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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건물은 타도 좋으니 편액만큼 건져라

by taeshik.kim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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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쯤이면 닥치는 강원도 산불이 올해라고 예외는 없어, 강릉 일대를 강타한 모양이라, 화마가 새둥지를 넘어 인간 둥지로까지 덮치고, 또 그 마수가 문화재 권역으로까지 번지자, 당국에서 맨먼저 한 일이 편액 혹은 현판은 모조리 떼서 안전한 곳으로 옮긴 일이니

저런 유서 깊은 정자 혹은 건물채가 화마에 사라져도 편액 혹은 현판이 살아남은 힘이 바로 이거다. 건물은 타도 좋으니 편액만큼은 현판만큼은 건지자 하는 이 전통은 아주 오래되어서 그것이 현대판으로 발현했을 뿐이다. 

가깝게는 2008년인가 남대문 화재가 나자, 역시 맨먼저 한 일이 그 육중한 현판을 떼어낸 일이었으니, 그래서 이 현판만큼은 비교적 멀쩡하게 살아남은 힘이다. 

 

현판 떼는 사람들

 
 
저런 산불에 특히 취약한 데가 산중 사찰이라, 산중 사찰 건물채로 기껏해야 봉정사 극락전이니 하는 고려후기 몇 군데만 살아남은 이유가 뭐겠는가? 산불이며 방화며 실화며 하는 화재가 잦은 까닭이었다. 

저에 견주어 일본이나 중국을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목조 건물이 많은 편인데,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평지 가람 혹은 그에 가까운 가람이라는 특징이 그것이다. 

이는 천연기념물 노거수 문화재 지정 현황을 보면 단박에 드러나는데, 산 속에 있는 나무는 없다 해도 좋다. 모조리 은행나무 아니면 느티나무라 이들 나무는 동네 안마당에 혼자서, 혹은 서원이나 향교 경내에 덩거러니 홀로 자라기 때문이지, 다른 나무에 견주어 화마를 견디는 용가리 통뼈 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절간에서는 불이 나면 맨먼저 하는 일이 법당으로 뛰어들어가 부처님을 업고 나오는 일이다. 예서 문제는 불상의 무게.

이런 즉각적인 대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상이 무게가 적어야 한다. 그 불상이 클수록 화마와 같은 비상시에 대피할 방법이 뾰죽이 없으니, 장륙존상 같은 거대 불상은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그 장륙존상을 꺼내려면 무엇보다 건물을 뜯어제껴야 하는데, 불길이 앞마당 뒤안까지 와 있는 마당에 무슨 수로 대웅전을 때려부수고, 무슨 수로 그걸 옮긴단 말인가? 

넋놓고 당하는 수밖에 없다. 

 

강릉 산불

 
불교가 이땅에 처음 상륙했을 그 무렵에는 장륙존상이니 해서 아주 규모가 큰 것을 선호했다고 나는 본다. 왜? 처음 들어왔고 그러니 무엇보다 문전처리 미숙으로 당해보지 않은 일이라 무조건 크게 만들고 보면 그것이 뽀대 나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황룡사를 만들고 그 법당을 만들면서 신라인들은 열라 크게 불상을 만들었다. 그것도 금동으로. 그만한 불상을 안치하려 하니 문제는 건물채 완공 이후에는 들여놓을 방법이 없었으니, 두 가지 묘안이 있을 뿐이다.

첫째 조립식으로 똥가리내서 하나씩 들인 다음 건물채 안에서 조립하거나, 둘째 지붕을 올리기 전에 미리 건물채 안쪽에다가 용범을 갖추어 놓고 주물을 하는 방법 말이다. 

몽골 전쟁에 황룡사는 맥없이 무너지고, 그 안에 안치한 거대 불상 더미들은 통째로 불타서 녹아 내렸다. 2005년 낙산사 화재에 조선시대 동종이 맥없이 녹아내렸듯이 말이다. 

 

38킬로그램 대마도 불상

 
요새 말 많은 대마도 불상 말이다. 한국 도둑놈들이 강탈해 국내 반입하고서는 피약탈품이라 해서 돌려주지 않는 이 대마도 불상은 높이 50.5㎝에 무게 38.6㎏다. 이 불상 딱 보면 성인 한 사람이 너끈히 둘러매고 지고 나를 크기와 무게다. 

이 불상은 그 복장품을 통해 서산 부석사에서 만들어졌다 하며, 그네들이 소유권이 있다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저런 크기 저런 무게는 무엇보다 휴대의 용이성 때문에 설혹 부석사에서 돈 대고 만들어 그곳에 안치했다 해도, 그것이 일본으로 반출하던 그 시점까지 부석사에 있었다는 증거는 하늘에도 땅에 없다. 

저런 주장은 막가파 그것에 다름 아니다. 저 정도 불상은 날개가 날리고 발이 달려서 얼마든 세상을 주유한다. 부석사에서 만들었으므로 그곳에서 약탈됐다? 이 얼마나 웃기는 짜장이란 말인가?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국내 어느 공장에서 만들었다 해서 그것이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가?

저런 불상이 비교적 많이 살아남은 까닭은 화마에 중들이 업어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불상 규모가 작아진 원인이기도 하다고 나는 본다. 왜? 화마에 살아남아야 부처님이지 맥없이 녹아내린 불상이 무슨 염력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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