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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잡곡인가 도작인가

by 초야잠필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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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령회하선



중국도 이른바 진령-회하선이라는 것이 있다. 

남중국과 북중국을 가르는 선이다. 

이 선을 경계로 화북과 화남의 여러가지 지표가 차이를 보인다는 유명한 경계선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 진령-회하선을 경계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체계가 결합한 문명이다. 

한국사를 보자. 

한국사 두 개의 상이한 체계-. 

한국사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잡곡문명과 도작문명, 두 개 문명이 결합한 체계였다. 

부여-고구려는 도작문명과 거리가 멀었다. 

이들이 남하하면서 도작문명과 결합하고 그 일파인 백제는 아예 도작문명의 왕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한반도 북부와 만주일대에 이어진 발해는 역시 잡곡문명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여러 왕조는 모두 도작문명이며 기본적으로 이들은 잡곡문명과 함께 단일 체계를 이루었던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다. 

고구려와 발해가 사라지자 한반도 문명에서 잡곡문명의 흔적은 지워졌고, 그 이후는 도작문명의 북상에 따라 한반도 남부 왕조의 북진이 이루어졌다. 

김일성은 북한의 주민에게 "이팝에 고기국"을 약속했다고 한다. 

한반도 북부에 자리잡은 북한도 도작문명의 국가임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프로파간다는 없다. 

한국사에서 잡곡문명이 소멸하는 순간, 그 지역의 회복은 도작의 북상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할 것이다. 

만주땅의 상실, 북진정책 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민족정기라든가, 자주성 등등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도작과 잡곡의 방정식을 풀어야 보이는 만주와 북진정책 이야기를 자주성과 민족정기, 고구려, 신라의 배신 등등 애들 장난 같은 이야기로 설명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한국사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보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신라가 통일국면에서 대동강-원산만 선을 넘지 않은 것은 자주성 사대주의 등등의 문제가 아니고, 

고려가 윤관 9성을 지키지 못하고, 조선이 두만강선을 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 

그것과 같은 이유라는 말이다. 

신라의 통일 당시 대동강 이북과 만주땅이 벼농사에 적당한 환경이었다면
신라왕이 가지 말라고 해도 신라 농민들이 그곳으로 몰래 넘어 들어가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먹고 살자면 하지 말라고 해도 월경하여 들어간다. 

조선시대 내내 함경도 땅을 사람으로 채우려고 도망나올 때마다 남쪽에서 사람들을 옮겨다 채웠던 것인데, 

19세기 넘어가면 죽인다고 해도 조선의 농민은 두만강을 넘어 간도로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반대로 먹고 살 길이 안 보이면 얼마나 대단한 이데올로기로 설득해도 모두 도망나온다. 

간단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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