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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오빠를 가장 많이 닮은 동생》 (1) 자매대전의 승자 문희

by taeshik.kim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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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언니 동생이 붙은 시스터 대전大戰이 적지 않고, 그것이 때로는 피비린내를 내기도 했다. 왕자의 난을 언급하지만, 자매의 난 역시 녹록치는 않다.

전한시대 말기 황제 성제成帝를 사이에 두고 총애를 다툰 조비연趙飛燕 조합덕趙合德 자매 역시 그러했다. 비연은 동생이라 해서 합덕을 믿고 후궁으로 들였다가 나중에는 성제의 총애를 동생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다.


조비연. 하늘하늘의 대명사라 손등에서 춤을 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황제까지 후려쳤지만 말로는 비참했다. 총애는 줄기 마련이고 종국엔 버림받는다.



자매의 난은 내가 정확한 통계 수치가 없지만, 대개 승자는 동생이다. 나아가 이들의 쟁투는 거의 예외없이 남자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까닭에 더 젊은 동생이 보통은 이기기 마련이다.  

김유신의 여동생으로 역사에 모습을 들이미는 보희寶姬와 문희文姬 역시 그러하다. 이들 자매 역시 김춘추金春秋라는 걸출하면서도 잘 생긴 남자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쟁투를 벌이다가 결국은 여동생인 문희 차지가 되고 만다.

이렇게 원하는 남자를 손아귀에 넣은 문희는 그 남편이 나중에 왕이 되자 일약 왕후가 되고, 나아가 남편이 죽고 큰아들 법민法敏이 즉위하자 태후가 되어 권력을 농단한다.

나는 김유신 가家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유신과 가장 닮은 인물로 바로 김문희를 서슴없이 꼽는다. 문희는 참으로 맹랑하면서 당찬 여성이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이를 위해 우선 문희라는 인물의 족적을 살피기로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먼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즉위년 조에서는 그의 왕비를 “문명부인文明夫人이니 각찬角飡 서현舒玄의 딸이다”고 했으며,

그의 아들인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오른 대목에서는 “어머니는 김씨金氏로 문명왕후文明王后이니,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동생이다”고 했다.

같은 서현이라는 인물을 태종무열왕 즉위년 조에서는 1등 각찬이라 하고, 문무왕본기 즉위년 조에서는 3등 소판이라 한 까닭은 모르겠다. 왕비 계통을 언급하면서 그 아버지는 최고 관위를 밝히는 게 상례라는 점에서 이상한 대목이다.

하긴 관위官位가 각찬이건 소판이건 이들은 모두 재상급이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나는 본다.

삼국유사에서 문희의 흔적을 계보에 충실하면서 적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왕력王曆 편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에 대해 그의 “비는 훈제부인訓帝夫人이니, 시호는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유신庾信의 동생이다. 어릴 적 이름은 문희文姬다”라고 했으며,

기이紀異 편에 ‘김유신金庾信’이라는 제목 아래 수록된 본문에서는 “호력虎力 이간伊干의 아들인 서현舒玄 각간角干 김씨씨의 맏아들이 유신庾信이고, 그 아우가 흠순欽純이다. 맏누이는 보희寶姬이니 어릴 적 이름은 아해阿海이며 누이동생은 문희文姬이니 어릴 적 이름은 아지阿之다”라고 했다.

호력은 원래가 무력武力이니, 삼국유사가 고려시대에 편찬된 까닭에 그 2대 왕인 혜왕의 이름인 ‘무武’라는 글자를 함부로 쓰지 못하는 피휘避諱로 인해 뜻이 비슷한 글자인 ‘虎’자를 빌린 쓴 데 지나지 않는다.

이간伊干이란 이찬伊飡, 이벌찬伊伐飡, 이척간伊尺干, 이척찬伊尺飡, 각찬角飡, 각간角干, 서발한舒發翰 등으로 일컫기도 한 신라 제1위 관위 명칭이다.

이를 통해 김유신 형제자매 관계가 그런 대로 드러난다.

한데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나, 김유신 김흠순 형제에게는 보희와 문희 외에도 정희政姬라는 여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이 여동생이 일통삼한 직후 신라 왕실 내부에서 발생한 최대의 왕위 계승전쟁인 김흠돌의 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같은 기이편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조에서는 그의 “비가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 막내누이다”라고 했다.  

삼국사기 관련 언급과 대비할 때 유별난 대목이 어릴 적 이름이 따로 있어 ‘아지阿之’라 불렀다는 점이 새롭다. 그의 언니 보희가 ‘아해阿海’인 점과 대비할 때 현대 한국어 ‘아이’ 혹은 ‘아기’와 계통을 같이하는 말인 듯하다.

나아가 문희가 남편 김춘추가 즉위해서는 훈제부인訓帝夫人이라 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는 삼국사기에는 전연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문명文明이라는 이름은 시호, 다시 말해 죽은 뒤에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왕비로 생존할 당시에는 훈제부인이라 일컫다가 죽어서는 문명이라는 불렸다는 것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따른다면 문희는 그 이름 변천을 보면 아지→문희→훈제→문명의 네 단계로 변한 셈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왕비가 되어 얻은 새로운 이름이라는 훈제부인訓帝夫人을 나는 의심한다.

삼국사기에서 전연 언급이 없는데다가, 나아가 이 무렵 신라시대 존호尊號 혹은 시호諡號 시스템을 고려할 적에 왕비 혹은 모후母后로 생존할 적에 존칭이 문명이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시호가 되었다고 본다.

나는 훈제부인이 문희에 앞서 김춘추의 정실正室이 되어 고타소라는 딸을 낳고는 죽은 첫 번째 부인 보량寶良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2016.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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