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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로마열전] (2) 느닷없는 로마 시체 관광

by taeshik.kim 2023.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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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 장면 보고선 아, 저 촌놈이 고흐가 담기도 한 투스카니 사이프러스나무 숲길을 구경가지 않았나 하겠지만 천만에.

시체 공시소라, 화장장도 겸하는 로마공동묘지다. 

문제의 공동묘지는 크레마토리오 몬테벨로 Crematorio Montebello 라는 데라, 누군가 이곳을 꼭 가서 사진 좀 찍어오라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도저히 그 간절한 청을 이번에는 거부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가 줬다. 

이번에도 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내가 해외로 나간다 할 때마다 제발 어느 화장장 가서 사진 좀 찍어주라는 부탁을 번번이 했고, 그런 청을 번번이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화장장에 미쳤고, 그래서 그 한국적 화장장 문화 발현을 위해 노년을 몸사르는 중이다. 그런 그의 청을 이번에도 거절할 수 없어 갔다고 말해 둔다. 그가 박태호라는 사람이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입사해 생평 그곳을 보내다가 성질 머리 더러워 몇 년 일찍 명퇴해 버렸으니,

그 자신이 하는 말을 빌리자면 서른아홉살에 서울시 묘지 담당으로 발령받아 이쪽 일을 전문으로 하다가 아예 이쪽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한때는 잠깐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적을 뒀느니, 나랑 질긴 인연은 이 박물관에서 비롯한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막상 갔다. 마침 그 북쪽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상 성채 유적 바뇨레조 Bagnoregio 를 들렀다 로마로 회귀하는 길목에 있으므로 잘됐다 싶어 냅다 그쪽으로 내달았다. 
 

 
위치는 이렇게 된다. 로마 시내 중심에서 정중앙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면 닿는다. 
 
 

Crematorio Montebello · Salita del Crematorio, 00188 Roma RM, 이탈리아

화장 서비스

www.google.com

 
그가 왜 하고 많은 공동묘지 중에서 왜 저곳을 지목했는지는 현장에서 확인했으니, 무엇보다 그 규모가 엄청나서, 도저히 도보로는 다 돌아볼 수가 없는 곳이라, 짐작컨대 동작동국립묘지 몇 십 배는 될 듯 했다. 

크레마토리오 Crematorio 란 영어에도 그대로 침투한 말이라, 크리마토리엄 crematorium 혹은 크레마토리 crematory 직접 조상이 되는 말이거니와, 그 동사 크리메이트 to cremate는 지금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며 그 의미는 화장하다라는 뜻이라, 고고학에서도 자주 만난다. 

내가 아는 유명한 사람이 묻힌 데라면야 그의 묘소를 찾는 재미도 있을 테지만, 유명인이고 나발이고 하도 넓어 금새 질려버렸다. 

들을 때는 크레마토리오 라 해서 나는 저곳이 화장장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내비를 찍고 차를 몰아가긴 했는데, 가서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어 실제로는 공동묘지라, 무덤 혹은 골단지가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어디가 어딘 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찍어준 데가 크레마토리오라, 다행이 경내로 들어서고 보니 큼지막하니 크레마토리오라는 입간판이 보여 그것을 따라 죽 달려갔다.  
 

 
 

 
크레마토리오라는 방향 표시가 보이고, 뭐 이쪽으로 가면 티베르티나 가로로 가는 출구가 있다는 뜻이다.

uscita 우시타 라는 저 말은 생존을 위해서는 모름지기 알아둬야 하는 이태리 일상어라 exit에 해당하는 말이며, 파리로 가면 sortie 소흐띠 가 된다.

티베르티나는 지하철을 탈 때 외워둬야 하는 지명 중 하나인데, 몇 호선인지 종점이다. 
 

 
지나는 길에 차창 너머로 무수한 무덤이 보이고, 또 막 죽어 장사를 지내려는지 작은 포크레인으로 광壙을 판다.

하긴 오백만이 사는 거대 도시를 끼었으니, 오죽 정신없이 죽어나가겠는가?
 

 
이 연립주택 같은 건물들이 모두가 시체 집이었다. 저런 식으로 꾸며놨다.

하지만 이곳 장사 방식은 단일이 아니었다. 바로 앞 너머에서 봤듯이 구덩이를 파고 묻기고 하니깐 말이다. 
 

 
크레마토리오를 조우했다. 나는 벽제화장장을 생각했더니, 많이 달랐다. 연신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야 할 텐데, 태우는 시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다.

아! 오늘은 사람이 안 죽었나? 

보통 시체를 태우면 상주들이 있을 텐데, 상주라 할 만한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엉뚱한 데를 왔는가? 아리숑숑했다. 그렇다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다. 오죽 넓어야지?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박태호를 원망했다. 이 영감 돌아가서 가만두지 않겠노라 했다.

여기가 아닌가벼 하며 그래 온 김에 이쪽 장례 문화 혹은 장송문화는 어떤지 대략이나마 훑어보겠다고 이곳저곳 구경이나 했다. 

이쪽은 워낙 내가 문외한이라, 풍광 몇 장으로써 시체더미 관광을 갈음하려 한다. 
 

 

 

이 대규모 공동묘지는 어찌 해서 로마 교외로 나왔을까?

얼마나 버텨낼까?

이곳이 차면 다음은?

그렇게 로마 한달살이는 시체랑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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