머무는

손님 되려면


술 토하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主意固慇勤, 須辭酒味醇. 願爲投轄客, 不作吐茵人.


중국 송나라 때 유행한 시 형식 중에 사(詞)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당시 유행가 가사를 바꿔 부르는 방식이다. 곡은 그대로 두고 가사만 바꿔 넣는다. 송나라 초기에 유행가 작곡가 겸 가수로 이름을 떨친 사람은 유영(柳永)이었다. 우물가 어디서든 유영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고, 그 노래가 고려까지 전해져 유행했으므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의 사(詞) 작품 「우림령(雨霖鈴)」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 밤 어디서 술이 깼나?/ 버들 언덕,/ 새벽바람 불고 잔월(殘月) 비치네.(今宵酒醒何處? 楊柳岸, 曉風殘月.)” 당시 사람들이 매우 좋은 노래라 여기고 따라 부르자, 소동파가 비웃었다. “이건 뱃사공이 뒷간에 가는 노래일 뿐이다.(此梢工登溷處耳.)” 그러고 보니 새벽에 술 깬 뱃사공이 버드나무 근처 뒷간으로 달려가는 광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과음한 후 속이 들끓어 화장실 변기와 오래도록 씨름한 적이 있는 분은 실감 하시리라. 이 시도 소위 ‘오바이트’를 소재로 삼았다. 술 끝 고통을 해결해주는 명주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즐거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법칙을 상기하기 위함일까? 젊은 시절 벌인 수많은 민폐가 떠오른다. 부디 좋은 술맛만 기억하고 토인(吐茵)의 추억은 잊어주시기를...



  1. 연건동거사 2018.10.22 17:17 신고

    漢書·陳遵傳:“ 遵 耆酒,每大飲,賓客滿堂,輒關門,取客車轄投井中,雖有急,終不得去。”轄,車軸兩端的鍵。后以“投轄”指殷勤留客。

    投轄客: 자동차 타이어를 빵구내서 못 돌아가게 하고 같이 마실만한 손님. 그런 뜻인가 봅니다.

  2. 연건동거사 2018.10.22 17:18 신고


    † (of alcoholic drink) rich; pure
    † rich alcoholic drink

    아주 잘익은 술맛.

  3. 연건동거사 2018.10.22 17:21 신고

    은근의 뜻이 우리말 은근과는 조금 다른 듯

    1. [deep affection]∶情意深厚
    鞠养殷勤
    致殷勤之意。——宋·司马光《资治通鉴》
    2. [solicitous]∶热情周到
    殷勤的服务员。
    3. [industrious]∶勤奋,勤劳
    殷勤, 등등.

낙엽(落葉)


[조선] 김우급(金友伋·1574~1643) / 기호철 譯 


낙엽이 누구에게 말을 하는 듯한데     落葉如和語

요즘 사람은 어리석어 듣지 못해요     今人聽不聰

희미하게 들려오는 몇 마디 소리는     依微多少響

온통 가을바람 원망하는 말뿐예요      無乃怨秋風

(《추담집(秋潭集)》 권3) 





한시, 계절의 노래(198)


산행(山行)


[唐] 두목 / 김영문 選譯評 


돌 비탈 길 따라서

멀리 추운 산 올라가니


흰 구름 피는 곳에

인가가 자리했네


수레 멈추고 앉아서

저녁 단풍 숲 사랑함에


서리 맞은 나뭇잎들

봄꽃보다 더 붉구나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晚, 霜葉紅於二月花. 


한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 치고 이 시를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또한 이 시는 가을 단풍을 노래한 절창으로 각종 한문 교과서에까지 실리곤 했다. 이 시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시를 꼼꼼히 읽어보자. 우선 작자 혹은 작중 인물은 거처에서 멀리(遠) 떨어진 추운(寒) 산 돌 비탈(斜) 길을 오르고 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선 눈 앞에는 흰 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몇 집 자리 잡고 있다. 때는 석양이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는 가을 저녁이다. 시속 주인공은 한기가 스미는 석양 속 단풍 숲 앞에서 수레를 멈췄다. 이쯤 되면 보통 한시 작자들은 “아 슬픈 가을(悲秋)이여!”라는 탄식을 내뱉는다. 가을을 읊은 시들이 대개 그렇다. 아니 한시의 상당수가 애상, 비탄, 수심 등의 정서와 관련되어 있다. 1917년 중국 신문학운동의 선구자 후스(胡適)는 전통문학의 병폐를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그것을 타파하자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자(不做無病呻吟的文字)”였다. 중국 시 전통의 한 갈래가 “인간의 감정에 따르는(詩緣情)” 데서 시작되었고, 또 감정 가운데서도 “울분이나 비애를 토로하는 것(發憤著書)”이 문학창작의 주요 동기였음을 상기해보면 그런 ‘비애’의 전반적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습화·유형화의 함정에 빠짐으로써 감정의 과잉이나 표현의 진부함에 갇히게 되었다. 모든 한시가 그게 그거 같아서 독창성이나 신선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추남추녀(秋男秋女)의 휑한 가슴을 읊은 가을 시의 거의 90%는 ‘슬픔의 가을(悲秋)’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두목의 이 시는 그런 슬픔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석양빛에 반짝이는 단풍잎을 아끼고 즐기는 마음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매우 절제되어 있지만 이는 틀림없이 기쁨의 감정이다. 그 기쁨은 석양, 가을, 낙엽이라는 자연의 마지막 교향곡 위에 실려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의 노년도 이처럼 절제되어 있지만 당당하고 찬란한 빛이었으면 좋겠다. 문학의 독창성은 무슨 경천동지할 발상이나 표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비틀기다. 이 시가 바로 그런 비틀기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노회찬 의원 유서. 연합DB



한시, 계절의 노래(197)


아들에게(示兒)


[宋] 육유 / 김영문 選譯評 


죽고 나면 만사가

공(空)이 됨을 알지만


구주(九州)가 하나 됨을

보지 못해 슬프다


왕의 군대 북벌 나서

중원 평정 하는 날에


제사 올려 네 아비에

고하는 걸 잊지 말라


死去元知萬事空, 但悲不見九州同. 王師北定中原日, 家祭無忘告乃翁.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란 말을 들어보셨으리라. 북송 황제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금나라 장군 택리(澤利)한테 잡혀가면서 북송이 멸망한 사건을 말한다. 한족(漢族)으로서는 서진(西晉) 시절 영가의 난[永嘉之亂]으로 회제(懷帝)와 민제(湣帝)가 흉노에 잡혀간 이후 다시 겪는 민족적 치욕이다. 이후 송나라는 휘종의 아홉째 아들 조구(趙構: 高宗)가 천신만고 끝에 도성 개봉(開封)을 탈출하여 강남으로 내려가 남송을 건국함으로써 송나라 명맥을 이었다. 남송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 사이의 대립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 당시 남송 황제 고종과 그의 간신 진회(秦檜)는 주전파 선두인 악비를 살해하면서까지 금나라와 화친을 도모하고, 그에 맞서 육유, 신기질 등 주전파는 강력한 항전을 주장했지만 소망을 이룰 수는 없었다. 현실은 주전파와 주화파 갈등 너머에 있었다. 당시 중국 북방은 티베트족 서하(西夏), 거란족 요(遼), 여진족 금(金), 몽골족 원(元) 등 막강한 유목민의 각축장이었다. 강력한 북방 민족으로서는 송나라 주전파나 주화파 모두 그들의 세력 확장에 필요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송나라는 이들의 세력과 분쟁에 주체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요나라에, 다음에는 금나라에, 그 다음에는 몽골족에 빌붙어 임시로 위기를 모면하려다가 멸망과 도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적 전환기에는 흐름을 간파하고 대담하게 전체 국면을 이끌어나갈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육유의 항전 시는 매우 비장하여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지만 그것이 혹시 병자호란 이후 몇 백년간 숭정(崇禎)이란 명나라 연호를 계속 쓴 조선 지식인의 박제한 대의명분론과 겹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아비 제사에 북벌 성공을 고해달라는 육유의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다. 



한시, 계절의 노래(196)


소상팔경(潇湘八景) 일곱째(其七) 동정호의 가을 달(洞庭秋月)


[淸] 안념조(安念祖) / 김영문 選譯評 


바람 맑고 달빛 하얀

동정호 가을날에


만고 세월 호수 빛이

덧없이 흘러가네


묻노니 지금까지

유람 지친 나그네가


몇 번이나 술 잔 잡고

악양루에 올랐던가


風淸月白洞庭秋, 萬古湖光空自流. 爲問從來遊倦客, 幾回把酒岳陽樓.


이태백이 달을 건지러 들어갔다는 동정호(洞庭湖)는 중국의 호남(湖南)과 호북(湖北)을 가르는 거대한 호수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800리 동정호라 부른다. 한강(漢江)과 장강(長江) 사이 거대한 소택지 운몽택(雲夢澤) 최남단에 위치하며 평야와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장강은 직접 동정호로 흘러들지는 않지만 악양시(岳陽市) 인근에서 동정호 동북쪽 출구와 만나 각자의 물길을 소통한다. 게다가 중국 호남의 큰 강 네 줄기가 직접 동정호로 흘러든다. 상강(湘江), 자강(資江), 원강(沅江), 예강(澧江)이 그것이다. 또 이보다 좀 작은 지류인 멱라강(汨羅江), 신장하(新墻河), 백련수(白蓮水), 잠수(涔水) 등도 동정호에 물을 보탠다. 실로 명실상부한 수부(水府)라 할 만하다. 한나라 건국 일등공신 장량(張良)이 은거한 장가계(張家界) 선경(仙境) 또한 예강 상류이므로 동아시아 전통 예술미의 살아 있는 경관이 모두 동정호 근처에 포진한 셈이다. 이 때문에 역대로 동정호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경관 여덟 곳을 선정하여 시인묵객들의 미적 감수 대상으로 향유하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니, 그것이 바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소위 팔경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북송 이후 팔경 붐을 일으킨 근원이 바로 소상팔경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시에서도 묘사하듯 모든 명승지가 권태로워질 때 찾는 곳이 바로 동정호 악양루(岳陽樓)라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대대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유람객이 줄을 이었고, 아울러 그들에 의해 소상팔경을 소재로 한 다양한 시와 그림이 창작되었다. 한데 소상팔경에 직접 가보지 않은 우리나라 시인묵객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소상팔경 시와 그림을 남겼을까? 이미 소상팔경의 미적 경지가 관념화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관념화!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의 유희다. 이른바 동아시아 전통 시와 그림의 한 패턴을 탐색하려면 소상팔경을 돌아갈 수 없지만 그 패턴에 관념화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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