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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화랑세기가 아니었으면 영영 묻혔을 문노文弩

by taeshik.kim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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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를 통해 부쩍 친숙한 이름이 된 신라 중고기 인물 문노는 표기가 두 가지라,

삼국사기와 같은 기존 문헌에서는 文努라 하지만, 화랑세기는 文弩라 해서 세심한 차이가 보인다. 

둘 중 어느 쪽이 실상에 가깝냐 단언하면 단연 후자라, 이는 그가 걸은 길 때문이다.

대가야 왕실 계통이라는 혈통을 지녔다지만 사통해서 낳은 아들로 그 혈통이 확실치 아니한 그는 대가야 멸망과 더불어 신라사회에 편입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배경이 없어 무직武職을 전전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간난을 뚫고서 마침내 출세한 그는 군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냈으니, 이런 족적을 볼 적에 그것이 비록 태어나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훗날 바꾼 이름일 가능성이 많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에 더 어울리는 이름은 文弩다.

글자 그대로는 이는 문무를 겸비했다는 의미다. 弩는 활 무기 일종인 쇠뇌를 말한다. 

이 문노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기존 문헌을 통털어 오직 단 한 군데 잠깐 드러내고 사라질 뿐이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김흠운金歆運 전이 그것이라, 그에 의하면 그의 어린 시절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이름만 꼴랑 내밀고 사라지고 만다.

김흠운은 나밀왕奈密王 8세손이며 아버지는 잡찬 달복達福이다. 흠운은 어려서 화랑 문노文努 문하에서 놀았는데 당시의 무리가 아무개는 전사해서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고 말하자 흠운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며 격동하여 그와 같이 되려 하니 같은 문하의 승려 전밀轉密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金歆運, 奈密王八世孫也. 父達福迊湌. 歆運少遊花郎文努之門. 時徒衆言及某戰死, 留名至今. 歆運慨然流涕, 有激勵思齊之貌. 同門僧轉密曰, “此人若赴敵, 必不還也.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에 이름만 꼴랑 한 번 들이밀고 마는 화랑 문노

 
김흠운 이라는 신라 중고기 전쟁통에 용맹하게 싸우다 죽은 그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구절에서 저와 같이 꼴랑 이름만 들이밀고 사라질 뿐이다. 

저에서 보듯이 김흠운은 어린 혹은 젊은 시절 유화랑문노지문遊花郎文努之門했다. 이 구절을 보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으니 그것을 잠깐 추억하고자 한다. 

저 화랑세기 논쟁을 나는 그것을 가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정통고대사학도 尹모와 대판 온라인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가 대뜸 저 구절을 꺼내면서 이르기를 

김흠운이 화랑 문노한테서 배웠다는데, 문노는 화랑세기에는 건복建福 23년 606년에 죽었는데, 어찌하여 그 이후에 태어난 김흠운이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느냐

고 했으니, 이것으로 봐도 화랑세기는 가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일갈하기를

당달 봉사냐? 흠운이 문노지문文努之門에서 遊했다 했지, 어디에 문노한테 직접 배웠다고 했느냐? 그딴 식으로 사료도 제대로 못 읽느냐 

했으니, 그가 아무런 대응도 못했다고 기억한다. 

애니웨이, 문노라는 이름은 저처럼 이름 한 번만, 것도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김흠운이라는 그의 사후 재전제자쯤 되는 사람 전기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잠깐 들이밀었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저 짧은 구절에서도 우리가 절감해야 하는 대목은 문노가 어떤 인물인지 확실치는 아니하나 화랑花郎을 역임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화랑이 무엇인가? 신라 중고기 신라사 한 켠에서 맹렬한 족적을 남긴 군사적 성격과 수련회 성격이 아주 강한 교단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나는 이를 오두미도 계열 신천사도 도교 무사 집단이라 보거니와, 아무튼 그런 교단을 한때 이끌던 막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막강 인물이 여타 어디에도 이렇다 할 족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영영 사라질 뻔했다. 

그런 이름만 꼴랑 남은 문노가 화랑세기를 통해 비로소 그 화려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 면모는 훗날 김유신의 그것에 버금했다.

그가 죽을 때 열두살인 김유신이 이후 펼친 맹렬한 활동은 역사가 넘치게 증언하거니와, 그에 못지 아니하는 위대한 군사 영웅이 바로 문노였다. 

그의 이름만 봐도 피비린내가 나지 아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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