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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보도자료] 도선 국사 돌덩이 아래서 튀어나온 신라비석

by taeshik.kim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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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도선 국사 돌덩이 아래서 튀어나온 신라비석
"김천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은 808년 만든 사실 밝혀져"
김천시·수도암·서진문화유산, 12.15 김천시립도서관서 학술대회   


수도암은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에 부속한 작은 암자지만 그 어느 곳보다 주변 경관이 훌륭한 곳에 자리잡은 산중 사찰이면서 성보문화재 보고이기도 하다. 

해발 1,317m에 달하는 소백산맥 준령 수도산 정상 아래 남쪽 기슭 해발 960m 지점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맑은 날이면 남쪽 너머로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해발 1,430m)이 고개를 삐죽히 내민 모습을 본다.  

이 상왕봉을 바라보는 암자 높은 지점에 석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과 석조 약사불을 모신 약광전藥光殿이 자리하며, 그 전면 마당에는 동서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고, 그 석탑 사이에 석등이 있고 문제의 대강 사각형 기둥에 가까운 석주石柱 하나가 서 있다. 

 

  

이 석주에는 가야산 쪽을 등지고, 그러니깐 대적광전과 약광전을 마주보는 면을 비교적 편평하게 다듬은 다음 '개주 도선 국사 刱主道詵國師'라는 6글자를 큼지막하게 세로로 새겨 넣었다. 이 절을 개창한 사람은 도선국사시다 이런 뜻이다.   

한데 이 돌이 본래는 적지 않은 글자를 빼곡히 새긴 신라비석이었다는 사실이 2016년 11월 중순 무렵, 이를 보존처리하던 김선덕 서진문화유산 소장이 글자 흔적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런 사실을 당시 위덕대 박물관장 박홍국 교수한테 제보함으로써 드러나게 된다.   

여러 차례 단독 혹은 여러 전문가와 현장 조사와 탁본 조사를 거친 박 교수는 본래 이 비석에는 190자 정도가 새겨졌으며, 창주 도선 국사 라는 글자를 새기는 과정에서, 그리고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글자가 지워지거나 판독 불명으로 빠졌지만 ‘毗盧遮那佛(비로자나불)’, ‘元和三年(원화3년)’, ‘金生書(김생서)’와 같은 구절을 확인했다고 2019년 신라사학보라는 잡지에 투고한 논문을 통해 공식 보고하게 된다.  

 



김천시와 수도암, 그리고 서진문화유산이 12월 15일 오후 김천시립도서관에서 개최하는 '2023년 김천 수도함 신라비 학술회의'는 한국 고대 금석문으로서는 신생인 이 비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집중 탐구하는 자리가 된다.  

이를 위해 먼저 불교문화재연구소 김정원 연구원이 수도암의 역사와 불교 문화재 현황을 짚은 다음, 신라비 공식 보고자인 박홍국 교수가 이 신라비 조사 과정과 그것이 김생의 필적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발표를 하고, 박남수 동국대 선임연구원이 이 비석 건립의 배경을 탐구하게 된다.   

가장 주목할 발표는 기존 판독을 보완하고 새로운 글자를 보강한 내용을 토대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박남수 연구원 연구성과다.  

박 연구원은 탁본과 정밀 사진 촬영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전에 보고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원화 3년 무자 3월(元和三年戊子三月)’, 김생서(金生書)와 같은 구절에 더해 ‘진적(眞蹟)’이라는 글자를 비롯해 불흥산(佛興山), 죽산(竹山), 밀연감□□(密演甘□□), 항중방당(斻中方啺), 고김충(考金冲), 금88푼(金八十八分), 임인개기(壬寅開?基) 등의 글자를 새로 판독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토대로 그는 이 비석이 기록한 내용은 대체로 “본 수도암이 있는 불흥산(수도산의 옛 이름)에 비로자나불이 나투는 진적이 있었고, 여기에 두 명의 큰 스님이 불법을 강설하다 죽산에서 중국으로 떠났다가 되돌아 왔다. 이에 고 김▢충을 위해 금 88푼을 기부하여 비로자나불상을 조영하였는데, 본 사찰은 임인년(762)에 개창하였고, 원화 8년(808)에 비로자나불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기와 사적을 김생의 글씨로 본 비명을 새겼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 조상을 만들도록 돈을 댄 사람은 금 88푼을 기부할 정도로 재력을 갖춘 김씨성의 진골귀족으로 인정되며, 불흥산에서의 비로자나불 출현이라는 진적에 힘입어 수도암을 돌아가신 아버지 김충(考 金冲)을 모시는 원찰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와 같은 발표를 포함한 종합토론은 김창겸 김천대 교수 사회로 진행된다.  

*** 본 보도자료 문의는 김선덕 서진문화유산 소장 010-3235-9747 / 김창겸 김천대 교수 010-2944-8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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