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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확인했다는 2천년 전 룬 문자 덴마크 푸넨 Funen 섬이란 데 무덤에서 발굴된 2천년 전 길이 8㎝짜리 쇠칼에서 ‘작은 칼’을 의미하는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룬 rune 문자 ‘히릴라 hirila’가 확인됐다고 영국 언론 더 가디언 The Guardian 최근 보도했다. 이 유물은 푸넨 섬 오덴세 Odense 시 근처 독무덤에서 발견됐다. 이에는 높이 약 0.5cm인 5개 룬 문자가 새겨져 있다. 1865년 인근에서 발견된 새겨진 뼈 빗과 더불어, 이 유물은 덴마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룬 문자로 평가된다. 이를 보고한 오덴세 박물관 큐레이터 제이콥 본데 Jakob Bonde는 처음에는 룬 문자가 보이지 않아 평범한 칼인 줄 알았지만, 보존처리 과정에서 글자 흔적을 발견했다면서 “그것은 과거 저 너머로부터 메모를 받는 것과 같은.. 2024. 1. 28.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국사 현재 한국사는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다. 물론 잡곡농경에 대한 이야기는 한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완결된 형태로서의 잡곡문명, 도작이 없는 상태에서도 번영하는 잡곡 문명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잡곡농경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작의 보조적 수단이나 도작이 들어오기 전 원시적 농경으로서의 이야기지, 잡곡농경만으로 이루어진 완성체로서의 문명을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황하문명은 잡곡농경만으로 굴기한 문명이다. 소위 요하문명도 그렇다. 한국사 벽두를 장식하는 비파형동검 등 초기 청동기문명-. 모두 완성된 형태의 잡곡농경에 기반한 것이다. 부여, 고구려?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반도 진입 때까지 쌀은 구경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4. 1. 28.
전쟁기념관 전쟁기록화 (1) 진주성전투 by 강대운 진주성 전투는 1592년(조선선조 25)임진왜란 3대 승전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진주성은 군량보급지인 전라도를 지키는 길목으로 조선과 일본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진주목사 김시민은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진주성민들과 힘을 합쳐 2만 명의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강대운 작인데 제작 시점 표시가 없다. 붓필로 보아 70년대 작품 아닌가 한다. 그림 하단에 이런 표식이 있다. 2024. 1. 28.
고고학 야외실습을 통해 드러난 60년 전 풍납토성 지금은 풍납토성은 한성백제, 나아가 백제를 증언하는 제1 유산이지만, 이것도 1990년대 이후 이야기이며, 그 전에는 존재감은 미미하기 짝이 없어, 그 남쪽 동생 몽촌토성에 견주어서도 형편없었다. 그런 풍납토성이 지난 30년간 전세를 완전히 역전해 백제를 통털어 넘버원 유산이 되었으니, 그에다가 내가 작은 힘 하나 보탰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조금은 있다. 이는 풍납토성이 발굴조사를 통해 그렇게 드러났기 때문인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풍납토성이 발굴조사를 통해 속살을 드러낸 시점은 그보다는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올해는 풍납토성이 발굴조사를 통해 존재를 보고한지 딱 한 주갑이 되는 해다. 1964년 10월 16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보름 동안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유일한 교수 김원룡.. 2024. 1. 28.
[대물大物 이야기] 음낭만 비대한 사이고 다카모리 일본 근대사에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1828~1877)보다 더한 굴곡 많은 삶을 산 사람 있을까? 일본 열도 규슈지방 땅끝마을 사쓰마薩摩 지방 번사藩士, 곧 사무라이 칼잽이인 그는 메이지유신이라 하지만 꿔다논 보릿자루 천황한테 권력을 돌려준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또 다른 막부 군사 쿠데타로 에도 막부 정권을 타도한 주역이었지만, 신정부에서 노선 갈등으로 권력투쟁에 패해 고향 가고시마鹿児島로 낙향한다. 그가 걸은 길을 보면 앞선 대물 열전 또 다른 주인공 여불위의 그것과 흡사한데, 낙향하고 난 다음 행보 역시 딱 여불위 그것이다. 전반으로 보아 사이고는 책략가라기보다는 우직한 군인이라는 인상을 나는 짙게 받는다. 그는 나라를 경영할 만한 인재는 아니었던 듯하고 돌격앞으로 딱 이에 어울리는 사람 .. 2024. 1. 28.
노자老子와 장 자크 루소 : 텍스트의 열림성 이른바 고전이라는 존재는 텍스트의 열림성을 생명으로 삼는다. 다양한 해석을 열어놓음으로써 생명력을 확장한다. 이른바 창조적 오독이라는 말도 있지만, 텍스트가 그것을 소화하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인식에 따라 왕청나게 달라지거니와 그 극단을 오간 것으로 노자와 루소를 나는 자주 든다. 노자. 이거 참말로 묘해서 딩가딩가 놀자판의 텍스트로 해석한 이가 압도적으로 많거니와, 실은 노자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해석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아 위진남북조시대 현학玄學이라는 기풍이 일면서 장자와 한묶음이 되어 부어라 마셔라 하는 권리장전이 된다. 그러면 그 이전 노자는 어떠했는가? 압도적인 독법은 제왕학의 텍스트였다. 왕이 통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전범을 제시한 것이 노자였으며, 노자의 그러한 노골적인 정치성-이는 실..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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