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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기자수첩>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2011-01-13)

by taeshik.kim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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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단 광화문 현판

 

송고시간 2011-01-13 10:34
<기자수첩>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 제작방법 놓고 의견 분분..'복원' 의미 잘 새겨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균열이 생긴 복원 광화문 현판을 교체키로 하면서 새로운 현판 제작 방법을 둘러싼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지금처럼 경복궁 중건 당시 글씨인 임태영의 글씨를 모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이나 저명인사의 글씨에서 집자集字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당대 서예가에게 글씨를 맡겨야 한다고도 하고, 한글 현판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거의 똑같은 논란을 광화문 복원이 결정된 2004~2005년 무렵 이미 우리는 질리도록 경험했다.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애초 현판 글씨로 집자나 서예 대가의 글씨를 염두에 뒀다. 집자로는 추사 김정희와 정조의 글씨가 유력하게 검토됐다. 하지만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추사나 정조는 경복궁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후 고종 때 중건되기까지 경복궁은 없었으며, 그 텅빈 터는 밭으로 경작됐다. 

나아가 현판 논쟁은 정치논쟁의 무대로 변질되기도 했다. 발단은 한국전쟁 때 붕괴한 광화문을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할 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친필 한글 현판을 단 데서 비롯됐다. 

 

복원한 월대. 복원이 아니라면 미쳤다고 이 짓을 하겠는가?



노무현 정부때 추진한 이른바 과거사 청산 바람과 맞물려 박정희 글씨 또한 논란에 휘말렸다. 이는 한글전용론자들을 더욱 자극했다. 

이런 다양한 문제 제기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경복궁 복원 당시 광화문 현판 글씨가 실제 어떠했는지를 증명하는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5년 5월 무렵,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자료 중에서 20세기 초반 광화문 전경을 촬영한 원판 필름이 발견되고 그에서 디지털 복원기술을 동원해 '光化門'이라는 글씨를 판독함으로써 복원 현판은 이를 토대로 한 '모사'로 결정났다. 

그러나 이렇게 복원한 현판에 균열이 가자 각계가 들고 일어나 같은 논쟁을 재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서예계와 한글전용론자들의 움직임이다. 현판 복원에서 배제됐던 서예계에서는 당연히 서예 대가에게 글씨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글전용론자들은 한글로 바꿔 달아야 한다고 압박을 가한다. 

이런 움직임을 보노라면 흡사 현판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기다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든다.

하지만 지금의 광화문은 경복궁 '복원' 계획과 맞물려 함께 '복원'됐다. 복원은 말할 것도 없이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여기서 옛날은 고종 중건 당시 경복궁과 광화문을 말한다. 

 

미쳤다고?



'복원'이 아니라면 모를까 '복원'인 이상, 현판 글씨 또한 그때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 

한자 현판을 단 까닭은 한자가 한글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다. 고종시대 글씨를 따른 것도 그 글씨가 지금의 서예가 글씨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그렇게 결정된 까닭은 '복원'이기 때문이다. 

한글 현판이나 현대 서예가의 글씨로는 결코 '복원'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일각에서는 잊고 있는 것 같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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