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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포르투갈 신부가 보고 들은 임진왜란

아래는 18년 전인 2000년 2월에 내가 쓴 것인데, 어찌하다 이 기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 16세기, 예수회 소속 신부로 일본에 파견되어 활동한 포르투갈 신부의 임진왜란 증언기가 번역되어 나왔다는 내용이다. 

이를 어찌하여 내가 당시에 소개하게 되었는지는 내가 정확한 기억이 없다.  주한포르투갈문화원과 내가 교유가 있던 것도 아니로대, 아마 이쪽에서 한 부 우리 공장 문화부로 홍보용으로 배포했던 것이 마침 내 눈에 띄어 소개하지 않았나 한다. 

이 번역물은 틀림없이 내 서재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터인데, 아주 얇은 포케형 비스무리했다는 기억이 있다. 이것이 지닌 의미야 아래 기사를 보면 될 것이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당시 명지대에 자리를 잡았는지, 아니면 아직 보따리 장사하던 시절이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명지대 한명기 교수가 연락이 왔다. 이 냥반이야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 지금이야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우뚝 서서 내가 바라보지도 못하는 거봉이 되었지만 이건 훗날의 이야기다. 


포르투갈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 「일본사」(HISTORIA DE JAPAN)



「포르투갈 신부가 본 임진왜란」 출간

2000-02-03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중국 대륙진출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하면서 들이댄 최신무기가 조총이었다. 이 조총 제조기술을 일본에 전해 준 것이 바로 포르투갈 상인이었다.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조선과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를 공교롭게도 조선을 유린한 조총이 제공한 셈이다. 뿐만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원하러 파견된 명나라 군대에는 포르투갈 특수잠수병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주로 일본함대를 기습공격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이처럼 한국과 포르투갈 관계사에서 임진왜란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원숭이부대 원병猿兵도 보인다.


그런데 임진왜란 즈음 조선을 알았던 포르투갈인들 가운데는 조선에 관한 기록을 남긴 이도 있다. 이들 기록은 임진왜란 직접 당사국들인 조선과 일본, 중국측 관점이 아닌 제3국인이 쓴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중요성을 갖는다.

주한포르투갈문화원(원장 안토니우 브라가)이 최근 「포르투갈 신부가 본 임진왜란 초기의 한국」(번역 강병구)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한 포르투갈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1532∼1597)의 저서도 이런 기록 중 하나이다.

비록 분량은 얼마되지 않지만 이 번역본이 갖는 의미가 더욱 큰 것은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다는 데 있다. 사실 국내 임진왜란사 전공자 대부분은 프로이스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 번역이 이뤄지지 않은데다 포르투갈어를 아는 사람이 그리많지 않아 사료로 적극 이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원래 프로이스 신부가 남긴 기록은 제목이 「일본사」(HISTORIA DE JAPAM)이지만 이 중에서 조선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목은 70장부터 79장까지 모두 10장이다. 이번 책은 「일본사」의 완역이 아니라 이 부분만 옮겼다.

여기서 프로이스는 조선에 대해 아주 상세히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기간 동안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프로이스는 1597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로 일본에 파견돼 무려 28년이란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가 조선과 임진왜란에 대해 관찰자로서 생생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어떻든 이번에 번역된 책을 보면 프로이스는 당시 시대상황을 대단히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 예컨대 히데요시의 대륙침략 의도와 관련, 일본 제후세력들 사이에 일어난 분규를 기술하면서 이런 히데요시의 야심을 오만하고 대담하며 분별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대마도에서 상인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조선의 군사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지적도 나온다.

또한 이 책에서 프로이스는 조선침략이 있기 전 대마도제후의 요청에 따라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일행과 일본 정부 사이에 일어난 알력을 기술하는 한편 조선인들의 애국심과 왕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사고 있다.

프로이스는 조선여인들이 남장을 하거나 노파로 위장해 자신들의 정절과 자식들을 보호하고자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포로가 된 한 조선장수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 한가지도 전하고 있다.

즉 일본군은 자유를 주는 대신 협조하라고 이 조선장수를 회유했다. 그러나 그는 배신을 하느니 차리리 죽음을 택하겠는 표시로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그는 결국 목이 잘리고 말았다고 프로이스는 기록하고 있다.

프로이스의 「일본사」는 20세기에 원고뭉치가 발견됐으며 포르투갈어 전집이 나온 것은 그의 사후 400년이 흐른 1976년이었다. 일본어 번역판도 나왔는데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된 임진왜란 관련 10장은 쏙 빠져버렸다.

비매품이며 문의는 주한포르투갈문화원 ☎(02)3675-228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