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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청자 왕국 원에서 왜 고려청자를?

by taeshik.kim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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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청자는 당대 중국에 흔했다. 한데 왜?



<고려사를 읽다가>

1289년(충렬왕 15) 8월, 탐라에 있던 원나라 관리가 잠깐 대도大都(지금의 베이징)에 갔다(출장이었을지 휴가였을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겸사겸사, 원나라 중서성中書省 부탁을 고려 조정에 전해주는데.

무오 탐라안무사耽羅安撫使 홀도탑아忽都塔兒가 원에서 돌아왔는데, 중서성이 첩牒을 보내어 청사靑砂 항아리[甕]와 동이[盆]·병甁을 요구하였다.
- <고려사> 권30, 세가 30, 충렬왕 15년 8월

아마 당시에는 청자를 청사기靑砂器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때도 용천요龍泉窯 같은 데서 고급 청자를 버글버글하게 구워냈는데(신안해저유물의 그 많은 그릇을 생각하시라!) 왜 고려청자를 따로 또 요구했을까.

고려청자를 원나라 사람들도 높이 평가해서-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글쎄 그렇게만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분명히 어디에 쓰려고 주문한 것일텐데....항아리, 동이, 병이야 그렇게 특이한 기형도 아닌 만큼 의문은 더욱 커진다.

원대를 대표하는 추부樞府 백자白磁는 14세기 초부터 나온다고 하니 아직 이때는 나오기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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