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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1876-1945: 계속 표변한 일본

by 초야잠필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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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이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1876-1945년까지의 일본의 국력과 실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시종일관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적 수준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의 수준을 달리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 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한국사에서 보는 일본은 주구장창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1876년 조선의 개항당시 일본의 국력은 제국주의와는 당연히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당시 수준이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말이다. 

일본이 관세자주권을 회복하여 구미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이 완전히 끝난 시기는 1911년이다. 

이 시기는 일본도 제 코가 석자로 자기들도 구미 제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1876년 당시 일본이 군함 한 척으로 시위하며 정한론을 이야기할 때 덜컥 거기에 놀라 개항을 한 조선 정부도 황당하다. 

정작 프랑스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는 결사항전하면서 일본에는 덜컥 개항해 버린 이런 상황은 

수백 년 전 임진왜란 때문에 일본의 무력에 대해 겁을 먹어 있던 상태에서 군함을 몰고 오니 쫄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육제도에서 보듯이 당시 일본도 서구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제국주의?  더더욱 그쪽도 그런 수준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청일전쟁 이후까지도 계속되었다. 

일본은 사회 전반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국주의로는 함량 미달이었고 

이런 상황은 러일전쟁과 1차대전을 거쳐야 간신히 종식되었다. 

1차대전 이후가 되면 일본은 명실상부한 제국주의의 대열에 들어간다. 

이 시점이 되면 한국사는 일본에 대해 또 한 가지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 

1920-30년를 원칙도 없이 일본이 칼들고 쳐들어와 털어가는 시대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폭력 행사는 1차대전 이전까지는 사실일지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는 "일본제국주의"는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 

조선인을 패더라도 나름의 규칙에 따라 패는 사회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도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그들 나름의 법률과 원칙에 따라 돌아가고 있었기 떄문에

이 시대의 분석은 당시 일본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의 정확한 규명 없이는 정확히 볼 수 없다. 

일차대전 이후 일본의 모든 불공정함과 불평등을 당시 일제를 움직이는 원칙 그 안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는

일본은 이 시기에 임의적이고 즉자적인 방식으로 조선을 상대하는 단계를 이미 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이 조선을 털어가는 사실을 규명하려 해도 일본 제국 전체의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해야

그 안에서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방식도 따라서 규명되는 것이지, 

19세기 말과 같이 무대뽀 칼질로 사회를 통제하는 시대로 인식해서는 그 시대 조선의 고난을 제대로 분석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일본의 이러한 1920-30년대식 조선통치가 종식되는 시기가 중일전쟁 이후이다. 

30년대 말에서 40년대가 되면 일본사회는 패전이 목전에 와 막장으로 치닫는다. 

일본의 교육제도도 무너지는 징후가 농후하며 사회가 원칙도, 규율도 없이 하루하루 되는 대로 땜빵하는 징후가 농후해 지기 시작하니, 

일본 식민통치에서 이 시대는 한국사의 입장에서 또 다른 시대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 

한국근대사에서 일본이란 개항이후에서 패망까지 기간 동안 끊임없이 표변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러일전쟁-1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제국주의 흉내를 내고 스스로도 수준 미달인 상태에서 조선에 대해 공갈 협박이나 하며 위협하는 존재였다면, 

1차대전이후가 되면 명실상부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조선에 대한 통치도 나름의 시스템에 의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분석해 내는 데에는 일본사회 전체에 대한 연구가 불가결하다. 조선만 떼 놓고 볼래야 볼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37년 중일전쟁 이후는 또 다른 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막장 일본의 시대이기도 하고, 대부분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이미지는 이 시대에서 유래한 것이다. 

개항부터 해방까지 일본에 대해 불쾌한 기억만 가지고 있는 한국이 이 시대를 시종일관 동일한 성격의 일본제국주의로 묘사하고 이해하려는 심정은 이해한다. 

맞는 입장에서 패는 쪽이 기분에 따라 패는것과 시스템에 의해 패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 수준과 조선통치 방식이 끊임없이 표변한것이 사실인 다음에야 시대에 따른 일본의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이에 맞춰 조선인의 당시 수난사를 사실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러일전쟁 당시의 일본군. 한국사에서는 개항 이후 일본은 시종일관 제국주의이겠지만, 실제로 일본이 제국주의 반열에 들어간 것은 1차 대전 이후였다. 1차대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일본의 조선에 대한 통치의 분석은 그 틀을 달리해야 한다. 흔히 민비를 살해한 칼잡이 일본의 시대와 40년대 이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아 막장으로 달리는 일본을 이어붙이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전간기의 일본의 분석을 달리하지 않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전간기 일본의 조선 통치는 1차대전 이전과 중일전쟁 발발 이후의 일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일본의 조선통치의 상당부분이 바로 이 전간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분석은 일본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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