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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확실히 산문에 일가를 이루었지, 그의 문명文名에 견주어 시는 몇 편 남기지도 않았으며, 실제 시 쓰는 일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시에 뛰어들었어도 일가를 이루었으리라 보니, 그런 낌새를 짙게 풍기는 작품이 그의 사후 그가 남긴 시문을 모아 집성한 앤솔로지 《연암집燕巖集》 권 제4가 소수所收한 다음 시라, 글로써 그림을 그린다 하는데 그에 제격인 보기요, 그런 점에서는 유종원보다 못할 것도 없다.  



막걸리 마시는 노무현



농촌 풍경[田家] 


老翁守雀坐南陂  늙은이 참새 쫓느나 남쪽 논두렁 앉았건만

粟拖狗尾黃雀垂  개꼬리처름 드리운 조엔 노란 참새 매달렸네

長男中男皆出田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 들로 나가는 바람에 

田家盡日晝掩扉  농가는 하루가 다 가도록 사립문 닫혔네 

鳶蹴鷄兒攫不得  솔개가 병아리 채가려다 잡아채지 못하니

群鷄亂啼匏花籬  뭇 닭이 박꽃 핀 울밑에서 놀란 퍼득이네 

少婦戴棬疑渡溪  젊은아낙 함지박 이곤 머뭇머뭇 시내 건너는데

赤子黃犬相追隨  어린애 누렁이 쫄래쫄래 따르네 


이는 농촌사회 일상을 전하는 실록이기도 하거니와, 계절은 조가 익어가는 한여름 혹은 늦여름일 듯하니, 늙은 농부가 조 밭을 지킨답시며, 그 주된 적인 참새떼 쫓는 모습이 선연하다. 이를 인형으로 대신한 것이 바로 허수아비라, 참새가 바보가 아닌 이상, 허수아비에 속을 리 있겠는가? 요새 농촌을 가 보면 조를 보호한다며, 스타킹 같은 시스루seethru 망태기를 덮어씐 모습을 심심찮게 보거니와, 그 선대 유습을 본다. 한데 익어가는 조, 그래서 고갤 수그린 그 모습을 '개꼬리[狗尾]'라 했으니, 그 발상 기묘하기만 하다.    


하지만 곰방대 담배 물고 한 대 빨지도 모를 이 늙은이 아마도 눈과 귀가 간 듯, 그에 아랑곳없이 참새가 대롱대롱 매달려 조를 열심이 쫀다. 그 참새를 연암은 '황작黃雀'이라 했거니와, 이 대목에서 언뜻 황조가黃鳥歌 어른거리기도 한다. 


아마도 이 늙은이가 가장일 법한 농가는 한창 농사철, 혹은 추수철이라서인지 집안엔 사람 하나 없다. 특히 아들들은 그들이 노동력의 원천이라, 대가족이었던듯, 모두가 들로 들로 일하러 나가는 바람에 하루종일 집안은 사립문 닫힌 상태다. 이는 지금의 농촌 농번기에도 흔한 현상이라, 이 틈을 노리고 요새는 도둑님들이 유유히 달라들어 민속공예품을 몽땅 훔쳐가는 바람에 똥장군 하나 남아있지 않다. 


그런 한적한 농가에 솔개가 내리친다. 닭은 내다 키운 듯한데, 내리쳐 병아리 훔쳐가려한 고공 공습 실패하자, 박꽃 한창인 담벼락 밑에서 먹이 쪼던 뭇닭이 푸더덕거리며 난리가 났다. 


이 집안 아들들은 장가를 간 듯, 그 며느리인 듯한 젊은 아낙은 아마도 새참을 내가는 모양이라, 새참 머리 지고 시내를 건너는데, 아마 돌다리가 있었던 듯, 혹은 맨말로 건너는데, 그 묘사가 실로 압권이라, 행여나 미끄러질 새라, 행여나 새참 쏟을새라, 조심조심 하는 모습 선연하다. 그 뒤를 어린아이와 똥개 한 마리가 쫄래쫄래 따르니, 잘 만든 영화 한 컷 보는 듯하다. 




  1. 아파트분양 2018.11.14 09:12 신고

    黃雀는 검은머리방울새로 나오는데요.

《동문선東文選》 권19권 칠언절구(七言絶句)



원주 부론면 남한강에서



님을 보내며[(送人] 


[高麗] 정지상(鄭知常)


비 갠 긴 언덕엔 풀 빛 더욱 푸른데

남포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말라버릴지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인구에 회자하는 절창이라 하거니와, 특히 '대동강수 하시진大同江水何時盡, 별루 년년 청록파別淚年年添綠波'는 이후 무수한 변종을 낳게 된다. 남포란 지명이 지금 대동강 어구에 남았거니와, 이와는 관계없이 항용 이별하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쓰이거니와, 이는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대시인 굴원(屈原)이 〈구가(九歌)> 중 동군(東君)에서 노래한 “그대와 손을 마주 잡음이여, 동쪽으로 가는도다. 아름다운 사람을 전송함이여, 남쪽의 물가에서 하는도다[子交手兮東行, 送美人兮南浦.]”라고 한 데서 비롯한다. 


이 시는 내 학창시절에는 아마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다고 기억하거니와, 그래서 더욱 친근한 시이거니와, 지금도 그런지는 사정을 내가 알지 못한다. 


한시, 계절의 노래(214)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


[唐] 두목 / 김영문 選譯評 





넓은 허공 일망무제

외로운 새 사라지고


만고의 모든 역사

그 속으로 침몰했네


한나라 왕조 살피건대

무슨 일 이루었나


다섯 능엔 나무 없어도

가을바람 일어나네


長空澹澹孤鳥沒, 萬古銷沈向此中. 看取漢家何事業, 五陵無樹起秋風.


성당 시대의 이두(李杜)라고 하면 우리는 바로 이백과 두보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중국 전통 시단의 쌍벽이다. 하지만 만당(晩唐) 시대에도 이두(李杜)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시 시단을 주름잡던 이상은과 두목을 가리킨다. 두목은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라는 「산행(山行)」 시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기실 그는 역사를 소재로 흥망성쇠의 비감을 읊는 ‘회고시(懷古詩)’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이상은은 우리에게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이라는 시(「낙유원에 올라(登樂游園)」)로 유명하다. 그는 역사보다 인간 실존의 비애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낙유원에 올라」라는 같은 제목의 시를 누가 먼저 지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안의 명소 ‘낙유원’에 올라 시를 지었다. 이상은이 석양을 바라보며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고독감을 노래하고 있는데 비해, 두목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비장하게 읊었다. 외로운 새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광막한 허공, 그곳으로 만고의 제국들이 모두 침몰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한나라 황제들이 이룩한 사업은 무엇인가? 저 까마득한 하늘 아래 누워 있는 다섯 무덤뿐이다. 나무 한 그루도 없이 황폐한 다섯 능엔 가을바람만 마른 풀을 스치며 지나간다. 역사의 교훈은 멀리 있지 않다. 은(殷)나라는 바로 앞 하(夏)나라 멸망의 교훈을 거울삼아야 한다는 ‘은감불원(殷鑑不遠)’이란 말이 있다. 어찌 은나라만 그러하겠는가? 초심을 잃고 오만하게 민심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은 예외없이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누가 가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우연히 느낌이 있어서[感遇]  


[조선] 허봉(許篈·1551~1588)


전남 장성 고경명 묘소에서



낭군은 둑가 버들 좋아하셨고

소첩은 고개 위 솔 좋았어요

바람 따라 홀연히 흩날리며

이리저리 쓸려가는 저 버들개지

겨울엔 그 자태 변하지 않는

늘 푸른 솔과 같지 않지요 

좋아함과 싫어함 늘 변하기에

걱정스런 마음만 가득하답니다


君好堤邊柳, 妾好嶺頭松. 柳絮忽飄蕩, 隨風無定蹤. 不如歲寒姿, 靑靑傲窮冬. 好惡苦不定, 憂心徒忡忡. 


전남 장성 고경면 묘소에서



조선후기 문사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열조시집(列朝詩集)》에서 채록했다면서, 그의 《해동역사(海東繹史)》 권제49 예문지(藝文志) 8 본국시(本國詩) 3 본조(本朝) 하(下)에 위 시를 수록하면서, 《열조시집》을 인용해 이르기를 “허봉(許篈)의 여동생이 김성립(金成立)한테 시집갔는데, 착했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허봉은 허균(許筠·1569~1618)의 형이요, 난설헌(1563~1589)의 오빠다. 따라서 김성립한테 시집간 여동생이란 곧 허난설헌을 말한다.  


한시 제목에 흔히 등장하고, 이 시에서도 제목으로 삼은 감우(感遇)란 우연히 생각난 바를 읊었을 때 쓰는 말로써, 이것도 저것도 붙이기 싫을 때는 무제(無題)라 하기도 한다. 시를 보면, 허봉은 여자에 가탁해 바람기 다분한 한 남자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자 바라기의 심정을 나무에 견주어 그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니, 남자는 봄날만 되면, 이리저리 그 꽃방울 날리는 버들개지맹키로,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에 견주어, 화자인 여자는 같은 자리 높은 산 꼭대기를 홀로 지키는 소나무에 비긴다. 이를 무슨 전통시대 유교 윤리를 끌어다가 설명하기도 하는 모양이나, 글쎄, 그것이 꼭 전통시대 유교윤리만이리오? 



한시, 계절의 노래(213)




기해잡시(己亥雜詩) 96


[淸] 공자진(龔自珍) / 김영문 選譯評 


어렸을 땐 검술 익히고

퉁소 즐겨 불었건만


서린 검기와 그윽한 정

하나 같이 사라졌다


황량한 마음으로

귀향 길 배를 탄 후


오늘 아침 밀려오는

온갖 애환 누가 알랴


少年擊劍更吹簫, 劍氣簫心一例消. 誰分蒼凉歸櫂後, 萬千哀樂集今朝.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무협소설의 지존 김용(金庸)을 생각하다가 문득 옛날에 쓴 글 한 편이 생각났다. 혼란한 청말에 새로운 시대를 꿈꾼 공자진(龔自珍)의 『기해잡시(己亥雜詩)』에 대한 서평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기해잡시』를 번역하고 평석(評釋)한 최종세의 『기해잡시평석(評釋)』(도서출판 月印, 1999)에 대한 생기발랄한 리뷰였다. 내가 보기에 중국 근대 문인들의 협기(俠氣)는 공자진에 의해 확장되었음에 틀림없다. 글을 인용한다. 


“유협(游俠)은 기존의 제도와 법률이 부패한 왕실 또는 권세가와 관료의 사유물이 되어버린 암울한 사회, 그리하여 민중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그 참담한 하늘 아래 바람처럼 나타난다. 탐관오리의 사리사욕에 찌들어버린 왕법(王法)은 이제 법이 아니다. 그 혼탁한 법을 대신하여 쾌도난마의 보검이 달빛을 가르고, 협의(俠義)의 검객은 다시 달빛을 등에 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 유협은 이제 협소한 혈연의 사랑에 갇혀버린 유가의 테두리를 뛰어 넘어 혈연이나 신분에 얽매임 없는 묵가(墨家)의 드넓은 사랑(兼愛)을 자신의 몸에 체화한다(游俠을 흔히 墨俠이라고 부른다).” 


공자진의 협기가 전통 중국이 무너져 내리는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김용이 무협소설을 쓴 배경은 무엇일까? 수많은 중국인이 환호하듯 현대의 통일 중국이 배경일까? 대개 김용의 무협소설이 현대 중국의 꿈을 그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전국시대의 묵협(墨俠)은 진시황의 통일 이후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대륙을 통일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무협의 꿈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김용이 중국 저장성 출신으로 홍콩에 거주한 실향민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의 꿈은 중원에서 쫓겨난 정파 협객의 꿈이 아닐까? 온갖 고난을 거쳐 사파를 물리치고 중원 무림을 장악하는 대협의 꿈 말이다. 그것은 본래 김용 혹은 홍콩의 꿈이나 은밀하게 감춰져 있으므로 모든 중국인들은 그것을 세계 속에서 굴기하는 현대 중국의 꿈으로 체화할 수 있었을 터이다. 아니 어쩌면 공자진 시대의 협객은 현실 속 검객이지만 김용의 협객은 문학 속 대협임이 가장 큰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위의 시에서도 드러나듯 정의로운 협골(俠骨: 劍氣)과 따뜻한 유정(幽情: 簫心)은 인간이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인격이기 때문이다. 



한시, 계절의 노래(212)


낙엽(落葉)

[宋] 애성부(艾性夫) / 김영문 選譯評

맑은 서리 즈믄 숲
마르게 하니

누런 잎이 만 가지 춤
추려 하네

한밤 내내 북창에서
잠 자는데

마른 비 오는 소리
우수수 들리네

淸霜槁千林, 黃葉欲萬舞. 一夜北窗眠, 瀟瀟聽乾雨.

서리 맞은 단풍 잎은 이제 곧 천지 간을 휘돌며 찬란한 춤을 출 것이다. 양만리에 의하면 그건 하늘 술을 훔쳐 먹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는 단풍의 취후(醉後) 난무(亂舞)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술주정에 어찌 밤낮이 따로 있던가? 하지만 단풍잎의 술주정은 폭언과 폭행이 아니다. 천지를 가득 채우는 오색 춤사위와 창 너머 들려오는 쓸쓸한 비 소리다. 그 비 소리에는 물기가 없다. 마른 비 즉 건조한 비다. 그것도 민폐라면 민폐다. 사람들의 마음에 가을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마음에 가을을 가득 담은 가을 남녀들은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에 낙엽처럼 거리를 떠돈다. 북창(北窗)은 은사가 잠자는 곳이다. 도연명(陶淵明)의 거처다. 왜 하필 북창인가? 세상을 등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북창은 여름엔 이를 데 없이 시원하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찬바람이 들이치는 곳이다. 이제 그곳에 밤낮 없이 마른 비 소리가 들린다. 은사조차 불면의 밤으로 이끄는 물기 없는 비 소리다.
한시, 계절의 노래(211)

대청호


홍엽(紅葉)

[宋] 양만리 / 김영문 選譯評

시인은 뱃속 가득
맑은 우수 품어

천 편 시 토하고도
멈추려 하지 않네

벽마다 가득 썼지만
더는 쓸 곳 없어

붉은 잎에다 가까스로
가을 시를 적어보네

詩人滿腹著淸愁, 吐作千詩未肯休. 寫遍壁間無去處, 卻將紅葉強題秋.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국화꽃 저버린/ 가을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길 가의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 “해는 서산에 지고/ 쌀쌀한 바람 불어/ 날리는 오동잎/ 가을은 깊었네” 지금 떠오르는 대로 써본 가을 시와 가을 노래 구절들이다. 가히 가을은 시의 계절이라 할만하다. 미국 작가이자 공연예술가인 패티 스미스(Patti Smith)도 가을 거리를 바라보며 “이 거리들은/ 알을 깨고 나오기만 기다리는/ 한 편의 시다”라고 읊었다. 우리나라 정용철도 “가을은 시인의 집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시인이 됩니다”라고 고백했다. 위의 시인 양만리도 나뭇잎이 붉게 물든 가을날, 맑은 우수를 천 편의 시로 써내고도 멈출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의 서재에는 시를 쓴 종이가 마치 낙엽처럼 뒹굴고, 사방 벽에도 온통 휘갈겨 쓴 시구로 빈 틈이 없을 터이다. 더 이상 시를 쓸 곳이 없는 그는 붉게 물든 단풍잎을 종이로 삼는다. 하긴 뱃속 가득한 시심을 남김없이 써내기 위해서는 가을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나뭇잎 말고 다른 지면을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이미 처연한 가을 시이니 그걸 뿌리기만 해도 가을 창공이 시 낭송 소리로 가득 차는 것일까? 그럼 낙엽을 태우는 건 시를 태우는 장례 의식일까?


가을 산 두 수(秋山二首) 중 둘째


[宋] 양만리(楊萬里·1127~1206) / 김영문 選譯評 


창덕궁 속 가을



오구나무는 평소에

노련한 염색공이라


서둘러 검푸른 색을

선홍빛으로 바꿔놓네


어린 단풍 하루 밤새

하늘 술을 훔쳐 먹고


취한 모습 가려 달라고

고송(孤松)에 간청하네


烏桕平生老染工, 錯將鐵皂作猩紅. 小楓一夜偷天酒, 却倩孤松掩醉容.


어릴 적 가을 시골 앞산 뒷산에서 가장 붉게 물드는 나무는 뿔나무와 옻나무였다. 뿔나무의 표준말은 붉나무인데 나무 이름 그대로 가을 산을 붉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가을나무다. 옻나무 단풍도 뿔나무에 못지 않다. 이 두 나무는 생긴 모양도 비슷해서 초보자는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선홍빛에서 검붉은색으로 물드는 옻나무와 뿔나무 단풍은 가을산을 불태우는 주인공이지만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처럼 크고 높게 자라지 않아 사람들의 눈길을 강하게 끌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라도나 제주도 등 남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오구나무(조구나무)도 가을 빛이 붉고 예쁜 나무다. 오구나무의 수액은 양초와 비누 원료로 쓰인다. 물론 당단풍, 홍단풍, 꽃단풍, 신나무, 고로쇠나무 등 단풍나무가 붉은 가을 산을 대표하는 수목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다양한 가을나무 중에서도 오구나무와 어린 단풍나무를 불러왔다. 동시의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술도가에서 술을 받아오다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마셔본 경험들이 있으시리라. 처음 맛본 들쩍지근하면서도 씁쓸한 막걸리의 미묘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집에 와서 대접에 막걸리를 붓고 사까리(사카린)를 타서 마시기도 했다. 이 시의 어린 단풍나무도 하늘의 술을 훔쳐 마시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고 했다. 지금 온 산천은 천주(天酒)를 마신 단풍나무의 술주정판이 벌어지는 현장인 셈이다.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날이 새도 깨지 않고 저 붉은 얼굴을 부끄럼 없이 자랑하고 있을까? 그 옆의 푸른 소나무는 그런 어린 단풍을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는 우리 어릴 적 아버지와 같다. 아니 푸른 소나무조차 가을 산을 오색으로 물들이는 작은 구성원일 뿐이다. 천주(天酒)의 술기운이 온 거리의 가로수까지 물들이고 있다.

서쪽으로 위주를 지나다 위주를 보고서는 진천이 생각나서[西過渭州見渭水思秦川]





[唐) 잠삼(岑參·715~770) 


위수는 동쪽으로 흘러가다 

언제쯤 옹주땅에 다다를까

바라건대 두 줄기 보탠 눈물 

고향으로 흘러갔음 한다네


渭水東流去,何時到雍州。

憑添兩行淚,寄向故園流。


출전 : 《전당시全唐詩》·권201

이로 보건대, 잠삼 고향 집은 옹주에 있었나 보다. 지금의 서안 인근이다. 


이 시는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五言唐音》(교육서가, 2018)에서도 실렸으니(286~287쪽) 참고 바란다. 

  1. 연건동거사 2018.10.28 23:02 신고

    岑参(715年-770年),荆州江陵县人,郡望南阳. 고향은 형주-.

  2. 한량 taeshik.kim 2018.10.28 23:13 신고

    조적 아닌가 합니다

  3. 한량 taeshik.kim 2018.10.28 23:13 신고

    형주 강릉은

국화담 주인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尋菊花潭主人不遇]

[唐] 맹호연

발걸음 국화담에 이를 즈음
마을 서쪽으로 해 이미 기울었네
주인은 중양절 맞으러 산에 가고
닭이랑 개만 부질없이 집 지키네

行至菊花潭
村西日已斜
主人登高去
雞犬空在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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