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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자수字數라는 압박에서 해방되는 그날까지

by taeshik.kim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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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대체로 자수字數라는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자수란 글자수다. 같은 기자라 해도 이런 욕망은 신문 방송기자들이 더 격렬하다.

톱 기사라 해도 대체로 그 기사는 띄어쓰기 각종 문장 부호를 포함해 천자를 넘지 않으니 이 비좁은 틈바구니에 모든 걸 쏟아부야 하는 고통이 이만저만하겠는가?

그에 견주어 통신사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압박이 덜하다. 자수에 상대적인 자율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통신사 기자들이 그런 압박이 없는가 하면 상대성에서 비롯될 뿐 그 압박은 여전하다.

기자 출신들이 내는 책에 그래서 가끔 자수의 해방이 주는 안도감을 표출하는 대목이 있는 이유다.

태극기 게양과 현충원 참배라는 전대미문의 박근혜 추종 세력이 경영진을 장악하면서 그들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기자를 떠난 나는 지난 2년을 그래도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명색은 그럴 듯 하나 내실은 형편없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언론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이비 기자생활을 하는 중이다.

나는 통신사 기자 시절에도 자수의 속박에서 비교적 해방한 기사를 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열라 길게 쓰곤 했으니, 이에서 니 기사는 논문이냐 기사냐는 비아냥을 듣곤 했던 것이다.  

그래도 자수의 압박은 여전했다.

프리랜서 기고문은 그에 견주어 비교적 자구의 압박이 덜 하다.

매체 성격에 따라 예컨데 시사인은 14매로 한정한 지면을 할당했지만 다른 매체는 그보단 분량이 훨씬 많다.

이런 생활을 2년가량 한 지금 문득 돌아보니 이젠 천자짜리 글은 영영 못쓸 거 같단 생각이 엄습한다.

습관은 그래서 무섭다.

(201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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