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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오리알 빛 같은 하늘” 을 펼친 최찬식 《추월색秋月色》

by taeshik.kim 2023.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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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없이 오가던 가을비가 그치고 슬슬 부는 서풍이 쌓인 구름을 쓸어보내더니 오리알 빛 같은 하늘에 티끌 한 점 없어지고 교교한 추월색이 천지에 가득하니 이때는 사람사람마다 공기 신선한 곳에 한번 산보할 생각이 도저히 나겠더라.
 
최찬식崔瓚植[1881. 8. 16~1951. 1. 10] 신소설 《추월색秋月色》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리알 가을빛은 이런 색깔인가?

 
 
그에는 시집 장가를 이렇게 정의하는 구절도 발견된다. 

시집장가란 무엇인가? 

"장가는 내가 너한테 절하는 것이요, 시집은 네가 우리집에 와서 사는 것이란다."

(2013. 6. 8)


***
 
구한말~식민지시대 초창기 신소설로 일컫는 대중소설 작가군에 속하는 최찬식崔瓚植은 이 무렵 「안의 성」, 「금강문」, 「도화원」, 「능라도」, 「춘몽」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한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추월색은 1912년 3월 회동서관이라는 데서 간행된다. 

이정임과 김영창이라는 같은 동네 동갑내기 청춘 남겨간 사랑을 소재로 삼는다. 두 사람 부모는 그네들이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선 일곱 살 되던 해에 정혼한다.

하지만 세파가 이들을 가만 두지 아니해서 영창은 초산군수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그곳을 가지만 그 무렵 하필 초산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영창 가족은 다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진다. 

이리 되니 정임 부모가 새로운 혼처를 찾지만 정임은 열녀는 두 남자를 섬기지 아니한다는 윤리를 내세우 저항하나 아버지는 강제로 결혼시키려 한다. 

아버지 돈을 훔쳐 달아난 정임은 우여곡절 동경으로 건너가서 일본여자대학에 입학하고 거기서 알게 된 강한영이라는 조선 유학생한테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칼까지 맞는다. 

영창은 어찌 되었을까? 민란에 졸지에 잃은 그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영국 자선가이면서 문학박사인 스미트라는 사람한테 구출되어 살아난다. 일본영사로 발령난 스미트를 따라 동경에 이른 창영. 

마침 정임이 공원에서 강한영한테 칼 공격을 받을 적에 정임을 구하지만 졸지에 범인으로 몰린다. 

기묘한 우연들로 점철하는 이런 소설이 왜 당대 인기였겠는가? 요새는 조금 열기가 뜸하기는 하지만 막장드라마가 왜 인기인가를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그러다가 그에 혹닉하는 암적인 존재가 막장드라마다. 신소설은 100년 전 우리가 열광한 막장드라마였다. 

최찬식 이인직 이해조를 필두로 하는 신소설 작가들은 전통시대 한학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그 구성이 지금은 피식 웃고 말지만, 그네들이 구사하는 한마디한마디는 백거이요 소동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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